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 - 임영인 신부의 노숙인 이야기
임영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93 ― 노숙자, 노숙인, 떨꺼둥이, 우리 이웃
 : 임영인,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책이름 :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 글 : 임영인
- 펴낸곳 : 삶이 보이는 창 (2009.2.16.)
- 책값 : 1만 원


 (1) 이 땅에 새로 찾아온 봄볕을 느끼면서


 금토일 사흘 동안은 고향인 인천에 마련한 동네도서관을 열어 놓는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 금요일 아침 일찍 일산에서 길을 나섭니다. 옆지기가 식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여 지난주 월요일에 아기와 함께 일산에 온 다음, 옆지기는 내내 일산에 있고, 저는 혼자서 인천과 일산을 오갑니다.

 얼핏 보기에 전철로 움직일 수 있어 괜찮은 듯 여길 수 있지만, 국철 맨 왼쪽에서 3호선 맨 위로 오가는 길은 몸이며 마음이며 많이 지치게 됩니다. 어쩌다 한 번이야 그야말로 어쩌다 한 번이지만, 이틀에 한 번 꼴로 오가야 하면 퍽 괴롭습니다. 그나마 날마다 오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으냐 할 텐데, 이렇게 왕복 여섯 시간 거리를 오가면서, 지난 1994년 한 해 동안 인천 남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까지 전철로 오갔던 일이 떠오르곤 합니다. 그무렵(요즈음은 어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인천 서남쪽 끄트머리에서 서울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학교까지 전철로 오간 사람이 드물게 있었고, 네 해에 걸쳐 전철로만 다니고 하숙이나 자취를 안 한 사람 또한 아주 드물게 있었습니다. 그냥 전철만 타면 된다고 여기는 잘 모르는 이들은, 왜 우리가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에서 나와도 학교에 아홉 시가 다 되어야 닿게 되는지를, 그리고 그런 통학을 어떻게 견디는지를, 그리고 저녁에 아홉 시가 채 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전철역으로 달음박질을 치는지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녁 여덟 시 사십이 분 전철을 이문역(이제는 외대앞역)에서 타면 집에 열두 시에 닿고, 저녁 아홉 시 사십팔 분 전철을 타면 집에는 한 시가 넘어서야 닿는데, 이튿날 다시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날 일을 생각하면 참으로 까마득했습니다.


.. 일반인이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다면 공안원들이 그를 짐수레에 실어 나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노숙인이라고 짐짝 취급을 한 것이다 ..  (190쪽)


 오늘도 머나먼 길을 빙빙 돌아 인천으로 옵니다. 한국에서 모든 길은 서울로만 이어질 뿐, 지역과 지역이 이어지는 길은 뚫리지 않을 뿐더러 뚫으려 하지 않으니, 애타는 사람만 애타고 애닳는 사람만 애닳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된 길을 오가게 되면서 고단한 마음을 조금씩 추스르면 ‘책읽을 겨를’을 좀더 낼 수 있곤 합니다. 그래 보아야 고단한 몸을 이기지 못하면 곯아떨어져 어설피 졸면서 다니게 되지만, 뒷목과 이마와 눈자위를 주무르면서 책장을 펼쳐 끝끝내 한두 권씩 읽어내곤 합니다. 어쩌면, 집과 가까운 데에서 학교를 다녔다든지, 옆지기 식구네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면 먼 길을 돌면서 책을 읽는 겨를을 못 내었을는지 모릅니다(그래도 그때에는 그 나름대로 다른 겨를을 내었을 테지만). 그리고, 새벽밥 먹고 서울로 가는 첫 전철을 거의 날마다 타면서 새벽바람으로 서울로 일하러 가는 아주머니들(거의 모두 서울 큰 건물 청소일을 하시던 분들) 삶자락 한 귀퉁이를 아주 살짝이나마 엿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단한 길을 늘 오가는 사람이 퍽 많음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지옥철’이 무엇이고, 어떻게 전철 한 칸에 사백 사람 넘게 꾸역꾸역 태워 숨도 못 쉬게 되는지를 몸으로 느꼈으며, 만화책에서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창문에 얼굴이 찡기는 일’이 만화가 아닌 진짜 날마다 늘 있는 일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제 몸은 군면제 대상자였음에도 줄을 잘못 서서 군대에 갔고, 그 군대도 강원도 산골짜기 민통선 안쪽 가장 깊숙한 데로 끌려가면서 군대란 어떤 곳인가를 몸소 깨닫게 되었듯, 고달픈 전철길을 여러 갈래로 타야 하는 몸이 되면서, 이 고달픈 길에 몸을 싣는 수많은 이웃을 알게 되는 셈이라 할까요. 책으로만이 아닌, 지식으로만이 아닌, 들리는 이야기로만이 아닌. 강 건너 불구경으로만이 아닌, 다른 나라 이야기로만이 아닌, 남들 얘기라 한귀로 흘리게 되는 모습이 아닌.


