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79 ―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사하라’를 사랑해
 : 싼마오, 《사하라 이야기》


- 책이름 : 사하라 이야기
- 글쓴이 : 싼마오
- 옮긴이 : 조은
- 펴낸곳 : 막내집게 (2008.7.21.)
- 책값 : 9800원



 (1) 겨우살이와 우리 길


 이제까지 제가 얻어서 살고 있는 집 가운데 따뜻했던 데는 아직 없습니다. 옆지기와 함께 살며 아기도 낳고 지내는 이 집 또한 겨울에는 춥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추위를 덜 탄다고는 하여도, 함께 사는 이는 추위를 안 탈 리 없고, 저는 그럭저럭 견디고 손이 얼어도 비비고 녹이며 산다 하지만, 함께 지내는 이는 몸을 옹송그리다가 괴로울 텐데, 제가 알아보며 얻는 집은 하나같이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넉넉한 돈으로 움직이면서 알아볼 수 없는 집이고, 제가 늘 짊어지고 다니는 여러 만 권에 이르는 책을 간수할 만한 자리를 헤아리자면, 사람 삶이 고단할밖에 없는 응달자리에서만 맴돌게 되는가 싶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좀 따뜻하게 몸을 뉘이고 녹이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얻고 싶은데, 우리 형편에 우리 동네에서 이와 같은 집자리가 나올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구나 이 동네가 오로지 높은층 아파트로만 다시 때려짓는 ‘구도심 재개발’로 허물리게 된다면, 우리가 갈 곳이란 고향동네에서는 아무 데도 없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하는 살림이 아니라, 이를 앙다물고 떠나야 하는 판입니다.


.. 나는 까무러칠 듯 놀라 할아버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물었다. “위대한 예술가여, 이것들을 살 수 있나요?” 나는 손을 뻗어 사람 얼굴 조각을 집어들었다.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토록 투박하고 감동적인 자연의 창작물이라니! 빼앗아서라도 갖고 싶었다 … 나는 그날 밥도 먹지 않고 바닥에 누워 그 위대한 무명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동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사하라위족 이웃들은 내가 이 예술품을 사는 데 1천 페세타나 썼다는 것을 알자 나를 마구 비웃고 백치 취급까지 했다 ..  (233∼234쪽)


 옆지기가 말합니다. 겨울에는 집을 두고 따뜻한 데를 찾아서 나들이만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백일이 채 안 된 갓난쟁이를 안고 업고 다니기에는 수월하지 않지만, 옆지기 말마따나 그리 떠돌아다녀야 할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가 떠돌아다녀도 달삯은 나가게 마련이라 만만찮은 달삯이 허리를 휘게 할 터이나, 혼자 꾸리는 삶이 아니기에 옆지기 말을 흘려들을 수 없습니다.

 한편, 추운 날엔 추운 대로 받아들이고, 더운 날엔 더운 대로 맞아들이면서, 몸은 고달프더라도 마음은 느긋하게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겨울이니 찬물에 언손 녹이며 빨래를 합니다. 여름이니 시원한 물에 더위를 씻으며 빨래를 합니다. 겨울이니 집에서도 옷을 여러 벌 껴입으며 지내고, 여름이니 집에서는 반바지 하나만 걸치면서 지냅니다.

 다만, 우리는 고단함을 부러 찾아나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골목동네에서 골목집 한켠에서 옹크리고 있는 사람일 뿐입니다. 아파트 같은 데에 들어갈 마음도 없지만, 아파트 같은 데에 들어갈 만한 살림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 형편이 이러하니 이만큼 살고, 무언가 더 얻거나 가지고픈 마음이 없으니 이 자리에서 흐뭇하게 여기며 살 뿐입니다.


.. (운전면허) 시험지에 적힌 문제는 이러했다. “1. 차를 몰고 가는데 빨간불이 켜지면? (1) 그냥 지나간다 (2) 멈춘다 (3) 클랙슨을 마구 누른다. 2. 차를 몰고 가는데 횡단보도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 (1) 손을 흔들어 행인이 빨리 지나가도록 한다 (2) 무시한 채 지나간다 (3) 멈춘다” 두 장의 커다란 시험지에 적힌 문제들은 모두 이렇게 배꼽 빠지는 것들이었다. 나는 꺽꺽 하고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억누르느라 사레가 들어 혼났지만, 번개처럼 답을 써 내려갔다. 맨 마지막 문제는 이러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천주교인이 성모마리아상을 메고 지나가면? (1) 손뼉을 친다 (2) 멈춘다 (3) 무릎을 꿇는다” ..  (193쪽)


