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 - 칼라하리 사막의 !쿵족 여성 이야기
마저리 쇼스탁 지음, 유나영 옮김 / 삼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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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90 ― 아이를 사랑하면 돈벌 생각을 말자
 : 마저리 쇼스탁, 《니사》


- 책이름 : 니사
- 이야기 담기ㆍ글 : 마저리 쇼스탁
- 옮긴이 : 유나영
- 펴낸곳 : 삼인 (2008.9.19.)
- 책값 : 24000원



 (1) 아기와 함께 지나온 여섯 달


 어제 낮 생협 나들이를 마친 다음 동네를 한 바퀴 빙 돌고 집으로 돌아오니 몸이 파김치가 됩니다. 볕이 좋고 바람이 싱그러워 좀 오래 아기를 안고 걸었더니, 아기는 집에 닿기 앞서부터 새근새근 잠들고, 애 아빠는 아기 옆에 드러누워 콜콜 곯아떨어집니다. 저녁에 일어나 밥을 해서 먹은 다음 아기와 놀자니 다시 졸음이 밀려들면서 어느 결에 아기와 함께 잠듭니다. 옆지기는 생채식 하며 몸에 깃든 찌꺼기를 털어내는 사람들 이야기를 찾아본다며 늦도록 인터넷을 살핍니다.

 애 아빠는 새벽 두 시에 잠에서 깹니다. 엊저녁 못 다 쓴 글을 마저 쓰려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아기는 얼굴이 간지러운지 잠든 가운데에도 한손으로 북북 긁으려 합니다. 부시럭 소리가 나서 휙 돌아보며 후다닥 달려가 아기 손을 붙들고 아빠 손으로 얼굴을 가볍게 탁탁 두들겨 줍니다. 몇 번 이렇게 되풀이하여도 아기가 깊이 잠들지 않아, 물을 덥히고 나무숯물을 타서 아기 얼굴과 머리를 살며시 닦아 주고 풀물을 발라 줍니다. 그제야 비로소 조용해지는데, 그렇게 하고도 다시 부시럭거려서 그예 셈틀을 끄고 아기 옆에 누워 한참 토닥입니다. 아기 돌보랴 밤잠을 못 잔 옆지기를 깨우고 싶지 않아 내도록 토닥이고 있으나, 아기는 엄마젖을 먹어야겠는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엄마를 깨우고, 아기한테 젖먹이느라 허리가 아픈 옆지기는 겨우 일어나 아기한테 젖을 물립니다.

 젖을 물고 잠든 아기를 보며 겨우 마음이 놓여 다시 일손을 조금 붙잡은 다음, 인천에서 서울로 떠나는 첫 전철이 지나고 둘째 셋째 넷째 전철이 지나는 소리를 들을 무렵 비로소 잠자리에 듭니다.


.. 태어나서 평균 44개월 동안 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온통 독점하다시피 하고, 첫 36개월 동안은 엄마젖이 주는 영양과 편안함을 제한 없이 마음껏 누린다. 서너 살쯤 되면 이전처럼 엄마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게 된다. 아이는 이제 엄마와 계속 부대끼는 것보다는 또래 아이들과 떠들썩하게 뛰노는 일이 더 재밌어진다. 동생이 태어나고 몇 달쯤 지나면 아이는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뛰노는 데 정신이 팔려 가족들에게 심술을 부리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러다가 결국 동생이 태어나서 받는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비로소 스스로 형이나 언니 노릇하는 일을 즐기게 된다 ..  (79쪽)
 





 새벽에 못 자고 일을 한 탓에 아침에 아기가 똥을 누었어도 일어나 치우지 못합니다. 아침똥을 눈 다음 씻겨야 하는데 도무지 몸이 일어나지지 않습니다. 송림동성당과 답동성당에서 열두 시를 알리는 종을 칠 무렵 또 한 번 아기가 똥을 누기에, 이때 비로소 물을 덥혀 냉온욕을 시킵니다. 그런 다음 풀물을 온몸에 바르고 바람에 말립니다. 겨드랑이까지 물기가 다 마른 뒤 웃옷을 두 벌, 바지를 한 벌 입힙니다. 이제 아기는 옆지기한테 맡기고, 저는 씻는방으로 가서 밀린 빨래를 합니다. 밀린 빨래를 하는 김에 제 바지도 한 벌 빱니다. 오늘은 날이 궂어 옥상마당에 빨래를 널어 말리지 못합니다만, 뜨거운 물이 있을 때 빨래를 한 점이라도 더 해내곤 합니다.

