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퐁 Pong Pong 3 - 완결
오자와 마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착한 사람, 착한 만화, 착한 웃음과 눈물
 [살가운 만화 47] 오자와 마리, 《PONG PONG》



- 책이름 : PONG PONG (1∼3)
- 글ㆍ그림 : 오자와 마리
- 옮긴이 : 서수진
- 펴낸곳 : 대원씨아이 (2008.9.15.∼2009.4.15.)
- 책값 : 한 권에 4200원씩



 (1) 착한 만화 즐기기


 만화책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밤이 새는 줄 모르며 이야기꽃을 피우곤 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만화가 비슷하거나 겹치면 여러 날 지치지 않고 이야기나무를 심기도 합니다. 그런데 둘레에 만화 좋아하는 분들이 많기는 하여도 ‘순정만화’를 좋아하는 분은 생각 밖으로 그리 안 많고, 순정만화를 좋아한다고 하여도 제가 즐기는 순정만화와 그분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가 어느 만큼 벌어지기도 합니다.

 나라안 만화로는 김진, 원수연, 박연, 황미나, 김혜린, 강경옥 들을 즐겨 보았습니다. 나라밖이라기보다 일본 만화로는 오사무 야마모토, 준코 카루베, 니노미야 토모코, 미츠하시 치카코, 오자와 마리 들을 즐겨 보고요. 이 가운데 미츠하시 치카코 님 작품은 나라안에 제대로 옮겨지지 않아 거의 헌책방에서 일본판으로 만나 책장을 넘기는데, 일본글을 읽을 줄 몰라도 그림결로도 따뜻함과 수수함을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글은 그 나라 글을 따로 익히거나 번역책을 읽어야 하지만, 사진과 그림과 만화는 그 나라 글을 모르고 번역이 되어 있지 않아도 얼마든지 함께하면서 즐길 수 있다고 할까요.


..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뜻하고, 완전 데이트하기 딱 좋네. 이런 날, 이런 냄새 나는 사내놈들 틈바구니에서 난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왜 하필 하고 많은 학교 중에 이런 남학교에 왔나 몰라. 이런 산속에선 땡땡이쳐 봐야 할 일이라곤 나물 캐기밖에 없을 텐데.’ ..  (1권 10쪽)


 다만, 순정만화를 그리며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분들 작품이라고 해서 모두 즐기지는 않습니다. 저한테는 저대로 좋아하는 만화가 있기 때문인데, 어떻게 보면 딱히 ‘순정’만화를 즐긴다기보다, ‘착한’ 만화를 즐겼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란마 1/2》이나 《도레미하우스》 같은 만화를 보면서도 이야기가 퍽 착하다고 느끼면서 좋아했는데(어찌 이 만화들이 ‘착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만화란 누구나 저 보고픈 대로 보고 느끼고픈 대로 느끼기 나름이라는 말씀을 올립니다), 저로서는 착하지 않은 만화에는 그리 눈길이 끌리지 않습니다.

 《로버트 크럼의 아메리카》 같은 작품은 퍽 눈여겨볼 만하다고 느끼면서 즐겨 보기는 했지만, 좀 뾰족뾰족하다고 해야 할까, 어지럽다고 해야 할까,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얼마나 뒤틀렸는가를 보여주는 작품이니 그 느낌 그대로 만화를 그릴밖에 없었을 텐데, 한 번 덮고 난 뒤로는 다시 들추지 않습니다. 《따끈따끈 베이커리》는 얼핏 느끼기에는 착할 듯 보였지만, 정작 권수를 더해 가면서 짓궂고 억지스러운 대목이 많아 그리 내키지 않았습니다. 이와 견준다면 《딸기 100%》가 한결 나았다고 보는데, 야자와 아이 만화 가운데 《NANA》가 퍽 많이 사랑받고 있지만, 저한테는 《NANA》나 《파라다이스 키스》보다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천사가 아니야》가 훨씬 사랑스럽고 즐거웠습니다. 