 엊저녁, 옆지기가 묻습니다. “당신, 만들고 싶어하는 국어사전을 만들지 못하고 죽으면 억울하지 않아요?” “그다지. 만들 수 있으면 만들겠지만, 만들 수 없으면 못 만들 뿐이지.” “나도. 못 만들어도 억울하거나 아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속에 품고 있는 꿈이고, 이 꿈을 이루려고 더딘 걸음을 참 더디게 걷고 있는 ‘국어사전 엮기’입니다. 우리한테 있어야 하는 국어사전이라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낱말을 어떻게 그러모으고 어떤 풀이와 보기글을 다는 한편, 어떤 짜임새로 내놓아야 하는가를 밑그림을 마련해 놓기는 했지만, 이러한 꿈을 이루면 즐겁고, 이루지 못해도 아쉽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 할 뿐이지, 할 수 없는데 억지로 밀어붙일 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대로 하지, 주어지지 않은 몫을 할 수 없습니다. 저한테 돈이 넉넉하게 있다 한들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제 일을 거들 도움이가 많다 하여 이룰 일이 아닙니다. 내 살림 흐름과 세상 흐름이 맞아떨어질 때 비로소 할 수 있습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며 차곡차곡 읽고 곱새기면서 간직해 온 여러 가지 책들을 마련해 놓은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들을 알아보거나 즐기려고 꾸준히 찾아와 주는 분들이 있다면 고맙기도 고맙지만, 저한테 고맙기보다는 그분들한테 고맙습니다. 그분들한테는 새 세상을 열 책길을 만나고, 새 눈길을 틀 책눈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저야, 우리 도서관 책을 더 널리 나누지 못하더라도 아쉬움이 없습니다. 알아볼 사람은 언제든 알아볼 책이었고,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앞으로도 알아보지 못할 책인데, 이 책들이 어떻고저떻고 미주알고주알 떠들면서 ‘책 좀 읽으시지?’ 하고 옷소매를 잡아당길 수 없습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백만 번 외친들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겠습니까.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중얼중얼 읊조린들 우리가 깨우치겠습니까. 우리가 하느님 믿음을 나누자면 하느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도를 깨우치려면 도 닦인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책으로 살고 책으로 믿으며 책으로 길을 걷습니다. 그 모양 그대로 책이 삶으로 되어 도서관을 동네 한켠에 열었 놓았을 뿐입니다. 가슴에 품은 국어사전 엮는 일 또한, 내 삶이 말이 되고, 말이 삶으로 녹아나고, 말마디와 글줄과 삶자락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도록 살아가기 때문에 꿈 하나가 됩니다.


.. “빨리 좀 몰아. 기숙사에 혼자 사는 친구들 불러다 저녁 먹자!” “생선은 절여 두고 먹을 거 아냐?” 호세가 물었다. “처음이니까 손님을 초대해 한턱 내자. 그 사람들 평소에 잘 못 먹잖아.” 호세는 무척 즐거워했다.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맥주 한 상자와 포도주 여섯 병을 사서 손님을 초대했다 … 여러 대의 자동차가 해안선을 따라 신나게 질주했다. 밤에는 야영을 하며 (물)고기를 구워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도 없이 나눴다. 이렇게 노는데 어찌 즐겁지 않을 수가! 돈을 모으려던 다짐은 알게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  (140쪽)


 (2) 앎 쪼가리와 사람 사는 길


 어제와 그제 밥을 태웠습니다. 이제껏 밥하기를 하며 밥을 태운 일이 없었는데, 밥을 태웠습니다. 밥을 하건 찌개를 끓이건 늘 옆에서 책을 펼쳐들면서 했으니 태울 일이란 없었는데, 어제와 그제는 방에서 언몸을 녹이면서 글쓰기를 하다가 밥을 태웠습니다. 그러나 탄밥은 탄밥대로 맛이 있었고, 까맣게 눌러붙지는 않았으니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다만, 어쩌다가 밥을 태울 만큼 마음을 놓고 말았나 싶어 속이 쓰립니다. 내가 이렇게 내 몸 하나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사나 싶어 허전합니다.


