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하나 84 ― 하루에 2분만 들이면 세상을 바꾼다
 : 마조리 램, 《2분 간의 녹색운동》


- 책이름 : 2분 간의 녹색운동
- 글 : 마조리 램
- 옮긴이 : 김경자, 박희경, 이추경
- 펴낸곳 : 성바오로출판사 (1991.6.10.)



 (1) 아기를 생각하는 삶


 며칠 앞서입니다. 어느 소설쓰는 분을 만난 자리에서 이 소설쓰는 분을 아끼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술잔도 부딪혔는데, 제 앞에 앉으신 분은 아이를 둘 키우는 아주머니였고, 두 아이를 모두 천기저귀를 손빨래 하며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한테 돈이 더 많았다면 그렇게 천기저귀를 쓰지 못했으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깜짝 놀랐지만, 천기저귀 손빨래를 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아이를 키우며 기저귀 빨래만 해도 된다면, 천기저귀 빨래가 수월하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할 만할 수 있지만, 아버지 된 이는 아이 키우는 일에 팔짱을 끼고 있는 가운데 두 아이를 입히고 먹이고 재우고 놀리고 가르치고 하자면 어머니 된 이는 몸이 죽어납니다. 그러니 저절로 ‘한 가지라도 손이 덜 가는 일’을 찾을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종이기저귀를 사다 쓰는 일도 고달픕니다. 부지런히 저잣거리 나들이를 해야 하며,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다 보면 군물건에 눈길을 빼앗길 뿐더러, 꽤 긴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아기를 업고 안고 무거운 종이기저귀를 들고 오기도 벅차, 자동차를 끌게 됩니다. 자동차를 끌면서 길에 기름값을 버리게 되고, 또 자동차에 들어가는 보험삯이며 다른 돈이며 ……. 돈이 있어도 할 만하지 못한 일이 ‘종이기저귀 쓰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종이기저귀를 쓰면서 나오는 이 쓰레기들은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아이들 삶터를 더럽히고 맙니다.


.. 나는 베이비붐 세대였으나 생활습관은 공황시대에 성장한 나의 부모님들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분들로부터 얻은 교훈들은 다음과 같다. 새옷을 사는 것을 보류하고 낡은 것을 기워서 입는다. 애채는 직접 재배해서 저장한다. 작은 나무조각이나 종이조각, 쇳조각도 쓰이는 곳이 있다. 적게 사들이고 수리를 많이 한다. “직접 만들어라, 낡을 때까지 입어라, 끝까지 사용해라.” 어릴 적의 인상적이었던 검약의 필요성이 환경 시대에서는 미덕이 되었다 … 정치가와 정부와 기업이 무엇인가 하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단정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자신의 집에서 무엇인가를 시작해야만 한다 ..  (14∼15쪽)


 아기를 안고 업고 나들이를 다니는 우리 식구를 보는 이웃 분들은 ‘그러지 말고 작은 차라도 한 대 장만하지?’ 하고 말을 합니다. 예전에 저 혼자서 책방 나들이를 하며 가방이 미어터져라 책을 장만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나르는 모습을 볼 때에도 같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또 우리는 자동차를 장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들 수 있을 만큼 책을 장만하여 들 뿐이고, 아기와 함께 다닐 때 챙겨야 하는 기저귀 짐보따리는 마땅히 어버이로서 짊어질 보따리이거든요. 그만한 보따리 하나 몸뚱이로 짊어질 수 없다면, 어버이 되기를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할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방이 미어터지든 가방으로 모자라 두 손으로 더 챙겨 들어야 하든, 스스로 짊어지거나 들고 나를 만큼만 책을 사들이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종이기저귀 생산자나 소비자들은 그 편리성을 떠들어댄다. 그러나 정말 그것이 편리할까? 종이기저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장에 갈 때마다 기저귀를 사야 한다. 기저귀를 다 쓰면, 그것을 사러 일부러 시장까지 가기 일쑤다. 천기저귀를 쓰면, 세탁기에 집어넣는 10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하면 되는데, 이렇게만 하면 2년 반 동안 아이는 계속 기저귀를 차게 되는 셈이다 … 종이기저귀를 쓰기 위해 얼마만한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  (36∼37쪽)


 인천에서 일산까지 나들이를 다니는 길은, 자동차를 얻어 타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고, 전철로 돌고 돌아 버스 타고 들어가면 세 시간이 넘습니다. 자그마치 두 시간 넘게 벌어지는 길이라, 옆지기 부모님을 만나뵙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충북 음성에 있는 제 부모님 만나뵙기도 꽤나 벅찹니다. 대중교통으로는.

