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 늙다리 보리피리 이야기 5
이호철 지음, 강우근 그림 / 보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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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소’와 얽힌 추억에 젖는 일은 좋지만
 [그림책이 좋다 56] 이호철, 강우근 《우리 소 늙다리》



- 책이름 : 우리 소 늙다리
- 글 : 이호철
- 그림 : 강우근
- 펴낸곳 : 보리 (2008.12.29.)
- 책값 : 8500원


 (1) ‘소’를 모르는 우리 삶


 둘레에서 영화 〈워낭소리〉를 보러 가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영화를 먼저 본 분들이 으레 말씀하시는데, 마음은 영화관에 가 있어도 몸은 집에서 아기와 복닥입니다. 더욱이 인천에서는 딱 한 곳에서 영화를 올린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겠고, 우리 동네에서 퍽 떨어진 곳임만 알고 있어서 섣불리 찾아가지도 못합니다. 어떻게 찾아간다 한들 저 혼자 먼저 보고 옆지기 나중에 보고 하지 않으면 볼 수도 없습니다.

 너무 많이 바란다고 할는지 모르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나라 극장 가운데 아기를 데리고 찾아가서 걱정없이 볼 수 있는 곳은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아기가 으앙으앙 울면 시끄러워 다른 이가 못 보게 된다고만 말할 뿐, 아이키우기로 밤잠 이룰 길 없는 수많은 아줌마와 아저씨들을 헤아리는 극장 시설이란 꿈을 꾸지 못합니다. 하기는,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 나들이를 요즈음만큼이라도 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 많은 이들 목소리와 땀방울이 있어야 했는지요.

 우리 둘레를 살피면, 책방도 도서관도 영화관도, 또 여느 밥집조차도 아이를 데리고 찾아가기에는 아주 안 좋습니다. 이렇게 하자면 돈을 많이 들여 시설을 갖추어야 하지만, 그만큼 장사하는 이한테 돈이 떨어지지 않으니 마음은 먹어도 선뜻 옮기지 못합니다.

 장애인편의시설이란 전철역에 리프트 놓거나 에스컬레이터 까는 일만이 아닐 테지만, 우리들 생각과 눈길은 ‘장애인 복지와 문화’뿐 아니라, ‘장애인 아닌 비장애인 복지와 문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남 이야기할 까닭 없이, 저부터 아이키우기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목까지 살피지 못했습니다. 저 또한 아이키우기를 지식으로만 받아들인 채, 아이키우기를 하는 엄마 아빠가 얼마나 ‘세상 복지와 문화’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갈밖에 없는지, 그러면서도 오히려 눈총을 받아야 하는지, 게다가 몸과 마음이 얼마나 지치면서 미치게 되는지 알 길이 없었겠지요. 동네에서 성당을 다니는 서른일곱 아주머니는 집에서 애 보다가 미칠 듯하면 포대기에 아기 똘똘 싸매고 업어서 바깥으로 바람 쐬러 나온다고 하시더군요. 혼자서 애를 보는 일이란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거든요. 더구나 아이만 보아야 하나요. 집안일 해야지, 남편 뒷바라지 해 주어야지, 시부모 계시면 또 시부모도 모셔야지, 아기 말고 다른 형제가 있으면 하나하나 따로 돌보아야지, 일이란 끝이 없습니다.


.. 늙다리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여물만 맛나게 먹습니다. 망나니도 제 어미 옆에서 날름날름 마른 풀을 골라 먹고요. 뒤꼍에 쟁여 둔 검불나무를 한 아름 가져와 아궁이에 넣고 불을 지핍니다. 그리고 풍구로 바람을 불어 넣어 가면서 왕등겨를 한 움큼씩 아궁이 속에 던져 넣으니까 불이 활활 타오릅니다. 이제 아궁이 앞에 쌓아 둔 마른 솔가지를 ‘똑똑’ 부러뜨려 넣습니다. 잔솔가지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잘 타오릅니다. 소죽이 끓는지 솥에서 김이 ‘피이’ 솟아오릅니다. 늙다리는 더 못 참겠는지 빗장 밑으로 목을 쑤욱 빼고 코를 식식거립니다 ..  (17∼18쪽)


 영화 〈워낭소리〉는 못 보았지만, 지난 설날, 옆지기 식구들 사는 일산으로 나들이를 가서, 그곳 식구들하고 ‘일소 부리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다큐멘타리로 보았습니다. 영화만큼 가슴을 적신 이야기인지는 영화를 못 보아 모르겠지만, 영화 〈워낭소리〉가 어떻게 짜여져 있는가는 어렴풋하게나마 헤아리게 됩니다. 마을에서도 꼭 한 집, 당신만 수십 해에 걸쳐서 소를 부려 농사를 지으시는데, 송아지 한 마리를 일소로 부리기까지 어떻게 애를 먹는가 하는 대목에서는 코끝이 찡합니다. 처음 코뚜레를 뚫어 아픈 나머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송아지 모습을 보면서 코끝이 찡하거나 눈물이 안 날 사람이 있을까요. 소를 부리는 할아버지도 미안해 하면서 송아지 등을 어루만져 주는데.

