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방석 사계절 아동문고 71
박효미 지음, 오승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할 말’ 없는 어린이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잠깐 읽기 20] 박효미, 《길고양이 방석》



- 책이름 : 길고양이 방석
- 글쓴이 : 박효미
- 그린이 : 오승민
- 펴낸곳 : 사계절 (2008.10.9.)
- 책값 : 8800원



 (1) 믿을 수 없는 사람과 삶터와


 목포에 사는 형이 동생인 저한테 새 셈틀 하나와 외장하드 하나를 선물해 주었습니다. 셈틀이 먼저 오고 외장하드가 나중에 왔는데, 외장하드를 가지고 와 주는 택배기사는 ‘그제 배송완료’로 올려놓고는 오늘 낮 느즈막하게 가지고 왔습니다. 뻔뻔하게 ‘배송완료’라 해 놓고는 전화연락조차 되지 않던 그 택배기사는 물건을 건넨 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기요, 바쁘시겠지만 ……” 하고는 말문을 열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따졌습니다. “바쁘면 늦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제 물건을 갖다 주었다고 처리를 해 놓고 아무런 연락이 없이 이틀이나 보낼 수 있습니까?”


.. 엄마가 얼른 고개를 들고 할머니를 쏘아보았다. 할머니가 하던 말을 뚝 멈췄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애 다치면 어떡할 건데? 몸도 안 좋은 애를. 그런 생각은 해 봤니?” “어머니, 다 생각했어요. 지명이한테 지금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친구들이에요. 놀 수 있는 친구들. 지금 행복하게 놀 친구가 필요하다고요. 지금 행복이 중요하다고요. 잘 다니고 있는 중이에요.” 퉁명스레 내뱉은 엄마 말 중 하나가 느닷없이 내 머리를 툭 쳤다. 지금 행복한 게 중요하다, 이게 무슨 말이지? … “지은아, 들어가 너 할 일 해.” “응, 근데 사회 숙제 있어. 세계 문화 유산 사진 찾아오래.” “알았어. 넌 공부나 해. 엄마가 찾아 줄게. 어서 방으로.” 엄마 재촉에 쫓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 책상 위 시계 옆에 학습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모든 게 순서대로다. 맨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영어 동화책. 영어 테이프는 벌써 엄마가 꽂아 놓았을 것이다. 그 밑에는 풀다 만 수학 문제집. 내가 풀어야 할 부분에 작은 쪽지가 붙어 있다 ..  (13∼15쪽)


 택배기사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줄줄 늘어놓습니다. 택배회사 본사로 전화까지 해 보니 몇 번이나 미안하다면서 곧바로 물건을 보낸다고 한 때에서도 이틀이나 지났는데, 정작 택배기사는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얼굴이고 몸짓이었습니다. 늦거나 말거나, 아니면 물건이 사이에 사라지거나 말거나 자기하고는 아랑곳할 일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쓰겁게 웃으면서, “그래요? 그럼 가세요.” 하고는 그만두었습니다. 자기가 잘못했음에도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벙긋하고 꺼낼 줄 모르는 사람한테, 당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하기란, 굳이 미안하다는 소리 한 마디 들으려고 하기란, 참 어리석다고 느껴졌습니다.


.. 문득 지명이한테는 허용되는데 나한테는 안 되는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이는 친구랑 실컷 놀면서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도 되고, 나는 놀기는커녕 친구를 부르는 것조차 해 본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긴, 우리 집에 오겠다는 애도 없다 ..  (34∼35쪽)


 지난달 어느 날, 인천에 있는 어느 인터넷신문에서 제 사진 두 장을 말없이 훔쳐서 쓴 데다가, 저작권표시마저 ‘자기 것’인 듯 고쳐서 쓴 일이 있었습니다. 지역 소식을 알아보려고 인터넷 글을 뒤적이다가 뜻밖에 보게 되었으니, 그날 어떤 기사 하나 찾으려고 부지런히 인터넷 글을 살피지 않았다면, 제 사진이 도둑질된 줄조차 모르고 지나쳤겠구나 싶습니다.