.. “미안해. 오오시마. 내가 가서 설명할게. 단장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지금 바로.” “아냐, 됐어.” “그치만, 그동안 팀을 꾸리고 열심히 애쓴 건 넌데.” “우리 모두지. 모두가 같이 노력한 거잖아.” ‘아아. 바로 이 미소야.’ ..  (1권 41쪽)


 생채기를 남기는 줄거리를 다루기 때문에 ‘착하지 않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두 갈래만이 아니기 때문이요, 세상을 둘로 가른다 할 때에도 ‘까망과 하양’으로만 가를 수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흥미 님이 그린 《디스》나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우리 집》은 ‘그림감을 무엇으로 잡든 그림결을 어떻게 펼치느냐’에 따라서 따스함과 수수함은 사뭇 달라짐을 보여줍니다. 송채성 님이 그린 《취중진담》도 그렇습니다. 《쉘 위 댄스?》나 《미스터 레인보우》도 그렇고요. 가난, 아픔, 외로움, 성 정체성, 푸대접, …… 세상을 가르는 수많은 잣대를 만화로 다루든 사진으로 다루든 글로 다루든, 우리가 받아들여 삭여내기 나름입니다.

 그예 뾰족뾰족하게 마주할 수 있으나, 거울처럼 튕겨낼 수 있습니다. 그지없이 넉넉하게 품에 안을 수 있으며, 스스럼없이 껴안을 수 있습니다. 모르는 척 흘려보낼 수 있는 가운데, 깨닫지 못하며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맨발의 겐》처럼 아주 투박하면서도 거칠게 ‘전쟁과 평화’를 담아낼 수 있지만, 《머나먼 갑자원》이나 《도토리의 집》처럼 참으로 부드러우면서 살가이 ‘전쟁과 평화’란 무엇인가를 넌지시 느끼도록 할 수 있어요.


.. “후유코 누나는 했어요?” “어?” “노력요. 토고 선배한테 왜 좋아한다고 말 안 해요.” “그야, 예쁜 앨 좋아하니까. 그리고 약해져 있을 때를 이용하는 건 솔직히 안 내켜. 대학 준비로 바쁘기도 했고.” “그건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억지로 고백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서 아무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포기하고. 그런 건, 무지 꼴사나워요.” ..  (1권 71∼72쪽)


 《게임방 소녀와 어머니》 같은 작품을 보면서, 우리도 이렇게 우리 깜냥껏 재미난 틀을 마련한다면 몹시 애틋하면서 맑은 웃음을 티없는 눈물과 함께 선물할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린이가 3권으로 너무 짧게 끝내 버린 대목이 아쉽지만, 한국 만화밭으로는 3권까지 그린 대목이야말로 놀랍다 할 수 있어요. 권수가 늘어날수록 재미가 떨어져 이제는 더 안 보지만, 《알바고양이 유키뽕》 같은 일본 만화는 참 놀라웠습니다. 나라안에도 《납골당 모녀》를 그린 강현준 님이 《cat》을 그렸는데, 집에서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이 꽤 많으면서도 이렇게 재미와 웃음이 톡톡 묻어나게끔 살뜰히 그리는 만화쟁이는 너무 없습니다. 바라보는 눈이 굳었다고 할까요, 느끼는 가슴이 닫혔다고 할까요.

 그렇다 하여 ‘착한’ 만화를 그리는 분들은 바라보는 눈이 말랑말랑하고, 느끼는 가슴이 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착하게 그릴 줄만 알고 알맹이가 없는 만화도 많으니까요. 그린이 스스로 우리한테 할 말이 있는 가운데 착하게 엮을 수 있을 때 비로소 흐뭇하면서 즐거운 만화, 두 번 세 번 거듭 들여다보며 즐기는 만화가 된다고 봅니다.