.. 10년 동안 계속된 거리 급식은 역설적으로 노숙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이다. 자존감이 무너진 사람이 어떻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노숙인이 받는 느낌은 ‘예배와 밥의 거래’이다. 예배를 위해 역 광장이나 지하도 바닥에 앉아 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총이 따갑다. 그 눈총에 짓눌려 벽을 향해 쪼그리고 앉거나 선 채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기다리는 시간은 한 시간 이상이지만, 식시시간은 불과 3∼4분 … 거리에서 밥을 나눠 주는 모 교회는 교회 건물도 짓고, 병원도 짓고, 수련관도 지었지만, 여전히 거리 급식을 ‘강행’한다 ..  (173∼174쪽)


 동인천역에 내려 인현동 1번지 안쪽 골목길을 거닐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인천에 살아남은 어느 골목길이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이곳 인현동 1번지 골목도 참으로 좁고 조용합니다. 자동차는커녕 오토바이조차 들어갈 수 없는 가운데, 국철을 바로 옆으로 끼고 있습니다. 국철이 놓이기 앞서부터 있던 동네라, 이곳 인현동 1번지는 국철길에 따라 둘로 쪼개져 있습니다.

 인천 바깥사람이 인천에 오면 늘 누구나 느낀다고 하듯, ‘전철과 고속도로 때문에 남과 북으로 나뉜’ 삶 가운데 하나입니다. 고속도로나 기찻길 때문에 동네가 둘로 갈리고 이웃이 멀리 떨어지는 일은 시골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도 똑같이 일어납니다. 서울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잘사는 동네와 덜 잘사는 동네로 나뉜다지만, 인천은 전철길과 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못사는 동네와 또 못사는 동네가 갈려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까지 어느 한 번 ‘고속도로 소음피해’ 보상을 받은 적이 없고, ‘전철 소음피해’ 배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애써 일군 땅뙈기를 빼앗기며 조금 보상을 받은 적은 있으나, 소음과 진동으로 수십 해에 걸쳐 받은 피해를 갚음받아야 함을 어느 누구도 헤아리지 않았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나저나 전철길이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데에도 인현동 1번지 골목이 참 조용합니다. 옐로우하우스와 산업물류 기차길이 집 코앞에 붙어 있는 신흥동3가와 숭의1동하고 비슷합니다. 참 뜻밖이라고 느끼면서, 이렇게 이곳에서밖에 살 수 없던 골목사람들은 이분들 나름대로 소음피해를 덜 받도록 집을 짜고 골목을 이루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스칩니다. 시끄럽고 고달파도, 다른 어디로 옮길 수 없는 형편이니, 이곳에서 뿌리내리면서 살아갈 마음으로 더 땀흘리고 애써서 동네를 가꾸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 사회가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동정과 연민을 넘어선 어떤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인권’. 내가 정작 이야기하고 싶었던 그 인권이다. 그러나 그때 그 자리에서 깔깔한 입안 탓에 채 못 다한 말이었다. 노숙인 문제를 인권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숙인 문제가 인권 문제인 것은, 노숙인이 불쌍하기 때문에 돕는다는 것을 넘어, 그들도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인권의 묹는 개인의 느낌이나 체험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람을 이성적으로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 인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나쁜 사람이든 좋은 사람이든 모두 최소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나쁜 사람이라고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한 인간이 방치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도록 방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155쪽)


