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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 장정일 단상
장정일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 하나 80 ― 책읽는 생각, 살아가는 생각, 장정일 생각
: 장정일, 《생각, 장정일 단상》
- 책이름 : 생각, 장정일 단상
- 글쓴이 : 장정일
- 펴낸곳 : 행복한책읽기 (2005.1.17.)
- 책값 : 8900원
(1) 책읽는 생각
생각없는 사람이라면, 생각없는 줄거리 가득하고 생각없이 만들어진 책을 으레 집어들게 마련입니다. 생각있는 사람이라면, 생각있는 줄거리 차곡차곡 담기고 생각있게 만들어진 책을 저절로 집어들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제 눈높이에 따라서 책 하나 집어듭니다. 누구나 제 눈높이에 걸맞게 사람을 만나고 어울리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제 눈높이에 어울리게 집자리를 알아보며 살고, 제 눈높이에 따라 일거리를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생각없는 삶이요 생각없는 눈높이요 생각없는 사람이라고 하여 ‘나쁜’ 쪽으로만 빠지지는 않습니다. 생각있는 삶이요 생각있는 눈높이요 생각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좋게’만 흐르지는 않아요.
.. 취미에 빠진 사람에 의해 그의 가족이나 친구가 착취당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들은 자기 취미 속에 빠지기 위해 늘 “다음에” 하면서 달아나 버린다 .. (22쪽)
생각이 있다면 아무 책이나 집어들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다면 주어진 책을 곧이곧대로 받아먹습니다. 생각이 있어도 돈이나 이름이나 힘에 매여서 책을 집어들곤 합니다. 생각이 없으나 이웃에서 사랑스럽고 믿음직한 책을 건네주는 바람에 철부지 매무새를 하루아침에 벗어던지기도 합니다.
.. 종교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자기가 믿는 신의 가르침을 나타내야 한다. 아주 모범적인 시민이 알고 보니 불자로 밝혀지거나 카톨리커로 밝혀졌을 때 이웃은 그와 종교가 달라도, 그 종교를 편견 없이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이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던 것은 인간들에게 신앙의 가장 바람직한 태도를 일깨워 주신 것이지 단순히 자선의 원칙으로 새겨서는 안 된다 .. (36쪽)
우리 나라 사람들이 나라밖 사람들보다 좀더 책을 안 읽거나 멀리한다고들 합니다. 얼마나 책을 안 읽기에 그러느냐 싶곤 한데, 조금만 생각을 해도 이와 같은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아이한테 책을 읽히는 어버이는 몹시 드뭅니다. 그저 책이 좋고 아름답고 훌륭하기에, 책에 깃든 좋음과 아름다움과 훌륭함을 아이한테 선물해 주고 싶어서 읽히는 어버이가 매우 드뭅니다.
나라안에서 손꼽히는 대학교에 철썩 붙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아가 손꼽히는 대학교 졸업장으로 손꼽히는 재벌회사 직원이 되거나 공무원이 되어서 연봉 수천만 원이나 억대를 떵떵거리며 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쥐어 주는 권장도서나 교양도서 목록만 있습니다. 더욱이 학과 공부라는 이름으로 책을 멀리하도록 하는 일이 법으로 지켜지고 있습니다. 교과서 공부를 잘해서 시험을 잘 치러야지, 교과서 아닌 책을 읽다가 교과서 지식하고는 담을 쌓고 시험을 못 보면 낙오자가 되고 맙니다. 교과서가 얼마나 올바르게 되어 있는지를, 교과서가 얼마나 알맞게 짜여져 있는가를 살피는 눈이 없습니다. 교과서는 그야말로 간추린 이야기일 뿐인데, 아이들 스스로 교과서 틀을 넘어서 제 몸뚱아리로 세상을 부대끼면서 참 지식과 참 슬기를 갈고닦도록 하지 못합니다.