 그렇지만 이 거리를 자가용으로 움직인다고 치면 몹시 가깝습니다. 고속도로나 고속국도가 아주 잘 뚫려서 금세 씽 하고 찾아갈 수 있어요. 다만, 이 가까이 잘 뚫린 길로 다니는 대중교통은 없습니다. 시골사람들은 옆마을에 살아도 서로 느긋하게 오갈 차편이 없어요. 차를 타면 3∼5분 거리인데, 걸어가면 한 시간이 넘습니다. 버스를 기다리자면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음성에 가며 버스 기다리기 힘들어 끝내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삯이 만칠천 원이 넘게 나와, 인천에서 음성까지 기차나 버스 타고 가는 삯보다 훨씬 더 나왔어요.

 나라에서는, 또한 지역자치정부에서는, 우리들이 대중교통으로는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셈입니다. 오로지 자동차를 장만해서 굴리라고 하는 셈입니다. 자동차 굴릴 돈을 벌고, 자동차에 넣을 기름값을 벌며, 자동차 유지관리비와 보험삯 모두 벌라는 셈입니다.


.. 새로운 유행이 나오면, 신분을 의식하는 사회에서는, 필요하지 않아도 구입하게 된다. 옷감 가게는 여러 가지 테두리나 장식품들을 갖추고 있어야만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자동차회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마다 한 대씩 최신형 자동차를 만들고, 해마다 다른 모델을 생산하는 생산조직을 재정비한다. 당신이 새 차를 운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그 차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동차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아주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도시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대중교통수단보다 자가용으로 더 쉽게 시내에 진입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에 이런 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52주 중 1주 반 동안만 이것을 실행한다면 무엇인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 우체국까지 항상 자동차로 간다면 그곳을 자전거 타고 가는 지점으로 정하라. ‘직장까지 자전거로’ 가는 주일을 정하는 것은 어떨까? 안전하게 자전거를 세워 놓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달라고 직장에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 주차장이 있는 직장이라면 자전거를 세워 놓을 장소 제공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  (60∼63쪽)


 일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그리고 일산 나들이를 하려고 집에서 떠날 때, 요즈음은 여행가방에 아기 기저귀와 옷가지를 그득그득 채우고 끕니다. 여행가방 바퀴는 플라스틱이라 오돌토돌한 길을 끌 때면 극극극 끌리는 소리가 참 큽니다. 왜 여행가방 바퀴에 고무를 대지 않았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걸어다니는 길이 ‘겉으로 보기에는 예뻐 보일’ 뿐, 정작 우리가 다니기에 안 좋다는 뜻입니다. 여행가방을 끌 때 극극극 큰소리가 나는 길에서는, 우리가 아기수레를 끌고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기수레에 탄 아기는 덜덜덜 떨리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아야 합니다. 게다가 턱이나 계단이 오죽 많습니까. 1층 건물에도 턱이나 계단을 만들어서 ‘멋스럽게 꾸민’다고 합니다. 용산역이나 서울역 같은 데에는 자동계단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자동계단으로는 아기수레를 끌어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승강기라도 찾아보아야겠는데, 어디에 붙었는지 찾기가 퍽 어렵습니다.

 이웃에서 ‘아기수레 드릴 테니 쓰셔요.’ 하고 말씀하는 분이 여럿 되지만, 이러저러한 길 형편을 헤아릴 때, 우리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길이 이러저러해서 우리는 안 쓰려고 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손사래를 칩니다. 가방 짊어지고 아기 안고 다니자면 팔 빠지고 등허리 쑤실 노릇이지만, 어버이 몸이 좀 고달프다고 해서 갓난아기를 괴롭힐 수 없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걷는 사람’을 헤아리지 않도록 내버려두거나 팔짱을 끼거나 모르쇠로 지냈던 우리 스스로를 탓하면서 우리가 떠안아야 하는 고달픔입니다.


