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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란 무엇인가 - 최민식, 사진을 말한다
최민식 지음 / 현실문화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67 ―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거짓 사진’일 뿐
: 최민식, 《사진이란 무엇인가》
- 책이름 : 사진이란 무엇인가
- 글ㆍ사진 : 최민식
- 펴낸곳 : 현문서가 (2005.6.20.)
- 책값 : 12800원
(1) 삶과 삶, 또 삶과 삶
아기가 하루에 네 번쯤 똥을 누면 참으로 괴롭습니다. 날이 더운 여름날이라면 더위를 식힌다며 찬물로 벅벅벅 문질러 빨 텐데, 손도 몸도 꽁꽁 얼어붙는 겨울이면 에휴 하는 한숨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그나마 찬물로 빨면 온 손가락과 손바닥이 쩍쩍 얼어붙으며 벌겋게 되기에, 보일러를 돌려 방을 덥히고 따순 물을 쓰면서 빨기는 하는데, 이렇게 빨래를 해도 얼어붙는 손은 녹지 않습니다. 똥기저귀 빨래가 아니더라도 날마다 몇 시간쯤은 씻는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기저귀며 옆지기 옷가지며 부지런히 빨아야 하니 몸이 축나고 마음이 지치고 머리는 텅 비어 버립니다.
.. 리얼리즘 사진은 ‘사진을 위한 사진’이 아닌 ‘삶을 위한 사진’이다 … 리얼리즘 사진은 형식주의와는 달리 사진을 현실적인 관점에서 파악한다 … 내용과 긴밀하게 얽히지 않은 형식적인 사진은 공허하다 .. (15∼16쪽)
고단함은 빨래로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식구가 깃들인 집은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불을 넣지 않는 방은 영 도 밑으로 떨어집니다. 어디 산골짝 집도 아니건만 이렇게 추운 집일 수 있으랴 싶은데, 돈없고 집없는 살림살이로서는, 한데에서 별도 안 보이는 칙칙한 하늘을 이불 삼지 않는 일로도 고마워해야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불 때는 방은 바닥이나마 뜨시고 이불이라도 덮으면 입김 콧김 서리기는 해도 얼어죽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방이 춥다고 해도, 또 집이 썰렁하다 해도, 기저귀 빨래라도 잘 말라 주면 좋을 텐데, 기저귀 빨래는 날이 춥고 집도 추우니 제대로 안 마릅니다. 열 시간쯤 널어 놓아도 마를 낌새가 없고 열다섯 시간쯤 가만히 널어 놓아도 안 마릅니다. 다 말려서 개 놓은 기저귀가 꼭 한 장이 남을 무렵 하는 수 없이 다리미로 말립니다. 바깥일 하랴 집일 하랴 기저귀 빨래 하랴 뭐 하랴 이거 하랴 저거 하랴, 그야말로 눈코 뜰 사이가 없습니다. 그 좋아하는 ‘헌책방 나들이’조차 한 주에 한 번은커녕 두 주에 한 번조차 못하면서 살게 됩니다. 견진성사까지 받은 천주교 신자가 된 몸이지만, 미사 드리러 가지도 못합니다. 내 코가 석 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날이고 요일이고 어떻게 가는 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인간이 사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사진작가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사진을 위해 꾸준히 이념과 소재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 아무리 표현기법이 뛰어난 사진이라고 해도 내용이 뚜렷하지 않다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런 사진에서는 힘을 느낄 수 없으며 가치 있는 사진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 (30∼31쪽)
옆지기는 지난 12월 7일에 아기 유아세례를 받게 된다고 기뻐하며 당신 어머님한테도 전화를 하고 대모 설 동무한테도 전화를 했습니다. 날짜를 받고 나서 당신 어머님과 전화를 하다가, 아기가 세례 받는 날이 자기 지아비 난날임을 알게 됩니다. 당신 어머님이 “그날 니 남편 생일 아니야?” 하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지아비 된 제가 옆지기 난날이라 해서 더 기리거나 사랑해 주는 일이란 없습니다. 옆지기 어머님한테 고마워하고, 그동안 얼마나 애쓰셨을가를 돌아볼 뿐입니다. 제 난날이라고 하는 12월 7일도, 지어미 된 옆지기가 더 마음쓰거나 기뻐해 줄 일이란 없습니다. 그저 우리 어머니한테 전화라도 걸어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우리 아기가 이 추위에도 모쪼록 튼튼하게 버티어 내면서 씩씩하게 자라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러셀 리(1903∼1986)는, 사진이 시대적 소명에 무관심하다면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사진작가 이전에 한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모든 작품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창조했다 .. (170쪽)
