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난 책읽기가 좋아
아놀드 로벨 글.그림,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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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너한테, 너는 나한테 좋은 벗님
 [그림책이 좋다 60] 아놀드 로벨,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 책이름 :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 글ㆍ그림 : 아놀드 로벨
- 옮긴이 : 엄혜숙
- 펴낸곳 : 비룡소 (1996.8.15.)
- 책값 : 5000원



 (1) 동무 사귀기


 ‘독후감 쓰기’를 해야 하는 중학교 1학년 처남이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을 읽습니다.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겉에는 ‘초등학교 1ㆍ2학년을 위한 그림 동화’라는 글월이 제법 굵게 적혀 있습니다. 왜 이 그림책을 초등학교 1ㆍ2학년을 생각하는 책이라고 못박을까 궁금한데, 아이들 눈높이를 헤아려 이와 같이 적을 수 있었겠으나, 이 그림책에 담긴 너비와 깊이를 살핀 우리 어른들이었다면, ‘예닐곱 살 어린이부터 함께 즐기는 그림이야기’라고 적어 놓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그림책이란 어린이만 읽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화책 또한 아이들만 보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동화책을 초등학생만 읽는 책이라고 누가 말하든가요. 누가 그런 금을 함부로 그을 수 있습니까. 《몽실 언니》를 어린이만 읽어야 할까요? 《꼬마 옥이》를 아이들만 가슴 저미게 읽어야 할까요?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은 세상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사람들한테, 그리고 세상 살아가는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알아가고픈 사람들한테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입니다. 이리하여 어린 아이들한테 ‘동무를 사귀는 기쁨과 보람’을 차근차근 깨닫도록 해 주려는 싱그럽고 맑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왔단다. 집에 와서 또 다른 모퉁이를 보았지. 우리 집 모퉁이 말이야.” 하고 개구리가 말했어요. “너 거기서도 돌아다녔니?” 하고 두꺼비가 물었어요. “그럼, 그 모퉁이도 돌아다녔어.” 하고 개구리가 대답했지요. “무얼 좀 보았어?” “나는 해가 구름 속에서 나오는 걸 보았어.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것도 보았어.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꽃밭에서 일하시는 것도 보았어. 꽃밭에는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어!” “드디어 봄을 찾았구나!” 하고 두꺼비가 기뻐 소리를 질렀어요. “응, 나는 정말 기뻤단다. 봄이 온 모퉁이를 찾아냈으니까.” ..  (26∼28쪽)


 중학교 1학년이 된 처남은 학교 말고 학원도 나갑니다. 다른 동무들도 학원을 나갑니다. 초등학교 때에도 학원을 나갔습니다. 우리 나라나 일본에서는 아주 마땅한 일처럼 받아들여지는 학원 다니기인데, 두 나라를 빼놓고(어쩌면 중국도 비슷할는지 모릅니다만)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공부를 더 하거나 미리 하려는’ 학원에 다니는 나라는 지구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이 나라 많은 분들이 우러러 마지 않는 미국에조차도 입시학원이란 없습니다. 프랑스에 있을까요? 영국에 있는가요? 독일에 있는지요? 우리는 입을 벙긋할 때마다 ‘세계화’니 ‘글로벌’이니 ‘선진국’이나 ‘경제대국’이니 읊고 있는데, 아이들한테 입시지옥을 선물하는 나라가 무슨 앞서거나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아이다움을 키우면서 제 꿈과 뜻을 고이 펼치거나 나누도록 하지 않는 어른들이 권력을 움켜쥐고 있는 나라가 어떤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야 한다면, 노래를 배우고 그림을 배우고 글을 배우고 연극을 배우며 춤을 배우는 한편 농사일을 배우고 뜨개질과 손빨래 들을 배우는 ‘삶이 있는 다른 배움터’여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입시음악이나 입시미술이나 논술학원이 아닌 ‘삶을 가꾸는 노래’와 ‘삶을 빛내는 그림’과 ‘삶을 밝히는 글’을 익히는 새로운 배움터를 다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이런, 달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이 죄다 씻겨 내려갔네.” 하고 두꺼비가 말했어요. “걱정 마, 두껍아. 내게 좋은 방법이 있으니까.” 하고 개구리가 말했어요. 개구리와 두꺼비는 재빨리 가게로 달려갔어요. 그런 다음 둘이는 커다란 나무그늘에 앉아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답니다.” ..  (40∼41쪽)


 어린 처남은 초등학교 때에도 동무들과 겨루어야 했습니다. 그나마 처남이 다닌 초등학교는 아주 작은 학교였고 반도 세 반에다가 한 반 아이들 숫자가 참 적었습니다. 그렇지만 중학교에는 아홉 반에다가 한 반에 마흔이 넘는 아이들이 있고, 이 아이들은 서로서로 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데로 내몰립니다. 아니, 교사 스스로 내몹니다. 교과서가, 교과 제도가, 교육 틀거리가 모두 입시지옥일 뿐입니다. 아이들한테 빛나는 마음과 넉넉한 얼과 따순 숨결을 북돋우는 터전이 아니라, 숱한 지식과 셈 잘하는 머리와 돈되는 일거리 생각하기에만 매이도록 하는 감옥과 같습니다.

