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라 메뚜기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23
다시마 세이조 글.그림, 정근 옮김 / 보림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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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내 삶을 아름다이 가꾸자
 [그림책이 좋다 58] 다시마 세이조, 《뛰어라 메뚜기》



- 책이름 : 뛰어라 메뚜기
- 글ㆍ그림 : 다시마 세이조
- 옮긴이 : 정근
- 펴낸곳 : 보림 (1996.9.20.)
- 책값 : 8000원



 (1) 아름답게 가꾸고 싶은 삶


 옆지기가 먹을 푸성귀를 장만하러 생협 나들이를 갑니다. 그러나 오늘은 생협 매장 문을 열지 않아 헛걸음을 하고 터덜터덜 돌아옵니다. 어제 다녀왔어야 했다고 생각해 보아야 벌써 지나간 일입니다. 하는 수 없이 생협보다 비싸고 멀리 있는 ㅇ마트까지 가서 장만해야 합니다.

 가는 길 오는 길 다른 골목을 걷습니다. 가는 길은 늘 걷는 안쪽 샛골목입니다. 사람들은 으레 자동차 많이 오가는 싸리재 찻길로 다니지만, 우리는 이 찻길 바로 옆으로 난 골목집 사이를 잇는 ‘자전거도 못 지나가고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샛골목을 걷습니다.

 벌써 몇 해째 거니는 길인데, 이 길을 걷는 하루하루 새롭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따라 새롭기도 하지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릅니다. 어제 못 본 모습을 오늘 보고, 오늘 못 본 모습은 내일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골목집 가운데 어느 한 집에 눌러살게 되더라도 날마다 다른 집살림을 느끼게 되지 않으랴 싶습니다.

 경동 샛골목을 지나다가, 27번지 문패를 보고는 우뚝 걸음을 멈춥니다. 볕이 잘 안 드는 자리에 있기는 해도, 비와 바람에 닳고 낡은 문패는 이 집이 이곳에서 얼마나 오래도록 뿌리내리면서 삶을 이어왔는지 보여줍니다. 이제는 빈집이 된 이곳, 앞으로 어찌 될는지 알 수 없는 이곳, 이제 이 집이 재생사업이니 도시정화사업이니 하는 이름으로 헐리게 되면, 문간에 아주 단단히 붙여놓아 떨어지지도 않을 터라 자취 없이 사라져 버릴 저 문패며 집이며 대문이며 …….


.. 조그마한 수풀 속에 메뚜기 한 마리가 숨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아주 무서운 녀석들이 메뚜기를 잡아먹으려고 노리고 있었지요. 그래서 메뚜기는 날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살았습니다 ..  (2∼4쪽)


 아침에 아기를 씻기고 빨래를 하니 금세 낮으로 바뀝니다. 넘어져 다친 손가락과 팔꿈치 아픔을 찌릿찌릿 느끼면서 비빔질을 하고 물짜기를 합니다. 부시시한 눈도 비비면서 빨래를 모두 끝마치고 옥상마당에 차곡차곡 내다 널고 걸고 나니 조금은 개운합니다. 삼월을 맞이하며 한결 따뜻해졌다고 느껴지는 이 햇볕을 쬐는 빨래는 한결 보송보송 마르며 아기 몸한테도 고운 햇살을 이어주리라 믿습니다.

 한동안 옥상마당을 서성이며 둘레 골목집을 둘러봅니다. 바지런한 골목집에서도 아침 빨래를 마치고 저마다 저희 옥상마당에 빨래를 내다 넙니다. 옥상마당이 따로 없는 골목집은 창문가나 골목가에 빨래줄을 이어 넙니다. 모르는 사람은 골목집과 골목집 사이에 줄이 왜 이어져 있는지 모르기 일쑤이고, 또 지저분하게 이런 줄을 왜 이었느냐 궁시렁거리기도 하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기 마련입니다.


.. 메뚜기는 이런 곳에서 겁먹고 사는 것이 몹시 싫어졌어요 ..  (7쪽)


 제가 처음 태어난 동네를 서른 몇 해 만에 찾아가 ‘떠오르지도 않는 그 옛날’ 모습은 어떠했을까 생각해 보면서 사진을 찍는 동안, 또 숱하게 옮겨다니며 살았다는 동네를 하나하나 되찾으며 ‘그때 어느 집에 살았을까’ 곱씹으며 사진을 찍는 동안, 그리고 고향땅이 싫어 서울로 충주로 또 다른 이 마을 저 마을 구석구석으로 떠돌며 지내던 때에도 이곳에 고이 남아서 살아온 사람들 삶자락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음이 아립니다. 저로서는 ‘적바림하는’ 사진(기록사진, 다큐사진)이 아님에도 제가 찍는 사진을 적바림 사진으로만 여기는 사람둘 눈길이 슬프고, 제가 만나고 부대끼는 사람들 삶터가 ‘없어져야 할 곳’으로 여기는 사람들 마음이 슬프며, 고향 없이 돈만 바라며 집자리를 옮겨다니게 되는 사람들 모습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나무처럼 뿌리내리면서 싱그럽고 시원한 그늘을 백 해 이백 해 즈믄 해 선사하는 사람으로는 살아가지 못할까요. 왜 우리는 산처럼 우람하고 튼튼하게 선 채로 맑고 밝은 숨결을 널리널리 고이고이 베푸는 사람으로는 살아내지 못할까요.