 오늘 밀린 기저귀 빨래는 모두 여섯 점. 지난밤에는 여덟 점. 요사이 아기 기저귀 빨래가 무척 줄었습니다. 아기가 몸이 안 좋은가? 하고 걱정을 했는데, 아기들은 크면서 오줌 기저귀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하니 마음이 놓입니다.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빨 때에는 빨래가 끊이지 않아 걱정이고, 갑자기 반으로 뚝 줄어드니 또 줄어서 걱정이고.

 이웃동네에 사는 일흔네 살 아저씨는 ‘아기 때는 많이 아픈 법이니, 너무 걱정 말고 슬기롭게 지나가도록 즐겁게 지내’라고 도움말씀을 건네주었습니다. 어느 아기든 아프면서 크지, 아프지 않고 크는 법이 없다면서, 아픔을 아픔 그대로 받아들여야 아기도 엄마아빠도 튼튼하게 잘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일흔넷임에도 하프마라톤을 뛰는 그 아저씨(할아버지) 말은 당신이 그동안 살아낸 발자국으로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책에 나왔다든지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씻는방에서 허리 쑤시도록 빨래를 하며 아저씨 말을 떠올리는데, 아기가 아플 때에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기보다, 우리 삶을 두루 걸쳐 똑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아픔을 먹고 자라는 나무라고 하듯, 제 몸을 썩혀 뿌리내리는 씨앗 한 톨이라고 하듯, 가을에 떨어지는 잎이 거름으로 썩어 다시 나무한테 좋은 밥이 되듯, 밀알 하나가 수백 밀알로 다시 태어나듯, 아프고 괴롭고 힘들고 벅차고 고단한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디어내느냐에 따라서 그이 삶자락은 아주 새롭게 거듭나리라 생각합니다.


.. !쿵 아이들은 형제끼리 평균 네 살 정도 터울을 두고 태어난다. 피임을 하지 않는 집단치고는 유난히 긴 터울이다 … 사실 출산 간격은 아이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다음 아기를 너무 빨리 가지면, 새로 태어난 아기와 앞서 태어난―그래서 이미 많은 애정을 쏟아부은― 아기 둘 가운데 하나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어머니는 매일 대단히 많은 칼로리를 필요로 한다. !쿵족의 식단으로 보통 그 정도 영양을 충당할 수 있지만, 둘이나 되는 아이에게 먹일 정도로 많은 모유를 생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102∼103쪽)


 여섯 달을 꼭 채울 무렵, 아기는 몇 대목에서 크게 달라집니다. 첫째, 낯가림 없고 방아찧기 좋아하는 이 녀석이 뒤집기와 엎기를 지 마음대로 합니다. 둘째, 잠들 무렵 엄마 젖무덤께에서 드러누워 있던 녀석이 오줌 누고 낑낑대어 깨어나 살필 때 보면 꼭 엄마 아빠 머리께로 기어올라와 있습니다. 셋째, 처음에는 두 손으로도 책을 못 들더니 이제는 한손으로 거뜬히 책을 집으면서 다른 손으로는 다른 장난감이나 숟가락 따위를 집어들려고 합니다. 넷째, 죽도 곧잘 먹지만 무 조각이나 푸성귀 줄기도 지 깜냥껏 잘근잘근 씹어먹는 시늉을 합니다.

 참말 하루하루 크는 모습이 남다른데, 이렇게 하루하루 크는 모습은 아기뿐 아니라 우리 어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저 스스로 어제와 오늘이 같지 않고 지난주와 오늘이 같지 않으며 지난달과 오늘이 같지 않습니다. 지난해와 오늘이 다르고 지지난해와 오늘 또한 다릅니다. 이웃과 동무도 매한가지입니다. 어제와 오늘 같은 이웃이 없습니다. 그제와 오늘 같은 동무가 없습니다. 그끄제와 오늘 같은 선후배가 없어요. 좋게든 얄궂게든, 반갑게든 얄밉게든, 모두들 하루하루 달라집니다. 날마다 새 얼굴이요 새 마음이요 새 몸입니다.

 조금씩 배우기도 하고 조금씩 잊기도 합니다. 조금씩 새로 얻기도 하며 조금씩 새로 잃기도 합니다. 조금씩 아름다운 사람으로 새로워지는 이웃과 동무가 있는 한편, 조금씩 돈맛과 이름맛과 힘맛에 길들어 가는 이웃과 동무가 있습니다. 






