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 기쁨, 찍은 사진 나누는 기쁨
[사진은 삶이다 2] 사진을 찍는 당신한테
아기를 품에 안고 나들이를 다녀도 사진기를 꼭 어깨에 걸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고 하여도 어깨에는 언제나 사진기를 걸칩니다. 동네 구멍가게에 보리술 한 병 사러 나가는 길에도 사진기는 들고 갑니다. 자전거를 타고 마실을 다니더라도 사진기는 목아지에 걸칩니다. 저한테는 사진기 담는 가방이 예닐곱 가지 있지만, 사진기를 가방에 넣는 일이란 거의 없습니다. 필름사진기만 가슴에 메는 가방에 넣어 두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집 아래층 마당에 사는 길고양이한테 밥을 줄 때에도 사진기를 들고 내려가곤 합니다. 추운 날씨에 길고양이가 밥 달라고 야옹거리는 모습을 가끔 한 장씩 찍어 보곤 합니다. 고양이는 자기랑 놀아 주지 않고 사진만 찍는 저를 그리 좋아하지 않을 듯합니다. 그래도 밥은 잘 먹습니다.
방바닥에 이불을 두툼하게 깔고 있는 집에서 까르르거리는 아기를 사진으로 찍을 때면, 이 녀석은 꼭 제가 단추를 누를 때까지 잠깐 기다려 줍니다. 아기가 벌써 사진찍기를 알랴 싶습니다만, 어쨌든 한 장 찍혀 주고 노는 품새는 남다르다고 느낍니다.
어제 아침에는 성당 나들이를 하다가 골목가게 담벼락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고드름을 보았습니다. 눈 구경도 어렵지만, 고드름 구경도 어려운 오늘날 도시 살림살이인데, 골목마실을 하면서 틈틈이 고드름을 만납니다. 고드름 찍는 사진에 겨울이 함께 담깁니다.
송림동 구멍가게 앞으로는 해가 잘 들고 바람이 불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이 골목에서는 겨울을 날 만하다고 느끼는데, 우리들 이런 느낌과 마찬가지인지, 이 골목에 사는 분들은 빨래를 골목길에 널어 놓았습니다. 빨래가 얼지 않을까 걱정이기는 했어도, 이 골목에서 한두 해 사신 분도 아닌데, 얼어붙을 줄 안다면 처음부터 널지도 않았을 테지요. 골목길에 빨래를 널어 햇볕에 말리는 집은 사람 살기에 퍽 괜찮은 곳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중학교 아이들이 했을는지, 고등학교 아이들이 했을는지, 다른 사람 사는 골목집 담벼락에 스프레이를 뿌려서 짓궂은 장난질을 해 놓은 모습을 보다가는, 저 녀석들이 자기 집에도 저렇게 할까 싶어서 씁쓸합니다. 저 녀석들은 누구한테 이런 짓거리를 배웠을까요. 저 녀석들 아버지 어머니한테서? 저 녀석들을 가르친다는 학교 교사들한테서? 저 녀석들 손위사람이라는 선배한테서? 텔레비전에서? 인터넷에서? 영화에서?
우리 동네 성당 신부님이 오늘 마지막 미사를 올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동네에 오래오래 머물면서 ‘배다리 산업도로’ 막는 일에 힘을 보태는 한편, ‘잘못된 동네 재개발’ 또한 막아내고 싶은 꿈이 있으나, 지역교구장이 보내는 데에 말없이 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쩌는 수 없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제 일요일을 맞이해 송별식을 하는 자리에서, 떠나는 인사를 하는데 울먹이시더군요. 떠나는 인사에서도 막개발 삽날 이야기를 다시금 한 마디 하십니다. 누구는 힘이 있는 자리에 있어도 아무런 힘을 안 쓰고 있는데, 누구는 힘이 있는 자리가 아닌 데에 있어도 작은 손길 모아 다부지게 애쓰고 있습니다.