 도서관에 앉아 밀린 일을 하고 고양이한테 밥을 주다가, 봄날 햇볕이 더없이 좋다고 느끼면서, 이 햇볕을 그대로 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도서관 문을 걸어잠그고 쪽지를 문에 붙입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걸쳐 밖으로 나옵니다. 따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달립니다. 옆지기가 손전화 쪽지를 보내옵니다. 내 얼굴이 지치고 화가 난 듯한 느낌이었다고. 지치기는 지쳤겠지만 화가 날 일이 없는데 왜 그리 느꼈을까 생각하다가, 사람이 너무 지쳐서 얼굴에 아무런 빛이 들지 않으면 뚱하거나 꿍해 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화 안 나고 짜증 안 났어도 그처럼 보이지 않으랴 싶습니다.

 옆지기가 이렇게 느끼면 아기는 어떻게 느끼려나? 아기도 지 아빠가 힘들어하는 줄 느끼면서, 아빠를 좀 쉬게 해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전거를 몰아 도원동과 선화동을 거쳐 신흥동3가에 닿습니다. 오늘은 학익동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숭의1동으로 접어들어 기차길 옆 텃밭을 신나게 사진으로 담는데, 디지털사진기가 더 눌러지지 않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메모리카드가 0. 헉. 꽉 찼잖아. 아이고, 예비 카드를 안 들고 나왔네.

 이제 등판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즈음이었습니다만, 다시 돌아가야 할 판.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돌아가야지. 저런. 젠장. 바보. 밥통.


.. 그가 나가고 난 뒤 실무자들은 나를 구박했다. “신부님이 그렇게 원칙 없이 대하니까 우리가 피곤해요. 신부님도 피곤하고요. 우리가 상대를 하려고 해도 그냥 신부님만 만나려고 하잖아요. 그리고 …… 믿음이 가요?” 그래, 맞는 말이다. 피곤하고 서글픈 일이다. 그렇지만 노숙인에게 속는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속자고 시작한 일 아닌가. 그리고 어차피 인생이란 속고 속이는 것 아닌가. 노숙인들만 거짓말을 하고 반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안 하는가. 그깟 만 원짜리 한 장에 뭐 그리 화낼 일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왜 작은 거짓에는 분노하고, 큰 거짓에는 관대한 것일까 ..  (102쪽)


 자전거머리를 돌려 돌아오는 길, 숭의1동과 숭의2동 갈림길 철길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떨꺼둥이 아저씨들과 아주머니를 봅니다. 햇볕 잘 드는 곳에 띄엄띄엄 둘러앉아 낮부터 소주병을 까고 있으십니다. ‘여론은 겨울에만 노숙자 편’이라 했고, ‘자연은 봄부터 노숙자 편’이라 했습니다. 바야흐로 따뜻한 봄철을 맞이해, 살랑이는 바람결을 느끼고 따순 햇살을 받으면서 철길에 앉아서 까는 소주잔이라(이 철길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으나, 철길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아저씨 아주머니 들이 그야말로 봄나들이 즐기시는 셈이로군요. 꽃지짐 없고 꽃노래 없지만, 꽃다운 날씨를 머금으면서 하루 한때를 마음껏 즐기는.


.. 노숙인이 쉼터를 꺼리는 사정도 있다. 쉼터는 대부분 옹색한 구조라서 군 내무반처럼 배치되어 있다. 좁은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생활을 해야 하니 개인적인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연히 규칙은 엄격하고 노숙인의 입장에서 볼편할 수밖에 없다 … 나이 40∼50인 사람들이 군인도 아닌데, 군 내무반보다 비좁은 공간에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1∼2년 이상을 청교도처럼 생활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그런 생활을 무난하게 잘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게 아닐까? 노슥인들도 군 내무반 수준이면 살 만하다고 말한다. 물론 ‘노숙인 주제에 그런 시설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하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  (23∼24쪽)