 《빈곤자매 이야기》라든지 《빈민의 식탁》 같은 작품이 이런 얼거리에 걸맞는 ‘착한’ 만화입니다. 《여자의 식탁》도 돋보이는 착한 만화이며, 같은 이름으로 된 책이 많은데, 이와시게 타카시 님 《흐르는 강물처럼》도 눈여겨볼 작품입니다. 《내 마음속의 자전거》 또한 따뜻함과 넉넉함과 살가운 들을 듬뿍 담으며 우리한테 ‘야무진 알맹이에 책장 넘기는 재미’를 한껏 북돋우는 작품입니다. 자전거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내 마음속의 자전거》와 함께 《스피드 도둑》도 좋아하지만, 저는 《스피드 도둑》은 그리 내키지 않아요. 지나치게 ‘싸움을 붙이’고, ‘서로를 너무 미워한’다는 느낌이 짙으며, ‘더 세고 튼튼하고 커야’지 좋은 듯하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 ‘역시, 오타쿠틱해. 그래도 좋아. 그냥 좋아. 이유 없이 좋아.’ ..  (1권 83쪽)


 애장판으로 다시 나와도 널리 사랑받는 《아기와 나》 같은 작품 또한 제가 아주 좋아하는 ‘착한’ 만화입니다. 《최종병기그녀》를 그린 다카하시 신 님 작품 《좋은 사람》은 책이름부터 ‘착한’ 이야기를 담은 만화라고 보여주는데, 처음부터 ‘할 말’과 ‘보여줄 이야기’가 뻔히 드러났어도 기쁘게 읽었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 님 《야와라》도 얼핏설핏 느끼기로는 ‘착한’ 쪽으로 흐를 듯했지만, 이 또한 《스피드 도둑》처럼 ‘더 크고 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플루토》를 볼 때에도 기쁨이나 반가움보다다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을 느낍니다(틀림없이 《플루토》를 아주 좋아할 분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이 또한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잘 그리지도 못했다고 느낍니다). ‘아톰’에서 밑생각을 따오는 대목이야 그린이 자유입니다만, 테즈카 오사무 만화에서 ‘아톰’은 그냥 그런 ‘로봇’이 아니에요. 테즈카 오사무 만화에서 ‘아톰’을 비롯한 수많은 주인공에 어떤 마음과 넋이 담겼는가를 읽어내어야만, 또 느껴야만, 또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만 비로소 ‘아톰을 따왔다’고 스스럼없이 밝힐 수 있지 않느냐 싶습니다.

 《붓다》며 《불새》며 《뱀파이어》며 《노만》이며 《미크로이드 S》며 《아야코》며 《넘버 7》이며 《블랙잭》이며,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에 남달리 스민 사랑과 믿음을 읽어내지 않고서 섣불리 ‘아톰’을 불러오는 일은, 우라사와 나오키 님은 당신 이름만으로도 사랑을 두루 받고 있지만, 스스로 어줍잖은 이름값을 좀더 높이려는 얕은 손길이라고 느낄 뿐입니다.


.. “상대팀 치어리더는 우리와 달리 전부 여학생들로만 구성되어 있대. 우리 팀이 이기지 못하는 건 아마 그것뿐일 거야! 하지만 여장을 하면 틀림없이 그것도 문제없어! 적어도 관객을 웃기는 건 우릴 테니까!” ..  (1권 116쪽)


 《아기공룡 둘리》뿐 아니라 《아리아리 동동》이라든지 《일곱 개의 숟가락》이라든지 《소금자 블루스》라든지 《볼라볼라》라든지 《꼬마 인디언 레미요》라든지 《쩔그렁쩔그렁 요요》라든지 《미스터 점보》라든지 《오달자의 봄》이라든지 《자투리반의 덧니들》이라든지 《홍실이》라든지 《1남3녀 막순이》라든지 《날자 고도리》 같은 작품에 한결같이 흐르는 구수한 사랑과 뜨거운 눈물이란, 내 마음속에 깃든 하느님을 느끼고 네 가슴속에 살아숨쉬는 하느님을 만나는 반가움입니다. 이러한 반가움이 없이 그리는 만화라면 겉보기로는 착해 보이는 만화이지만, 속살은 하나도 착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백성민 님 만화를 날카롭고 무섭다고도 하던데, 《장산곶매》와 《삐리》와 《장길산》과 《백범일지》 들에 흐르는 붓질은 더없이 반갑고 기쁜 봄비와 같습니다. 《노을》이나 《부자의 그림일기》를 비롯한 ‘한국현대문학 단편선’ 같은 오세영 님 만화는 얼마나 따뜻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착한’ 만화였던가요.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잡아채는 손길만이 아니라, 우리 삶터 구석구석을 골고루 따스하게 보듬는 손길이기 때문에 이 같은 만화를 그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 이희재 님이 《간판스타》와 《제비전》과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그리던 손길도 이렇게 따뜻했고, 이상무 님이 그린 《포장마차》도 이와 같이 부드러웠습니다.


