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 아니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


 딸아이 백일을 며칠 앞두고, 신포시장 떡집에 백설기와 가래떡을 맡기려고 흰쌀 사십 킬로그램 남짓을 지고 안고 갑니다. 모두 해서 사십 킬로그램이 조금 넘는 무게일 텐데(어쩌면 더 나갈는지 모릅니다만), 집부터 떡집까지 걸어가는 길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리 멀지는 않으나 썩 가깝지 않습니다. 높은 언덕을 넘어야 하지는 않으나, 인천이라는 데는 오르락내리락 골목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입니다.

 새벽나절 깨어나 일손을 붙잡다가 잠깐 눈을 붙인다고 했지만, 언제나 새벽같이 깨어나서 아빠 엄마랑 함께 눈 말똥말똥 뜨면서 놀아 달라고 하는 딸아이하고 씨름하노라면, 새벽잠도 낮잠도 저녁잠도 밤잠도 어영부영, 아니 대충대충 넘기게 됩니다. 어른들은 ‘아기가 잘 때 어른도 자야 한다’고 말씀하지만, 몸이 썩 좋지 않은 애 엄마는 집안일을 하나도 할 수 없는 터라, 먹고사는 일을 하는 애 아빠는 홀로 집안일까지 도맡습니다. 없는 틈을 쪼개어 집안일을 해야 하니, 아기가 자도 깨고 아기가 깨도 함께 깨는 때가 잦습니다. 한 시간 넘게 깊이 잠들기 어렵고, 조금 쉬는가 싶으면 기저귀 빨래가 밀리니 부랴부랴 언손 녹여 빨래를 하노라면 잠이 달아납니다. 잠이 달아나면서 쌀과 콩팥을 씻고 불려 놓아야 하고, 다 마른 빨래를 걷어 놓고는 잠깐 아기를 안고 어르다가 바깥 일손을 붙잡다가, 하루 밥거리를 무엇으로 마련할까를 헤아리다가 기저귀를 빨다가, 또 아기하고 애 엄마하고 함께 어울리다가 밥을 안치다가, 그러면서 찌개나 반찬거리 하나 장만하다가 아까 걷어 놓은 기저귀를 개다가 …… 하면 하루가 훌쩍 지나갑니다.

 일기를 쓸 겨를이란 없지만, 달력 귀퉁이에다가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지나가는가를 적어 놓을 겨를조차 못 내고 넘어가는 날이 늘어납니다. 겨우 잠자리에 들 무렵 ‘오늘 무슨 일이 있었나?’ 하고 돌아보면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머리속이 새하얗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민방위훈련이 있는 날. 일은 겹쳐서 온다고, 그나마 아침잠조차 한 시간 느긋하게 잘 수 없어 퀭한 눈으로 민방위훈련 하는 곳까지 부랴부랴 종종걸음. 세 시간 동안 졸음이 쏟아지는 강의가 이어지는데, 여느 사람들 상식밖에 안 되는 구급법과 119 전화 거는 법을 그토록 오래도록 떠벌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교육장에서 문득 휘 둘러보니 5/6쯤 되는 우리 동네 아저씨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엎드려 자거나 코를 골고 있습니다. 그래도 1/6이나 되는 아저씨들은 자지 않고 깨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때야말로 책을 읽어야 하지 않느냐 싶어 두 권을 챙겨 와 감기는 눈을 비벼 가면서 읽습니다. 세 시간 동안 이백 쪽 안팎 읽어냅니다. 그리고 마지막 넷째 시간에 비디오를 보여주는데, ‘세계 5위 군사대국 북한의 위협 가운데 화학무기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 말머리로 ‘가정에서 화생방 대피 요령’을 연속극처럼 찍어서 틀어 줍니다.

 힘들 일은 없다고 하는 민방위훈련이기는 해도, 억지스럽게 국민의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고 ‘내 이웃이 간첩인지 아닌지 살펴보라’는 비디오까지 귀가 멍멍하도록 듣고 나서야 도장 꾹 찍히고 풀려납니다. 동사무소에서 나와 출근부(?) 도장 찍는 젊은 직원은 한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넣고 한손으로 도장을 쾅쾅 찍습니다.

