구텐베르크 혁명
존 맨 지음, 남경태 옮김 / 예지(Wisdom) / 2003년 2월
평점 :
절판


(책표지는 엉뚱한 녀석이 뜨네? -_-;;;;;) 

 



 직지심경을 ‘혁명’으로 삼지 않았으니 대한뉴스 따위가
 [잠깐 읽기 42] 존 맨, 《구텐베르크 혁명》



- 책이름 : 구텐베르크 혁명
- 글 : 존 맨
- 옮긴이 : 남경태
- 펴낸곳 : 예지 (2003.2.5.)
- 책값 : 14500원


 (1) 우리한테는 어떤 책이 있는가


 헌책방을 다니면서 놀랄 때가 더러 있습니다. 1970∼80년대에 나온 책인데, 그때 그 책에 붙은 값이 그때 여느 노동자 여러 달 일삯이 될 만큼 비싼 녀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두툼한 사전이라면 그럴 수 있다지만, 그리 두툼하지 않으며 사전 아닌 학술책임에도 대단히 높은 값을 붙인 책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책은 요즈음에도 있습니다. 그만큼 값어치가 있고 뜻이 있다 하여 5만 원이니 7만 원이니 10만 원이니 15만 원이니 37만 원이니 하고 책값이 붙는데, 스무 해쯤 앞서인가 어느 분은 150만 원짜리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헌책방을 다니면서 새롭게 놀랄 때가 가끔 있습니다. 일본에서 나온 손바닥책을 보면서 놀라는데, 자그마치 1000쪽이 넘는 손바닥책을 펴내는데, 무게도 가볍고 펼쳐 읽기에도 좋으며, 알맹이도 야무졌습니다. 글씨는 작지만 읽으면서 눈이 아프지 않았고, 게다가 이 1000쪽이 넘는 손바닥책은 ‘사진 문고’였습니다.


.. 그 전까지 성서는 수도사들이 양피지에 필사하고 온갖 화려한 장식을 붙여 만드는 상당한 고급품이었다. 게다가 양피지의 재료값과 보통 한 달 이상이 걸리는 제작 공정을 감안하면 양피지본 성서는 일반인들이 구입하기 어려운 사치재였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위클리프와 후스가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친들 제대로 먹혀들기 어려웠다. 최소한 서민들의 가정마다 성서가 비치되어 있어야 성서로 돌아가든 말든 할 게 아닌가? 따라서 민중은 여전히 교회가 해석하는(또는 곡해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인쇄술로 인해 성서가 대량으로, 값싸게 출판된 것은 종교개혁의 필수적인 배경이었던 것이다 ..  (8쪽/옮긴이 말)


 범우사에서 ‘범우문고’를 1000원이나 2000원에 판 때는 그리 오래된 옛날이 아닙니다. 내로라하는 지식인마다 ‘삼중당문고’를 보며 자랐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삼중당문고가 아니었어도 뜻깊고 알차며 값싸고 야물딱진 손바닥책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얼마 앞서 빈센트 반 고흐 편지를 추려모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아트박스,2009)가 새롭게 나왔는데, 800쪽짜리 26000원인 이 책을 보면서 지난날 정음사에서 ‘정음문고’로 낸 작고 가벼운 손바닥책이 떠올랐습니다. 비록 1970년대 정음문고에는 반 고흐 편지가 더 많이 실리지 않았습니다만, 1970년대 사람들은 이 작고 야무진 책을 단돈 몇 백 원으로 장만할 수 있었고, 나라안 헌책방에서도 2000년이 될 무렵까지 500원이나 1000원이면 ‘반 고흐를 만나고 새길 수 있었’습니다.

 《창가의 토토》 같은 책은 요즈음 새책 한 권 값이 8800원이니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처음 펴낸 일본에서는 겉을 딱딱하고 두꺼운 판으로 댄 양장본도 있으나 훨씬 작고 조촐한 판으로 된 값싼 손바닥책을 함께 펴냈습니다. 일본에서는 웬만한 책들은 ‘작고 조촐하고 알차고 값싼’ 판으로 엮어내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아이들 그림책은 으레 두꺼운 판을 대어 ‘접히거나 구겨지거나 찢어지지 않게끔’ 해 주고 있는데, 일본이나 서양에서는 꼭 ‘두꺼운 판 대기’만을 하지 않습니다. ‘두꺼운 판이 아닌 여느 두꺼운 종이(여느 도화지보다 조금 두꺼운)를 쓴’ 가볍고 값싼 책도 곧잘 펴냅니다. 《내게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여동생이 있습니다》라는 그림책은 처음에 이렇게 ‘두꺼운 종이 하나로만 살짝 댄 판’으로 나왔다고 떠오릅니다.