사진 일감 때문에 서울 나들이를 하던 어느 날 저녁입니다. 사진 일감은 모두 아홉 사람한테 같은 이야기감을 던져 주면서 맡겼는데, 뚜렷한 듯하지만 하나도 뚜렷하지 않은 사진감이고, 함께 사진 찍을 다른 분들 사진이 저로서는 하나도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 사진이 이분들보다 빼어나다고 느끼지는 않습니다. 하나같이 마음에 차지 않습니다. 저는 한 가지 사진감을 깨닫고 부지런히 사진찍기를 하게 된다고 하면, 적어도 열 해쯤은 그 한 가지 사진감을 파헤치고 캐내면서 이야기를 엮어야 비로소 성에 찰까 말까 한다고 느끼는데, 고작 다섯 달쯤 시간을 주면서, 일삯도 아주 조금 건네며 사진을 찍으라고 하니, 제가 무슨 노예도 기계도 아니고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그런 사진 일감이나마 받아 아쉬운 살림돈으로 쓰자고 생각하기도 했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맡게 되더라도 그 짧은 동안 한 가지 사진감을 내 깜냥껏 파헤치면서 공부를 해 보자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날 저녁 두 번째 모임을 하는 동안, 또 모임을 마치고 저녁밥을 함께 먹는 동안 몹시 슬펐습니다. 다들 사진으로 먹고살고 있을 뿐 아니라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는 분들인데, 밥자리에서 어느 한 마디도 ‘사진 이야기’를 하지 않더군요. 모두들 사진을 아주 잘 알아서 그런지, 세계 온갖 나라 사진책이며 사진 문화를 훤히 꿰뚫고 있기에 굳이 할 말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릅니다. 어쩌다 보니 어제 서울 나들이를 할 때, ‘토몬 켄(土門 拳)’이라고 하는 일본 사진작가 두툼한 사진책 하나를 들고 가게 되었는데, 이 사진책을 알아본 분은 열세 사람 가운데 딱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 사진은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가장 정확히 표현하는 예술 분야이며, 그 바탕에는 리얼리즘 정신이 깔려 있다. 따라서 진실한 사진이란 사진작가가 끊임없이 현실을 발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진작가는 항상 세상일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야 한다. 오늘날 젊은 사진작가들은 인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의미 없는 사진만을 창조한다. 치열한 고민과 노력 없이 창조된 사진의 생명은 매우 짧을 것이다 … 사진은 이제 특정인의 성역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예술 분야가 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찍은 사진은 개성적이라기보다는 무분별하게 미적 가치의 혼란만이 보인다. 대상에 대한 따뜻한 애정 없이 맹목적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사진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진실한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자신에게 항상 던져야 한다 .. (4, 33쪽)
뭐, 일본 사진작가가 그리 훌륭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토몬 켄이든 아무개든 일본에서 내로라 해 보았자 한국 사진밭하고는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다른 이 사진책을 보거나 말거나 자기 길만 꿋꿋하게 걸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그 추운 날, 두 손이 꽁꽁 얼어붙어 가면서도 그 사진책을 한손으로 들고 길을 걷는 내내, 슬프면서 쓸쓸했습니다. 사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사진이 참으로 좋다고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어서, 사진에 죽고 사는 사람을 보지 못해서, 사진 찍으면서 산다고 하지만 어느 누구도 어깨나 손에 사진기를 들고 있지 않아서.
