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74 : 기자와 작가들이 사는 집


 《나무 위 나의 인생》(눌와,2002)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높이 자란 나무를 타면’서 나무 한살이를 살피는 생물학자입니다. 나뭇잎 한 장을 하루이틀이 아닌 열 해 남짓 지켜보기도 하면서 나무가 어떻게 살고 나무를 갉아먹는 벌레가 무엇이며 나무는 둘레 삶터에 어떻게 영향을 받거나 영향을 끼치는가를 살펴봅니다. 이이는 나무타기를 하면서 ‘어느 나뭇잎은 열다섯 해 동안 매달린 채 살아남기도 한다’고 밝혀냅니다. 열다섯 해 동안 그 나뭇잎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열다섯 해 넘는 세월을 나무 살피기에 바친 까닭에, ‘나무타기나 나뭇잎 살피기를 몸소 하지 않고 논문을 쓰던 과학자’들은 자기 논문을 버리거나 고치게 됩니다. 또한, 이 책을 쓴 분은 호주에서 농장을 꾸리는 남자와 혼인을 하며 여러 해 함께 사는 동안, 자기가 얼마나 섣불리 혼인을 했고 호주라는 데에서 들살이를 살피는 생물학자로 사는 가운데 집살림 꾸리는 일은 얼마만큼 이루기 어려울 뿐더러 눈총과 구박을 받아야 하는가를 깨닫습니다. 혼인을 않고 혼자 살며 과학자 길을 걸었다면 연구는 더 깊어졌을 테고 개인 아픔도 없었을 테지만, 혼인을 해 보았기에 ‘여자 한 사람’이 두 갈래 길을 함께 걷는 고단함을 뼛속 깊숙하게 새겨 놓고 뒷사람들을 걱정합니다.

 서울 용산에서 ‘주민’이 아닌 ‘철거민’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이 “쫓겨날 수 없기”에 공무원(재개발 정책 밀어붙이는 이들)한테 맞서다가 그만 목숨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동네 골목집에 달삯을 내며 깃들어 사는 ‘주민’이면서, 어느 날 ‘철거민’ 신세가 되어야 할지 모르는 삶입니다. 제가 깃든 집이 있는 동네를 비롯하여, 인천이라는 곳에서는 ‘지도에 아파트로 그려져 있지 않은 데’는 거의 모조리 ‘아파트로 새로 짓는 재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아파트라는 데에 들어가 살 돈이 없습니다. 지금 살림집도 보증금과 달삯이 버겁습니다만, 돈이 넉넉해지더라도 아파트 아닌 골목집에서 땅에 등을 누인 채 빨래는 햇볕에 말리면서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인천을 비롯한 한국땅 어디에서든, 아파트 아닌 집에서 사는 사람은 ‘주민’이 아닌 ‘재개발지역 대상자’나 ‘철거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한테 ‘도시 서민’이나 ‘도시 빈곤층’이라는 이름을 붙여 줍니다. 우리든 중산층이든 대통령이든 모두 똑같은 ‘사람’이며, ‘주민’이고, ‘시민’이자, ‘국민’일 텐데.

 죽은 ‘철거민’이 아닌 ‘용산에 살던 동네사람’을 두고 “불법폭력시위”를 했으니 “법을 어겼다”는 말이 곧잘 터져나옵니다. 그런데 법에는 ‘재개발을 하도록 하는 법’과 함께 ‘사람이 자기 살고픈 곳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살 권리를 지키도록 하는 법’이 나란히 있습니다. 그저 이런 법(헌법)은 건설법, 경찰법, 집시법, 특별법, 국가보안법 …… 따위에 허구헌날 짓밟힐 뿐이긴 하나.

 생각해 보면, 우리 동네 골목집에는 국회의원이니 의사니 판사니 변호사니 경찰이니 기자니 안 삽니다. 공무원이니 교사니 작가니 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진쟁이도 그림쟁이도 만화쟁이도 글쟁이도, 요새는 가난한 골목집에는 안 삽니다. (4342.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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