.. 1400년경에는 현대적 개념의 과학적, 역사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었다. 문헌의 양이 사막의 꽃처럼 드물었을 뿐더러 설사 있다 해도 평생 동안 찾아다녀야 겨우 하나 건질까 말까 한 정도였기 대문이다. 유일하게 참된 진리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뿐이었다. 교회는 마치 빅 브러더처럼 (문헌을 다루는) 필경사와 (구술을 다루는) 사제, 그리고 둘 다에 관련된 예술가를 이용하여 매체를 통제했다. 교회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부유해졌으나, 부와 특권에 부수되게 마련인 오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  (61쪽)


 ‘공정여행 가이드북’이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456쪽에 이르는 무지개빛 사진 가득 담긴 이 책은 16000원이 붙습니다.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라는 작은이름이 붙은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천권의책,2009)도 읽고 있습니다. 339쪽에 이르고 판은 조금 작고 글도 얼마 안 실려 있으나 책값은 15000원이 붙습니다.

 책값이 싸다고 착하거나 좋은 책이 아닙니다. 책값이 비싸다고 나쁜 책이거나 못된 책이 아닙니다. 다만, 책 하나 만들면서 어떤 종이를 어떻게 쓰고, 글은 빈자리를 얼마나 두면서 엮어내어 보여주려 하느냐를 헤아릴 노릇입니다. 종이 무게에 따라 종이값이 달라지고, 종이값이 달라지면 으레 책값이 달라집니다. 빛깔있는 사진을 넣으면 인쇄값이 높아집니다만, 부수를 적게 하면 인쇄단가가 높은 셈이라 책값을 낮게 매기기 어렵습니다. 1000권을 찍을 때하고 1만 권을 찍을 때하고 인쇄단가가 사뭇 다르기에, 책 하나에 붙는 값도 벌어집니다.

 그러나, 책이 가볍고 예쁘장하며 값까지 싸다고 하여도, 속에 담은 알맹이가 여물지 못했으면 눈길이나 손길이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겉꾸밈이 훌륭하다 하여도, 훌륭히 꾸민 겉싸개가 안고 있는 알맹이가 흐물흐물하거나 곪아터져 있다면, ‘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렵습니다. 한낱 ‘종이뭉치’입니다.

 신문이라는 이름으로 찍혀 나오더라도 신문 노릇을 하지 않을 때에는 신문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학생들 앞에 서더라도 교사 노릇을 하지 않을 때에는 교사라 하기 어렵습니다. 책이 책 노릇을 할 때라야 비로소 책 값어치가 있습니다. 책으로서 값어치가 있을 때에는 조금 비싸더라도 즐겁게 장만할 수 있으며, 값어치가 있으면서 눅은 값이라 하면 한결 고맙게 마련할 수 있는 대목이 다릅니다.


.. 아르보가스트 수도원 근처에서 구텐베르크는 무슨 일을 했을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는 돈을 벌고 싶었고, 그것도 많이 벌고 싶었다 … 하지만 이제는 실질적인 최종 생산물, 즉 책이 있어야 한다. 그만한 경비와 노력을 기울이고 채무까지 떠안은 판에 실패란 있을 수 없다. 그는 베스트셀러가 필요했고, 그것도 가능한 한 여러 권이 있어야 했다. 아직 성서는 상업적 가능성이 명백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교회와 성직자들을 감안하여 성서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했다 … 신학자와 성직자들은 교리를 수호하는 역할을 통해 권위와 더불어 막대한 수입도 올렸다. 성서를 널리 보급해야 한다는 생각은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같은 소수의 사람들만 품고 있었다. 일반 사람들-특히 구텐베르크의 기본 시장이 되어 줄 학생과 교사들-은 성서가 없었으며, 필사본이든 인쇄본이든 성서를 구입할 만한 재정적 여유도 없었다 ..  (90, 194∼195쪽)