.. 단순한 경치는 쉽게 찍을 수 있지만, 강렬한 호소력이 담긴 풍경사진을 찍는 데에는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과 기법이 뒤따라야 한다 .. (56∼57쪽)
(2) 사진과 사진, 또 사진과 사진
여러 달 앞서부터, 제 사진감인 헌책방을 찍을 때, 더는 필름을 쓰지 말고 디지털로만 찍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단골로 가는 사진관이 너무도 힘들다면서 가게를 줄이고 줄여, 앞으로는 아예 가게마저 접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암실을 따로 마련할 겨를이 없으며, 암실보다는 사진관 사람들하고 가까이 지내기를 바랍니다. 사진관 사람한테 필름을 맡기는 가운데, 내 일(사진찍기)이 나뿐 아니라 다른 이가 보기에도 그럴싸하게, 아니 무언가 느낌이 올 만큼 받아들여지는지를 배우고 되씹습니다. 사진관 사람과 현상소 사람이 제 필름을 보면서 ‘이런 사진감으로 용쓰는 사람도 있군’ 하고 생각해 주기를 바라고,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 저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진감 하나 남달리 찾아내어 오래오래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지금 쓰는 필름사진기는 디지털사진기보다 눈(화각)이 넓기 때문에, 디지털로는 못 담아내는 넓은각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필름사진을 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돈이 어느 만큼 모이면 파노라마 사진기를 장만할 꿈을 꿉니다. 치수는 6×17짜리 넓은 녀석으로. 그러나 웬만큼 돈을 모아 놓기는 했어도, 사진관에 지지난해부터 ‘파노라마 6×17 들어오면 연락해 주셔요’ 하고 부탁하고 있으나, 영 소식이 없습니다. 이제 35미리 필름사진은 접고 중형필름 쓰는 파노라마하고 디지털 두 가지로만 사진을 찍고 싶은데, 우리 나라에서 사진 찍는 형편으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이렇게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 인물의 표정을 찍는 일은 쉽다. 그러나 무언가 메시지를 지닌 얼굴과 몸짓이 들어 있는 사진을 찍기는 힘들다. 훌륭한 인물사진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이유는, 그 인물사진에 작가의 체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물사진 속에는 한 시대의 삶의 지표나 사상을 집약한 한 인간의 삶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 주제가 되는 인물은 우리들이 사는 사회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을 발굴하는 것이 사진작가 자신이 살아가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 (74∼75쪽)
때때로 이런저런 이름난 연예인들이 값나가는 사진장비로 손장난 하는 듯한 사진놀이를 하면서 책도 내고 전시회도 여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런 책을 보고 저런 전시회를 들여다보면, 세상은 부자와 가난뱅이로 나뉘어 20:80으로 갈리기도 하지만, 이런 갈라짐이 경제만이 아니라, 또 정치만이 아니라, 문화며 예술이며,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이며 노래며, 모두 갈리지 않느냐 싶습니다. 손장난 하는 사람한테는 값나가며 좋은 장비들이 곰팡이랑 벗하고 있고, 사진에 목매달고자 하는 사람한테는 애써 여러 해에 걸쳐 돈푼을 모았어도 장비를 장만하기가 하늘에 달린 별 따기와 같고. 우리 삶을 밝혀 준다고 하는 훌륭한 작품 남긴 이들은 그리 비싸지 않을 뿐더러 ‘참 흔한’ 장비로 사진을 담아내지만, 세상에 이름 높거나 거룩하다고까지 하는 사진 장비 쓰는 한국 사진쟁이가 꽤 되지만 이분들이 남기는 사진은 ‘참 흔한’ 흉내내기에 머물고.
한손에는 한 가지만 쥘 수 있다는 말이 틀리지 않구나 하고 느낍니다. 저로서는 한손에 사진기만 들 뿐, 돈을 들지 못합니다. 저로서는 사진기로 할 수 있는 사진창작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이와 달리 한손에 돈을 들고 있는 이들은 이 넘치는 돈으로 때때로 사진장비도 사들여 사진놀이를 하지만, 이들한테는 시간때우기나 시간죽이기와 같은 장난질이지, 사진으로 흐뭇하고 사진으로 기쁘며 사진으로 아름답고자 하는 나눔으로 거듭나지 못해요. 좋거나 훌륭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진장비를 쓰는 겉치레 사진쟁이들이라 해서 부러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 일상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 사진작품으로 남겨야 한다. 사진은 시대와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진실한 삶의 길을 비추는 힘이 있어야 한다 .. (96쪽)
졸려서 눈이 벌건 아기가 우애우애 칭얼거립니다. 아기 기저귀싸개를 햇볕에 말리려고 옥상마당에 널었더니 다른 빨래와 함께 꽁꽁 얼었습니다. 엊저녁과 어젯밤과 새벽과 아침에 빤 기저귀싸개 넉 장이 아직 안 마릅니다. 아기 외삼촌이 열세 해 앞서 쓰던 녀석이 둘 있고, 우리가 새로 산 녀석이 둘에다가, 이웃이 선물해 준 두 장이 있어, 가까스로 아기한테 대어 줍니다. 지금 살림살이로서는 새 기저귀싸개를 더 살 수 없을 뿐더러, 더 사는 일은 몇 달 쓰고 말 테니 돈이 아깝습니다. 그래도 이웃한테 다시 선물해 주면 아깝지는 않을 텐데, 지금 우리한테 있는 여섯 장을 선물해 주어야지, 또 새 물건을 사는 일은 달갑지 않습니다.