.. 예쁜 사람이 머리 나쁜 것은 신이 그만큼 공평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지 쪽팔릴 일도 아니고 사는 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뜻에서 나는 안티미스코리아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엄청 잔인하게 느껴진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할 수 없기에 인간은 누구나 자신에게서 가장 뛰어난 장점과 특기로 성공하고자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나처럼 구구단도 못 외우고 영어도 할 줄 모르지만 기막히게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여자가 있다면 그녀에게도 1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고, 타고난 두뇌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듯이 타고난 미모로도 자긍심과 성취욕을 느낄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예쁘고 머리 나븐 여자는 이벤트 도우미나 대형 마트의 점원을 해야만 당신들의 직성이 풀리나? .. (39쪽)
우리들은 학교를 다니는 기나신 세월에 걸쳐서 ‘책방 나들이’를 배우지 못합니다. 새책방 나들이건 헌책방 나들이건 배우지 못합니다. 하물며 도서관 나들이는 배울는지요. 요즈음은 학교마다 도서관이 생기고 있으나, 아이들이 학교 도서관을 마음껏 드나들면서 책을 즐길 수 있게끔 ‘시험 공부 짐’이 적은지, 교과서로 모자란 지식을 채우도록 도서관이 활짝 열려 있는지 궁금합니다.
국어사전 찾기도 제대로 배워야 하는 한편, 책을 읽을 때 몸가짐이 어떠해야 하고, 책장은 어떻게 잡아서 어떻게 넘기는지, 책을 다치지 않게 하는 길, 책꽂이에 알맞게 꽂는 일, 책꽂이를 손수 나무질을 해서 짜기, 책을 끈으로 묶어서 나르기(이삿짐), 책을 봉투에 넣어서 보내기(동무 생일선물로 보낼 때)처럼, 아주 밑바탕이 되는 이야기들을 학교에서는 얼마나 알뜰히 가르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쩌면, 교사 된 분들이 학교(교대나 사범대)에서 ‘책읽기를 가르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더러, 교사 되기 앞서 스스로 책하고 벗삼지 못했기에 자기가 교사가 된 다음에 아이들하고 책읽기를 삶으로 즐기는 버릇을 못 들이지 않으랴 싶기도 합니다. 교사가 먼저 책을 즐겨야 아이들이 책읽기를 배울 수 있습니다. 교사가 먼저 아이들한테 책읽는 삶이 기쁨임을 몸으로 보여주어야 아이들이 책에서 기쁨보따리를 찾으려고 나설 수 있습니다.
(2) 살아가는 생각
.. 민중을 위하여 시를 쓰는 민중시인이 일류 호텔의 바텐에 앉아 칵테일을 마시고 있다면 사기꾼처럼 보일 것이다. 반대로 모던한 시인이 거진 인민복 차림으로 시장통에 죽치고 앉아 있으면 표절가로 보인다 .. (42쪽)
부모님 집을 나와서 혼자서 살림을 꾸린 때는 1995년 4월 5일입니다. 어느덧 열세 해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제가 살고 있는 집은 어디에서나 찬방입니다. 제가 추위를 덜 타서 차디찬 방에서 깃드는지 모릅니다만, 언제나 짐차로 여러 번 날라야 할 만한 책더미를 이고 지고 다니는 터라, 책더미를 집어넣을 만한 집을 적은 돈으로 얻어서 달삯 내고 살자면, 살림집이 추운 곳 아니고는 얻지 못하기 일쑤입니다.