.. 하루는 이웃집 꼬맹이 라푸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집채만 한 낙타 시체가 문 앞에 놓여 있었고, 바닥은 시뻘건 피로 흥건했다. 나는 기겁을 했다. “엄마가 이 낙타를 아줌마네 냉장고에 좀 넣어 두래요.” 나는 고개를 돌려 조그만 냉장고를 바라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라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라푸, 엄마한테 너희 집 큰 방을 나한테 반짇고기로 쓰라고 주면, 이 낙타를 우리 냉장고에 넣어 준다고 해라.” 라푸는 곧바로 물었다. “아줌마 바늘이 어디 있는데요?” 당연히 낙타는 우리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라푸 엄마는 거의 한 달 동안 굳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단지 이 말 한 마디만 했다. “내 부탁을 거절하다니, 당신은 내 자존심을 건드렸어요.” ..  (122쪽)


 어제 우리 집에 온 《함께 웃는 날》이라는 잡지 3호를 보니, 장애 있는 아이를 둔 어느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합니다. “만약 아이한테 장애가 없었으면 난 아주 극성스러운 엄마가 되었을 거다. 요즘 엄마들처럼 아이한테 마구 욕심을 부리며 괴로워하고 아이도 괴롭히지 않았을까. 다른 엄마들이 나보고 성격 좋다는 말 많이 한다. 그게 다 아이 덕분이다. 내가 겸손해졌다.(9쪽)”

 저도 느끼고 옆지기도 느끼지만, ‘남자’라고 하는 사람은, ‘아버지’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얼마나 딱한지’ 모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못 느끼고 못 깨닫고 못 배우는 대목이 얼마나 많고 큰지 모릅니다. 세상 모든 일을 몸소 겪거나 부대껴야만 알지는 않아요. 그러나 말입지요, 몸소 겪거나 부대끼지 않을 뿐 아니라 눈길 한 번 두지 못하게 되는 매무새로 굳어져 가기 때문에 말썽입니다.

 아이를 낳아 보지 못하고 길러 보지 못하니, 아이낳기와 아이기르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버릇합니다. 어린이를 어린이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여자를 여자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나라밖 사람들, 이 가운데 이주노동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합니다. 몸 한쪽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장애인을 장애인 그대로 껴안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꾸밈없이 부둥켜안지 못할 뿐더러, 힘이 여린 사람과 돈이 모자란 사람과 이름이 없는 사람을 따뜻하게 감싸안지 못하고 맙니다.


.. 여자들은 모두 작은 돌멩이를 물에 적셔 몸을 문질렀다. 한 번 문지를 때마다 시커먼 때가 주룩주룩 밀렸다. 그들은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고 물도 많이 쓰지 않았다. 온몸의 때를 모조리 벗겨 내면 비로소 물을 끼얹었다. “4년 만이에요. 4년 동안 목욕을 못했어요. 난 샤이마에 살아요. 아주아주 먼 사막에 있는…….” … “당신은 왜 안 씻어요? 돌을 빌려 줄까요?” 그녀는 상냥한 표정으로 내게 돌을 건네주었다. “전 때가 없어요. 집에서 씻었거든요.” “때도 없는데 뭐 하러 왔어요! 목욕은 나처럼 3∼4년에 한 번씩 하는 거라고요.” ..  (92∼93쪽)


 우리 아버지를 보면서, 또 옆지기 아버지를 보면서, 또 동네뿐 아니라 서울이고 어디에서고 부대끼는 숱한 ‘남자’들을 보면서, 이이들이 얼마나 스스로 어리석은 줄도 모르고 이처럼 막나갈까 싶어 안쓰럽습니다. 지식으로만 알 때하고 몸으로도 알 때가 사뭇 다른데, 지식으로 좀 겉핥기를 해 보았다고 우쭐대는 사람이 많아서 놀랍니다. 겉핥기가 마치 모든 모습을 다 깨우친 일이라도 되는 듯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많은 모습을 보며 더 크게 놀랍니다.

 어쩔 수 없을까?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손을 놓아도 되느냐? 싶으면서도, 다 제멋에 따라 사는데 무어라무어라 할 수 있나? 싶으면서도, 나도 너도 우리도 누구나 다 지 잘난 줄 아는데? 싶으면서도, 숨이 자꾸자꾸 막힙니다.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립니다.

