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책을 왜 ‘못’ 읽을까
 ― ‘책읽기 운동’이 널리 뿌리내리지 못하는 까닭



 - 1 -

 옆지기가 아기와 함께 일산에 가 있습니다. 저는 인천과 일산을 이틀에 한 번씩 오가면서 도서관 지키기와 옆지기네 식구와 함께 지내기를 되풀이합니다. 길그림책에서 자로 죽 그으면 가까운 두 곳이라,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면 한 시간이 채 안 걸리며 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자가용을 모시지 않는 사람들은 오로지 전철이나 버스로(또는 자전거로) 오가야 하는데, 부평역 앞으로 가서 버스로 타면 삼십 분쯤 시간이 줄지만, 그래 보아야 전철과 버스에서 두 시간 넘게 보내야 하는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자전거로 오가는 길은 까마득하지만, 꼭 한 번 뚫어내고 싶습니다).

 삼십 분쯤 시간을 줄이는 버스 타기는 찻삯이 1600원 더 듭니다. 그러나 이보다 버스는 몹시 흔들리기에 책을 읽으면서 가기 힘들 뿐더러, 도원역에서 부평역으로 전철을 타고 간 뒤 기나긴 지하상가를 거쳐서 버스역 앞으로 빠져나오는 데에 고달프고 시간이 제법 걸리는 한편, 40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잡아타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이리하여 몇 번쯤 버스 타기를 하다가 그만두기로 하고,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전철 타기만 하기로 합니다. 이러다 동안, 일산을 오가는 다섯 시간 남짓 전철칸에서 책 몇 권쯤 너끈히 읽어냅니다. 가방에 책을 한두 권만 챙기면 오래지 않아 읽을거리가 없어 지루해지니 너덧 권쯤 넉넉히 챙기고, 서울을 거칠 때 책방 나들이를 살짝살짝 하면서 몇 권쯤 더 장만합니다.

 그런데 처음 몇 번은 두 시간 반이 넘는 전철길에서 졸음을 좇아가며 책을 읽을 수 있었으나, 네 번 다섯 번, 열 번 스무 번 …… 오가는 회수가 늘어나면서 몸에 고단함이 쌓이니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은 꾸벅꾸벅 졸거나 자게 됩니다. 아무리 재미나거나 훌륭한 책을 손에 쥐어도 터져나오는 하품을 막을 길 없습니다. 감기는 눈꺼풀을 이길 수 없습니다.


 - 2 -

 옆지기 어머님은 하루 내내 집에 있어도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반찬을 마련합니다. 밥을 먹는 동안 아기가 잘 노는가에 눈길이 가고, 일찍 밥먹기를 마치고 아기를 어르거나 업고 재워 주려 합니다. 언제나처럼 설거지를 도맡고, 식구들 옷 빨래를 하며 식구들 지내는 방과 마루와 부엌과 씻는방까지 치우고 쓸고 닦습니다. 설거지를 마치고 빨래나 청소를 하노라면 어느새 낮밥 때가 다가오고, 낮밥을 먹고 잠깐 숨을 돌릴라치면 어느 결에 저녁 때가 다가옵니다. 커피 한 잔 느긋하게 즐길 틈 없이 저녁 늦게까지 몰아치다가, 바야흐로 저녁 연속극 할 무렵 텔레비전 앞에 풀썩 주저앉게 됩니다. 출퇴근길에 치인다거나 논밭 일로 몸을 쓰지 않더라도 하루 해가 긴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 3 -

 어제 인천에서 일산으로 옵니다. 오다가 용산역에서 내려 헌책방 〈뿌리서점〉에 들릅니다. 헌책방 〈뿌리서점〉 아저씨는 지난 두어 주 사이에 책 갈무리를 크게 하면서, 이제까지 쌓여 있던 몇 만 권쯤 되는 책을 치워 책시렁 사이가 무척 넓게 트였습니다. “(책방도) 구조조정 해야지!” 하면서 웃는 아저씨는, 이 많은 책을 너털웃음으로 ‘구조조정’이라 하시지만, 얼마나 힘들고 가슴이 아팠을까 싶습니다.

 시원하게 트인 골마루를 슬슬 거닐면서 책을 하나하나 살핍니다. 1984년 1월에 1쇄가 나오고 1988년 12월에 2쇄가 나온 《책은 만인의 것》(보성사)이라는 책이 눈에 뜨입니다.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곧잘 보이는 책으로, ‘출협 재직 18년 동안의 기록’이라는 작은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글쓴이 이경훈 님은 1923년에 파주에서 태어나 보성사라는 출판사를 1961년에 열었고,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에서 오래도록 일한 깜냥을 이 책 하나로 모두어 냈습니다.

