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동네 찾아온 동화작가 황선미
 ― 어린이문학은 ­‘사람’을 깊이 다루는 이야기



 작가를 만나려면 책을 읽으면 됩니다. 글 작가이든 사진 작가이든 그림 작가이든, 그이가 펼쳐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책에 알알이 담기니, 책을 읽으면 작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쓴 책에 앞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또 작가가 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를 만날 수 있다면, 책과 삶과 사람을 새삼스럽게 돌아보게도 됩니다. 책은 책대로, 삶은 삶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좀더 그윽하게 돌아볼 수 있습니다.

 2008년 12월 12일 금요일 낮 네 시, 어린이문학을 하는 황선미 님이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 있는 〈시 다락방〉에 찾아왔습니다. 요즈음은 어린이문학뿐 아니라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창작을 가르치기도 하는 터라 몹시 바쁘지만, 어려운 틈을 내어 사람들(어린이 독자와 어른 독자)과 이야기 한 자락을 나누었습니다.

 황선미 님이 그동안 낸 작품을 들면, 《앵초의 노란 집》(베틀북,1998), 《여름나무》(두산동아,1998), 《내 푸른 자전거》(두산동아,1999), 《샘마을 몽당깨비》(창비,1999), 《나쁜 어린이 표》(웅진주니어,1999), 《목걸이 열쇠》(시공주니어,2000),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2000), 《까치 우는 아침》(웅진주니어,2000), 《초대받은 아이들》(웅진주니어,2001), 《늘푸른 나의 아버지》(두산동아,2001), 《소리없는 아이들》(두산동아,2001), 《들키고 싶은 비밀》(창비,2001), 《약초 할아버지와 골짜기 친구들 1ㆍ2》(사계절,2002), 《꼭 한 가지 소원》(낮은산,2002), 《빈 집에 온 손님》(아이세움,2002), 《과수원을 점령하라》(사계절,2003), 《일기 감추는 날》(웅진주니어,2003), 《막다른 골목집 친구》(두산동아,2003), 《넌 누구야?》(사계절,2004), 《트럭 속 파란눈이》(시공주니어,2005), 《푸른 개 장발》(웅진주니어,2005), 《동화 창작의 즐거움》(사계절,2006), 《처음 가진 열쇠》(웅진주니어,2006), 《나온의 숨어 있는 방》(창비,2006), 《울타리를 넘어서》(베틀북,2007), 《주문에 걸린 마을》(주니어랜덤,2008), 이렇게 창작 스물여섯 권에다가 동화창작을 돌아보는 이론책 한 권이 있습니다.

 책이름으로도 느낄 수 있고, 책을 몸소 펼쳐서 읽은 분들은 남달리 느끼실 텐데, 황선미 님 어린이문학은 사탕발림 어린이문학이지 않았습니다. 구경하는 어린이문학이 아니요, 어린이를 귀엽게만 바라보는 갇힌 눈 문학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이야기감 삼아서 팔아먹는 문학 또한 아니며, 교육과 사회 부조리를 까밝히는 문학 또한 아니었습니다.

 당신 스스로 좋아서 걷는 어린이문학입니다. 당신 스스로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아이들하고 어깨동무하고서 주고받을 이야기로 엮어 내는 어린이문학입니다. 튼튼하게 이 땅을 딛고 있는 두 다리로 씩씩하게 걸어가는 어린이문학입니다.

 어느덧 어린이문학가라는 이름으로 두 자리수(열 해)에 걸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당신 몸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추스를 수 있다면, 열 해를 넘어 스무 해를 애쓸 수 있고 스무 해를 애쓴다면 쉰 권에 가까운 어린이문학을 남기게 됩니다. 더 애써 서른 해나 마흔 해까지 어린이문학 한길을 걷는다면, 어쩌면 백 권에 이르는 어린이문학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나라밖으로 옮겨지는 우리 문학이 드물지만, 황선미 님은 두 가지 책, 《마당을 나온 암탉》과 《나쁜 어린이 표》가 일본말로 옮겨졌습니다. 《나쁜 어린이 표》는 100쇄를 넘게 찍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어린이문학을 어른문학과 견주어 몇 수 낮은 문학으로 여기는 잘못된 눈길과 흐름이 있는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광장》뿐 아니라 《나쁜 어린이 표》도 ‘100쇄 문학’입니다. 훨씬 짧은 동안에 훨씬 많은 사람(아이와 어른 모두)한테 읽혔으며, 훨씬 기나긴 앞날에 걸쳐 훨씬 널리 사랑받으며 알찬 열매를 나누어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황선미 님이 어린이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바라본 우리 삶터와 사람 이야기 몇 마디를 옮겨적어 봅니다. 어린이문학은 ‘사람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다루는’ 이야기열매임을 다시금 곱씹습니다.