ㅁ이라는 출판사에서 사진책을 두 가지 보내주었습니다. 뜻밖이라고 할 책인데, 제가 쓴 ‘사진 이야기’를 읽고 보내게 되었다는 편지가 책 사이에 꽂혀 있습니다. 두 장에 걸쳐 써 준 편지가 고마워서 꼼꼼하게 사진책을 읽어 나가는데, 한 권은 영 읽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짙게 들어서 덮어 버리고, 다른 책 하나는 부지런히 읽어 끝마칩니다. 그렇지만 뒷맛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제법 도톰하게 나온 이 사진책, 가만히 따지면 사진책이라기보다는 ‘사진 몇 장 곁들인 수필책’인데, 책겉에는 ‘포토에세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기도 하지만, ‘사진’도 아닌 ‘포토’라는 말을 이렇게 함부로 붙여도 될까,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이 책을 쓴 분은 ‘사진일을 하고’ 있습니다. 퍽 이름난 노래꾼들이 내는 음반에 쓰이는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스튜디오도 꾸리며, 패션화보에도 사진을 싣습니다. 갈래로 나누자면 상업사진인데, 상업사진이라서 마뜩하지 않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상업사진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누구나 찍는 흔한 사진’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사진가 ○○○ 사진’이라고 할 만한 사진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딱 하나, 놀이공원 허니문카 찍은 사진은, ‘사진가 ○○○ 사진’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포샵질은 거의 안 한다고 하니 그만큼 사진기에 모든 눈과 마음을 쏟는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진을 좇는다’고 하면서, 이이가 찍는 사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사람 움직임과 사람 삶터를 담는지’까지는, 글쎄, 아직 나이 서른도 안 된 젊은이한테 너무 많이 바라는 셈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을 앞세워 ‘포토에세이’라고 내놓고자 했다면, 나이 서른이고 스물이고 마흔이고 쉰이고를 떠나서, ‘나는 내 사진을 찍는 ○○○입니다’ 하고 느껴지도록 사진으로 보여주고, 사진에 붙이는 글로 함께 들려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런 마음결이 되지 못한다면, 지난날 연예인으로 일했던 발자취에다가 요즈음 잘나가는 몇몇 노래꾼 사진을 찍어 주었다는 손자국으로 ‘책 팔아먹는’ 일을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그래도, 이이 수필책을 읽으며,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찍은 사진을 하나 넣어 주었기에, 책이 아주 밉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토록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고 즐기던 마음이었다면, 자기가 가장 사랑하고 믿는 가장 가까이 있는 식구들부터 사진으로 담아내어 자기 목소리와 생각을 우리들한테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ㅈ’이니 ‘ㅌ’이니 하는 노래꾼들 사진만 수두룩하게 보여주지 말고,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살붙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좀더 골고루 보여줄 때, 자기 지난날과 오늘날이 우리들한테 한결 푸근하고 넉넉히 스며들 수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ㅁ출판사에서 보내준 다른 책은, 사진은 한 사람이 찍고 글은 문학쟁이 여럿이 돌아가면서 따로따로 썼습니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우리 나라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나서는 글과 사진을 함께 묶습니다. 저야 인천에 사는 몸이고, 인천에서 나고 자랐으니, 무엇보다도 인천 이야기를 맨 먼저 펼쳤습니다. 인천 이야기를 쓴 분은 인천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기는 했지만, 열 몇 해 앞서부터 서울로 옮겨서 살아가는 분입니다. 이분도 ‘인천에 새 연고지를 얻은 야구단보다, 떠돌이 신세인 야구단’에 한결 마음을 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천이 아닌 서울에 삽니다. 더욱이 인천에서 안 산 지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이분이 들려주는 ‘인천이라는 도시’ 이야기는 자기로서는 머나먼 옛날, 1970년대와 1980년대 가운데무렵까지 머뭅니다. 오로지 추억을 말하고, 그예 추억만 곱씹습니다. 199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지나 2010년대를 바라보는 인천사람들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제 오늘 내일로 이어지는 ‘인천이라는 도시’ 흐름과 발자국을 느낄 수 없습니다.
꼭 글쓴이 탓은 아닐 터이나, 인천이라는 도시를 사진으로 담은 분도 ‘겉핥기 인천’ 사진만 담을 뿐, 인천이라는 도시에서 다른 곳과 남다르거나 맛깔나거나 새롭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반갑거나 얄궂거나 훌륭하거나 어수룩하거나 한 모습을 잡아채지 못합니다. 그저 풍경입니다. 용산역에서 급행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린 뒤, 막바로 택시 잡아타고 월미도에 달려가 놀이기구 몇 가지 타고 바가지 회를 소주 곁들여 몇 점 사먹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그런 구경꾼들이 바라보는 인천 풍경입니다.