 얼마 앞서 《논 생물도감》이라는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ㅂ출판사에서 농사일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온 적이 있지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논농사’ 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게끔 다룬 책은 아직 우리 나라에서 한 번도 안 나온 줄 압니다. 그나마 밭농사 이야기를 다룬 책은 더러 있습니다. 감자 농사나 고구마 농사나 텃밭 농사 이야기는 좀 있습니다. 그리고 ‘뜰(정원) 가꾸기’ 책은 제법 많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늘 먹어야 한다고 하는 쌀을 어디에서 어떻게 가꾸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룬 일반교양책은 한 권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는 없어도, ‘전원생활’이나 ‘전원주택 생활’ 이야기를 다루는 잡지는 있고, 꽤 팔리는 우리 형편하고 똑같습니다. 그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갑니다.

 늪을 다룬 책, 갯벌을 다룬 책, 산 이야기와 바다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많지만, 정작 논을 다룬 책은 참으로 드뭅니다. 논에서 농사짓는 이야기라든지, 논에 어떤 목숨붙이들이 살고 있는가를 다룬 책은 아예 눈씻고 찾아볼 수 없습니다.


.. 그리하여 우리는 현지 법원으로 가서 결혼 절차를 알아보았다. 법원 서기는 백발의 스페인 남자였다. “결혼하시게요? 아이고, 우리는 지금까지 결혼 절차는 한 번도 처리해 본 적이 없는데……. 당신들도 알다시피 여기 사하라위족은 자기네 풍속대로 결혼하니까 말이에요. 일단 법률책을 좀 찾아보고…….” 서기 선생은 책을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결혼 공증이라…… 아, 여기 있네요. 이겁니다. 출생 증명, 독신 증명, 거주지 증명, 법원 공고 증명…… 여자 분 서류는 대만에서 가져와야 하고, 다시 포르투갈 주재 대만 공사관에서 번역 증명을 받아야 해요. 증명이 끝나면 포르투갈 주재 스페인 영사관에서 공증을 받고, 그 다음에 스페인 외교부에서 심사를 받고, 심사가 끝나면 여기서 우리가 보름 간 공고를 하고, 다시 두 사람의 결혼서류를 마드리드로 보내 당신들의 과거 호적지 법원에 공고하고…….” ..  (26쪽)


 잘 익은 감을 먹으면 굵고 딱딱한 감씨가 나옵니다. 이 감씨를 심으면 무엇이 싹틀까를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감 열매 얻는 감나무는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아는 이는 몇이나 있을지 궁금합니다. 감을 안 먹는 한국사람 드물고 감잎차 안 좋아하는 한국 지식인 드물 텐데, 감씨를 심어서 무엇이 나오는지를 아는 사람은, 감잎이 어찌 생겼고 감꽃은 어떤 빛깔 어떤 크기 어떤 맛인지 아는 지식인은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최순애 님이 지은 어린이노래 〈오빠생각〉을 아기한테 불러 주곤 합니다. 우리 두 사람은 ‘잘못 알려진 노래말을 바르게 고쳐서’ 불러 줍니다.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면 비단댕기 사 가지고 오신답니다.” 이원수 님이 지은 어린이노래 〈고향생각〉도, 당신이 살아 계실 때 그리 고쳐졌으면 하고 바랐지만 사람들이 워낙 입에 굳어서 고치지 못하니 그대로 둘 수밖에 없다고 했던 아쉬움을 털어서 한 군데만 고쳐서 부릅니다. “우리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사람들 누구나 부르는 노래입니다만, 뜸북새를 본 젊은 사람은 이 나라에 없을 테고, 살구꽃 봉오리를 쓰다듬어 보면서 얼마나 곱고 향긋한가를 느끼고 나서 살구비누를 써 보는 사람도 이 나라에 없지 않으랴 싶습니다.

 저는 살구나무며 살구꽃은 보았어도 뜸북새는 못 보았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이 나라에서는 뜸북새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논에서 사는 뜸북새인데, 논에 비료와 농약 안 치는 농사꾼이 얼마나 됩니꺼. 뜸북새가 살려면 농사꾼이 낫으로 벼를 베어야 하는데, 기계 안 쓰며 가을걷이를 하는 농사꾼이 얼마나 됩니꺼. 우리 먹는 쌀에 농약과 비료가 얼마나 듬뿍듬뿍 쳐지고 있는 줄 압니꺼.