1. “우리는 서사를 잊어버렸다 일상의 세세한 부분을 스케치하면서 … 가벼움 … 가벼움 … 가벼움 … (어린이문학상 응모작으로 들어온 작품을 읽다 보면) 왜 이렇게 재미없고 불쾌하기까지 할까 … 소설이 가진 문학성을 생각하지 않고, 이만하면 괜찮아 괜찮아 하는 ……. 동화도 서사이고, 서사는 이야기이거든요. 언제부턴가 우리는 가벼운 일상에 매몰되면서, 아이들 일상만 좇아가고 있구나 … 왜 이렇게, 훌륭한 (어른문학) 시를 쓰시는 그분들이 (동시나 동화를 쓰시면서) 지치게 하는지 … 제대로 이루어지지 앟기 때문에, 훨씬 더 가벼워지는 모양이 보이기도 해요.”

2.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문장력이 되지 않는 것 …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 또 관심이 있어서 아카데미고 강좌고 들으면서도 감각이 없는 것 … 비문은 태도의 문제는 아니에요. 연습의 부족, 공부가 안 되어서일 수 있는데, 가장 큰 건 비속어의 남용이에요. 예를 들면 1인칭 시점이 많아요. 쓰기가 쉽기도 할 테지만 어린이 눈길로 본다는 생각에서 1인칭 시점을 많이 쓰는데 구어체와 진술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신인작가들이 ‘저새끼, 학교 뺑뺑이 치고’라든지 ‘나는 언젠가 담탱이와 맞짱을 뜨겠다’는 문장을 … 사회를 보여주는 단초가 된다고 해도, 이런 사람을 (등단작가나 당선작가로) 뽑아 주면 우리가 자책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 이것은 선배들 책임이겠지요. 먼저 나온 책들에서 이렇게 썼고, 이렇게 쓴 책이 잘 팔리니까요. 그러나 그보다 먼저 아이들 입맛에만 맞추려는 신인작가들 태도가 …….”

3. “정말 재미있는 것은 대만이나 일본이나, 아이들한테 잔소리하고 학원 많이 보내고 들볶고 그러는 게 거의 비슷해요. 때로는 미국 같기도 하고 … 그러면 우리다움은 뭘까? 대만하고 비슷하거나 일본하거나 비슷하거나 미국 같기도 한 모습 말고 우리다움은 뭘까? … 나도 글쓰는 사람으로서도 나다움이 뭐고 우리다움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볼로냐 가서 부스를 보면, 일본 부스는 옆에 국기를 안 달아도 그림을 보면 일본 것이라고 알 수 있어요. 그러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그림을 보았을 대 ‘야, 이건 한국 거야’ 할 수 있을까는 모르겠어요 … 문장만 보더라도, ‘야, 이건 한국 거야’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문학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

4. “유행처럼 번졌던 거는 언젠가는 없어지겠지요. 아동문학이 가진 보편과 상징은 살 거예요. 그런데 … 저는 그래요. 시 잘 쓰는 분이 소설도 잘 쓰고 동화도 잘 쓰지 않을까 … 문학하는 마음은 다 같으리라 생각하니까요. 가능하면,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들이 아동문학을 같이하면 좋겠어요 … 제가 아는 분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에 현덕 동화가 많아요. 시대를 뛰어넘고 뛰어난 것이 있습니다. 아직 안 읽어 보셨다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기(인천) 분이었군요.”

5. “아동문학은 우리 삶에서 깊이 박혀 있는 무엇인가 있는 … 작품 하나가 바로 시다, 하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 많아요. 그런데 정말 우리 작가들 중에는 아동작가를 하려면 정말정말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강의를 할 때 저는 아놀드 로벨 작품을 늘 드는데, 간결하고 재미있고, 그러면서도 오래 남고 … 글이 안 써질 때마다 들춰봐요 … 저의 교과서이기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참고하고 다른 분들은 다른 책을 참고할 텐데 … 언제쯤이면 불필요한 것들을 놓아 버리고 할 수 있는지 … 〈눈물차〉나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를 읽어 보라고 하고 싶어요 … 짧고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 … 어른들은 걱정이에요. 이 보통내기 아닌 책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 하고 … 그러나 우리는 한 번 읽어서 싹 받아들이는 책이 없어요. 조금씩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거지 … 그것이 다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시간들에 대해, 죽 꿰어서 쉽고 간결하게 하는데, 책을 덮고 나면 ‘이게 뭐야?’가 안 되고, ‘그거면 됐지.’가 돼요. 동화는, 머리는 시에 두고 다리는 소설에 두어야 하지 않느냐고 … 이걸 어떻게 (어른들한테는 안 주고) 아이들한테만 줄 수 있느냐고, 그림책도 우리한테 큰 울림을 주는 그림책은 그냥 그림책이 아니에요 …….”