 농사짓는 늙은 가시버시는 ‘지을수록 빚잔치’를 하게 되어, 하는 수 없이 그 아끼고 사랑하던 일소를 팔려고 내놓습니다. 고추를 팔아도 큼직한 한 상자에 고작 2500원밖에 못 받는데, 빚을 안 질 수 없는 노릇입니다. 나라밖으로 판다는 그 큰 고추상자는 상자값만 해도 1500원. 우리가 저잣거리 나들이를 가서 그 상자만큼 고추를 사려면 아마 10만 원은 치러야 할 듯하건만, 농사짓는 사람은 이렇게밖에 일삯을 못 건지니 어찌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소시장에 간 할아버지는 쓰겁게 웃으면서 소를 도로 데려옵니다. 일소 값을 고작 150만 원 쳐 주기 때문입니다. 고기소로만 소를 사고파는 요즈음이니, 일소로 소를 사고팔려 할 때 어느 누가 사 가려 하겠습니까. 할머니는 빚 250만 원을 갚으려면 소를 팔아야 한다고 채근댔고, 할아버지는 어쩌는 수 없이 소를 팔려 했는데, 소를 팔아도 빚이 100만 원 남게 되면, 아예 소를 못 팔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착하게, 아니 고맙게 일을 잘해 준 소를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서, 문득문득, 전민조 님 사진책 《섬,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눈빛,2005)이 생각납니다. 이 사진책 겉에는 섬마을 빡빡머리 아이가 일소를 부리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는 나이가 얼마 안 되었으나 지게를 지고 있는데 지겟다리가 땅에 끌릴 듯합니다. 아이나 소나 배불리 먹지는 못하는 듯 몸집이 여위었습니다. 소는 갈비뼈가 드러나고 등날이 날카롭다고 할 만큼 등뼈가 불거져 있습니다.

 지난날은 이 나라 어디인들 배불리 먹으며 살았겠습니까만, 섬마을은 좀더 힘들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이런 삶자락은 섬마을 모습을 담은 사진에도 고스란히 담기고, 이렇게 담긴 모습은 그 뒤로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가 지나는 동안에도 ‘우리가 살아온 모습’으로 또렷하게 새겨집니다.


.. 나는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지요. 아버지는 등불을 늙다리 주둥이 앞에 바짝 갖다 대고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막 소리를 질렀습니다. “언놈이 때렸구나! 우리 늙다리가 우쨌길래 이래 놨노! 헤헤이, 늙다리 코가 이기 뭐꼬! 말 몬하는 짐승을 우예 이래 때리겠노, 으이!” 우리 집 힘든 농사일을 다 하는 일꾼, 아버지가 그리 아끼는 늙다리를 저리 해 놓았으니 펄쩍 뛸 수밖에요 ..  (44쪽)


 인천에서 사진찍기를 하는 ㅈ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저보다 두어 살 또는 서너 살 어린데, 송도고등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가운데무렵, 이이가 다닌 학교 건너편 논에서 일소를 부리며 논갈이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제 송도고등학교 둘레는 온통 아파트로 바뀌었기에, 그 둘레가 시골 논밭이었음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아파트로 갈아엎히기 앞서까지, ‘똑같은 인천’이었다고 하여도, 더욱이 1990년대임에도 기계가 아닌 소를 부리면서 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렇구나, 나만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는 ‘다 안다’고 생각할는지 모르고, 또 몸소 겪지 않았어도 영화며 텔레비전을 보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안다’고 여깁니다. 그렇지만, 제대로 안다고 할 때에는 ‘움직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를테면, 가난한 사람들 삶을 안다고 한다면, 철거민을 만들어서는 안 되며, 철거가 되려는 집에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한테 우악스러운 용역깡패나 특공경찰을 선물로 갖다 안기는 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경찰총장이나 대통령 부모님이나 동무가 그 ‘철거 대상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할 때에도 그처럼 몰아세울 수 있었을까요. 자기 부모나 동무가 안 산다 할지라도, 스스로 그런 가난과 고단함을 안다고 하는 이들이 그와 같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소방차 물을 뿜을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경찰총장이나 대통령만 모르지 않습니다. 용역깡패 일을 하는 젊은이와 특공경찰 노릇을 하는 젊은이 또한 ‘철거민 이웃’을 모릅니다. 철거민 이웃뿐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모릅니다. 그리고, ‘일하는 소’ 삶을 모를 테지요. ‘아이키우는 아줌마 아저씨’ 삶 또한 모를 테지요. ‘입시지옥이 무너뜨리는 아이들’ 삶을 모를 테며, ‘일제 식민지 찌꺼기’가 어떻게 우리 삶 구석구석 남아서 힘을 내는지도 모르리라 봅니다.