 돈이 되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웁기에 하는 일이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재미가 있어야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고 넉넉해지기에 함께하는 놀이가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이름값을 높여야만 맡는 자리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을 주고받을 수 있기에 맡는 자리가 될 수는 없는지 아쉽습니다.


.. 메뚜기는 커다란 바위 꼭대기로 나와 대담하게 햇볕을 쬐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하면 금방 남의 눈에 뜨여 잡아먹힌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에요 ..  (10쪽)


 빨래를 마치고 쌀을 씻다가 생각합니다. 우리 식구는 누런쌀에 온갖 다른 곡식과 콩팥을 잔뜩 섞어 먹는 밥이 맛있다고 여기고, 여느 흰쌀밥은 도무지 씹을 수 없어 맛없다고 느끼는데, 어쩌면 우리 삶이 하루하루 흰쌀로만 밥을 먹듯 우리 생각과 삶도 흰쌀처럼 되어 가고 있지 않느냐고.

 사람몸에 도움되는 알맹이를 다 깎아내어 허여멀겋게 남은 흰쌀로 지은 밥이 마치 좋은 밥이라도 되고 맛난 밥이라도 되는 양 잘못 알듯 우리 생각과 삶도 흘러가지 않느냐고.

 버려지는 알맹이마냥 우리 몸과 마음에 깃든 아름다움을 우리 스스로 내동댕이치거나 내버리고 있지 않느냐고.

 우리들 모두한테는 마음자리 깊숙한 데에 하느님이 살아 있는데, 우리 마음자리에 깃든 하느님은 못 본 채 절집과 예배당과 성경과 불경만 파고드는 우리들이 아니냐고.


.. 이제는 살 길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메뚜기는 온힘을 다해 날갯짓을 했습니다.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면서, 위로 떠올랐습니다. “아니 저게 뭐야. 뭐가 저렇게 날아?” 잠자리가 사뿐 날아들며 메뚜기를 비웃었습니다. “하하하. 저런 엉터리 날갯짓!” 나비들이 나풀나풀 가볍게 날면서 떠들어댔습니다 ..  (26∼28쪽)


 보채고 꿍얼대다가 엄마젖을 물고 가까스로 잠든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오늘은 아직 아침똥을 누지 않는데, 몸이 안 좋고 힘이 드는가 봅니다. 아기야, 네가 튼튼하게 놀고 먹고 자고 옹알이를 해야 엄마도 한결 즐겁고 고된 몸이 놓이면서 너한테 더 맛나고 좋은 젖을 줄 수 있단다, 부디 새근새근 잘 자고, 이따가 일어나면 다시금 신나게 놀자꾸나.


 (2) 《뛰어라 메뚜기》는 어떤 그림책인가


 1996년에 《뛰어라 메뚜기》(보림)가 옮겨진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책은, 2002년에 《늑대의 돼지 꿈》(현암사)이 두 번째로 옮겨지고, 2002년에 《1111마리의 벼룩과 고양이》(효리원)가 세 번째로 옮겨지며, 2006년에 《채소밭 잔치》(우리교육)가 네 번째로 옮겨진 다음, 2007년에 《엄청나고 신기하게 생긴 풀숲》(우리교육)이 다섯 번째로 옮겨지고, 지난 2008년에 《쿨쿨쿨》(보림)이 여섯 번째로 옮겨집니다.

 투박하면서 수수한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결은, 어떻게 보면 아이들이 마음껏 즐기는 그림결처럼 느껴집니다. 어른이면서 어린이 같은 그림을 흉내내는 분들이 제법 많고, 이런 그림이 퍽 사랑받고 있음을 헤아린다면,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은 ‘어떤 유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느 ‘아이들 그림 같은 그림’하고 다른 대목이 있어, 이분 그림책이 사랑받고 또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첫째로, 아이들은 다시마 세이조 님처럼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거침없으면서 투박한 그림이지만, 이 거침없음과 투박함은 기나긴 세월에 걸쳐 스스로 녹여낸 붓질이지, 이제 막 붓을 잡은 아이들 손끝에서 흘러나오는 거침없음과 투박함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어설픈 잔재주나 섣부른 아이 흉내에 빠지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녹여낸 거침없으며 투박한 이 붓끝으로 ‘아이와 함께 나눌 삶과 생각’을 차분하게 담아냅니다.