 너무 어이없는 나머지 화면만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내용증명 한 통을 썼습니다. 내용증명에는, 저작권자 허락 없이 사진을 쓴 일, 저작권자 표기를 지운 일, 사진에 적혀 있던 저작권자 이름을 지우면서 자료사진이라고 적어 넣으면서 소유권을 빼앗은 까닭을 물으면서, 이와 같은 말썽거리를 하루빨리 고치라고 썼습니다.


.. “야! 빨리 가. 나 학원 시간 늦는단 말이야.” “아이고, 성질하고는. 야, 생각해 봤냐? 학예회.” 나는 되도록 태연하게 말했다. “그날 시험 보러 가야 돼. 영재 시험.” “왜? 그런 걸 왜 신청했어?” “외고 가려면 그런 것도 해야 된대.” 이렇게 말해 놓고 나는 흠칫 놀랐다. 엄마처럼 말하고 있다. 내 안의 엄마가 지금 유리한테 대답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대신 시험 신청을 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엄마가 내 속에 앉아 있다. 진짜 나는 뒷방으로 쫓겨나 버렸다 ..  (72쪽)


 그러나 제 사진을 도둑질한 분은 당신한테 무슨 잘못이 있느냐는 투였고, 자기 둘레에 아는 시민사회단체 사람한테 뜬소문을 퍼뜨려 ‘사진 도둑질을 받은 제가 외려 잘못한 사람인 듯’ 내몰리는 처지가 되게 했습니다.

 저는 제가 애써 찍은 사진이건 무엇이건 스스럼없이 거저로도 주고, 따로 제 돈을 더 들여서 종이로 뽑고 사진틀에도 끼워서 선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된 밑바탕이 그릇된 채 도둑질을 한다면, 그리고 도둑질을 해서 쓰는 매체가 돈이 없거나 가난한 매체가 아닌 바에는, 제대로 된 값을 치르고 가져가서 쓰도록 합니다. 정 형편이 안 닿아서 당신들 스스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면, 전화라도 한 통 해서 도와 달라고 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연락도 허락도 없이 몰래 쓰고는, 잘못한 줄도 깨닫지 못하니.


.. “뭘?” 수돗물 소리가 다시 뚝 그쳤다. 엄마가 날 보자 어깨가 움찔했다. “그냥 학예회 하고 싶어.” 엄마 표정이 일그러지다가 어색하게 펴졌다. “지은아,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엄마가 내 어깨를 잡았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고 눈에서는 덜컥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엄마가 내 등을 토닥토닥 다독거렸다. ‘그런 건 언제 해? 나중에? 미래에? 어른이 돼서?’ 내 마음이 소리쳤다. 엄마가 내 어깨를 감싸며 내 방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내 몸은 순순히 엄마를 따라갔다 ..  (79쪽)


 아기 기저귀를 빨면서 생각합니다. 똥 눈 아기를 씻기면서 생각합니다. 잠깐 눈붙이며 쉴 틈 없이 쌀을 씻고 냄비에 안치면서 생각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말린 기저귀를 걷어서 개면서 생각하고, 까르르 웃는 아기를 품에 안고 노래를 부르면서 생각합니다.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고 있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어릴 적부터 어떤 사람 둘레에서 무엇을 바라보면서 무럭무럭 자랐는지를. 오늘날 이 땅 우리들은 초중고등학교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대학교에서 무엇을 보고 듣고 배웠는지를.

 숱한 사회살이와 회사살이를 거치면서 몸으로 받아들이는 지식이나 경험이란 무엇인가요. 숱한 사람을 부대끼면서 가슴으로 받아안는 슬기나 깜냥이란 무엇인가요.

 우리한테 이웃이란 누구이며 동무란 누구이고 식구란 누구인가요. 우리 둘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우리 둘레 사람들은 어떻게 어깨동무하며 지낼 수 있는가요.

 우리한테 소담스러운 일이란 무엇이고, 우리 스스로 아름다이 여길 대목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떻게 꾸리는 삶이 즐거운 삶이고, 어떻게 이루는 꿈이 신나는 꿈이며, 어떻게 쓰는 돈이 넉넉한 돈입니까.