.. “남자를 좋아해?” “아니. 그건 아냐. 그래서 밤새 고민했는데, 아마 너니까 좋아하는 걸 거야. 넌?” ..  (1권 192쪽)


 이런저런 까닭 때문에, 저로서는 요즈음 한국 만화를 그리 즐기지 못합니다. 그나마 《내 어머니 이야기》 같은 작품이 나오고, 《옥상에서 보는 풍경》 같은 작품도 나오며, 《꽃》과 《노근리 이야기》 같은 작품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말 한 마디 넣지 않아도 가없는 사랑과 기쁨을 ‘착하게’ 그려낸 에리히 오저 님 《아버지와 아들》이 다시 태어날 수는 없는지, 아니 한국땅에 걸맞게 그려낼 누군가가 없을지 궁금합니다. 《아즈망가 대왕》이나 《요츠바랑!》처럼 꾸밈없이 우리 삶자락을 담아낼 만화를 아끼고 붙잡을 붓질은 언제쯤 이 나라에서 다시 꽃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길창덕 님처럼 단출한 붓질로, 윤승운 님처럼 시냇물 같은 붓질로, 또 김동화 님처럼 꽃잎사귀 같은 붓질로 착한 마음을 나누고파 하는 만화는 언제쯤 우리 삶터에서 제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2) ‘오자와 마리’가 바라보는 삶터


 착한 만화를 떠올리며 더듬다 보니 새삼 송채성 님 만화가 생각나고 그립습니다. 둘레에 아는 분들한테 가끔 송채성 님 작품을 선물해 주곤 하는데, 모두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고 “순정만화잖아?” 하면서 “난 순정만화 안 보는 줄 알면서 왜 이런 책을 읽으라 해?” 하면서 싫어했지만, 막상 만화를 다 보고 나서는 “이런 순정만화도 있구나.” 하면서 “다른 작품 더 없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송채성 님은 이승사람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3월에 저승사람이 되었습니다. 벌써 다섯 해가 지났으니 세월 참 빠르구나 싶은데, 착한 만화를 떠올릴 때마다, 또 《퐁퐁(PONG PONG)》 같은 만화를 만날 때면, 어김없이 송채성 님 만화가 그립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송채성 님이 더 오래오래 살면서 당신 만화밭을 일구었다면, 당신 깜냥껏 《취중진담》을 그리고 《쉘 위 댄스?》처럼 두고두고 명작이라 할 만한 작품을 또 하나 낳을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일본에서 오자와 마리 님이 《퐁퐁》을 그린다면, 한국에서 송채성 님이 ‘뭐뭐’를 그린다고 나란히 놓을 수 있었을 테고요.


.. “아, 새가 오네요?” “예. 전에 여기서 가게를 했던 사람이 매일 쌀이랑 빵부스러기를 창가에 올려놨던 모양이에요. 참새랑 개똥지빠귀가 지금도 잊지 않고 찾아오죠. 그래서 저도 예전 주인처럼 빵부스러기를 주고 있어요.” “멋지네요. 잘 먹었습니다. 커피, 정말 맛있었어요.” “또 오세요.” ‘엄마의 뜻밖의 일면을 알게 됐다. 재즈바에 있는 자그만 창문.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에 있는 창문이라 낮에도 어두침침하고 별 의미 없는 창이라고 생각했는데, 의미는 있었구나. 엄마도 남몰래 작은 정원같이 안정되고 조용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을 거야.’ ..  (2권 28∼30쪽)


 만화 《퐁퐁》은 ‘남자로 태어났으나 성 정체성은 여자’인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이런 이야기는 꽤 많다 할 수 있는데, 《방랑소년》도 같은 그림감을 다룹니다. 아쉽다면, 《방랑소년》은 권수를 거듭할수록 어영부영 실마리가 흐려지면서 재미가 떨어집니다.