 다시 옐로우하우스 앞을 지납니다. 한낮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골목을 살짝 기웃거립니다. 어릴 적 ‘옐로우하우스’라는 이름은 익히 듣고 말했어도 무엇을 하는 줄 모르던 때에는 이 골목 안쪽에 있는 오락실에 가느라(그때 우리 동네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오락실이 여기에 있었기에) 늘 지나다니곤 했습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또는 여느 날 낮부터 오락실에 죽치고 있다가 해 저물 녘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며 ‘늦게까지 오락실에 있다가 가느라 또 혼날 텐데’ 하고 걱정하던 우리 같은 꼬맹이들을 바라보던 옐로우하우스 아가씨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스물 몇 해 앞서 이 골목에서 일하던 아가씨들은 아직도 이 골목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이제는 다른 데로 옮겨갔을까요? 다른 데에서 다른 일을 할까요? 이 일을 접고 할 만한 다른 일이 있었을는지, 다른 일을 하도록 포주가 놔주었을는지, 그분들 다른 식구들은 서로를 어떻게 받아들였을는지, 몽실몽실 궁금해집니다.

 자전거는 달려서 신광초등학교 앞을 지납니다. 초등학교 앞임에도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건널목 푸른불을 아랑곳않으며 내달리는 수출입 물동량 실은 큰 짐차를 바라보면서 뒷덜미가 쭈뼛쭈뼛합니다. 이제 아이들이 학교 마치고 집에 갈 때인데, 저 큰 짐차를 모는 분들은 당신네 아이가 이 학교에 다녀도 저렇게 함부로 내달릴 수 있을까? 자기네 아이가 안 다닌다 하여도 이렇게 해도 되는가? 스물여덟 해 앞서 이 길을 날마다 걸어다니던 꼬맹이 얼굴을 떠올릴 문방구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아직 살아 계신가 싶어 천천히 지나가지만, 떠오르는 얼굴도 없고 저를 알아보는 얼굴도 없습니다.

 신흥시장 옆길로 빠집니다. 유동세거리 앞으로 나옵니다. 길을 건너고 전철길 밑으로 낸 개구멍으로 지나갑니다. 이제 배다리 헌책방골목이 나오고 집에 다 왔습니다. 자전거를 어깨에 이고 집으로 올라갑니다. 오늘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어느 방송사에서 취재를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습니다. 이분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고 무엇을 이야기하게 되려나 살짝 궁금하지만, 이 궁금함은 접어둡니다. 어쩌다 한 번, 아니 여태껏 돌아보지 않다가 한 번 찾아와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여쭙는 방송국 사람들한테 속깊거나 너른 생각줄기를 바라는 일은 처음부터 잘못이 아니랴 싶습니다. 늘 곁에 있으면서 돌아볼 줄 알고, 언제나 가까이에서 어깨동무하는 마음이 아니었던 사람한테 참과 거짓을 아무리 입 아프게 떠들어 보았댔자, 고이 받아들일 가슴이 있겠느냐 싶습니다. 아예 없지는 않을 테지만, 조금도 없지는 않을 테지만, 왠지 서글프고 씁쓸합니다. 자전거를 메고 집으로 오니 고양이가 창문 턱에서 야옹거리며 반깁니다.
 





 (2) 떨꺼둥이와 어깨동무하는 삶,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


 성공회 신부 임영인 님이 서울역 둘레에서 떨꺼둥이(노숙자) 삶을 어깨동무하면서 보내 온 이야기를 담은 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읽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떨꺼둥이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떨꺼둥이’란 옹근 토박이말로, “기대거나 지내던 곳에서 가진 것 없이 쫓겨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저는 이 낱말을 몰랐습니다만, 노숙자 인권을 헤아리는 일을 하는 분들이 내는 소식지 가운데 하나가 이 낱말로 되어 있어서, 이 소식지를 받아본 뒤로는 ‘노숙자’라는 말을 안 쓰고 ‘떨꺼둥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책에서는 ‘노숙자’라 안 하고 ‘노숙인’이라 쓰는데, 이 낱말은 그리 알맞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장애자’를 ‘장애인’으로 고친들, 또 ‘장애우’로 고친들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노숙인’ 아닌 ‘노숙우’라 한들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어떤 이름으로 가리키든, 가리키는 우리 스스로 달라지지 않으면 이름만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 세상입니다. 우리 스스로 ‘장애자-노숙자’라는 이름으로 떳떳이 말하면서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 일반적인 노숙인은 ‘주거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평범해서 노숙인인지 아닌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5∼10만 명 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노숙인이 이렇게 많다는 것이 놀라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노숙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들은 여인숙, 쪽방, 고시원, 사우나, 만화가게, PC방, 기도원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노숙인은 거리가 역사 주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의식하고 살펴보지 않으면 그들이 노숙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 ..  (13쪽)