 1970년 1월 30일에 〈한국잡지계〉라는 잡지에 실었다고 하는 “독서운동과 우리의 문제점”이라는 글을 펼쳐서 읽어 봅니다.


.. 독서운동은 식자들 사이에서 제창된 지 오래고, 그 식자란 우리 온 민족이 숭앙한 선각자 지도자들로, 그들은 한결같이 이 운동을 부르짖어 왔다. 이렇게 독서하라고 외쳤건만 이 운동은 아직도 민중의 생활 속에 뿌리박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선 이 운동이야말로 절규나 호소 따위만으로는 안 된다는 반성과 함께, 보다 과학적ㆍ실무적이고 비근한 방법과 국가적 에너지의 투입을 절실히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301쪽)


 이 글이 쓰인 때가 1970년 1월이니 1969년까지 이루어지고 있던 ‘독서운동’에 얽힌 잘잘못과 아쉬움과 모자람을 다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2009년이니, 꼭 마흔 해 묵은 ‘독서운동’을 다룬다고 할 만합니다.


.. 도서란 상품은 특수하여 그것을 안 읽는 국민에게는 가치없는 물건이 되며, 도서의 가치는 그 나라의 민권의 신장도와 정비례한다는 점이다. 일제시대 우리의 신소설류가 시장의 땅바닥이나 길가에서 뒹굴어 다니던 모멸의 시대를 회상해야 한다. 어린이에게, 그리고 직장에서 일하는 모든 샐러리맨에게 독서할 시간과 장소와 그리고 책다운 책을 주어라. 비근한 이야기로, 출퇴근 시간을 엄격히 지켜 책 볼 시간에 할애하라. 책을 읽고 좋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는 후하게 상을 주라. 또한 독서하도록 여건을 부여하는 데 한걸음 다가서기 위해서 의식주 생활을 개선해 보자. 이 자세만이 독서운동의 지름길인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것 때문에 주위의 눈총을 받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  (307쪽)


 2000년대 우리 나라에는 ‘북스타트’ 운동도 있고, ‘한 도시 한 책’ 운동이 있으며, ‘기적의 도서관’이나 ‘느낌표 책’ 운동도 있습니다. 김해 같은 도시에서는 ‘책도시’로 거듭나겠다고 외치며, 경기도 파주는 ‘출판도시(북시티)’라는 이름을 달고 있기도 합니다. 책을 읽자는 이야기를 다루는 방송 풀그림이 제법 있으며(다만, 이 풀그림을 볼 수 있는 시간대가 너무 아리송하지만), 신문과 잡지에서는 꼬박꼬박 ‘새로 나온 읽을 만한 책’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갖가지 ‘책읽기 운동’은 사람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책을 읽도록 이끄는 데에는 여러모로 모자라거나 아쉽다고 느껴집니다. 이경훈 님이 1970년에 말하듯 “독서할 시간과 장소와 그리고 책다운 책을 주어라” 하는 세 가지는 마흔 해가 지나도록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일본은 미국과 견주어 도서관 숫자가 1/10밖에 안 된다면서 ‘도서관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는데, 이무렵 우리 나라는 일본과 견주어 도서관 숫자는 1/100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몹시 적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1970년부터 2009년까지, 우리 나라 도서관은 얼마나 늘어났을까요. 우리 정부는 나라안 국ㆍ공ㆍ시ㆍ구립 도서관과 동네 도서관이 문을 열 수 있게끔 얼마나 뒷배를 하고 있을까요.


.. 다시 강조하거니와 모든 국민이 자기 집 가까운 곳에 아담한 도서관을 지어 주는 시책을 위해서라면, ‘특별세’라도 더 내는 것도 좋겠다고 하는 기운이 바야흐로 높아졌음을 첨언하는 바이다 ..  (125쪽/1979)


 2009년 한국 사회를 다시금 돌아봅니다. 나라살림을 꾸리는 이명박 대통령은 ‘네 줄기 큰 강’을 손질하고 ‘인천∼서울 물길’을 트는 데에 10조 원이 넘는 돈을 들이겠다고 외칩니다. 지금 외쳐지는 돈은 10조 원이지만, 공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훨씬 더 많은 돈이 바쳐지리라 봅니다. 여기에, 새로운 고속도로와 고속국도를 닦는 데에 몇 조 원이라는 돈이 또다시 바쳐지고 있습니다. 또한, 새 자전거길을 닦는다는 데에도 몇 조 원을 들인다는 계획이 나옵니다.