 아직 우리 세상이 사람을 사람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들이 좀더 오래도록 길게 펼쳐지지 못하나 싶곤 합니다. 막힌 세상에서는 막히지 않은 꿈을 꾸기도 하지만, 막힌 틀에 매인 채 뾰족뾰족이로 에돌고 마는 사람이 꽤 많거든요. 고달픈 삶이기에 으레 고달픔을 얼굴 가득 담아낸 채 살잖아요. 고달픈 삶이기에 더더욱 홀가분함과 기쁨을 온몸 가득 펼치면서 살지 못하고 말입니다.


.. “오늘 시간 더 있어요?” “있어. 뭐 하고 싶은데?” “저기.” “말로 해. 눈앞에 있으니까.” “그, 그럼, 거, 걸으면서 얘기하기.” “나야 좋지만, 너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냐?” “예?” “얼굴이 빨개.” “아, 아픈 건 아니에요. 그건 아마, 아마.” “라면을 먹었기 때문에?” “예? 아아, 아뇨, 그게 아니라. 그건 제가 선배를 좋아히기 때문이에요.” ..  (2권 77∼80쪽)


 모두 세 권으로 이루어진 《퐁퐁》을 곰곰이 헤아려 봅니다. 낱권으로 하나하나 넘어갈 때마다 주인공 ‘라이조’는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듯, 한 계단 두 계단 마음이 자라납니다.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을 또렷하게 깨닫고, 차근차근 앞으로 살아갈 나날을 다짐합니다. 겉과 속이 다른 채 살아갈는지, 내 꿈을 접은 채 세상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는지, 겉과 속을 하나로 모둔 채 살아갈는지, 세상 이끌림이 아니라 내 꿈대로 살아갈는지 찾아나섭니다.

 그러면서 부딪힙니다. 맨땅에 머리를 박듯, 달걀이 아닌 맨주먹으로 바위를 치듯 박고 넘어지고 까지고 긁힙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딪히면서, 다치면서, 아파하면서 ‘어린이’에서 ‘푸름이’를 거쳐 ‘어른’ 한 사람이 돼요.

 나를 속이지 않으며, 남을 속이지 않습니다. 나를 사랑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길을 찾습니다. 나를 믿으면서 남을 믿는 마음이 무엇인가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도록 하면서 내 삶터에서 나 스스로 아름답고 내 이웃과 함께 모두가 아름다울 자리가 어떠한가를 배웁니다.


.. “난 이렇게 미키랑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걷는 게 좋았어.” “맞다. 그러고 보니 내가 손을 잡으면 항상 꼬옥 마주 잡아 왔었지?” “응, 이런 식으로.” “그래 맞아. 나도 그게 좋았어.” “그건 내가, 어릴 때부터, 항상 길의 가장자리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기분이었기 때문일 거야. 미키랑 있으면 길 가운데를 당당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래서 이 손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근데 그건 역시 날 속이는 짓이었어. 마음 한구석에선,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미안해.” “하지만, 너한테 마음이 설렜던 거나, 네 덕분에 실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거, 그리고 널 좋아했던 건, 결코, 거짓이 아니었어.” “응, 알아.” ..  (2권 155∼157쪽)


 《퐁퐁》 3권 마지막을 보면, 주인공 ‘라이조’보다 훨씬 늦게 제 삶과 모습을 느끼고 찾은 ‘토고’ 선배가 속으로 한 마디를 읊습니다. “다시 한 번 너를 만나 다행이었다.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라고.

 착한 만화 《퐁퐁》은 바로, 그린이 오자와 마리 님이 읽는이 우리 모두한테 마음을 건네고파 내놓은 작품입니다. 그린이가 건네고픈 마음이 사랑이었을는지는, 또는 믿음이었을는지는, 또는 다른 마음이었을는지는, 읽는이인 우리 스스로 헤아리고 곱씹고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3)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며


 저는 만화책을 볼 때면, 되도록 잠자리에서 홀로 조용히 보고자 합니다. 또는, 하루일을 마치고 보리술 한 병을 구멍가게에서 사다 마실 때 혼자서 고즈넉하게 보고자 합니다.