.. “언젠가 우리는 이 황량한 벌판에서 죽고 말 것 같아.” 나는 한숨을 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왜?” 차는 덜컹거리며 질주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달리면서 사막을 못살게 굴었잖아. 그의 화석을 캐고, 그의 식물을 뽑고, 그의 짐승들을 쫓고, 사이다병이며 종이 상자며 온갖 쓰레기를 그의 몸 위에 버려대고, 또 차바퀴로 마구 짓밟고 다니잖아. 사막은 그러는 게 싫대. 그러니까 우리 목숨으로 배상하래. 이렇게. 우우우우…… 우우우우…….” ..  (68∼69쪽)


 모르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알면서 움직이지 않는 일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 가지를 붙이고 싶습니다. 허튼 앎 찌끄레기를 잔뜩 붙잡으면서 맑은 앎 알맹이를 하나도 붙잡을 마음이 없는 일 또한 잘못이면서 더없이 큰 잘못이라고.

 교육이 말썽인 줄 안다면, 자기 딸아들한테 입시교육을 시킬 수 없는 데다가 섣불리 대학교에 보낼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교육이 말썽인 줄 알기에 사회와 정치도 말썽인 줄 알아야 하고, 사회와 정치가 말썽인 줄 알기에 경제가 말썽인 줄 알아야 하며, 경제가 말썽인 줄 알기에 문화와 예술도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말썽인 줄 알기에 과학과 기술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하고, 과학과 기술이 말썽인 줄 알기에 환경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하며, 환경이 말썽인 줄 알기에 말과 글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말과 글이 말썽인 줄 안다면 다시 교육이 말썽인 줄 알아야 합니다. 모두 돌고 돕니다. 어느 한 가지에서 고이거나 그치거나 맴돌지 않습니다. 교육비평을 할 줄 안다면 영화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하고, 영화비평을 할 줄 안다면 문화비평을 할 줄 알아야 하며, 문화비평을 할 줄 안다면 정치비평 또한 할 줄 알아야 하고, 정치비평을 할 줄 안다면 우리 말과 글 비평까지 할 줄 알아야 하는 가운데, 우리 말과 글을 비평할 줄 안다면 교육비평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안다’는 사람은 무엇을 알고 있으려나요. 사하라에 사막이 있는 줄은 아나요. 그러면 사막이 왜 있는 줄은 아나요. 사막에는 누가 사는 줄 아나요. 사막에서 사는 사람은 어떤 삶을 꾸리는 줄 아나요. 사막에서 살 때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줄 아나요.

 한국땅에는 무엇이 있는 줄 아나요. 한국땅에서 살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나요. 한국땅에서 한국사람으로서 즐겁게 살자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놀이를 하며 어떤 이웃과 동무삼으면서 살아야 하나요. 한국에서 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 “축하! 축하!” “어? 천리안이 달렸나?” “감옥 옥상에 있는 죄수들이 말해 줬어.” 울타리 안에 갇힌 사람들이 울타리 밖의 사람들보다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정말 나쁜 사람은 마치 전설 속의 용처럼 마음대로 커졌다 작아졌다, 숨었다 나타났다 하기에 붙잡을 수도 없고 가둬 둘 수도 없을 것이다. 점심 준비를 하는 사이에 호세더러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 콜라 두 상자와 담배 두 보루를 가져다주고 오라고 했다. 그들은 마치 고적대처럼 나를 응원해 주었다. 나는 그들을 깔보지 않았다. 나나 그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으니까 ..  (197쪽)





 (3) 사막을 사랑한 사람들 이야기


 1인 출판을 하는 ‘막내집게(인터넷 블로그 : blog.naver.com/makzip)’에서 첫 번째 책으로 《사하라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읽는(어쩌면 예전에 읽고도 잊어버렸을 수 있지만) 대만문학 ‘싼마오’ 작품인데, 출판사 블로그에 적힌 글을 살피니, 1990년대에 여러 번, 그리고 2001년에 마지막으로 옮겨지곤 했던 책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앞서 나온 싼마오 책은 모두 판이 끊어진데다가 정식계약을 해서 나온 책은 따로 없었다고 합니다.