.. !쿵 사람들은 위험에 용감하게 맞서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위험을 추구하거나 용기를 입증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는다. 위험한 상황을 적극 피하는 일은 비겁하거나 남자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신중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더구나 어린 소년들이 공포를 다스리고 어른답게 행동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에 대해 !쿵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수도 있잖아!” … 아이가 그 상황에서 겁을 집어먹었으니 나중에 자라서도 겁쟁이가 될 거라는 식의 생각도 않는 듯했다. 그 아이에게는 위험한 동물과 맞서고 죽이는 법을 배울 시간이 아직 충분히 있고, 또 언젠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건 아이의 마음속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  (124∼125쪽)


 우리 아이는 책을 읽을 줄은 모르나 저희 엄마 아빠가 늘 책을 끼고 사니까, 자기한테도 책이 있습니다. 엄마가 책을 볼 때 옆에 나란히 누워 보는 책……,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옆에 엎드려 입으로 물어뜯는 책……. 그리고 아빠가 사진을 찍을 때면 찰칵 소리에 눈을 깜짝이면서 쳐다보고, 사진기를 들 때마다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바닥에 내려놓은 사진기를 집어들고 싶어합니다. 사진기 끈을 북북 긁으며 끈에 새긴 무늬를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

 우리가 여느 집 사람들처럼 살았다면 아기 놀이는 사뭇 달랐으리라 생각합니다. 여느 집 사람들처럼 ‘아빠는 밖으로 돈 벌러 회사 나가’고, ‘엄마는 집에서 살림 꾸리’고 했다면, 아기 매무새는 지금과 같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 다른 집 아기를 보고 아이 키우는 어버이를 볼 때면, 아기와 어버이 매무새는 닮았습니다. 아이와 어버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매무새가 어슷비슷합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즐기는 매무새와 아이와 어버이가 걸어가는 길은 한 흐름이곤 합니다.

 제 긴머리를 보고 ‘남자가 왜 머리가 길어?’ 하며 묻거나 ‘남자야? 여자야?’ 하고 묻는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뭘 몰라서 이렇게 묻지 않습니다. 집과 어린이집과 학교와 동네에서 늘 듣고 보고 배우며 자란 그대로이기에 이처럼 묻습니다. 바지를 입건 치마를 입건, 머리가 길건 짧건, 까만 살결이견 누런 살결이건 흰 살결이건, 밝은 옷차림이건 어두운 옷차림이건, 키가 작건 크건, 걷건 자전거 타건 자가용 몰건, 누구나 똑같은 사람임을 헤아리는 아이가 되자면, 어른 스스로 먼저 누구나 똑같은 사람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과자ㆍ라면ㆍ피자ㆍ햄버거 먹는 어버이가 살아가는 집에서 아이들이 과자ㆍ라면ㆍ피자ㆍ햄버거를 안 먹을 수 없습니다. 아이한테 억지로 못하게 하는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답답한 속을 꽉 눌러 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꽝 하고 안 터뜨리게 될 수 없습니다.


.. !쿵 어린이들은 성별에 따라 분리되지 않으며, 어떤 성도 순종적이거나 공격적으로 행동하도록 훈련받지도 않으며, 사람에게 타고난 감정 표현을 억제하도록 강요받지도 않는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대판 싸움을 벌이기도 하면서 크는 건 마찬가지지만, 어른들의 공격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많은 문화권에서처럼 남자아이들이 싸움 기술을 연습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일도 찾아볼 수 없다. !쿵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으며 처녀성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지도 않고, 여성의 몸을 특별히 가리거나 숨겨야 한다고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나다닌다. 어린이들의 놀이에 경쟁이 개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이들은 같은 활동을 나란히 공유하면서 놀지, 집단의 규칙을 정하고 놀지는 않는다 … !쿵 어른들도 경쟁이나 개인의 위계를 가르는 일을 애써 피하기는 마찬가지다. 사실 사람 사이의 차별을 억제하는 문화 덕분에 !쿵 사람들은 누구를 승리자, 최고의 미인, 가장 성공한 사람, 또는 최고의 춤꾼, 사냥꾼, 주술사, 음악가, 구술 공예가 등으로 규정하는 일을 되도록 피한다 … 그러한 재능에 주목하는 일은 매우 좋지 못한 태도로 여겨진다 ..  (157∼158쪽)


 그나저나 우리 아이는 너무 바지런해서 엄마 아빠가 고단합니다. 밤에 늦게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까요. 낮에도 낮잠은 자는 둥 마는 둥이니까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아기 때에는 누구나 그러하고 조금씩 크면서 밤잠과 아침잠이 늘어난다는데, 돌쯤은 되어야 잠꾸러기 아이로 달라지게 되려나 손을 꼽게 됩니다.

 하기는, 아기 때 누구나 그러하다면 저나 옆지기도 아기였을 때 어머니 아버지가 잠을 못 자게 괴롭혔을 테고, 어머니 아버지 또한 당신이 아기였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잠 못 자게 괴롭혔겠지요. 우리 아이도 커서 누군가한테 엄마가 되면 또 제 아이한테 시달리며 잠을 못 자게 될 테고요.