 가만히 살피면, 정부가 내놓는 계획은 오로지 ‘건설공사’일 뿐입니다. 있는 시설을 알뜰살뜰 가꾸거나 매만지면서 북돋운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도서관 하나를 짓는 데에 얼마나 큰돈이 있어야 하는지 모를 노릇이지만, 동네마다 알맞는 크기로 조촐하게 짓는다고 한다면(10만 권쯤 갖추는 도서관으로), 책값을 더해서 15∼20억쯤 들리라 봅니다. 10만 권쯤 되는 책은 한 층짜리 건물로 예순 평이어도 되고, 두 층짜리면 쉰 평이어도 넉넉하며, 세 층짜리면 마흔 평이어도 괜찮습니다. 많이 잡아 20억이라 할 때에, 1조 원이라는 돈이면 아무리 못해도 500 군데에 이르는 도서관을 새로 지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500군데라면 전국 시ㆍ군뿐 아니라 읍 단위까지 도서관을 하나씩 놓을 수 있고, 도시에서는 웬만한 구 하나마다 도서관을 새로 지을 수 있는 셈이라고 느낍니다. 주민 숫자가 적은 시골에서는 10만 권쯤 갖추는 도서관보다 5천 권이나 1만 권쯤 갖추는 도서관으로 더 작게 하여 리 단위에 하나씩 지을 때가 훨씬 도움이 되니, 이렇게 한다면, 우리 나라 전국 어디에나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 시설을 마련할 수 있어요. 나아가, 새 건물을 짓지 않고 ‘동네마다 지역 문화와 삶터를 보여줄 수 있는 집을 조금 손질해서 쓴다’면 책꽂이 값만 새로 들면 되기에, 5000군데나 1만 군데에 이르는 도서관을 새로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나라 도서관은 몇 해 사이에 아무리 적어도 1000군데를 훌쩍 넘기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도서관을 골골샅샅 마련하면, 건물짓기나 건물늘리기로 그치지 않고, 우리 생활문화가 차츰 나아지면서 ‘좋은 책 애써 펴내는 출판사’에서도 힘겨이 펴낸 좋은 책이 ‘안 팔리고 묻히는 일’이 거의 사라집니다. 동네 사람들은 책이 베푸는 선물을 기쁘게 받아먹을 수 있고, 책마을 사람들은 더 힘을 내어 더욱 좋은 책을 펴내도록 뒷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 4 -

 나라에서 전투기 한 대 살 돈을 아끼어 도서관 백 군데를 마련하도록 마음을 쏟거나, 도심지 거님길돌을 갈아치우지 말고 이 돈으로 초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새책을 사 주면 얼마나 좋으랴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라에서만 애쓴다고 될 수 있는 ‘책읽기 운동’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책을 읽을 수 없도록 매여 있습니다.

 먼저, 아이들은 지옥과 같은 대입시험 틀거리에 매여 있습니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온통 고3 수험생 때 맞이할 수능시험에 맞춰져 있습니다. 집과 학교와 학원만 오가도록 짜여져 있습니다. 교과서와 참고서 아니면 들여다보지 못하게끔 막혀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쓰여지는 돈은 아이 마음밭을 살찌우고 몸뚱이를 튼튼하게 북돋우는 데가 아니라, 나라안 일류대학교에 들어갈 시험을 잘 치러 한 문제라도 더 맞히게끔 하는 지식쪼가리를 머리속에 집어넣는 데에 바쳐집니다. 초등학교 들기 앞서부터 수많은 과외삯과 학원삯을 대야 하느라 어른들은 무척 바쁩니다.

 그런데, 어른들도 아이를 낳아 기를 때부터 ‘아이 키우는 돈(종이기저귀 값, 분유 값, 산후조리원 값, 놀이방 또는 유치원 값 ……)’을 버느라 아이와 함께할 겨를이 없을 뿐더러, 일터에서 돈버는 데에도 지칩니다. 어른들 스스로 자기 마음밭을 살찌우거나 몸뚱이를 튼튼하게 하지 못합니다. 집이고 일터이고 시달리고 지치다 보니, 전철을 타건 잠깐 숨돌릴 틈이 나건 책을 손에 쥐지 못합니다. 더군다나, 요즈음은 자가용을 몰아 출퇴근을 해 버릇하기에 책을 펼 생각을 아예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제 어버이가 책을 가까이하는 모습을 거의 못 봅니다. 그나마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여러 가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읽히지만, 중학교 들어갈 무렵이면 오로지 입시교재만 보게 되어 있는 데에다가 여러 해 동안 이런 흐름에 길들게 되기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교재가 아닌 진짜 책’을 볼 마음을 스스로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 5 -