.. 점심시간 후에 학교 쓰레기통을 본 일이 있는가? 넘쳐나지 않는가? 환경에 친숙한 학교 도시락에는 한 가지 간단한 법칙이 있다. 버려야 할 것은 도시락에 넣지 말라. 몇 가지 물건으로도 아이들은 몇 년 동안 쓸 수 있다. 플라스틱 봉투, 종이봉투, 개인용 음료수통, 그리고 플라스틱 랩을 사용하는 대식 플라스틱 점심그릇이나 헝겊 도시락가방이나 단열 혹은 진공병을 쓰도록 하라 … 아이들을 학교 시절에 일찍 바로잡아 놓으면 학창 시절을 거친 누구라도 녹색기준을 고수하리라는 확신을 할 수 있다 … 아직 멀쩡한 옷, 차, 그리고 살림집기들을 해마다 모조리 버리는 것을 우리는 어디서 배웠는가? 일찌감치 학창 시절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일까? … 내 생각에 아버지는 가장 값있고 영원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 주셨는데, 새 설계를 위해, 쓰던 물건을 간직하고, 이미 가지고 있으면 새 것을 사지 말라는 것이었다 … 북아메리카에서 우리는 자원이 무한히 많은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쓰레기 치우는 날이면 어김없이 길가에 놓여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많이 보는데 모두 쓰레기 매립장으로 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  (117∼124쪽)


 늘 느끼는데, 더도 덜도 말고 내 아이를 생각해 보면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내 아이만 생각해도 세상이 나빠질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는 내 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모시는 사람으로서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나 아이가 없으면 동무와 이웃을 생각하면 됩니다. 나와 내 이웃과 내 동무가 다 함께 즐겁게 살아갈 세상이라 한다면 우리 세상은 어찌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꾸려야 하겠습니까. 어떤 물건을 쓰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떤 놀이를 즐겨야겠습니까. 내 어버이와 아이와 이웃과 동무를 떠나, 내 몸 하나만 생각한다고 하여도, 우리들은 1회용품이란 어느 한 번이라도 쓸 수 없습니다.
 





 (2) 책을 생각하는 삶


 《2분 간의 녹색운동》이라는 그리 두툼하지 않는 푸른빛 책을 처음 알게 되어 읽은 때는 2000년 가을입니다. 책을 펴낸 곳은 ‘성바오로출판사’이고, 이곳은 천주교 책을 부지런히 내는 데이지만, ‘분도출판사’와 마찬가지로 ‘종교 테두리를 넘어서면서 사회와 삶과 사람을 돌아보는’ 책을 꾸준히 냈습니다. 요즈음은 꽤 뜸하게 되었지만.

 1991년에 나온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이런 흐름, ‘종교를 믿는 사람도 읽어야 하지만, 종교를 안 믿는 사람도 즐겁게 읽을 만한 책’으로 나온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쉽게도 《2분 간의 녹색운동》은 ‘바오로딸’ 책방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안 팔리고 남은 책이 있는 ‘바오로딸’에는 있겠지만, 시중 새책방에서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오로지 헌책방에만 남은 책이 되었습니다. 더 아쉽게도 이렇게 좋은 책이 천주교회에서 두루 읽히지 못하는데, 어쩌면 천주교회 스스로 이 책이 판이 끊어지지 않도록 미사 때 알리고 교리 공부 하면서 함께 나누지 않은 탓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말이지요.

 그런데, 천주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기독교회나 불교에서는, 또 천도교회에서는, 우리 삶과 세상을 돌아보는 책을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속깊이 받아들이거나 나누고 있을까요. 지율 스님이 《초록의 공명》과 같은 책을 펴냈을 때, 불교를 믿는 분들은 얼마나 이 책을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받아들여 주었을까요. 아니, 찾아서 한 줄이나마 읽기라도 했을는지요. 알도 레오폴드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쓴 책을, 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책을 기독교회 사람들은 얼마나 가까이하면서 가슴으로 새기고 있을는지요.