 (2)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날


 이제 다섯 살 되는 아이 유치원 값으로 다달이 50만 원씩 낸다는 동무녀석 이야기를 들으면, 유치원에 보내는 값만 50만 원이지, 이밖에 들어가는 다른 돈을 따지면, ‘벌써부터 애 대학교 보내는 돈과 같다’면서 한숨이 짙습니다. 우리는 아직 유치원 생각은 안 하지만, 우리 동네에 마땅히 보낼 유치원이며 어린이집이 없음을 헤아리면(있어도 잘 안 받아 주어서. 초등학교에 딸린 유치원은 그 초등학교 교사네 아이가 아니면 안 받아 주고. 사립 유치원은 참으로 비싸고), 또 가까운 둘레까지 살펴도 공동육아를 하는 데가 없음을 돌아보면, 우리는 집에서 아이를 가르치고 키우고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가 동무를 사귀며 놀게 하자면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보내야 할 텐데, 이곳에서 조금 비싸게 받아도 아이를 올바르게 가르치고 이끌 수 있으면 걱정이 없으나, 어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한글 일찍 떼기’와 ‘영어와 한자 가르치기’를 거의 밑바탕으로 깔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살아야 하기에, 아이가 글을 익힐 때는 초등학교에 들어갈 예닐곱 살 무렵이고, 아이한테 한자 지식이 있어야 한다면, 한글을 모두 떼고 스스로 한글로 된 책을 읽고 생각이 깊어질 무렵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중학생이 되는 열서너 살 무렵에야 한자를 가르쳐도 가르칠 노릇이고, 영어를 이때 가르쳐도 하나도 안 늦는 일이라고 느껴요. 왜냐하면 아이 엄마나 아빠나 모두 그때 외국말을 배웠고, ‘그때부터 배웠다고 제대로 못 배우거나 엉터리로 배웠다’고는 느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 오두막이나 집을 짓는 데 큰 수고가 들지 않기 때문에, 배우자 중 한쪽이 거처를 옮기는 일도 간단하다. 게다가 모든 재산은 공동소유가 아니라 개인에게 속하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놓고 분쟁이 벌어질 소지도 없다. 부부가 이미 성관계를 맺었느냐 여부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는다 … “지내다가 그 사람이 나를 원하면, 거절하지 않고 같이 누웠어. 속으로 ‘내가 왜 그리 내 성기에만 신경을 썼을까? 사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 왜 내가 그를 마다했을까?’ 그렇게 생각했지. 나는 그에게 나를 주고 또 주었어. 이제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누웠지. 그리고 내 가슴은 아주 크게 부풀었어, 나는 여자가 되어 가고 있었던 거야.” ..  (188, 234쪽)


 나중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인천에서는 거의 모든 인문계 학교가 중학생 때부터 밤 열 시나 열한 시까지 붙잡아 놓고 ‘자율 아닌 자율’과 ‘보충 아닌 보충’을 교사들이 몽둥이를 들고 골마루를 누비며 두들겨패면서 시키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 싱그러운 나이에 오로지 형광등 불빛에 눈이 어두워지면서 시험공부 지식만 머리속에 달달 집어넣어야 한다면, 이와 같은 학교에서 어떤 동무를 사귀고 어떤 어른을 믿게 되며, 어떤 세상을 어떤 눈길로 익히게 될지 근심이 쌓이고야 맙니다.

 더구나, 반드시 학교 울타리에서만 또래 동무를 사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학교 울타리 바깥에서는 또래 동무를 못 사귀는지,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동무를 못 사귀는지, 또래 동무란 고향 인천에만 있어야 하는지, 온누리 구석구석 또래 동무를 골고루 사귀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한테 고향나라와 고향마을은 틀림없이 소담스러운 어릴 적 생각바탕이며 마음바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담스러울 어린 나날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 바라보는 막개발과 철거용역만 판치는 인천 같은 데에서 어떤 또래 동무를 사귀게 될는지를 헤아리면, ‘글쎄요?’ 하는 생각만 떠오르게 됩니다. 다른 동네로 살림터를 옮긴다고 해 보아도 그리 나을 듯하지는 않습니다만,