 그러면 우리 나라에는 어떤 책이 있을까요. 우리 나라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책마다 어떤 알맹이를 넣어 꾸미고 있을까요. 책을 만들고 팔아 번 돈은 책 만들기에 얼마나 다시 돌아가도록 얼거리를 짜 놓고 있는가요. 흔한 말로, 책 팔아 번 돈으로 땅 사고 빌딩 사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 팔아 거둔 돈으로 음료수 만들고 정수기와 비데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 팔아 번 돈으로 교재 만들어 더 커다란 돈을 긁어모으려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책을 쓰는 사람들 땀방울, 책을 엮는 사람들 품, 책을 사읽는 사람들 주머니와 겨를을 온통 빼앗거나 내동댕이치는 쪽으로 흐르는 오늘날 우리 책문화가 아닌지 궁금합니다.


.. 1450년까지도 면죄부는 교회가 기금을 모집하는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  (209쪽)


 무엇보다도,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이 ‘교과서 아닌 책’을 들여다볼 틈을 내주지 않는 매무새와 흐름이 걱정스럽습니다. 이 나라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과 키우는 어른이 당신 아이들한테 스스로 ‘교과서 아닌 책’을 읽도록 책을 베풀거나 말미를 마련해 줄 생각은 아예 없지 않느냐 싶어 근심스럽습니다. 가까스로 입시지옥에서 벗어났어도 ‘책다운 책’을 알아가도록 아이들을 풀어놓지 않고서 ‘새로운 돈벌이 굴레’에 허덕이도록 내몰면서 바보처럼 살도록 밀어내지는 않느냐 싶어 가슴이 저밉니다.


 (2) 직지심경은 ‘혁명’이 못 되었으나 구텐베르크는 ‘혁명’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랐다고 하는 《직지심경(불조직지심체요절)》이라는 책이 우리 나라에서 1377년에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우리네 옛 역사가 얼마나 거룩하고 대단했는가를 들면서 《직지심경》이며 온갖 ‘옛 활자본’을 이야기하고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서양에서는 《직지심경》을 그리 대단하게 높이거나 받들지 않는 듯 보입니다. 햇수로 치면 《직지심경》이 훨씬 앞서는 금속활자본이라 할 만하지만, ‘맨 처음’이라는 대목을 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벤베르크가 했던 성경 찍기는 서양에서 ‘종교개혁’뿐 아니라 ‘사회와 문화 뜯어고치기’를 이룬 발판이 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 나온 《직지심경》은 여느 사람들 삶하고는 아주 동떨어진 채 ‘조용히’ 이루어졌거든요.


.. 그런데 왜 동양에서는 그 인쇄술이 꽃을 피우지 못했을까? 왜 동양에서는 인쇄술을 바탕으로 ‘출판사’들이 곳곳에 세워지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민간 부문이 발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관에서 독점하던 동양 역사의 특유한 성격 때문이다. 지배층의 관점에서, 서적이란 일반 백성이 보는 게 아니었다. 그랬기에 동양에서는 인쇄술이 개발되었어도 ‘장서용’ 역사서나 몇 부 찍어서 서고(사고)에 보관하는 게 고작이었던 것이다. 지식은 생산의 측면에 못지않게 보급의 측면이 중요하다.지식의 대중화는 지식의 재생산과 업그레이드를 가능케 할 뿐더러, 지식을 독점하고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차단함으로써 권력을 누리는 지식 권력체가 등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때문이다 ..  (10쪽/옮긴이 말)


 교과서에 몇 줄로 짤막하게 ‘종교개혁’을 했다는 사람으로 나와 있는 ‘루터’라는 사람은, “교황은 면죄부 판매상들의 탐욕과 부정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성 베드로 대성당이 신도들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355쪽)” 같은 말을 책으로 찍어서 사람들한테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루터가 이런 말을 했는지, 또 다른 어떤 말을 했는지 잘 모릅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세계사 교과서로는 이러한 이야기를 알 수 없었습니다. 헌책방마실을 하며 찾아낸 ‘루터 평전’이 두어 가지 있는데, 이런 책을 읽었을 때 비로소 이와 같은 대목을 헤아릴 수 있었으나, 학교 교과서 교육으로는 오직 한 마디 ‘종교개혁’이라는 말마디만 듣고 배웠을 뿐입니다.