.. 새로운 땅을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물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물을 잘못 사용한다는 것은, 깨끗한 물의 원료가 없어진다는 말과 같다 … 물 절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보라 : 매일 필요로 하는 물을 전부 내가 집까지 운반해 와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머리 위에 항아리를 이고서 … 우리가 집에서 사용한 세제들의 대부분은 배수구로 빠져 하수구로 흘러나가, 우리의 마실 물이 될 호수와 강, 하천으로 다시 들어가게 된다 ..  (18, 28, 38쪽)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2분 간의 녹색운동》이 보이면 일부러 더 장만합니다. 저는 일찌감치 읽었지만, 옆지기한테 읽히려고 한 권 더 사고, 옆지기 어머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더 사며, 우리 동네에 있는 송림동성당 신부님과 수녀님한테 선물하려고 한 권 다시 삽니다. 그러고도 또 보이면 또다른 이웃한테 선물하고자 집어듭니다.

 다만, 헌책방 나들이를 하는 그날 바로 사지는 않습니다. 몇 번 나들이를 하면서 ‘우리 말고 다른 분들이 이 책을 알아보아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기다립니다. 몇 달을 기다리고 나서 그예 안 팔리고 얌전히 꽂힌 모습을 본 다음, ‘어쩔 수 없네. 우리가 사서 선물해 주어야지.’ 하고 생각합니다.


.. 새하얀 것을 선호하는 것이 미덕인가? 이상하게도 심술궂은 인간행동 중의 하나가 누군가 청소를 쉽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면, 청결도의 기준을 높인다는 점이다. 진공청소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먼지가 침대 밑이나 옷장 뒤에 요즘보다 훨씬 더 많이 쌓여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일 년에 한 번 ‘춘계 대청소’를 하면서 그동안 쌓인 때나 먼지를 닦아냈다. 요즘은 매주 진공청소기로 청소를 한다. 세탁기가 발명되기 전에는, 한 번 입어서가 아니라, 옷에 때가 있어야 세탁을 했다 … 어머니는 집의 구석구석을 문지르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하셨다. 어머니는 늘 네 명의 수선스런 아이들의 과제물, 학교 연극, 인형 만들기, 성쌓기 등을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그 덕분에 누구나 우리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 인생에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볼 수 있는 시각을 유지하도록 하자. 창문테가 깨끗하지 않다고 친구들이 우리를 덜 좋아할까? ..  (42∼43쪽)


 새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사서 선물해 주는 책도 있습니다. 《씨앗의 희망》이나 《수달 타카의 일생》이나 《회색곰 왑의 삶》 같은 책은 헌책방에 잘 안 들어오기도 하지만(많이 안 팔리니까), 오래도록 꾸준하게 새책방에 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틈틈이 선물해 줍니다. 또는, 쪽지에 ‘이러저러한 책이 있는데 참 좋아요. 책방 나들이를 하시면서 한번쯤 둘러보시고 괜찮으면 사서 읽어 보셔요.’ 하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흔히 《오래된 미래》나 《침묵의 봄》이나 《녹색 시민 구보 씨의 하루》나 《육식의 종말》 같은 책만 알고 다른 훌륭한 생태환경책에는 눈길을 못 돌리기 일쑤입니다. 《모래 군의 열두 달》 같은 책조차 제대로 알려지거나 읽히지 못합니다. 그나마 잡지 《녹색평론》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두루 독자를 얻고 있는데, 잡지를 꾸준히 찍을 수 있을 만한 독자수일 뿐이지, 우리 스스로 우리 생각을 가다듬거나 새로워지도록 다스릴 만한 독자수는 아닙니다.

 어쩌면, 이런 독자수와 책 팔림새가 오늘날 우리 모습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눈높이요 우리 얼굴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우리 움직임이요 매무새가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스스로 한결 아름다워지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스스로 더 물질문명에 젖어드는 사람이 되려는, 속보다 겉에 훨씬 더 마음을 쏟는 우리들 삶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 음료수 판매대에 가면 선택을 해야 하는데, 다양한 포장 때문에 혼란을 느낀다. 회수가능한 유리병, 회수불능 유리병, 재생가능 플라스틱병, 재생불가능 플라스틱병, 재생가능 캔 등이다.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첫 번째 선택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음료수를 사지 않는 것이다 … 헬스클럽의 회원이거나 스포츠센터의 직원인가? 회비를 냈다고 해서 자원을 남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다니는 클럽에서도 일회용 면도기의 사용을 권하는가? 집에서는 수건 한 장이면 될 것도, 거저 쓸 수 있다고 몸을 닦는 데 세 장씩 수건을 쓰는 건 아닌지? 수건 한 장마다 세탁하고 건조시키는 데 에너지가 든다. 회비에 포함됐다고 해서 20분 동안 샤워하지는 않는가? ..  (79, 92∼93쪽)