 그래도 처남 스스로 제 삶을 잘 다스리면 될 노릇이고, 동무들하고도 사이좋게 어울리면서 즐겁게 뛰어놀 수 있으면 될 노릇입니다. 학교옷이 땀과 먼지로 뒤엉키도록 신나게 놀 수 있는 가슴과 팔다리가 있으면 됩니다. 어른들이 내어주는 ‘독후감 숙제’ 때문에 억지로라도 책을 읽게 된다 하여도, 제 깜냥껏 삭이고 빨아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 느낌글이 어수룩할 수 있고 글씨가 삐뚤빼뚤일 수 있지만, 책마다 담긴 고운 이야기를 제 마음바탕에 담아 놓을 수 있으면 됩니다.


.. 개구리는 두꺼비 집에 와서 집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마침 다행이다, 두꺼비가 집에 없으니. 누가 갈퀴질했는지 모르겠지.” 두꺼비는 개구리 집에 와서 집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마침 다행이다, 개구리가 집에 없으니 누가 갈퀴질했는지 짐작조차 못하겠지.” 개구리는 열심히 일했어요. 갈퀴질을 해서 나뭇잎 더미를 만들었어요. 곧, 두꺼비네 마당이 말끔해졌어요. 개구리는 갈퀴를 집어들고 집으로 왔지요. 두꺼비는 여기저기 갈퀴질을 했어요. 갈퀴질을 해서 나뭇잎 더미를 만들었어요. 곧, 개구리네 마당에는 나뭇잎이 하나도 없게 되었어요. 두꺼비는 갈퀴를 집어들고 집으로 왔지요. 바람이 불어왔어요. 바람이 휙 지나갔어요. 개구리가 갈퀴질한 나뭇잎 더미가 사방으로 날렸어요. 두꺼비가 갈퀴질한 나뭇잎 더미가 사방으로 날렸어요 ..  (46∼50쪽)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사귀는 동무는 놀이동무입니다. 그 다음으로 소꿉동무이고, 그 다음으로 배움동무이고, 그러고 나서 일동무입니다. 그 뒤 한참 지나서 길동무를 만나고 마음동무와 사랑동무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부터 마음동무와 사랑동무를 만날 수 있지만, 이러한 마음동무와 사랑동무는 놀이동무와 소꿉동무를 함께 거치곤 하지, 놀이와 소꿉과 배움과 일을 한꺼번에 뛰어넘으며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어린 처남이 이런 흐름과 삶과 동무를 제 나이와 자리에 맞게 바라보고 어울리고 웃고 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합니다.

 저 또한 어릴 적부터 사귀고 만나고 어울려 온 수많은 동무들을 떠올리면서, 서로서로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즐겁게 제 길을 가면서 오래도록 한마음으로 기쁘게 술잔을 부딪힐 수 있기를 꿈꿉니다. 어느 한때 잠깐 스치던 사이가 아니기를 꿈꾸고, 저마다 제 밥그릇에 따라서 사귀다가도 헤어지다가도 등치다가도 하는 사이가 아니기를 꿈꿉니다.

 저는 동무한테 빛이 되고, 동무는 저한테 힘이 되면서, 스스럼없이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늙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동무한테 눈물이 되고, 동무는 저한테 웃음이 되면서, 거리낌없이 술벗으로 만나는 동안 주름이 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동무한테 사랑이 되고, 동무는 저한테 믿음이 되면서, 꾸밈없이 속을 털어놓는 말벗으로 복닥이고 복닥인 끝에 흙으로 조용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을 그린 ‘아놀드 로벨’ 님은 1933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 그림책만 하여도 1976년에 그렸습니다. 당신 나이 마흔셋일 때 빚은 작품이군요. 이밖에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 《개구리와 두꺼비의 하루하루》, 《개구리와 두꺼비는 친구》 같은 그림책이 우리 말로 옮겨져 있습니다.