.. !쿵 여성들은 되도록이면 혼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최대한 덜 받고 아이를 낳으려고 애쓰는데 그 덕분에 감염의 위험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쿵 문화에서는 혼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일로 여겨지지만, 초산일 경우에는 다른 여성들이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어린 산모들은 되도록이면 친정어머니나 가까운 여자 친척들이 같이 있어 주길 바라지만, 시집 식구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는 시집 쪽 여자 친척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어 준다 해도 진통과 분만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은―신이 변덕스럽게 개입하는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디까지나 산모 자신이다. 순산을 하면 그것은 산모가 출산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때 산모는 조용히 앉아서, 비명을 지르거나 소리쳐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분만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통제한다 … !쿵 여성들은 가임기에 평균 4∼5회 출산을 경험한다. 출산을 거듭할수록 혼자서 이상적인 분만을 치러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 아기에게 대신 젖을 먹여 줄 수 있는 다른 여성이 없을 경우에는 아기를 2∼3일씩 굶기기도 한다 … 명확히 정해진 ‘산후 조리’기간은 없지만, 일상생활을 재개할 만큼 튼튼해졌다는 기분이 들 때까지는 일상적인 활동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채집 생활을 하느라 끊임없이 떠돌아다니며 다져진 훌륭한 신체 조건 덕분에 대부분은 금세 회복한다 … “아기를 낳고 난 다음에는 한동안 서로 관계를 안 해. 남자들은 산모가 회복할 때 흘리는 피를 두려워하거든. 아기가 좀 자랄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애 낳고 한 달 정도만 기다렸다가 다시 남편과 한 이불에 들지” … “아기, 그래……. 아기가 태어나려고 하는 날이 다가오면 맘이 정말 무거워. 하지만 일단 낳아서 모래 위에 눕혀 놓고 보면 아기는 정말 멋진 선물이지. 아기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맘이 행복해져. 그래 그 조그만 아기한테 말을 걸고 얘기를 나누지. 하지만 아기를 낳을 때의 그 화와 고통이란……. 그런 건 왜 있는지 모르겠어!”  … “아기는 그저 누워 있었고 그렇게 사흘이나 굶긴 다음에야 한쪽 가슴이 불기 시작했어. 그리고 그날 밤에 다른 쪽 가슴에서도 젖이 나오고. 가슴이 좋은 젖으로 가득 찰 때까지 나쁜 젖을 짜서 버렸어. 아기는 정말 끝도 없이 젖을 빨고 또 빨다가 겨우 배가 차니까 잠이 들었지.” ..  (253∼273쪽)


 책 하나를 읽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즐겁게 읽은 책이니 너도 즐겁게 읽어야 해’ 하면서 건넬 수 없습니다. 밥 한 그릇을 먹여도 ‘엄마 아빠가 아주 맛나게 먹은 밥이니 너무 맛나게 먹어야 해’ 하면서 들이밀 수 없습니다. 옷 한 벌을 입혀도 ‘엄마 아빠가 아주 신나게 입은 옷이니 너도 신나게 입어야 해’ 하면서 내밀 수 없습니다.

 아이 엄마는 고등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고, 아이 아빠는 대학교를 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나라에서 보면, 엄마는 중졸이고 아빠는 고졸입니다. 요즘 세상에 대학 안 나온 엄마 아빠가 어디 있을까 모를 노릇이지만, 우리 두 사람은 ‘대학을 안 가고 대학을 안 마친’ 일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그만큼 대학 울타리 바깥에서 훨씬 너른 사람을 만나면서 훨씬 깊은 삶을 들여다보았고 훨씬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느꼈습니다. 학점에 매여 읽거나 익히는 책이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바라거나 쓸모있거나 아름다워지고나 읽거나 익히는 책이요 학문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병원에 기대는 삶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가 집에서 아이를 낳으려 하면서 어떻게 살림살이를 마련하며 맞이해야 하는가를 따지고 익혔습니다. 아이를 기르며 돈에 기대는 삶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이웃 어른한테서 익힙니다. 앞서 나온 훌륭한 책에서 배웁니다. 앞서 ‘돈에 안 기대고 아이를 돌보던’ 사람들한테서 슬기를 받아먹고 받아들입니다. 앞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나날에서도, 어버이는 어버이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제 삶을 고이 엮으면서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끼고, 이와 같이 나아가도록 늘 힘쓰려 합니다.