 저는 동네에서 ‘사진책 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내걸며 꾸리고 있지만, 정작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책은 ‘생태환경책’입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좋아하고 아끼면서 차곡차곡 그러모아 보아도 생태환경책으로는 책꽂이 두어 칸을 채우기 어렵습니다. 잡지를 빼고 낱권책으로는. 시중에 나오는 모든 책이 아닌 제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이웃하고 나눌 책으로는. 아니, 제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쯤 되면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까지 다 하더라도.

 참말로 오늘날 한국땅에서 생태환경책은 출판사에서 잘 안 냅니다. 잘 안 팔리니 잘 안 낼밖에 없는데, 오늘날 어느 누구라도 ‘환경 문제가 아주 큽니다’ 하고 말을 하지만, 정작 환경 문제가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라고 해 보면 ‘쓰레기 안 버리기’를 넘어서기 어렵고, 요즈음은 ‘이명박 대운하’쯤을 겨우 건드릴 뿐입니다. 스스로 환경책을 읽어 보지 못했을 뿐더러, 어떤 환경책이 있는 줄 모르고, 우리 삶을 살리는 환경 문제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20세기 많은 질병들은 현대 건축자재들이 발명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집이나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콘크리트, 합성카펫 등 기타 물질들에서 방출되는 증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 우리들의 집과 아파트에는 플라스틱, 접착제, 페인트, 프롬알데히드, 용제, 방부제, 살균제, 살충제 등 유독물질이 함유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새 집에 어떤 유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 ..  (136쪽)


 성당 반모임을 하러 이웃집에 찾아가 보면, 이웃집에 계신 분들 밥은 모두 하얗습니다. 오로지 흰쌀로만 밥을 짓습니다. 찌개며 반찬이며 조미료를 많이 치는 분도 있고, 조미료를 안 친다지만 유기농 곡식으로는 장만하지 못하곤 합니다. 으레 ‘비싸서 안 쓰지’ 하고 말하지만, 유기농 곡식이 비쌀 일이란 없는데, 이런 흐름을 붙잡지 못합니다. 성경에 적힌 좋은 말씀을 받아먹는 가슴이지만, 이 좋은 말씀을 자기 삶으로까지 녹여내지 못합니다. 신부님이 스스로 당신 삶을 바꾸며 ‘환경을 생각하는 밥먹기’를 말씀하고 알려주어도 이를 몸으로 받아들여 고치는 분은 아주 드뭅니다.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라 못 고쳐지는지 모르지만, 믿음 앞에서는 ‘오래도록 굳어진 버릇’이 없음을 돌아본다면, 밥먹기에서도 이 땅과 사람을 헤아리는 매무새로 너끈히 고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친소 고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이 ‘안 미치고 여물 먹고 자란 소 고기’를 먹자면, 이 땅에서 유기농 곡식을 빚어내고자 애쓰는 농사꾼들 땀방울을 도시사람이 즐겁게 사서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도 제 고향 인천은 천주교구 테두리에서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내걸어, 몇 군데 성당과 답동 교구청에는 크고작은 걸개천을 내겁니다. 다른 지역교구에서는 이렇게 안 하지만. 또 다른 교구뿐 아니라 이 나라 수많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는 아무런 걸개천도 안 내걸지만(종교 이야기를 들었지만, 천주교회에서도 몇 군데에서만 이렇게 ‘대운하 반대’를 공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걸개천까지 내걸지 않은 기독교회와 절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합니다).
 