 (2) 아쉬운 그림이야기 《우리 소 늙다리》


 지나온 우리 삶을 찬찬히 돌아보며 조곤조곤 이야기로 풀어내는 《우리 소 늙다리》를 읽습니다. 구수한 글과 푸진 그림이 잘 어우러져 있어, 이 책을 펼치는 분들마다 ‘참 좋구나, 참 따뜻하네’ 하고 생각하리라 봅니다. 오로지 돈벌기에 매이는 현대물질문명으로 치닫는 한국땅에서, 우리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는가를 조용히 일깨워 주고 있으니,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읽히며 보여주면 퍽 괜찮으리라 봅니다.


.. 늙다리는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리더니, 내 쪽으로 머리를 돌렸습니다. 아직도 늙다리 주둥이 밑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습니다. 늙다리는 순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우리 늙다리 두 눈 밑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늙다리가 눈물을 흘리며 소리 없이 울고 있었습니다 ..  (52쪽)


 그런데 그림 몇 대목이 껄끄럽습니다. 무엇보다 ‘소’ 그림이 마음으로 파고들지 못합니다. 틀림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 그림’인데, 소가 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어미소 젖을 무는 송아지는 더더구나 송아지로 보이지 않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소를 키우셨다는 분이 글을 썼는데, 게다가 이분은 《연필을 잡으면 그리고 싶어요》(보리,1997)라는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도록 이끌어 주는 길잡이책’을 엮어낸 분인데, 어찌 《우리 소 늙다리》 겉에 그려진 소 그림이 이렇게 엉터리가 되고 마는지 궁금해집니다.

 갓 태어난 송아지도 키가 꽤 큽니다. 제법 자란 송아지는 더더욱 큽니다. 그러나, 그림이야기 《우리 소 늙다리》를 보면 송아지가 목이 아파라 고개를 치켜들고 젖을 물고 있습니다. 글을 쓴 이호철 선생님이 엮은 《연필을 잡으면 그리고 싶어요》에 실린 아이들 그림을 살피면, ‘젖 무는 송아지’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린 ‘소 모습’만 보더라도 송아지 등짝이 어미소 배에 닿는 가운데 송아지가 고개를 모로 돌려서 옆으로 젖을 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필을 잡으면 그리고 싶어요》와 그림이야기 《우리 소 늙다리》를 낸 출판사는 같은 곳입니다.


.. 내가 어릴 때 농촌에서는 소가 집안의 큰 일꾼이었습니다. 논밭 갈고 무거운 짐 나르는 일뿐만 아니라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도 다 했으니까요. 어지간한 일꾼 몇 몫의 일을 했습니다 ..  (58쪽)


 오늘날 아이들이 모르는 우리 삶 소담스러운 한구석을 밝히면서 빛내는 일은 큰뜻이 있습니다. 소를 소답게 알아야 소고기를 먹든 소를 부려 일을 하든, 소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엔 그랬지’ 하는 투로 섣불리 아이들한테 ‘지식 + 교훈’만 떠안기려고 하는 우리 어른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러면서, 오늘날 우리 어른들도 ‘소 삶과 매무새’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어설피 치우쳐지거나 비뚤어진 지식과 교훈을 떠먹이고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설 무렵 일산 옆지기네에서 텔레비전을 보니, ‘청량음료가 나쁘고 치약 샴푸 나쁘며 과자 라면 나쁘다’ 하는 풀그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방송사에서 ‘화학첨가물 집어넣은 공산 식료품’이 우리 몸에 나쁘다고 한들, 이런 공산 식료품에 길들어 있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먹이게 됩니다. 제대로 농사지은 먹을거리를 먹이지 않습니다. 값싼 공산품을 ㅇ마트나 ㄹ마트 같은 데 가서 한꾸러미 사들여 자가용 짐칸에 싣고 아파트로 돌아올 테지요. 그리고 집에서 맥주깡통을 따면서 ‘화학첨가물이 얼마나 나쁜가’ 하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으로 봅니다. 때때로 《우리 소 늙다리》 같은 ‘옛생각(추억) 불러일으키는 애틋한 이야기’에 눈가를 적십니다. (4342.2.7.흙.ㅎㄲㅅㄱ)
 

 

[동영상] 엄마 젖 먹는 송아지 "예쁘다"

글을 다 읽은 분은 동영상을 보십시오. 이 그림책은 반드시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잘못된 그림으로 정보를 건네는 일은 아이한테 불량식품 먹이는 일보다 더 나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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