군대에 있던 스물여섯 달 동안에도 내무반은 늘 추웠고, 부대는 참으로 추웠습니다. 남녘땅에서 가장 추운 곳이기도 했지만, 한여름인 8월에도 밤에는 0도로 떨어져서 야상을 입어야만 했어요. 눈이 녹는 때는 부처님오신날이었고, 첫눈은 시월이 다 갈 무렵 비로소 내렸지만, 한 번 내린 눈은 두 번 다시 녹지 않는데다가, 영 도 밑으로 20∼30도 내려가는 일은 아주 우스웠어요. 1997년 12월 31일에 전역하던 그날까지 뻬치카를 쓰던 내무반이었기에, 난로가 아닌 난로에서 떨어진 곳은 내무반이었음에도 영 도 밑으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신문사 지국에서 먹고살 때에도 한결같이 추위에 떨었는데, 한겨울에도 실장갑 한 켤레 끼고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자전거를 몰면서 집집마다 신문을 두어 시간 돌리고 돌아오면, 한 시간 가까이 이불에 파묻힌 채로 눈물을 흘리면서 손가락과 발가락을 녹이고 코와 귀를 녹이며 사타구니와 팔다리를 녹였습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으니 실장갑이고 옷이고 찬물로만 빨래를 했어요. 나이 서른이 넘어간 뒤부터는 겨울 찬물 빨래는 도무지 힘들어, 물을 덥혀서 쓰곤 하는데, 빨래를 마친 뒤 손가락이 뻣뻣해지는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 버스 요금보다 비싼 돈을 주고 택시를 탈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아닌 바에야 그것은 아주 사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진짜로 조용한 택시를 타 보지 않아서 그게 얼마만큼 호젓할 수 있는지, 그래서 도시생활 속의 내밀한 축복이 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걸 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문득 내 영혼을 돌아보게 하는 정일한 공간과 시간을 상상하지 못한다 .. (58∼59쪽)
인천을 떠나 서울에서 살며, 서울을 떠나 강원도 양구에서 살며, 강원도 양구에서 벗어나 서울에서 살며, 서울을 떠나 충북 충주에서 살며,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서 살며, 잠자는 방을 뺀 집구석 다른 데는 겨울이면 꼭 영 도 밑입니다. 그래도 한데에서 안 자고 기름보일러라도 돌릴 수 있는 집이니 얼마나 고마우랴 싶습니다. 다만, 잠자는 방에서도 잠바떼기를 걸치고 손가락을 엉덩이에 깔아 녹이면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안 마르는 기저귀를 다리고 아기 기저귀를 갈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감자와 당근을 헹구어 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서른 줄이 꺾이는 나이에 다다르면서 ‘겨울에 추위 걱정을 않고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방 하나 얻어서 지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빨래를 했을 때 한나절이 지나면 제법 마르게 되는 곳에서 지낸다면 얼마나 넉넉할까. 글을 쓸 때 손가락이 뻣뻣하게 얼어붙어서 눈물이 찔끔 나오는 일이 없으면 얼마나 잘 써질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따순 방에서 살게 된다고 하여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지내게 된다고 하여 우리 살림이 더 넉넉해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따사로운 방에서 일하게 된다고 하여 내 글이 더 알차고 훌륭해질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영화평론가가 일반적인 관객보다 더 잘 볼 수 있는 비법은 물론 ‘다섯 번 이상’이 기본인 준비 과정에만 있지 않다. 오랫동안 영화를 공부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하고서라도 그들은 제작 현장을 방문할 수 있고 제작자와 감독ㆍ작가ㆍ스태프 등과 작품에 대해 캐물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며, 기술 시사회와 같은 중요한 자리에 초대받을 수 있다 .. (77쪽)
아기를 안고 길을 걷거나 전철을 타거나 어디 가게에 들어갈 때면, 우리한테 고이 마음써 주는 분들이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들도 많습니다. 틀림없이 우리가 아기를 안고 있음을, 아기를 안고 건널목에 서 있음을 알면서도 바로 옆에서 담배를 태우는 어르신(모두 다 남자입니다)이 꼭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차림새를 본 분은 그림이 그려질 텐데, 앞뒤로 가방 서너 개씩 대롱대롱 매달면서 사진기까지 오른어깨에 걸치고 아기를 안고 걷는 사람 앞에서 길을 터 주지 않을 뿐더러 툭툭 치고 가는 분들(거의 모두 남자입니다. 그러나 아주머니도 많고 아가씨나 어린 학생도 많습니다)이 참 많습니다. 전철을 타고 일산 처가집에 찾아갈 때, 아기가 젖을 먹어야 되어 물려야 하는데, 빈자리가 없어서 맨바닥에 털푸덕 앉아서 젖을 물리지만, 자리 두 칸을 내어주는 분을 보기란 힘듭니다(‘두 칸’을 내주어야 하는 까닭은 아기와 애 엄마가 둘이기도 하지만, 십 킬로그램에 가까운 아기를 내내 무릎에 올려놓고 젖을 물리거나 안는다는 일이 얼마나 팔 빠지고 무릎 뽀개지는 일인 줄을 모르면, 그야말로 모를 뿐입니다). 가만히 보면, 거의 할머님들이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자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라고 부르시지만, 한 자리만 날 때에는 차라리 맨바닥에 털푸덕 앉아서 젖을 물리고, 제가 무릎 꿇고 앉아서 무릎에서 오줌기저귀를 갈아 줄 때가 훨씬 수월합니다.
