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글쓰기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아버지한테 했다는 소리. “글을 쓰려면 그렇게 하지 마라!” 글쓰기란, 배부른 가운데 할 수 없고, 어깨에 힘주면서 할 수 없으며, 머리속에 든 지식을 자랑하면서 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 된 사람으로서 아버지를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느냐만, 아버지가 글쓰기에 마지막 삶을 바치겠다고 다짐을 하셨다면, 나 또한 “아버지는 글을 쓸 생각이라면 이렇게 하시면 안 되지요!” 하고 말씀드리고 싶다. 글쓰기란 자기 삶을 낯모르는 사람들 누구한테나 숨김없이 내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제 모든 피와 살을 남김없이 발라내고 도려내는 일이기 때문에. 글쓰기란 밥을 하듯 빨래를 하듯 걸레질을 하듯 품과 땀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일값을 알아주는 사람 없고 일삯을 쳐주는 사람 또한 없기 때문에. 글쓰기란 이 나라 농사꾼과 공장 노동자처럼 일한 대가인 품삯은커녕 밥푼이나 얻어먹을 만큼도 돈을 벌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가 나한테 들려주는 이야기. “앞으로도 그러고 살 거냐?” 글써서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고된 줄을 당신 마흔 해 넘는 ‘글쓰기 삶’이 찬찬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나처럼 된다.”는 당신 말씀처럼, 아직 어려만 보이는 조카 같은 아이가 걱정스럽기 때문에. 나야 글줄 붙잡는다고 깝죽을 떨기는 할 터이나, 옆지기와 딸아이 앞날은 어둡고 배고프고 힘겨울 수 있기 때문에. 나야 글쓰며 나누는 보람을 얻을지 모르지만, 애써 쓴 글에 서린 땀방울을 알알이 느끼거나 받아먹어 줄 사람은 이 나라에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나야 내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고 할 테지만, 돈이 안 되는 글은 거들떠보지 않을 뿐더러, 시가 시 아닌 대접을 받듯, 우리 말 이야기나 헌책방 이야기 따위는 한물도 아닌 두물 세물 네물 닷물이 간 이야기인데다가, 세상 흐름과 거스르게 된다고들 여기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와 오랜 술동무인 시인 아저씨하고 처음으로 막걸리잔을 부딪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서 뻗어 버리고 새벽 세 시 오십사 분에 일어나서 차가운 마룻바닥에 놓은 셈틀 앞에 앉아서 아침 여덟 시 오십일 분까지 쉼없이 글을 쓴다. 어제 하루 내 못 쓴 글을 부지런히 쓰고, 오늘 하루 쓰고자 마음먹고 있는 글을 내 딴에는 야무지게 붙잡으며 쓴다.
그러나 글만 쓸 수 없어서, 언손을 비비다가는 옆지기와 아기 자는 방에 불을 넣고 나서, 뒷간에서 따순 물이 나오니 기저귀 담근 빨래통에 물을 받아서 ‘손 녹이기 빨래’를 한다. 겨울이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에, 방에 불을 넣고 나면 보일러가 물도 덥혀 놓고 있기 때문에 이 물을 쓰면 빨래가 한결 손쉽고, 글을 쓰면서 딱딱하고 차갑게 굳어 가는 손가락에 보드라운 기운을 입힐 수 있다.
아직도 펄펄 날뛰는 모기 몇 마리를 잡다가는, 이제 나도 더 버틸 수 없어서 잠이 들어야겠는데, 잠을 잔다 해도 얼마나 자는 셈일까. 자기 앞서 콩과 쌀과 보리를 씻어서 불려 놓아야겠다. (4341.11.16.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