 둘째로, 아이는 아이이고 어른은 어른입니다. 아이는 아이 삶이 있고 어른은 어른 삶이 있습니다. 어른은 아이 때를 거쳐 어른이 되는 동안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세상 보는 눈을 좀더 기르게 됩니다. 어른인 그림쟁이가 펼쳐 보이는 그림책은 아이한테 주는 선물이면서 아이 때를 거친 자기 발자국이고, 선물을 받아든 아이들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되는 고마운 눈물입니다. 그래서 잘 빚은 그림책은 억지로 떠먹이지 않는 몸에 좋으며 맛난 밥과 같고, 잘못 빚은 그림책은 아이 몸과 마음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아이가 거스르게 되는 달갑잖은 먹을거리와 같습니다.

 셋째로, 오래도록 서로서로 함께 나눌 이야기를 곰삭입니다. 어른으로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고, 어린이로서 어른과 함께 살아가는 길을 저마다 다르게 찾습니다. 이런 길찾기는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또 어른대로 서로서로 눈을 마주하고 몸을 맞대면서 저절로 느낍니다. 겉으로 사랑한다 하는지, 입으로만 사랑한다 읊는지, 속으로 사랑하는구나 느껴지는지, 온몸으로 사랑을 보여주는지를, 서로서로 찬찬히 헤아립니다. 다시마 세이조 님 그림책은 스스로 즐거우면서 아이와 함께 즐거울 길을 차근차근 뚫고 가꾸고 돌보며 몸소 걸어가는 마음자락을 담아내는 놀이이면서 일입니다.


.. 하지만 메뚜기는 누가 뭐라고 해도 모르는 척했습니다. 자기 힘으로 날 수 있으니, 정말 기쁘고 즐거웠거든요. 메뚜기는 높이높이 날았습니다. 자기 날개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갔습니다 ..  (30쪽)


 《뛰어라 메뚜기》라는 그림책은, 그린이 스스로 ‘뛰고 싶은 삶’을 보여줍니다. 스스로 펄쩍 뛰어오르려는 몸가짐을 보여줍니다. 부딪혀서 온몸이 조각조각 부수어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앉거나 뒤에 숨어 있는 채로 밟혀 죽거나 잡혀 찢어져 죽고 싶지 않은 메뚜기 마음을 보여줍니다. 아주 작은 한 가지부터 고쳐 나갈 길을 찾고, 이러한 길을 남들보고만 가라 하지 않고 스스로 먼저 갑니다. 말보다 몸이 먼저이고, 몸이 가면서 살며시 말을 건넵니다.

 아름다운 세상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 아름다워져야겠지요. 우리가 먼저 달라져야겠지요. 비록 아름다워지려고 애쓰고 힘써도 아름다움에 가까이 닿지 못할 수 있으나, 그렇게 되든 안 되든 꾸준하게 애쓰고 한결같이 힘쓰는 삶이 바로 아름다움일 수 있어요. 이런 넋과 생각과 삶이 그림책 《뛰어라 메뚜기》에 고이 담깁니다. “전쟁이 싫어요!” 하고 외치는 목소리 하나로 전쟁을 거스를 수 없다고 하나, 바로 이 조그마한 목소리 외침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발걸음 하나입니다. 그런 다음, 자기한테 싫은 전쟁을 맞이하지 않을 길을 하나씩 찾고,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내 마음을 가꿀 일거리를 찾으며,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불러올 사람 사귐을 헤아리는 가운데, 전쟁을 내어쫓고 아름다운 사랑이 가득할 삶이란 어떻게 가꾸는가를 톺아보면서 스스로 일구게 됩니다.


.. 메뚜기는 황무지를 지나, 멀리멀리 날아갔습니다 ..  (32∼34쪽)


 두꺼비, 뱀, 사마귀, 거미, 새, …… 여기에 사람까지. 메뚜기를 괴롭히거나 들볶는 녀석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이 짜증스럽고 무서운 녀석들한테서 몸을 숨기면서 아주 외롭고 쓸쓸하게 어두운 구석에 갇혀 지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이 부서지거나 목숨마저 잃을지라도 다부지고 당차게 몹쓸 녀석들하고 한판 붙을 수 있습니다. 굳이 한판을 붙지 않더라도 우리 나름대로 밝고 맑게 살아갈 길을 찾아나설 수 있습니다. 좀 굶주리더라도, 좀 헐벗더라도, 좀 가난하더라도. 좀 고달프더라도, 좀 힘들더라도, 좀 괴롭더라도. 좀 벅차더라도 나와 같은 길을 가는 벗을 만나며 서로가 서로한테 힘이 됩니다. 좀 고단하더라도 우리와 같이 걷는 이웃을 사귀며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하며 사랑힘을 키웁니다. 좀 더디고 오래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밑바탕부터 다지면서 우리 스스로와 우리 뒷사람 모두한테 흐뭇할 터전을 갈무리합니다. 그러면서 바야흐로 거칠고 메마른 땅을 훨훨 날아서 가로지르고, 우리가 꿈꾸던 싱그럽고 고운 세상에 가 닿게 됩니다. (4342.3.1.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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