 웃음이 터져나올 때 누구 눈치를 안 보고 거리낌없이 웃고 싶거든요. 울음이 솟아날 때 누구 눈치 아랑곳 않고 스스럼없이 울고 싶거든요.


.. “그래서, 답은 나왔어요?” “아니.” “선배는, 뭐든 흑백으로 나눠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군요?” “맞아. 옛날부터 그랬어. 답이 안 나오면 잠을 못 자는 편이었지.” “그럼 역시, 제 존재 자체가 선배한테는 이해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전 평생 회색이었으니까.” ..  (3권 18∼19쪽)


 실컷 웃게 하고 마음껏 울게 하는 만화는 책상맡에 한 해쯤 올려놓고는 하는데, 이렇게 올려놓으며 날마다 겉그림을 바라보고 때로는 선 채로 한 번 다시 넘기고 나서는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앞으로 어떤 새 작품을 내놓을지 기다려지면서 한숨이 나오고, 앞으로 이분을 비롯해 다른 분들이 다른 새 작품을 내놓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서 한숨이 나옵니다.


.. “탈의실에 유니폼 준비해 놨을 거야.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올까? 남성용이든 여성용이든 입고 싶은 걸로 입어.” “예. 예?” “고등학교 때 치어리더복 입었었지? 신문에서 봤어.” “아, 그건 그냥 연출로.” “이쪽이야. 이게 여자 거고, 그 옆이 남자 거.” “농담 아니었어요?” “참고로 이건(내가 입은 옷은) 남자 거. 여자 걸 입을 때도 있지만, 거의 이걸 입어. 난 트랜스젠더거든.” “…….” “점장님은 개인을 존중해 주시지.” “여긴, 회색이라도 괜찮군요.” “회색?” “세상은 흑과 백만 인정해 주는 줄 알았어요.” “기왕 중간색을 지칭할 거면 흑과 백 사이보단 홍과 백 사이가 예쁘지 않겠어?” “홍과 백?” “장밋빛깔. 바로 그 입술색 말야.” ..  (3권 28∼30쪽)


 보고 또 보고 다시 보면서 지난날 느낀 벅참과 설렘을 새삼스레 받아들이는 일은 즐겁습니다. 아마 언제까지나 이 마음이 고이 이어갈 수 있다면 참말 기쁠 테지요.

 그런데 오늘 하루 제 마음에 스며든 좋은 ‘착한’ 만화 하나는 갑작스레 뚝 하고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 그린이는 그동안 숱하게 습작을 했습니다. 다른 작품도 꾸준히 그리는 가운데 비로소 ‘즐겁고 반갑고 기쁘고 좋은 착한’ 만화 하나가 제 품에 안깁니다.

 《당신의 손이 속삭일 때》를 그린 카루베 준코 님이 《신ㆍ엄마손이 속삭일 때》를 그린 다음, 《푸른 하늘 클리닉》을 그려내듯, 그리고 또다른 작품을 빚어내려고 애쓰고 있듯,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과 《니코니코 일기》를 그린 오자와 마리 님은 《퐁퐁》을 마무리지으며 《민들레 솜털》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을 다시금 끝내면 또다른 작품으로 우리한테 살그머니 다가오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제자리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사람은 누구나 고인 물이 아니니까요. 어느 누구든 흐르는 강물 같은 사람이요, 흐르는 사랑을 널리 나누어 주면서 새로운 사랑을 새삼스레 가슴에 담으면서 기다리니까요.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 《퐁퐁》을 더 오래오래 책상맡에 놓으며 거듭거듭 즐길 수 있습니다만, 또다른 착하며 아름다운 만화가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책꽂이에 보기 좋게 꽂아 놓은 다음, 저부터 스스로 새로운 만화길을 찾도록 기지개를 켜야겠습니다. (4342.5.15.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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