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삶


 글쓰는 짬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서 혼인하지 않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글쓰고 책읽는 짬을 잃고 싶지 않다면서 아기를 낳지 않고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 또한 글쓰는 짬을 빼앗기고 싶지 않고, 책읽는 짬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혼자 살게 되든 여럿이 모여서 살게 되든 해야 할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밥을 먹어야 하고 옷을 입어야 하며 집에서 자거나 쉬어야 합니다. 손수 농사를 지어 먹을거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저잣거리에 나가서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하고, 먹을거리를 장만해 온 다음 집에서 끓이든 날로 먹든 볶든 지지든 해야 해요. 그런 다음에는 설거지를 하고 부엌을 치워야 합니다. 손수 실을 잣거나 솜을 틀지 못하더라도, 제 옷은 제가 장만하고 빨고 간수해야 합니다. 이불과 담요 또한 손수 빨고 널고 말리고 깔고 개야 합니다. 집을 꾸미고 먼지를 치우거나 털고 물건을 간수하고 하는 온갖 일들도 해야 합니다.

 혼자서 살다가 옆지기를 만나 함께 살면서, 빨랫감이 여러 곱 늘었습니다. 저 혼자 살 때에는 꽤 여러 날 동안 그대로 입고 다니다가 빨래를 하곤 했지만, 옆지기는 다른 여느 사람보다 덜 갈아입는다고 해도 저와 견주어 자주 갈아입는 셈이었고, 추위를 많이 타니 입는 옷도 훨씬 많습니다. 그러다가 아기를 낳으니 아기 기저귀 빨래와 저고리며 바지 빨래만 해도 한가득입니다.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빨아야 하는 기저귀는, 말리는 시간을 헤아리면 오줌기저귀나 똥기저귀가 나올 때마다 틈틈이 빨아야 하니, 아기 기저귀를 빠는 데에 드는 시간만 헤아려도 날마다 여러 시간입니다. 겨울이 되어 빨래가 잘 안 마르니 축축한 빨래를 하나하나 다림질하는데, 빨래하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게 됩니다. 여기에다가 밥하고 뭐하고 다른 집살림을 하고 보면, 막상 책 한 권 손에 들 겨를이 거의 없고, 책상맡에 앉아서 무언가 끄적거리고 싶어도 머리가 하얗습니다. 써야겠다는 글은 이렁저렁 떠오르지만 글머리가 풀리지 않습니다. 등짝을 바닥에 붙이고 눈도 붙이고플 뿐입니다. (4341.12.10.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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