 개구리며 두꺼비며 겨울잠 없이 썰매를 타고 논다거나, 예수님나신날을 즐긴다거나, 얼음과자를 맛본다든가, 집 앞에 쌓인 가랑잎을 쓴다든가 하는 일이란, 어떻게 보면 터무니없는 일입니다만, 아이부터 어른까지 ‘개구리와 두꺼비는 징그러운 물뭍짐승으로 여기는’ 잘못된 생각을 톡톡 건드리면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가만히 돌아보게 해 주는 반가운 벗님들 삶자락입니다. 개구리는 개구리 나름대로, 두꺼비는 두꺼비 깜냥껏 저희들 삶이 있고 저희들 꿈이 있으며 저희들 놀이와 일이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서 고운 목숨을 물려받으면서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사람들만 바삐 살지 않아요. 사람들만 땀흘리지 않아요. 사람들만 사랑을 하나요. 사람들만 밥을 먹나요. 사람들만 동무하고 어울리나요.

 개구리는 개구리대로삽니다. 두꺼비는 두꺼비대로 땀흘리고 사랑하고 밥을 먹고 동무와 어울립니다. 흰둥이는 흰둥이대로, 깜둥이는 깜둥이대로, 누렁둥이는 누렁둥이대로 제 땅에 발붙이면서 삶을 꾸리고 사랑하고 어울리고 사귑니다. 못생긴 이나 잘생긴 이나 마찬가지이며, 돈 많은 이나 가난한 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똑똑한 이나 어리석은 이나 매한가지입니다. 저마다 고운 삶이 있습니다. 저마다 고운 삶을 즐깁니다. 얕은 사람 눈길에는 조금도 고와 보이지 않을 테지만. 비뚤어진 사람 눈썰미로는 하나도 곱다고 느껴지지 않을 테지만.


.. 그런데 개구리가 거기 있는 것이었어요. “안녕, 두껍아, 늦어서 정말 미안해. 선물 꾸리다가 그만 늦었어.” “너 구덩이에 안 빠졌어?” “응.” “너 숲에서 길 잃지 않았어?” “으응.” “너 커다란 동물한테 안 쫓겼어?” “그래, 전혀 그런 일 없었어.” “와, 개굴아, 너하고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정말 기뻐.” 하고 두꺼비가 말했어요 ..  (62∼63쪽)


 아놀드 로웰 님은 개구리는 개구리대로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껴안으면서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을 빚어냅니다. 두꺼비는 두꺼비대로 믿음직스럽게 헤아리고 보듬으면서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을 내놓았습니다.

 돈으로는 사랑을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참된 사랑은 처음부터 돈을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름값으로는 믿음을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살가운 믿음은 처음부터 이름값을 살피지 않음을 일러 줍니다. 힘이 세다고 평화를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평화는 처음부터 힘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이러저러그러한 모든 이야기를 수수하게 그려 보이는 그림책 《개구리와 두꺼비의 사계절》입니다. 책겉에 적힌 말처럼 ‘초등학교 1ㆍ2학년’ 어린이도 손쉽게 알아채거나 느낄 수 있도록 짜여 있습니다. 아주 가벼운 줄거리이고, 예닐곱 살 어린이가 아니라 너덧 살 어린이도 어버이가 조곤조곤 읽어 주면 좋아라 들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게끔 엮여 있습니다.

 읽거나 듣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읽어 주거나 먼저 살피며 책값 치르어 사드는 어른은 어른대로, 이 그림책 하나를 펼치는 동안 우리 앞에 펼쳐지는 푸르고 밝은 새나라 이야기에 빠져들도록 합니다.


.. “우리, 썰매 타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자.” 하고 개구리가 말했어요. “나는 싫어.” 하고 두꺼비가 대꾸했지요. “무서워하지 마. 내가 같이 탈 테니까. 썰매는 신나게, 빠르게 달릴 거야. 두껍아, 네가 앞에 앉아. 내가 너 뒤에 앉을 테니까.” ..  (8쪽)


 그림책은 누가 읽는 책인지 잘 모르겠다면 아놀드 로웰 님 작품을 살며시 집어들어 보면 됩니다. 그림책이 왜 좋은가 궁금하다면 아놀드 로웰 님을 비롯한 훌륭한 앞선 사람들 작품을 가만가만 돌아보면 됩니다. 그림책이란 어떤 책인지 아직 모르겠다면 나라 안팎 손꼽히는 그림책 작가를 알아보면서, 이분들 작품이 우리 마음을 어떻게 건드리면서 뭉클하게 움직이는지를 아이 손을 붙잡고 함께 들여다보면서 느껴 보면 됩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허물이 없습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울타리를 쌓지 않습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얌전하고 다소곳하게 문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그림책이기 때문에 너나없이 웃고 울며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보다가 찢어져도 괜찮고, 찢어지면 풀로 붙이거나 종이를 대면 되며, 망가지고 더러워져도 우리 아이들한테 두고두고 물려주게 됩니다. (4342.3.2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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