.. 인쇄는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확산시켰다. 예전에는 지배자들이 추종자들에게 말하거나, 법률가들이 법정에서 말하면 그들의 말은 문자 기록으로 남았다. 학자의 저작이나 성현의 가르침과는 달리 민간의 문학 작품이 글로 남게 되는 경우는 드물었다(거기에 단테의 《신곡》,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초서의 《켄터베리 이야기》, 피콜로미니의 《두 연인의 이야기》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어디서나 라틴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설득력 있게 말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느 누구-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첵에서가 아니면) 그런 적이 없었다. 이제 새로운 양식이 발명되었다 … 인쇄술이 남긴 중요한 결과들 중 한 가지는 인간의 행위와 지식의 거의 모든 측면을 범주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  (339, 341쪽)


 우리 나라는 인터넷이 집집마다 들어서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셈틀 한 대쯤 없는 집은 없다고 할 만합니다. 텔레비전 안 키우는 집이란 몹시 드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온나라 사람이 낱낱이 꿰고 있지는 않으나, 신문이나 방송에서 날마다 떠도는 소식과 정보로 우리 머리와 눈과 귀가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소식과 정보를 듣고 얻을 문은 있되, 우리 스스로 온갖 소식과 정보를 일구어 나눌 자리는 마땅하지 않습니다.

 며칠 앞서 정부에서는 ‘극장판 대한뉴스’를 되살려 내었습니다. 극장에서 틀어 주는 대한뉴스란 지난날 독재정권이 일삼던 ‘땡전뉴스’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사람들한테 세금을 거두어들여 허튼 짓을 하면서 이 허튼 짓이 허튼 짓이 아닌 듯 보이도록 하려는 몸짓입니다. 일제강점기 때에 제국주의자들이 천황한테 예의를 지키라 했고, 해방 뒤 독재정권이 나라님 앞에 예의를 지키라 했듯(국기에 대한 경례와 맹세), 대한뉴스나 땡전뉴스는 이러한 소식과 정보를 내보이면서 ‘이런 이야기도 있으니 한번 들어 보라’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참이니까, 다른 데에 귀기울이지 말고 고스란히 믿고 따르기만 하라’는 억누름입니다.

 국가보안법으로 우리 넋과 얼과 말과 몸짓을 옭죄는 이 나라는, 대한뉴스라고 하는 허수아비 시늉을 선보이면서 우리네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남김없이 보여준다고 할까요. 자유롭고 너른 생각과 뜻을 나누려는 ‘개혁’을 꿈꾸며 책을 찍고 인쇄술을 발돋움시킨 한국이 아니었던 지난날 발자국처럼, 오늘날에 와서도 자유롭고 너른 생각과 뜻을 북돋우고 이끌어 내려고는 꿈꾸지 못하는 어줍잖고 어리숙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할까요.


.. 틴들의 《신약성서》는 최대한 가격을 낮게 책정했기 때문에 높은 수익을 노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필사본 성서의 가격이 30파운드 이상이었을 때-당시 노동자의 연가 수입은 겨우 2파운드였다-, 틴들의 《신약성서》는 소매 가격이 4실링(20펜스)이었고, 때로는 더 낮았다 … 당시 가톨릭에서 신교로 향하는 고통스럽고 피비린내나는 이행을 겪고 있었던 잉글랜드에서 틴들은 결과적으로 큰 기여를 한 셈이었다. 그가 영어의 봇물을 터뜨린 덕분에 수십 년 뒤에는 셰익스피어와 흠정영역성서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틴들은 일상어를 사용해서 성서를 번역했다는 점에서 잉글랜드의 루터였다. 그는 “소박한 모국어로 된 성서를 눈앞에 놓아 주지 않으면” 보통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회의하는 어느 성직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래 전에, 나는 쟁기를 가는 소년을 가르쳐, 당신보다 성서에 관해 더 많이 알도록 만든 적도 있었소!” ..  (376, 378쪽)