.. 가축떼는 영구적인 샘물을 중심으로 점점 더 넓은 범위를 뜯어먹으면서, 아직까지 !쿵족이 수렵채집을 영위하는 땅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다. 츠와나와 헤레로 마을들이 전통적인 !쿵족의 샘물 주변을 에워싸고 영역을 넓혀감에 따라 !쿵식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부유한 이웃에게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일은 이제 용인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 한때 직접 고기와 식량을 구해다 가족을 부양했고, 품위를 지키며 독립적인 삶을 영위했던 !쿵 사람들은, 이제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낮은 지위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한 환경 변화가 심리적으로 끼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많은 !쿵 사람들이 마을 농가에서 빚어다 파는 술을 마시며 시간을 때우기에 이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 !쿵족의 연장자들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 그들은 전통 문화의 산증인으로 모두가 우러러보았다. 그러나 이제 학교에 다니고 소젖을 짜고 염소와 당나귀를 돌보고, 심지어 다이너마이트를 써서 우물을 파는 법을 배운 손자들에게 그들이 지닌 지식과 기술이 무슨 쓸모가 있을까? … “아버지가 ‘베사, 난 자네가 맘에 안 들어. 내 딸을 데려가겠네. 이 애한테는 황야에서 살고 황야를 아는 남자를 찾아다 붙여 줄 거야. 나는 이 애가 마을 남자랑 결혼하길 바라지 않네.’ 하셨고,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어. 그래서 결국 식구들은 나를 데리고 떠나고 베사는 거기 남았지.” ..  (300∼312쪽)


 요즈음 ‘청소년 사진’을 찍으면서 길에서 만나고 스치고 부대끼는 푸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한테는 열 몇 해가 있어야 푸름이가 될 테지만, 열 몇 해라는 세월은 그리 길지 않아 금세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주하는 푸름이들이 낯선 남남이 아니라 우리 아이와 마찬가지라고 느끼는 한편, 스무 해 앞서 제가 푸름이였을 때와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청소년 문화가 한국에 있을 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없는 청소년 문화를 사진으로 담으면 어찌 될까’ 하고 생각을 잇다 보면, 우리 어른 스스로 ‘어른 문화가 한국에 있도록 하지 않는 동안’에는 청소년이든 어린이이든 아무런 문화가 없이 그 애틋한 나날을 허투루 스쳐 보내게 될밖에 없다고 느끼게 됩니다.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다시 어른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우리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치는 삶자락을 보면, 그리고 아이가 다시 어른한테 가르칠 삶자락을 살피면, 거의 다람쥐 쳇바퀴가 아닌가 싶어요. 진보를 말하는 사람이든, 지식을 외치는 사람이든, 보수를 지키려는 사람이든, 나라와 겨레를 외는 사람이든, 자기부터 스스로 진보나 지식이나 보수나 나라나 겨레가 되지는 못한다고 느껴지거든요. 입으로 외는 무슨 주의자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어떤 빛줄기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붓끝으로 끄적이는 무슨 주의가 아니라, 몸뚱이로 부대끼어 저절로 터져나오는 슬기나눔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곰곰이 따지면, 진보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하며 보수를 외쳐도 자동차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평등을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하며 평화를 외쳐도 아파트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종교를 외쳐도 돈하고 헤아져야 하며 학문을 외쳐도 돈하고 헤어져야 합니다. 권력을 붙잡아도 사랑이어야 하며 권력하고 동떨어져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니,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게 하는 자동차는 진보와 어긋납니다. 지금 세상을 아름다이 지키고 싶으니, 지금 세상 자연과 사람 모두한테 더 낫지 않도록 망가뜨리는 자동차는 보수와 어긋납니다. 모두가 고른 권리를 누리는 삶을 바라니, 가난한 낮은자리 사람들 삶터와 여린 목숨붙이 보금자리를 밀어내는 아파트는 평등과 어긋납니다. 전쟁을 일으키는 까닭은 더 많은 자원을 더 값싸게 끌어들여 더 많이 넘치게 쓰면서 홀로 배부르려는 속셈에서 비롯하니, 엄청난 자원을 끊임없이 쓰고 또 쓰도록 하는 아파트 짓기와 허물기와 새로짓기는 평화와 어긋납니다. 부처님처럼 살든 하느님과 한몸이 되든 내 것이 아닌 나 아닌 것이 되면서 사랑으로 어깨동무를 해야 하니, 내 주머니에 쌓이는 돈과 종교는 어긋납니다. 나 하나 똑똑해지고자 파고드는 학문이 아니라 나와 내 둘레 삶터 모두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슬기로움을 갈고닦는 학문이니, 학문을 하면서 돈을 긁어모으게 되는 일은 서로 어긋납니다.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며 나라를 튼튼히 돌보겠다는 권력자는, 오로지 사랑일 때에만 겉과 속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세상 얕은 흐름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즐겁고 조촐하게 살려는 사람한테는, 미움이나 등돌림이 아닌 사랑을 가슴에 붙안아야 나부터 즐겁고 조촐한 삶으로 꾸리게 됩니다.
 