책을 덮으면서 ‘제기랄’ 하고 내뱉으려고 하다가 도로 집어넣습니다. 모르는 사람한테 ‘넌, 그것도 모르냐, 이 바보야, 이 멍청아, 이 밥통아, 이 머저리야!’ 하고 나무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음, 당신은 아직 모르시는군요.’ 하면서 일러 줄 수는 있는 노릇이지만, 모르는 사람한테 모름을 깨우쳐 주려 해도, 이이들 스스로 ‘우리가 못 보는 모습을 알려주셔요.’ 하면서 찾아올 때까지는 어떠한 이야기도 소 귀에 읽는 불경일 뿐입니다. 항구가 있으면서도 항구도시가 아니고, 프로야구단 두 곳이 인천에 뿌리를 둔다고 하지만 둘 모두 인천에 뿌리를 두었다고 하기 어려운 인천입니다. 나라안에서 맨 먼저 철길이 놓였고 고속도로가 첫 번째로 놓였으며 전화며 기상대며 보통교육기관 또한 맨 먼저 생기고 극장도 맨 먼저 열린 인천입니다. 그러나 방송국 하나 없고(지난해에 비로소 오비에스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겼습니다. 그러나 중앙방송사 지역본부는 인천에 한 군데도 없습니다. 광역시치고 지역본부가 없는 오직 한 군데이며, 작은 시군에조차 지역본부가 열려도 인천에만큼은 열리지 않습니다), 지역신문사는 지역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데다가, 지역 국회의원이 지역일에는 나 몰라라 합니다. 독재정권한테 사랑받아 무시무시한 재단을 꾸리던 군인한테서 지역교육권을 도로 찾아(선인재단) 시립으로 삼기는 했어도 국립대학이 없는 인천이고, 경기도 권에서 교통카드 ‘환승할인’이 안 되는 딱 한 곳인 인천이며, 전국에서 공기가 가장 나쁜데에도 전국에서 재개발 공사를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인천입니다. 이런 인천을 사진으로 담는다고 할 때에는 어떤 눈길과 마음길과 생각길로 다리품을 팔고 손품을 팔아야 할까 궁금합니다. 인천 바닥에서 인천을 사진으로 담는 이들과, 인천 바깥에서 인천을 사진으로 찍는 분들한테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무슨 사진이 인천을 말하는 사진입니꺼.
새벽 네 시 사십오 분부터 들리고 있는 전철 오가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깨어 있습니다. 부엌 개수대 물은 간밤에 얼어붙어 녹을 낌새가 없습니다. 그래도 씻는방 물은 얼지 않았습니다. 보일러도 터지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집안은 영 도 밑으로 네다섯 걸음쯤 되지 않을까 싶어도 잠자는 방은 그럭저럭 불을 넣어 지낼 만합니다. 한숨을 돌립니다.
언손을 이불 밑에 넣어 비비면서 어제그제 찍은 사진을 살펴봅니다. 오늘 아침 다시 성당 나들이를 하여, 떠나는 신부님이 올릴 마지막 미사를 사진에 담고 시디로 구워서 선물로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찍은 세례하는 모습 사진도 시디로 구워서, 세례받은 분한테 하나씩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앞서 찍은 동네 이웃 아주머니 사진도 종이로 뽑아서 한 장씩 드려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기를 그림으로 그려 준 여든일곱 그림할머님을 틈틈이 찍어 놓았던 사진은 어제 찾아가 뵙고 건네드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음성에 살고 계신 부모님한테도 아기 사진을 뽑아서 부쳐야겠네요. 사진은 뽑긴 했는데 아직 안 부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 성당이며 우체국이며 이웃집이며 들를 곳이 많습니다. 들러서 사진을 하나하나 나누어 드리면서 또다시 새 사진을 찍을 테고, 다음에 다시 사진을 드릴 때면 또다시 새 사진을 찍을 테지요. 다시 한 번 씻는방 물을 틀어서 흐르게 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머리 감고 길을 나서야겠습니다. (4342.1.12.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