 성공회 임영인 신부님은 ‘법에 없’을 뿐더러 ‘법이 지키지 않’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나누고 싶어서 ‘다시서기센터’를 열고, 서울역 앞에 ‘다시서기진료소’도 열었습니다. 혼자힘이 아닌 여러 힘이 모인 일이며, 기꺼이 애쓰는 많은 이들 땀방울이 있기에 서울역 한켠에 컨테이너 건물로 진료소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법이 내친 사람이 떨꺼둥이이고, 법이 껴안지 않는 사람이 떨꺼둥이입니다. 그래서 떨꺼둥이와 함께하는 일은 법을 넘어서는 일이 될밖에 없습니다. 무료진료소도, 떨꺼둥이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돕는 손길을 나누는 일도, 어느 개인이나 모임이나 종교에서 할 일이 아닌 나라에서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나라에서는 이런 데에 마음을 안 쏟습니다. 눈길을 안 돌립니다. 오로지 하나, 잘사는 사람들이 더 잘살 수 있게 하는 경제성장 숫자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눈길은 오직 여기에만 가 닿습니다.


.. 노숙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이들에게도 삶의 윤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고 꽃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에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  (52쪽)


 못사는 사람, 없는 사람, 빼앗긴 사람, 잃은 사람도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이며 이웃이고 동무이고 식구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만 한국사람이 아니라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이름있는 사람만 한국사람이 아니라 이름없는 사람도 한국사람입니다. 집 있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차 굴리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대학 나온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영어 잘하는 사람만 한국사람이겠습니까.

 집 없고 차 없고 대학 안 나오고 영어 못해도 한국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도 한국땅에서 함께 땀흘리고 어깨동무할 사람입니다. 고향을 떠나 머나먼 낯선 데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사는 고운 벗이요 이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네 보건복지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져 있다면, 떨꺼둥이뿐 아니라 나이든 사람들도, 장애 있는 사람들도, 어린 아이들도, 밑바닥과 벼랑과 구석자리에 내몰린 사람들도, 이주노동자들도 고른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고르게 사랑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는 한국이라면, 처음부터 떨꺼둥이가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구나 고르게 살 수 없도록 짜여져 있을 뿐더러, 우리 스스로 내 한 몸 밥그릇 더 단단히 움켜쥐려는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에, 자꾸자꾸 밑바닥에 내몰리는 사람이 늘고, 그예 떨꺼둥이가 되는 사람이 늘어납니다. 나라 정책도 큰 잘못이지만 우리 생각과 삶 또한 큰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 평일에도 (동냥을 하러) 하루 평균 20∼30곳 정도 교회를 다닌다. 그렇게 돌아다니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왔다. “그래도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요.” 일 주일에 하루는 쉰다고? 녀석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있나 보다. 그 당혹스러움에 구걸이 무슨 직업이냐고 되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물을 수는 없다. 적어도 그런 질문은 녀석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능청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우리도 일 주일에 하루는 쉬어야 하잖아요.” 녀석은 교회가 문을 닫는 월요일에 쉰다고 했다. 자식이 비록 교회 꼬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  (49쪽)


 이야기책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는 아주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엽니다. 우리한테 이야기를 겁니다.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가운데 아주 많은 사람들은 ‘떨꺼둥이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가 ‘도를 아십니까?’ 하는 말걸기로만 느껴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나즈막하고 털털한 목소리로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를 이야기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고 손이 있어도 글을 쓰지 못하는 숱한 떨꺼둥이 마음을 헤아리는 신부님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합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않으려 하고 귀가 있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우리들한테, 《내가 누구인지 알려 주세요》라는 이야기를 꾸준한 말걸기로 일러 주려고 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사람이요, 다 같은 이웃이요, 다 같은 동무요, 다 같은 아름다운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4342.3.20.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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