.. 나는 아무 데로나 걸었다. 그런데 내가 아는 곳이라곤 학교 앞 커다란 상가 몇 개가 다였다. 상가를 지나 곧장 오르면 집이다. 나는 상가 언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빵집을 기웃거리고, 상가 뒤쪽 문방구 앞도 얼씬거렸다. 시간이 좀 지나자 조금씩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엄마한테 엄청 맞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펑펑 울지도 모른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것들이 날 괴롭혔다. 나는 결국 학교로 돌아갔다 ..  (140쪽)


 서로가 서로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봐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돈으로 사귀는 사람이 아니고, 돈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며, 돈으로 맺어지는 터전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깊은 사랑으로 함께하고, 너른 믿음으로 같이하며, 포근한 나눔으로 하나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 많은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많은 돈을 알뜰살뜰 이웃과 나눌 줄 아는 돈 많은 사람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지식과 슬기를 이웃과 스스럼없이 나누는 똑똑이가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름난 사람이 되는 일은 나쁘지 않으나, 내 이름값이 나를 높이는 이름값이 아니라 내 이웃한테 따순 눈길을 건넬 수 있는 이름값이 되어 주면 좋겠습니다.


 (2) ‘할 말’ 없으면 문학이 아닐 텐데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을 읽습니다. 책이름부터 남다르게 느껴지는 《길고양이 방석》은, 장애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겪는 아픔을 다루는 한편, 장애 있는 아이와 장애 없는 아이를 다르게 키우는 부모 모습을 다루고, 오로지 돈 많이 버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일류대학교에 들어가자면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고 학습지와 학원 공부 말고는 눈길을 돌릴 까닭이 없다고 여기는 부모 모습을 다룹니다.

 주인공 가운데 한 아이(걷지 못하는 어린 동생)는 자기가 아끼는 방석 무늬를 보고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책이름은 여기에서 따옵니다. 그런데, 책이름으로 쓰이는 ‘길고양이’와 얽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냥저냥 지나가는 생각 한 줌으로 책이름을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붙일 수 있습니다만, ‘방석’도 아니요 ‘고양이 방석’도 아닌 ‘길고양이 방석’이라고 책이름을 붙이면서, 이와 얽히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줄도 나오지 않으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책이름을 이렇게 붙이는 바람에, 이 책을 읽을 아이들은 엉뚱한 데로만 생각이 뻗어나가지 않을까요? 뜻없이 붙인 책이름 때문에 ‘방석’이 말해 주거나 보이는 이야기를 감추어 버리지 않는가요? 방석을 깔지 않으면 다리가 아픈 장애 아이를, 방석 하나가 살가운 동무처럼 되어 있는 장애 아이를 바라보기보다는 ‘길고양이가 어쨌는데?’ 하는 생각을 자꾸자꾸 뻗치게 되지 않습니까? 그냥 꽃이라 하면 되는데 ‘은방울꽃’이나 ‘제비꽃’이라고 부러 예쁜 이름을 붙이면서, 예쁘게만 꾸미려는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궁금함은 책이름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길고양이 방석》을 펼쳐 읽는 내내, 글쓴이가 우리한테 참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문장 솜씨 괜찮고, 이야기 짜임새도 제법 탄탄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에 치이고 밟히는 모습을 낱낱이 잘 그려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알맹이는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써서 아이들한테 읽히는 까닭을 드러내지 못하고, 이와 같은 이야기를 구태여 종이책으로 찍어서 읽혀야 하는 까닭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는, 장애 있는 동생이 갑작스레 병이 걸려 죽고 나서 저절로 ‘입시공부에서 살며시 풀려나게 되었다’는 맺음말로 끝납니다.