 어쩌면, 1인 출판 길을 걷게 된 펴낸이이자 옮긴이께서는, 얼결에 출판등록을 해서 갑작스레 이 책을 옮겨서 펴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차례 나온 적이 있음에도 굳이 이 책을 다시 펴내는 까닭, 아니 새로 우리 말로 옮기고 새 옷을 입혀서 펴내는 까닭이 있습니다. 펴낸이이면서 옮긴이로서는, 당신이 “좋아하는 책”을 즐겨읽으면서 사랑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옮겨냅니다. 당신 마음을 사로잡았던 좋은 책이었기에 앞으로도 오래오래 많은 이들한테 사랑받으면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새로 옮겨서 펴냅니다. 누구보다도 글쓴이 싼마오를 그리워하고 아끼기에 책을 낼 수 있고, 꿋꿋하게 출판사 문을 열고 있는 동안에는 다시는 《사하라 이야기》가 숨을 거두어 사라지는 일이 없을 테지요. 번역 글월도 ‘자기가 아끼는 작품’이기 때문에 더 땀을 들이고 마음을 쏟아서 알뜰히 여미어 내게 됩니다. 펴낸이와 옮긴이 두 가지 몫을 함께하고 있는 분은 “도대체 왜 싼마오가 호세에게 존댓말을 쓰는 건지? 중국어에는 존댓말도 없고, 둘은 오랜 친구 사이였는데.” 하고 이야기합니다.


.. “우리에겐 왜 가구가 꼭 있어야 할까? 왜 사하라 사람들처럼 평생 자리 하나만 깔고 살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그들이 아니니까.” “왜 우리는 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지?” 나는 세 개의 판자를 껴안은 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면 그들은 왜 돼지고기를 안 먹을까?” 호세가 웃으며 반문했다. “그건 종교적인 문제지, 생활방식의 문제는 아니잖아.” “그럼 당신은 왜 낙타도기를 안 먹어? 기독교 신자는 낙타를 먹으면 안 되나?” “내 종교에서 탁타는 바늘구멍에 밀어넣는 데나 써먹지 다른 데는 안 쓴다네.” “그러니까 우린 가구가 있어야만 생활이 비참하지 않아.” ..  (218∼219쪽)


 사막을 사랑한 싼마오이고, 이런 싼마오를 사랑한 투박한 스페인 사내 호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한테 따습고 넉넉할 보금자리를 사막에 마련했습니다. 누구 보란 듯이 마련한 삶터가 아닌, 서로 즐기려고 마련한 삶터입니다. 싼마오가 남긴 글 《사하라 이야기》는 사람들한테 읽히려고 쓴 글이라 할 테지만, 남들한테 읽히기 앞서 싼마오와 호세 둘이 보낸 발자취가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그저 두 사람 삶자락을 적바림해 놓았다고, 꼭 일기를 쓰듯 남겨 놓았구나 싶습니다.

 ‘사막으로 오셔요. 사막은 참 좋답니다!’ 하고 외치는 책이었다면 곧바로 덮거나 집어치웠을 텐데, ‘나는 사막이 좋아. 그래서 사막에서 살지.’ 하고 조곤조곤 말문을 여는 책이기에 책상맡이나 잠자리에 얌전히 놓고 쉬엄쉬엄 읽었습니다. 제 손을 떠날 이 책은 곧 ‘사막과 고래를 좋아하는’ 우리 옆지기 손에 쥐어질 테고, 옆지기는 아기를 품에 안은 채 아기한테 또박또박 읽어 주면서 함께 가슴으로 받아들이리라 봅니다.


.. 처음으로 사하라를 가로지르며, 우리는 둘 다 사막이 만든 사랑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제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이 황야를 결코 떠날 수 없게 되었다 ..  (225쪽)


 어느새 날이 밝아 자판이 다 보이게 되는군요. 이제 곧 해가 나면 집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질까요. 새벽바람은 쌀쌀하니 보일러 살짝 돌리고 밀린 기저귀 빨래를 해야겠습니다. (4341.11.1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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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문학에서 손꼽히는 싼마오는 1943년 중국 쓰촨 성 충칭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옮겨서 살았습니다. 마음 넓고 넉넉한 부모와 함께 살다가 틀에 박힌 학교에서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고 난 뒤 가정교육을 받았습니다. 스물네 살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고, 1973년 북아프리카 서사하라에서 스페인 사내 호세와 혼인하여 살아갑니다. 이곳에서 살던 이야기를 쓴 첫 작품이 《사하라 이야기》이고, 이 책에 쏟아진 사랑에 힘을 얻은 싼마오는 부지런히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그 뒤 《흐느끼는 낙타》와 《허수아비의 수기》와 《너에게 말 한 필을 보낸다》 들을 펴냈습니다. 그러다가 1979년 호세가 잠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싼마오는 대만으로 돌아옵니다. 문화대학에서 문학창작을 가르치며 글쓰기와 강연을 이어갔는데, 《곤곤홍진》을 마지막으로 1991년에 마흔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대만 황관출판사에서 모두 스물일곱 권에 이르는 전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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