 어질어질한 머리로 집으로 돌아와 그사이 밀린 기저귀를 빨다가, 애 엄마가 ‘뜨거운 물이 씻을 만큼 되느냐’고 묻기에, 넉넉하다고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면 아기하고 함께 씻어도 되겠네 하기에, 그래도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졸음을 꾹 참고 큰 통에 뜨거운 물을 받습니다. 기저귀 빨래를 마치고 빨래줄에 널어도 물은 더 받아야 합니다. 방을 들여다봅니다. 애 엄마도 자고 딸아이도 잡니다. 통에 2/3쯤 찼을 무렵 애 엄마를 흔들어 깨웁니다. 애 엄마도 고단한 몸이라 겨우 일어납니다. 애 엄마가 먼저 씻는방에 들어가고, 딸아이는 애 아빠가 옷을 벗겨서 나중에 들어갑니다. 물통에 들어가 앉은 애 엄마가 딸아이를 안습니다. 저는 한손으로 아기 귀를 막은 채, 한손으로 바가지에 물을 퍼서 아기 몸에 끼얹습니다. 어제까지는 작은 통에 물을 담아서 손바닥으로 끼얹으며 씻겼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제대로 씻겨 봅니다.

 다 씻기고 나와서는 떡집으로. 이렇게 새벽 아침 낮나절을 보내고야 떡집으로 가는 길입니다. 무거운 쌀짐을 이고 가기 앞서까지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몸은 몸대로 고단하면서 짐은 짐대로 무거우니 다리가 후들거릴밖에요. 게다가 아기를 낳아 기르는 동안 몸무게가 7킬로그램쯤 빠지며 힘도 많이 줄었으니 더욱 후들거리고요.

 그래도 떡집까지 가까스로 쌀을 다 지고 안고 찾아갔습니다. 안은 쌀과 진 쌀을 내려놓으니 팔과 등이 가볍습니다. 아니, 등짝이 없는 듯하고 팔이 없는 듯합니다. 문득, 군대에서 훈련 뛴다며 완전군장에다가 부대 깃발 들고 전화기를 목아지에 걸친 데다가, 탄약통까지 군장 위에 올려놓고 낑낑대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 내 군장 무게도 오늘 쌀 무게에 버금갔을 텐데 그때는 어떻게 용케 버티면서 여덟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걸었을까 놀랍습니다. 낙오는커녕 낙오하는 후임병들 군장을 뒤에서 밀어 주고 앞에서 잡아당기고 하면서 산길을 타고 오르기까지 했으니 ……. 하기는, 그때는 지금과 견주면 몸무게가 십 몇 킬로그램이 더 나갔으니 힘이야 더 있었을 테고 젊기도 젊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배고픈 애 엄마한테 밥을 먹이려고 밥을 차리고 찌개를 끓입니다. 그런데 애 엄마는 맛있게 먹기는 먹었으되 조금 많이 먹은 탓에 그만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하고 더 먹어대어 탈이 납니다. 애 엄마한테 식사장애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밥차림 부피를 늘 제대로 못 맞춥니다. 딱 알맞게끔, 아니면 조금 모자라게끔 해야 하는데. 탄수화물을 안 먹이든지 아주 조금만 먹이든지.

 탈이 난 애 엄마는 저녁 여덟 시부터 밤 두 시 가까이까지 힘겨워하며 게워내고 끅끅거리다가 겨우 잠이 듭니다. 애 엄마가 잠이 들 때까지 애 아빠는 팔다리와 등허리를 주무르고 안아 주고 등을 비벼 주고 합니다. 이동안 딸아이는 때맞춰 오줌을 누면서 기저귀갈이를 시킵니다. 그래도 낮에 똥 한 번 누고 저녁에는 안 누어 주니 이만 해도 고맙습니다. 오늘은 어인 일인지 잠투정도 얼마 안 하고 고이 잠들어 줍니다. 이리 귀여울 수가.