.. “원하는 걸 내가 다 했다고? 뭘? 공부? 학습지? 학원? 그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널 위해서잖아. 지은이 널 위해서.” “그건…… 엄마가 원하는 거잖아.” ..  (146쪽)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문학이 ‘가르침(교훈)’이어야 할 까닭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가르침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나쁘지 않습니다. 가르침만 지나치면 지루하고 가르침이 하나도 없으면 허전합니다. 가르침이란 교장 선생님 훈시 같은 말씀이 아닙니다. 살아가는 가운데 저절로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못 배웠다고 하는 분들이 온몸으로 부대끼는 삶자락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크게 배우는 일이 퍽 많은데, 크게 배우게 되는 까닭은 못 배웠다는 분들이 훌륭한 말씀을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들 손바닥을 보고 얼굴을 보고 매무새를 보기 때문에 배웁니다. 환경사랑과 재활용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할머니 할아버지 들이 추운 겨울날에 실장갑 하나만 낀 채, 또는 맨손으로 헌 상자나 신문지 들을 그러모아서 다문 몇 백 원 벌이를 하는 삶은, 수십 수백 권짜리 환경책과 견줄 수 없이 아름다운 환경 이야기이곤 합니다. 헌책방 일꾼이 버려진 책을 캐내고 손질하여 새롭게 빛나도록 애쓰는 일 또한, 그 어느 출판평론가가 책을 사랑한다고 길게 논문을 쓰는 일하고 견줄 수 없이 거룩한 책사랑이곤 합니다.

 그나저나, 어린이책 《길고양이 방석》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거듭 읽어도 느낌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줄거리는 있으나, 줄거리를 있게 하는 생각 한 줄기가 없습니다. 이야기 짜임새는 있으나, 이런 이야기를 짜넣어서 들려주는 느낌 한 가지가 없습니다. 솜씨 좋은 글매무새는 있으나, 솜씨 좋은 글매무새에 담겨 있는 넋과 얼을 찾기 어렵습니다.


.. 둘레에 있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왜 그러니?” “아줌마, 얘 못 걷지요? 몇 살이에요?” 순간 내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머리속에 열기가 가득 찼다. 선생님이 대답하기도 전에 딴 아이가 또 물었다. “왜 안고 다녀요? 두 살이에요?” “에계, 다리가 뭐 저래.” 내 키만 한 아이가 불쑥 나서서 소리쳤다. “야 야, 손도 그렇잖아. 얘 장애인이야.” 지명이가 움찔 움츠러들었다 ..  (121쪽)


 어쩌면 《길고양이 방석》을 쓰신 동화작가는 아직 습작을 쓰는 눈높이가 아니랴 싶습니다. 앞으로 부지런히 습작에 습작을 거듭하면서 차츰 나아질 수 있지 않으랴 싶습니다. 할 말은 없지만 쓸 글은 있는 지금 모습을 씻어내고, 할 말이 있도록 자기 삶을 붙잡고, 할 말이 알알이 여미어지도록 글 하나를 갈고닦을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동무들과 어울리면서 스스로 어떤 일과 놀이를 즐기는 사람으로 크면 좋은가 하는 깨우침이 모자란 가운데, 글쓴이 스스로 바로 지금 어떻게 자기 삶을 다스리면서 가꾸어 나가야 즐겁고 아름다운가를 제대로 못 깨우치지 않았느냐 싶습니다. 군데군데 톡톡 튀어나오는 ‘아이들이 놓인 끔찍한 형편’ 이야기는 코앞에 벌어지는 일처럼 살뜰히 그려내지만, 이런 ‘상황 보여주기’를 왜 하는지, ‘아이들이 이렇게 입시공부에 갇힌 까닭’은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아이들을 입시공부에 밀어넣는 부모’들은 어찌하여 이런 부모가 되고 말았는지를 못 헤아렸구나 싶어요.

 주말연속극도 문화이자 재미난 이야기일 수 있기에, 《길고양이 방석》 같은 어린이책도 문학이요 재미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글쓴이나 출판사나, 또 어린이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 스스로 《길고양이 방석》과 같은 작품을 ‘문학’이라고, 더욱이 ‘어린이문학’이라고 이름표를 붙여 준다면,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너무도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 아니랴 싶습니다. 쭉정이는 쭉정이이고 깜부기는 깜부기입니다. 쭉정이는 벼이삭일 수 없고 깜부기는 보리이삭일 수 없습니다.

 세부묘사와 줄거리 짜기와 문장수련은 훌륭히 하지만, 무엇을 보여주려는 세부묘사인지가 없고 무엇을 들려주려는 줄거리 짜기인지가 없으며 무슨 얘기를 나누고 싶은 문장수련인지 없는 아쉬움을 털어내는 문학을, 어린이문학을 기다려 봅니다. (4341.12.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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