.. 어머니 주변에는 항상 도와줄 누군가가 있고 아이들 주변에는 항상 같이 놀 친구가 있다. 어머니와 단둘이 따로 떨어져 심심해하는 아이를 어머니 혼자 감당하는 풍경은 !쿵족의 일상에서 흔치 않다 … !쿵 어린이들은 양쪽 부모와 매우 편안하게 잘 지내는 것 같다. 그리고 아버지와 신체 접촉을 하거나 함께 앉아 있거나 대화를 나누는 빈도도 잦다. 아버지는 화를 내면 두려워해야 할 권위 있는 존재로 굳어져 있지 않다. 양쪽 부모 모두 자녀들을 지도하며, 아버지의 말이나 어머니의 말이나 똑같은 무게를 지닌다 … 남성이 채집을 열심히 하는 것은 유별나다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지기는커녕 특별히 언급할 만한 사건조차 못 된다. 식물에 대한 남성들의 지식은 여성들 못지않으며, 남성들도 원하면 언제든지 채집을 할 수 있다. 남성들은 전체 채집 식량의 20퍼센트를 충당한다 … !쿵 사람들은 대개 몸가짐이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데, 그들이 성장하는 환경을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귀결인 것 같다. 그 분명한 한 예가 어린 소녀들이 유년기에서 성년기로 이행하는 사회 환경이다. 마을 규모가 작기 때문에 사춘기로 접어드는 소녀들은 자신과 비교할 때 동년배 친구들이 없거나 있다 해도 매우 적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심하게 비교하거나 경쟁하는 분위기를 경험하지 않고, 오랫동안 주목을 한몸에 받으면서 자라난다 … 이러한 경험이 자부심을 높여 주는 것 같다 ..  (331,339, 371쪽)


 옆지기 배속에서 새 목숨이 꼼틀거리게 될 때에도 이에 앞서도, 우리 두 사람은 새 목숨이 튼튼하게 세상에 나와 살아가게 되기까지 오로지 한 가지, 사랑밥을 먹이기로 다짐했습니다. 돈밥이나 책밥이나 종교밥이나 학교밥이나 얼굴밥 따위는 먹이지 않기로 다짐했습니다. 아이 스스로 먼 뒷날 이런 밥이 좋다고 여기며 나아간다면 그리 나아가도록 스스로 걸어갈 노릇이지만, 우리가 아이한테 주어야 할 밥은 아이 스스로 착하고 슬기롭고 튼튼하고 씩씩하고 똑똑하고 올바르며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을 가는 데에 배를 굶지 않도록 차려 주어야 한다고 여깁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으면 좋은 연예인이 되도록 거들어 줄 뿐, 나머지는 스스로 할 일입니다. 교사가 되고 싶으면 좋은 교사가 되도록 손을 보탤 뿐, 나머지는 알아서 할 일입니다. 농사꾼이 되고 싶으면 좋은 농사꾼이 되도록 이끌어 줄 뿐, 나머지는 혼자서 부딪히고 부대낄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두 식구,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더 잘 키우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벌이가 거의 없게 되어 살림이 아주 쪼들리게 되어도 이런 삶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면서 아이와 함께 두 사람이 집살림을 꾸리기로 했습니다. 언제까지나 품안에 기르는 아이가 아니라, 우리 품안에 있어야 할 때에는 우리 품안에 돈이나 이름이나 힘 따위를 얹지 않고 아이를 안아야 하니까요. 우리 집에서만 키우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 아빠와 함께 사랑과 믿음을 받아먹어야 할 아기 때에는 마땅히 엄마 아빠가 아기와 함께 밤잠 낮잠 아침잠 모두 잊어 가면서 아기와 부대끼고 놀아야 하니까요.

 여느 사람들 일터에서는, 아이 낳아 기르는 사람이 있을 때 마땅히 이 일꾼이 ‘아이가 어느 만큼 클 때까지’는 유급육아휴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 어느 가게나 단체나 관공서나 대중교통이든, 아이와 함께 움직이는 엄마 아빠가 고단하지 않도록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이와 어버이한테뿐 아니라 장애인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주노동자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르신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나 푸름이 모두한테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한테도 마찬가지이며, 떨꺼둥이한테도 마찬가지입니다.


 (3)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사람 이야기 《니사》


 칼라하리 사막에서 ‘수렵채집’을 하면서 살아간다는 ‘!쿵’사람 이야기를 담은 《니사》라는 책을 읽습니다. 우리 식구는 이 책을 아기를 낳고 나서 한 달쯤 지나 처음으로 읽었고, 100일이 지날 무렵 비로소 덮었으며, 그 뒤로 석 달 동안 책상맡에 얹어놓고 새록새록 되넘겼습니다.