용케 세 자리를 모두 얻어서 아기를 눕힌다고 해도, 전철 걸상은 살짝 기울어져 있으니 아기 목이나 허리에 참 안 좋습니다. 다른 자리도 아니고 ‘영유아 동반자’ 자리라 한다면, 갓난아기가 어린 아기를 눕힐 때를 헤아려야 할 텐데, 그런 마음씀이란 없어요. 인천에서도 동인천역에는 ‘수유실(젖먹이는 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만, 그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며 드나드는 신도림역이나 서울역이나 용산역이나 시청역이나 종로3가역이나 동대문역 들에서 젖 물릴 수 있는 조용하고 바람 안 드는 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 반면 인간들은 배우는 일에 속수무책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 시절부터 대학 졸업까지 ‘거짓말하지 말고, 훔치지 말고, 싸우지 말라’는 도덕과 교훈을 배우지만, ‘배운 놈이 더 무섭다’는 말이 가리키는 것처럼, 배움은 아무 소용 없고 말짱 도루묵이다 .. (82쪽)
그러나, 이렇게 온몸으로 부딪히게 되니까 보일 뿐이에요. 이처럼 온몸으로 살아가니까 깨닫고 있을 뿐이에요.
어느 시인 말마따나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머리로는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 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버스나 전철을 탈 때에 거의 자리에 앉는 일이 드물었고, 자리에 앉았어도 벌떡벌떡 일어나서 다른 이가 앉게 내어주었지만,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어머님들한테 자리 하나 내어준다고 해서, 그분들 나들이길이 수월하지는 않음을 뼛속으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막상 아이를 낳아 키우기까지,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가’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기를 어떻게 재우는가’를, ‘아기를 어떻게 씻기는가’를, ‘아기 사는 집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를 조금도 살피지 못했습니다. 겨우겨우 알아가고 있으며, 차근차근 깨닫고 있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듯 세상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 느끼고 받아들이고 삭여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낍니다.
.. 예를 들어, 가야산에 골프장을 만드는 일을 반대하기 위해 100만 인 서명운동이 필요할까? 혹은 시인 이상화의 생가를 보존하기 위해 그게 필요할까? 박정희기념관을 반대하기 위해서는 그것도 필요악일까? 열 명 혹은 다섯 명으로는 안 될까? 진정 단 한 명의 의견이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고심하는 사회에서라면 100만 인 서명운동 따위는 우스갯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명운동의 규모와 목표가 걸핏하면 100만 인이 넘는 진풍경은 우리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00만 인 서명운동은 그것이 어떤 선의에서 행해지든지 간에 우리 사회가 물량과 물리적인 세가 득세하는 사회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처럼 머릿수가 말하기 시작할수록 소수 의견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 (88쪽)
(3) 장정일을 생각
소설쓰는 장정일 님을 딱 두 번 보았습니다. 두 번 모두 헌책방에서 보았습니다. 두 번 보기 앞서는 장정일 님이 자주 들렀다고 하는 헌책방 아저씨한테 틈틈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헌책방 아저씨는 처음에는 몰랐다고 하는데, 나중에 다른 분한테 이야기를 듣고는, ‘《장정일의 독서일기》에서 장정일 님이 당신이 보던 책을 헌책방에 내놓았다’는 대목을 읽고 당신 헌책방에 ‘장정일 님이 내놓았음직한 헌책’을 찾으려는 손님이 꽤 있었음을 알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던 무렵, 나라 안팎에 내로라하는 분들 말 한 마디와 글 한 줄이 얼마나 큰힘을 내는가 싶어 새삼 놀랐습니다. 내로라하는 분들이 헌책방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면, 이분들을 따르거나 좋아하는 분들도 으레 헌책방을 사랑스럽게 바라봅니다. 내로라하는 분들이 헌책방을 개골창만도 못한 낡아빠진 시시껄렁 껍데기로 바라보면, 이분들을 따르거나 좋아하는 분들도 으레 헌책방을 개골창만도 못한 낡아빠진 시시껄렁 껍데기로 바라봅니다. 이냥저냥 아무 눈길도 안 두면, 이때에도 마찬가지로 강 너머 불 구경입니다.