6. “아동문학을 보는 편견이, 아동문학은 아이한테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변하지 않는 편견인데, 동화가 아이들한테 교육을 하려고 나와서 그러기도 할 테지만, 거기서 자유롭지 못한 게, 그놈의 계몽성과 교육성에서 도망가려고 하는데, 대다수 독자가 어린이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용성을 찾게 돼요 … 그러면서도 삐삐처럼 틀을 넘어서 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 계몽성을 밀어내면서도 같이 가고, 그러면서 창의성으로 가려는 요상한 태도가 같이 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의 억눌린 욕망으로 가고 싶어요. 억눌린 걸 열어 주고 싶고 … 그래서 요즘 아동문학이 학원과 공부 이야기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자꾸 되풀이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보여줄 때 재미있고 개성 있으면 좋을 텐데 천편일률적이고 아주 절망스런 상태에서 끝내 버리고 있어요. 반성되는 게, 텔레비전 뉴스 속에는 더 절절하고 엄청난 일이 많은데, 그런 데에 동화가 못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동화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게 세상에 있는데, 아이들은 엄청난 피해자라고 보여주는 게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보여주기가 다가 아닌데. 요즘 아동문학이 르포가 아닌데 …….”

7. “안델센, 삐삐, 피터팬이 나온 곳을 가 보고픈 소망이 있어요. 그런데 다 다른 나라예요. 다 찾아가려면 돈도 시간도 많이 들어요 … 저는 편집자 한 명과 정말로 갈 수 있었어요 … 그런데 저한테 이렇게 큰 공부가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도 우리 동화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거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 유럽 동화마을을 찾아간 뒤 이야기를 쓰려고 하니까 감감한 거예요. 우리 거가 없는 거예요. 우리한테 남겨지는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그런 작가들 알려면 그냥 책 읽으라고 하면 되는 거지 … 우리는 아동문학에서는 ‘유형의 것(작가 자취)’이 거의 남아 있는 것이 없어요 … 베아트릭스 포터가 살던 곳처럼 남아 있는 곳이 없어요. 베아트릭스 포터는 남은 식구가 없어서 자기 책을 팔아서 들어온 인세로 땅을 조금씩 샀대요. 그리고 죽으면서 유언을 쓰는데 그 땅을 지켜 달라고 썼대요. 그리고 내셔널트러스트에 전 재산을 기부하면서 그 땅을 지켜 달라고 했대요 … 개발이라는 논리 앞에 무너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8. “지방에 강연 가면 그곳 공무원들이 한참 동안 인구가 몇이고 개발이 어떻고 하고 이야기를 들려줘요. 그러면 그분한테 ‘동화작가는 얼마나 있어요?’ 하고 물으면, HOT가 태어났고 하는 얘기를 해요. 동화작가는 한 사람도 없어요 … 그 시간에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을 남기는 것 … 우리는 그대로 둘 뿐이지 나중 사람이 값어치를 평가하겠지요 …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을 결국 못 벗어나거든요. 어린 시절에 누구를 만났고 어디에서 놀았고 어떻게 컸고 하는 게 어른이 되어도 그 척도가 되는데,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면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고 하면서 어른 흉내를 내는데 … 스테디셀러가 되는 어린이책을 보면 어린이만 다루지 않아요. 상당히 깊은 ‘사람’을 다루잖아요. 아이와 함께 고전을 읽으면 왜 고전이 고전인 줄을 알아요. 고등학교 2학년인 우리 아들한테 〈왕자와 거지〉 완역본을 읽혔더니 아이가 잘 읽었다면서 이 사람이 쓴 다른 작품은 없냐고 묻더라고요. 놀랐어요. 고전이란 그래요 … 아이들은 고전을 읽고 자기를 생각하여 나타내는 데에 대단히 달라요 … 고전은 읽는 시간을 일부러 투자해서 가져야 해요 … 시대를 넘어 연령을 넘어 민족을 초월하는 강한 게 있구나, 우리 나라 책을 더 많이 읽혀야 한다고도 하는 편견을 넘어, 사람의 삶을 다양하게 생각하고 보는 고전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들만 아니고, 우리 어른들도 읽어야 해요 …….”


(4341.12.1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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