 ‘책을 읽자’고 외치는 사람 스스로, ‘책읽을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잘 모르지 않느냐 싶습니다. 1970년에도 2009년에도,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이 왜 책을 못 읽거나 멀리하는지를 ‘책을 읽자’고 말하는 사람들 스스로 잘못 알거나 엉뚱하게 헤아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책을 못 읽는 사람’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이끌어 가려면 무엇을 어찌 고쳐야 하는가를 살피지 못합니다. 책을 쥐어 준다고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으며, 책을 쥐어 주어 억지로 읽게 해 놓았다 한들 이 책에 담긴 속살을 살뜰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습니다. 느긋하면서 넉넉한 매무새로 책을 가까이하고 읽고 새기고 나누며 펼칠 수 있도록 사회 틀거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삶터가 바뀌어야 합니다. 사회 틀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우리 삶터가 팍팍하고 메마르고 거친 그대로 이어져 있는 동안에는, 숱한 ‘책마을 잔치’와 ‘책읽기 운동’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여느 사람들이 책을 사랑하거나 아끼게 되는 일은 꿈꿀 수 없습니다.

 책다운 책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지 못하는 일은 대단히 큰 골칫거리입니다. 책다운 책을 우리 스스로 빚어냈어도 이와 같은 책을 너끈히 사들이고 갖추어서 널리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도서관이나 동네 책방이 아주 드문 우리 살림살이는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이런 골칫거리와 안타까움을 풀어낸다 하여도, 사람들이 마음을 홀가분하게 다스릴 수 없도록 하는 사회 흐름입니다. 제도권 대입지옥 교육 짜임새입니다. 돈을 많이 안 벌면 바보가 되어 버리는 경제 얼거리입니다. 문화도 없으나 복지도 사회보장도 없는 정치 틀거리입니다.

 우리 스스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도록 마음쓰지 않고, 우리 밥그릇 하나 더 단단히 챙기는 데에만 마음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흐름과 모자란 짜임새와 슬픈 얼거리와 얄궂은 틀거리를 고치려 하지 않는 우리뿐 아니라, 이런 흐름이며 짜임새며 얼거리며 틀거리에 길들어지도록 하는 기득권을 보지 못한다면, 그 어떤 놀라운 ‘책읽기 운동’이 펼쳐진다고 한들, 정작 사람들이 책을 읽기 어려운 살림살이는 고스란히 이어집니다. 그대로 머뭅니다.

 ‘돈 잘 버는 회사원으로 키워내는 꿈에 따라 흘러가는 자녀교육’이 아니라, ‘착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한 사람이 되어 사랑과 믿음을 두루 나누는 아이 키우기’로 우리 삶자락을 고쳐내는 일을 함께해야 비로소 ‘책을 읽읍시다!’ 하는 외침이 살갗으로 파고들지 않으랴 생각합니다. ‘책을 읽읍시다!’ 하고 섣불리 외치기 앞서, 우리들이 왜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하고, 책을 읽지 못하게 가로막는 울타리를 허물도록 애써야 하며, 책을 읽지 못해도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인 구렁텅이를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없는 곳에, ‘사람들 땀방울이 알알이 배인 책’을 애틋하게 나누는 일이란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 6 -

.. 일본사람이 저술을 시작할 때 참고문헌을 찾는 순서가, 첫째 자기가 갖고 있는 책, 둘째 고서점, 셋째 도서관의 순서라면, 구미 선진국의 연구자나 독서인은 우선 곧바로 도서관으로 갈 것을 생각한다 ..  《이경훈-책은 만인의 것》(보성사,1984) 76쪽


 한국사람이 책을 하나 새로 쓰려고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한국사람 스스로 새로운 책 하나 빚어내려고 마음을 바칠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한국사람들은 한국사람이 한국땅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기를 바라고 있기나 한지 궁금합니다.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땅 이야기를 애써 책으로 엮어냈을 때에 얼마나 많은 한국사람이 우리들 이야기를 찾아서 읽고 되새기고 거듭나고자 할는지 궁금합니다.

 ‘돈 벌어야지!’ 하고 모두들 한목소리로 외치지만, 어떤 돈을 얼마나 왜 어디에서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그예 ‘돈 벌어야지!’일 뿐이고, ‘돈 많이 벌어야지!’일 뿐입니다. 돈을 벌고 나서 이 돈을 어떻게 쓸지, 누구와 쓸지, 어디에 쓸지, 언제 쓸지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각을 안 한다기보다 생각이 없습니다. 생각해야 하는 줄을 처음부터 모릅니다.

 생각하면서 돈을 벌지 않는 사람이니, 생각하면서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생각하면서 돈 벌 길을 찾지 않는 사람이기에, 생각하면서 책읽을 길을 찾지 못합니다. 생각하면서 돈 쓸 자리를 살피지 않는 사람인 터라, 책을 수십 수백 수천 수만 권을 읽어도 책읽어 얻은 지식과 깜냥과 슬기를 어디에 어떻게 나눌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4342.1.20.불.ㅎㄲㅅ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