 !쿵사람한테 이야기를 들은 ‘마저리 쇼스탁’ 님은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쿵사람을 만났으며, 1975년에 다시 찾아가 더 만난 다음 열 해에 걸쳐 !쿵사람 말을 영어로 옮기고 갈무리하여 《니사》를 펴냈다고 합니다. 그 뒤 1991년에 《니사》라는 책 주인공 ‘니사’를 다시 만나서 2000년에 《Return to Nisa》를 냈다고 하는데, 정작 마저리 쇼스탁 님은 1996년에 세상을 떠나 당신 두 번째 책을 두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는군요.


.. 많은 !쿵 남성들은 동부의 인력 시장으로 태워다 줄 운송수단을 찾아, 그곳에서 남아공의 금광에서 일할 인부로 등록한다. 그렇게 해서 몇 달 또는 몇 년을 일하고, 그때까지 번 돈과 더불어 바깥세상에 대한 새로운 물정과 지식을 얻어 가지고 돌아온다 … 도베 지역의 !쿵족들처럼 개중에서도 문화 접촉이 적었던 산족들은 자기 조상들이 수렵채집을 영위해 온 땅의 소유권을 스스로 지키기에는 정치적으로 너무 순진하기에, 아마도 보츠와나의 다른 지역에서 그랬듯이 불법 침입자로 전락하든지 부유한 농장에서 소몰이꾼으로 궁핍하게 살아갈 것이 뻔했다 … 1966년 이후 북나미비아 흑인 민병대와의 게릴라전에 휘말려 있는 남아공은, !쿵 남성들을 반란 진압군으로 남아공 군대에 입대시키기 위해 !쿵족과 다른 토착민들 사이의 적대감을 공공연히 조장해 왔다 ..  (472, 474쪽)
 





 《니사》를 읽는 동안, 우리가 우리 아이 사름벼리를 낳기 앞서 이 책이 나와서 읽게 되었다면 여러모로 도움을 받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인 한편, 아이를 낳고 길러 가는 훨씬 긴 나날 동안 아이와 함께 즐거운 삶은 무엇일까를 곱씹을 수 있으면 이 또한 보람있는 책읽기가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거짓스런 평등이 아닌 삶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평등을 보여주고, 겉치레 평화가 아니라 삶에서 스스럼없이 배어나오는 평화를 보여주는 《니사》입니다. 있는 만큼 땅에서 거두어 먹고, 있는 만큼 이웃과 나누어 즐기며, 있는 만큼 내 삶을 사랑하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쿵사람입니다.

 책 《니사》는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있는 어느 겨레 이야기인데, 찬찬히 헤아리면, 오늘날 우리 스스로 잊거나 잃거나 버리긴 했으나, 우리 겨레 또한 !쿵사람과 마찬가지로 거짓없는 평등과 스스럼없는 평화를 고이 나누던 삶이 아니었느냐 싶습니다. 신분과 계급과 돈과 땅으로 사람을 나누던 권력자 말고, 낮은자리 여느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깨동무와 이웃사랑으로 우리 삶을 고이 가꾸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알맞게 먹고 알맞게 일하고 넉넉히 쉬면서,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은 네 것이되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가지지 않도록 스스로 다스리는 삶은, !쿵사람이든 한겨레이든 이웃 다른 겨레이든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차근차근 이어져 오던 삶이 아니었느냐 싶어요.


..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과거 수렵채집 시절에 관한 지식에서 우리가 뭘 얻을 수 있을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렵채집민들이 지닌 풍부한 유산일 것이다. 선사시대 우리 선조들의 삶이 끊임없이 궁핍했던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식생활, 적당한 노동, 풍부한 여가, 자원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 가족과 사회와 경제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평등한 상태를 누렸다. 게다가 오늘날 !쿵족을 비롯한 수렵채집민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지역을 독차지했던 선사시대의 수렵채집민들과 달리 대부분 극한 환경으로 내몰려 있다 ..  (33∼34쪽)


 그렇지만 우리 겨레는 알맞는 삶을 버리고 있습니다. 아직 얼마쯤 남아 있는지 모르나, 일찌감치 송두리째 버렸는지 모릅니다. 더 많은 돈과 더 빠른 차와 더 큰 집과 더 단단한 가방끈과 더 배부른 밥과 더 높은 이름자리에 허덕이면서, 정작 더 따뜻한 사랑과 더 넉넉한 믿음과 더 아름다운 나눔에서는 멀어지고 있으니까요.

 돈을 안 들이고 주고받는 사랑을 잊고, 돈 없이 함께하던 믿음을 잊으며, 돈이 아닌 나눔이 무엇이었는가를 잊습니다. 돈을 벌어도 사랑을 잃고, 돈이 넘쳐도 믿음을 잃으며, 돈으로나마 나누려는 몸짓조차 잃습니다. (4342.3.3.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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