그래, 어쩌면, 이 기저귀싸개와 사진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군요.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쓰고, 아쉬우면 아쉬운 가운데 내가 뽑아내고 빚어낼 수 있는 만큼 온힘을 다하여 새로운 눈길과 이야기를 엮어내면 된다고. 골목길이며 헌책방이며 파노라마사진기를 써서 담아내면 한결 빛이 나고 그윽할 수 있겠지만, 장비를 고루 갖추었다고 하여 누구나 찍을 수 있는 사진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장비는 고작 낡은 녀석 하나뿐일지라도, 이 낡은 녀석 하나를 고이 보듬고 손질하면서, 이 낡은 녀석으로 찍어낼 가장 멋지고 아름다울 사진을 걱정하고 찾아나서는 일이 훨씬 뜻있고 보람있지 않느냐 다짐합니다.
.. 다큐멘터리 사진의 목적은 삶을 배우는 데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회구조 및 제도, 그리고 환경을 배우는 것이다 .. (134쪽)
하기는. 언제 제가 돈이 넘쳐서 사진을 찍었느냐 싶습니다. 필름값 없어 쩔쩔매는 가운데에도 값싼 필름은 안 쓰고 먹고살 돈을 바쳐 비싸면서 좋은 필름을 사고 배를 곯으며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고 돌아보게 됩니다. 변두리에 싸구려 허름한 방을 얻어서 살고, 사진과 책에만큼은 있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되새기게 됩니다. 바쳐야 보이고, 바쳐야 이루며, 바쳐야 껴안습니다. 내 삶을 모두 내맡기면서 밑바닥부터 배우고, 내 마음을 모조리 내놓으면서 구석진 그늘자리까지 익히며, 내 품과 시간을 깡그리 내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곰삭여내지 않았느냐 싶군요.
몇 천 원짜리 1회용사진기를 사려고 선배한테 돈 몇 푼 빌어 편의점에서 겨우 장만하여 찍은 사진이, 몇 백만 원 하는 장비로 으슥거리며 찍은 사진학과 대학생이 찍은 사진보다 낫다며 제 어깨를 토닥여 준 사진밭 어르신들 말씀을 새삼스레 곱씹어 봅니다.
(3)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고 말하는 책
.. 어린이를 주제로 한 작품은 많지만 내용이 부족하다. 대상의 본질에 직접 다가가지 못해서다 .. (258쪽)
1957년부터 사진을 찍어 온 최민식 님은, ‘사진 찍는 다리품과 손품 쉰 해’가 될 무렵, 당신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사진쟁이 최민식이 사진 찍어 온 길’을 들려주는 책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펴냈습니다.
이제는 저도 사진길을 걷고 있기에, 최민식 님은 큰스승이거나 앞선 어른이기도 하지만, 길동무이거나 길잡이이기도 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을 보면서 고개숙여 배우기도 하지만, 최민식 님 사진에서 어느 대목이 돋보이고 어느 대목이 낮보이는지를 제 나름대로 느낍니다. 한국 사진밭에서 최민식 님 사진이 어느 만한 자리에 놓이는가를 돌아보기도 하는 가운데, 내 깜냥으로 최민식 님한테 배울 대목이 무엇이고 최민식 님한테서 보여지는 아쉬움이나 모자람이 무엇인가를 곱씹습니다. 앞서 크게 발자국 남기며 걸었던 사람을 좇아 걸으면서 한편으로는 수월하고 고맙고 기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 또한 제 뒷사람한테 이렇게 큰 발자국 남겨 주어(또는 작은 발자국이나마 남겨 주어) 뒷사람한테 수월함과 고마움과 기쁨을 느끼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최민식 님은 최민식 님대로 우리 사진밭에 비어 있는 자리를 알뜰히 채웠고, 저는 저대로 우리 사진밭에서 따돌림받거나 뒤로 내밀린 자리를 차곡차곡 채우면 됩니다. 제 뒷사람들은 뒷사람들대로 스스로 느끼는 아쉬움과 모자람을 보듬거나 손질하면서 더 훌륭하게 거듭나면 될 테고요.