 대한뉴스 이야기를 한 마디 보태 본다면, ㅈ일보 어느 기자는 “아직도 우리는 대한뉴스를 보면서 웃어줄 여유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혹시 대한뉴스가 자신의 사상을 지배하게 될까봐 그래서 두려운 것은 아닐까? 그렇게도 자신의 사상에 대해서 자신이 없는건가?”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묻는 일은 잘못이 아닙니다. 대한뉴스를 옳게 여기고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뉴스란, ‘극장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즐겁게 볼 권리를 빼앗’습니다. 더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느니 마느니에 앞서 우리들한테 ‘보여주어도 되느냐?’ 하고 묻지 않았으며, 보여준다고 할 때에도 어떤 이야기를 누가 엮고 짜서 보여주려고 하는가를 묻지 않았고, 열린 자리에서 옳고 그름을 똑똑히 듣거나 살피지 않았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버젓이 이루어지는 ‘허울좋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하고 매한가지인 대한뉴스이고 국가보안법입니다. 자율로 이루어지지 않는 자율학습처럼, 대한민국 이야기라 할 수 없는 대한뉴스입니다. 보충을 하려고 하는 보충수업이 아니듯, 국가를 보안한다는 뜻이 아닌 국가보안법입니다. 예나 이제나 수없이 많은 일들이 ‘나라사랑(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여집니다. 날마다 숱한 일들이 ‘공익’이라는 이름을 걸고 펼쳐집니다.

 《구텐베르크 혁명》을 쓴 존 맨 님은 책을 마무리할 즈음, “금지된다는 것은 일종의 추천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흠을 잡기는 쉽다. 검열관은 원래 세계 어디서나 욕설과 조롱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382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이 나라 정부나 군대에서 아직까지 ‘불온도서-금지도서 목록’을 만들어 내놓는 일과 마찬가지로, 1400년대까지 서양 교회에서는 ‘불온하니 금지할 책이 이렇게 있다’고 알리곤 했고, 그 뒤로도 끝없이 알리고 있습니다.


.. 군주와 의회는 더 이상 글을 아는 사람에게 자신들의 통치 행위를 숨길 수 없었고, 자신들이나 후손들의 책임을 면할 수 없었다 ..  (344쪽)


 굳이 ㅈ일보 기자 말이 아니더라도 ‘대한뉴스를 수없이 틀어대어도 정부가 잘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잘하는 줄 깨닫고, 잘못하고 있으면 잘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웃으면서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ㅈㅈㄷ이라고 하는 신문들을 얼마든지 ‘웃으면서 너그러이 펼쳐들’ 수 있고, 경품권을 기쁘게 받아들면서 집에서 신문 한 부 받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합니다. 이런 일은 ‘옳은’ 일인가요? 이런 일은 ‘바른’ 삶인가요? 대한뉴스를 보면서 웃어 주자고 하는 ㅈ일보 기자님은 ‘ㅈㅈㄷ이라는 신문을 꾸짖고 나무라는 사람들 목소리’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받아들이거나 하하 웃으면서 보아넘기고 있으신지요?

 ㅈㅈㄷ이든 다른 신문이든, 또 인터넷이든 방송이든, 옳은 일은 옳게 해야 하고, 옳지 못한 일은 옳지 못한 일이었음을 느끼도록 꾸짖음을 듣고는 차근차근 고쳐 나가야 합니다. 《구텐베르크 혁명》이라는 책에도 이야기가 나오지만,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통치 행위를 숨길 수 없”으니까요. 나라에서는 사람들을 더 바보로 가는 길로 내몰고, 너른 터를 빼앗으며, 비정규직으로 몰아세우지만, 이렇게 내몰리고 빼앗기고 몰아세워진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바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박물관 유적이 되어 유리진열대 안에 놓이거나, 역사책에 적혀 시험문제 풀이로 외워야 하는 ‘직지 이야기’가 아닌, 우리 삶을 옳고 바른 쪽으로 고쳐 나가도록 돕는 ‘책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고 사랑을 쏟고 싶고 믿음을 함께하고 싶어할 테니까요. (4342.6.2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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