 (3) 덮지 않고 꽂지 않고 책상맡에 놓는 책


 다 읽고 또 읽는 책도 많지만, 다 읽고 또 읽은 다음 책상맡에 놓는 책도 제법 있습니다. 여러 번 거듭 읽어 줄거리를 꿰고 있기는 하지만, 늘 가까운 자리에 놓고는 둘레에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책을 소개할 때면 곧바로 집어들어서 보여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2분 간의 녹색운동》은 저로서는 언제나 책상맡에 놓아 두면서 가끔 펼쳐 보기도 하고, 손님들한테 보여주기도 하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 나는 내 딸의 인생이 특별한 인생이기를 바란다. 나는 그 애가 맑은 공기를 숨쉬고 맑은 물을 마시며 건강한 음식을 먹고 푸른 지구를 즐기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들, 손자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같은 것을 원하고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모두가 매일 작은 일 한 가지씩만 실천한다면 우리는 함께 지구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  (16쪽)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없지는 않습니다. 옮긴이가 여럿이라 그러할는지  모르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두루 읽기에는 알맞지 않은 옮김말이 보이고, 얄궂은 말투가 많습니다. 제대로 가다듬어지지 못한 글월입니다. 또한, 미국에서 어느 만큼 잘사는 분이 자기 삶을 잣대로 삼아서 썼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한국에서 2분만 들이며 할 푸른운동”을 써 내려갈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 같은 책처럼.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 같은 책처럼. 그러나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 해》는 ‘삶’보다 ‘지식과 운동’이라는 느낌이 짙고, 《착한 도시가 지구를 살린다》는 ‘스스로 문제라고 느끼지만 못 고친다’고 하는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서 ‘도시계획 대안찾기’에 머물고 말아, 일본사람 후쿠오카 켄세이 님이 쓴 《즐거운 불편》하고 견주어도 한참 뒤떨어집니다.

 우리한테는 ‘일본판 《즐거운 불편》’과 ‘미국판 《2분 간의 녹색운동》’을 ‘한국판 무엇무엇’이라고 내놓을 수 있을 만한 이야기책으로 새롭게 꾸며내도록, 우리 스스로 삶을 바꾸고 생각을 북돋우며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 잔디밭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았는가? 잔디밭은 자연스럽지 못한 생태계이다. 단 하나의 종-잔디-을 넓은 지역에 기르기 위해 다양성을 사랑하는 자연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무성한 처녀림이 수천 종의 식물과 동물을 번성하게 하고 지탱하는 것처럼, 자연은 잡초와 벌레 그리고 다른 식물과 동물 들을 잔디밭에 자라게 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패배시키려고 한다. 우리가 잔디를 제외한 모든 것을 죽인다면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 생명의 다양함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잔디밭을 줄여서 얻는 이익은 잔디 깎는 일이 줄어들고, 유지하는 데 힘이 덜 들고, 물을 적게 주고, 창 밖에 흥미있고 다양한 경치를 갖게 된다는 점이다 … 우리가 사슴이나 비버, 물고기의 집을 마구 침입한다면 그 동물들은 우리가 떠난 후의 상태에 대해서 무어라고 생각할까? 인간들이란, 손님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며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을까? 야생의 자연이란 몇몇 눈에 띄는 동물들뿐만 아니라 수천 종류의 생명체들의 집이며, 그 중에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미생물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 모두는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풍부하고 충만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 전에는 늘 호수에서 머리를 감았으나 나는 올해부터 머리감기를 그만두었다. 미생물분해가 가능한 샴푸를 쓸지라도 물속에 샴푸를 집어넣는 짓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호수에서 헤엄을 치고, 사람들은 낚시를 하며, 새들은 호숫가에 집을 짓고 물가를 따라서 물풀들이 자라고 있다. 샴푸는 해양생태계에 본래부터 있었던 자연적인 요소가 아니다 ..  (167, 180∼181쪽)


 혼자 살아가는 땅이 아니니까요. 혼자만 잘살면 그만인 터전이 아니니까요. 혼자면 잘되면 즐거운 삶이 아니니까요. 전우익 님 책이름 그대로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입니다. 이오덕 님 책이름 그대로 “나무처럼 산처럼” 꾸려갈 우리 삶입니다. 권정생 님 책이름 그대로 “하느님의 눈물”을 받아먹으면서 나누어야 할 사랑입니다. (4342.2.2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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