.. 사진은 대상을 설명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감정의 영역을 드러내 주는 수단이다. 감정의 영역을 감상자들에게 보여주는 방법은 작가 스스로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다. 좋은 사진작품은 작가 스스로가 삶을 충실히 살고, 자신의 작품에 일관된 철학을 반영할 때 나온다 .. (248쪽)
똑같은 사람을 찍어도, 최민식 님은 ‘人間’을 찍고, 저는 ‘골목사람’이나 ‘헌책방사람’을 찍습니다. 똑같이 사진기를 들이대어도, 최민식 님은 ‘人間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찍고, 저는 ‘골목사람은 이렇게 살고 있어요’ 하는 생각이나 ‘헌책방사람은 이렇게 살아가요’ 하는 생각으로 찍습니다. 똑같이 사진말을 붙여도, 최민식 님은 ‘人間 存在 探究’를 하시고, 저는 ‘골목집 살림 살피기’와 ‘헌책방 살림 살피기’를 합니다.
최민식 님 사진길과 제 사진길은, 같은 듯하면서 다르고 다른 듯하면서 같습니다. 사진에는 똑같이 사람이 찍히지만 사람이 찍히는 짜임새가 다릅니다. 다 다른 동네 다 다른 자리 다 다른 사람을 찍지만, 한결같이 사람 삶터에서 복닥이는 가운데 사진을 찍습니다. 최민식 님은 한쪽 어깨가 무너지도록 사진장비를 짊어지고 다니셨지만, 저는 무릎이 나가도록 자전거를 타면서 사진기를 쥐었고, 어깨와 등허리가 휘도록 헌책방에서 고른 책을 가방에 가득 담고 집까지 땀 뻘뻘 흘리며 걸어왔습니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깁니다. 도서관 책꽂이에 잘 보이도록 꽂아 놓은 최민식 님 사진책을 쓰다듬습니다. 최민식 님은 앞으로 당신 삶을 마칠 때까지 사진기를 손에서 놓지 않으시리라 봅니다. 저도 제 삶을 마칠 때까지 사진기를 손에서 놓을 날은 없으리라 봅니다. 최민식 님은 꾸준히 사진을 찍었던 만큼 꾸준히 사진책을 펴냈지만, 알고 보면 당신이 찍은 사진 가운데 아주 조금만 책으로 묶어 냈을 뿐입니다. 저는 아직 제 이름으로 된 사진책이 없는데, 먼 뒷날 사진책을 펴내게 된다 한들 그동안 찍은 사진 가운데 몇 점이나 넣을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최민식 님 모든 사진을 골고루 살펴보거나 맛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까지 그러모은 당신 사진책을 뒤적이면서, ‘사람을 사랑하여 사람을 사진에 담은 최민식’ 넋과 얼을 느낍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찍을 수 없던 사진이었다고 느끼고, 1928년에 황해도에서 태어나 부산을 바탕으로 사람을 사랑하던 사진쟁이 매무새를 느낍니다. 그러면, 1975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을 바탕으로, 또 헌책방을 바탕으로 사람과 책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책벌레요 사진벌레인 제 매무새는 사진에 어떻게 담기게 될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러면서, 사진사랑 쉰 해를 넘어 사진사랑 예순 해에 가까워지는 큰 어른이 있으니, 나도 이에 못지않게 쉰 해나 예순 해 가까이 골목사람 사랑과 헌책방사람 사랑으로 사진길을 꿋꿋하게 이어나가자고 거듭 다짐하고 곱씹습니다. (4342.1.11.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