 애 엄마가 자리에 눕고 나서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이 흐릅니다. 애 아빠도 자리에 눕고 싶으나 어느새 잠이 싹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동안 밀려 있는 기저귀를 빨 엄두는 못 냅니다. 팔과 팔꿈치가 너무 아프기 때문입니다. 새벽과 낮에도 기저귀를 빨고 물을 짤 때 손목과 팔꿈치가 저릿저릿해서 ‘이러다가 앞으로 어쩐담?’ 하는 소리가 ‘아이고 아이고!’ 소리와 함께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이제 슬슬 몸뚱아리가 더 버티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니 잠자리에 들면 달게 잘 수 있을 듯한데, 새벽 다섯 시가 넘어서야 잠이 들면 언제쯤 깨어날까요. 아니, 딸아이는 새 하루에도 어김없이 새벽같이 눈 번쩍 뜨고는 까르르 웃어대면서 놀아 달라고 할 텐데, 애 아빠는 얼마나 아이 웃음을 모르는 척하면서 잠자리에서 꼼지락거릴 수 있을까요.

 속탈이 난 애 엄마 등을 어루만지면서, 애 아빠가 집일이 아닌 바깥으로 나가서 돈버는 일을 했다면, 이 모든 집살림에서 홀가분하거나 느긋할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돈만 벌고 들어오면 애 엄마가 혼자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하며 마음이 갑갑해지기도 하는지를 조금도 못 느끼지 않았겠느냐 싶습니다. ‘출산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모습을 하나도 못 느끼면서 닦달을 하지 않았으랴 싶습니다. ‘벌 수 있을 때 밖에서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둘레에서 자꾸자꾸 말을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벌어서 어디에 쓰는가를 헤아린다면, 저로서는 돈은 조금 적게 벌더라도 딸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뿐 아니라 함께 돌보고 함께 자라고 함께 놀고 함께 생각하면서 살 때가 돈으로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고마운 삶을 배우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렇게 딸아이 옆에 있고, 애 엄마 곁에 있는 일이, 돈으로 아기돌봄이 아줌마를 사서 쓸 때보다 훨씬 사랑 나누는 일이요, 한결 사랑 키우는 일이 아니겠느냐 싶어요.

 애 아빠는 젖을 물릴 수 없으니, 오롯이 애를 키운다고 할 수 없습니다만, 여러모로 많은 대목에서 아이를 키우는 한편,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치고 힘든 애 엄마를 키우고(돌보고) 있습니다. 흔히들, ‘엄마 한 사람이 아이와 아빠를 키운다’고 하는데요, 우리 집에서만큼은 ‘아빠 한 사람이 아이와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지요, 옆지기도 이런 말을 하고 저도 이런 생각, ‘두 여자를 키우는 한 남자’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애 아빠가 애 엄마와 딸아이를 키운다기보다, 애 아빠가 애 엄마하고 딸아이한테 배운다는 느낌이 짙게 들곤 합니다. 먹여살리지 살림하지 뒤치닥꺼리와 앞치닥꺼리 도맡지 하지만, 세상에 둘도 없이 깊은 가르침을 고마이 배우는 셈입니다. 가난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축복이라는 말씀처럼, 애 엄마와 딸아이 키우는 고단함은 오히려 애 엄마와 딸아이가 애 아빠를 키우는 첫손 꼽을 축복이지 싶습니다. 고단한 만큼 배우고, 고달픈 만큼 깨달으며, 지치는 만큼 느끼고, 벅찬 만큼 보람이 있습니다. 괴로운 만큼 기쁘고, 속썩이는 만큼 즐거우며, 애태우는 만큼 찡합니다.

 날마다 다짐합니다. 두 여자를 키우는 남자가 아닌 두 여자가 키우는 남자이고, 두 여자가 키워 주는 남자인 이 삶은 누구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다고. 가슴속에 켜켜이 묻어 놓고 싶습니다. 이 삶을. 몸뚱이에 알알이 새겨 놓고 싶습니다. 이 하루를. 마음밭에 차곡차곡 다져 놓고 싶습니다. 오늘 부대낀 온갖 일들을.

 눈물 한 줄기 눈가에 타고 흐릅니다. (4341.11.21.쇠.05:01.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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