..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어 왔지만, 나에게 영화란 너무나 명확하게 규정된다. ‘두 번 본 것’만이 영화다. 한 번 보고 만 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건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목격하게 된 교통사고와 같은 것 .. (131쪽)
다른 헌책방에서 듣는 장정일 님은 ‘헌책방 아저씨와 때때로 술잔을 부딪히기도 하는 사이’였기에, 좀더 다른 이야기를 들었고, 또 만났습니다(다만, 아직 장정일 님과 술잔을 부딪혀 보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장정일 님하고 술잔을 부딪히면서 두런두런 시끌버끌 수다를 떨게 된다면, 그 뒤로 읽는 장정일 님 책은 사뭇 달라질 수 있으리라 봅니다). ‘하루에 다섯 차례씩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고 했는데, ‘글쓰느라 바쁜데 하루에 다섯 차례나 오려니 너무 힘들다’고, ‘나(장정일)한테 돈이 많다면 헌책방을 통째로 사서 집에서 신나게 책만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장정일 님은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부럽기도 합니다. 비록 한 군데만 다섯 차례를 들락거린다고 하지만, 하루에 책방을 다섯 차례나 갈 수 있을 만큼 주머니 형편이 되는구나 싶어서 부럽습니다. 제 살림살이는 하루에 한 번은커녕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가면 괜찮으려나 싶을 만큼이기에(저 또한 예전에는 날마다 두어 군데씩 들르곤 했습니다), ‘나도 돈을 넉넉히 벌면 날마다 한 군데씩 헌책방 나들이를 하고 싶구나’ 하는 꿈을 꾸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지금대로 좋다고, 지금은 날마다 책방 나들이를 하면 못 읽게 되는 책이 많이 늘어날 테니, 지금 이대로가 딱 알맞다고 느낍니다. 아이 돌보고 집살림 꾸리고 하는 데에도 밤잠이 모자라서 허구헌날 눈밑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데, 무슨 얼어죽을 책 타령을 하겠느냐 싶어요.
.. 이런 생각이 시대착오적일 수도 있고 환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개꿈이라고 하더라도 신문 사회면을 매일 스크랩해서 읽는 작가가 어디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낸 L형의 신작 장편은 홍콩 느와르나 할리우드 문법과 너무 가까운 만큼, 내가 공들여 읽는 신문 사회면과는 동덜어져 있었다 .. (175쪽)
《생각, 장정일 단상》을 덮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생각합니다. 그동안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숱한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만, 새롭게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며 또다시 생각합니다.
민방위훈련장에 가서 졸음을 쏟아지게 하는 비디오를 보는 내내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흔들리는 전철간에서 아기 오줌기저귀를 갈고 나서 한숨 돌리는 가운데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고단하게 잠든 아기와 옆지기 머리를 쓰다듬다가 나 또한 잠이 쏟아졌지만 찬물로 낯 씻고 눈 부릅뜨고 읽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합니다. 지금 내 삶은 얼마나 나다운 삶인지를. 지금 내가 손에 쥐는 책은 내 마음밭을 얼마나 일구어 놓는 책인지를. 지금 내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얼마나 내 몸이 기쁨으로 들뜨게 해 주는 만남을 꽃피우고 있는지를. (4341.12.7.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