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박영희 지음, 강제욱 외 사진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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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62 ― 사라지는 사람은 수공업자가 아닌, ‘착한’ 사람들
 :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 책이름 :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
- 글 : 박영희
- 사진 : 조성기, 강제욱, 안성용, 안중훈, 정윤제, 장석주
- 펴낸곳 : 삶이보이는창 (2007.11.17.)
- 책값 : 11000원



 (1) 누구 맘대로 ‘사라지는 직업’이라 말하는가


 엊저녁 ㅁ방송국에서 헌책방 이야기를 방송으로 찍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네들은 헌책방을 다녀 보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추억으로 남겨지며 사라지는 헌책방인데 이 헌책방을 아끼고 사랑하며 찾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찍겠다고 합니다.

 스스로 아직 찾아가 보지 않은 곳을 애써 찍으면서, 사람들한테 널리 알리겠다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부딪혀 보면 깜냥껏 길찾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저 같은 사람한테 이렇게 불쑥 연락을 해서 오늘내일 사이에 짬을 내어 도와 달라고 하지 마시고, 시중에 나와 있는 ‘헌책방을 말하는 책’도 있으니까, 그 책부터 먼저 사서 읽으신 다음, 가까이에 있는 헌책방을 몸소 찾아가 보시라고 말씀드린 다음 전화를 끊습니다.

 아직 하나도 모른다고 하는 헌책방을 찍는다는데, 저든 다른 누구든 옆에서 도와주면서 이곳저곳 찾아가서 찍는다고 할 때에는, 길잡이가 일러 주는 대로만 찍게 되지, 찍는 분들 스스로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헌책방을 담으려고 하는가를 엮어내기는 어렵기 마련입니다. 좀 어설프게 되더라도, 손수 헌책방 나들이를 해서 책 구경을 하고 다문 몇 권이나마 책을 사고, 또 산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헌책방에는 어떤 맛과 냄새가 스며 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더 널리 세상을 보고 더 깊이 사람을 만나면서 몸으로 부대껴야지요. 지금은 헌책방 한 가지이지만, 앞으로 찍을 수많은 사람 삶과 발자취이니, 찍는 시간이 짧더라도 그 짧은 동안에도 확 뛰어들려는 매무새를 길러야지 싶습니다.


.. “누군가 제과점에 1억 원을 투자해 하루 50만 원어치의 빵을 팔았는데도 불구하고 한 달 500만 원을 적금으로 붓기가 어렵다면, 저는 1000만 원을 투자해서 하루 5만 원어치의 빵을 팔고, 한 달 50만 원을 적금으로 붓는 쪽에 주사위를 던지겠습니다. 이 가게를 연 건 우리 빵을 내 손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지 떼돈을 벌어 보려고 한 건 아니었거든요.” ..  (66쪽)


 이달에 나온 사진잡지 ㅍ을 보니, 여러 가지 사진잔치 소식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저런 사진잔치 가운데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낯익은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우리 동네 헌책방골목에 있는 〈집현전〉 헌책방 할머니가 당신 일터 앞에서 활짝 웃는 얼굴입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내건 사진잔치 이름은 “사라져가는 직업들”. 사진잔치를 짤막히 알려주는 글을 보니, “1990년대부터 우리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인 사업자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업종 중 진보하지 못한 업종들을 촬영한 사진을 통해 삶과 사회적 변화 혹은 소외받은 이들을 다시 한 번 조명하는 전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진잔치 대표작으로 앞세우는 ‘동네 헌책방 할머니’는, 사진작가께서 이야기하려는 두 가지 이야기감 가운데 어느 쪽일지 궁금합니다. ‘우리 둘레에서 찾아보기 힘든 개인 사업자’인지, ‘흔하게 볼 수 있으나, 스스로 발돋움하지 못해 사라지는 사업자’인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이 찍은 헌책방 할머님한테도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진잔치에 초대장을 보내주었을까 궁금합니다. 헌책방 할머님이 초대장을 받았다고 한다면,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는 이름으로 당신 얼굴이 맨앞에 실린 사진을 보면서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일지 더없이 궁금합니다.


.. “고부(5부)를 올라서야 기술자 소리를 듣는데 이때가 가장 지겨운 기라. 같은 기술자라도 장가든 놈부터 고부로 올려줬다 아이가. 지금 와 생각해 보니까네 어른들의 마음이 이해는 된다. 처자식이 있는 놈부터 먼저 승진시켜야 세상 도리가 아니겄나?” ..  (84쪽)


 가만히 보면, 헌책방이라는 곳은 헌책방을 즐겨찾는 이들 스스로 깎아내리거나 갉아먹습니다. 배운 분들은 배운 분들대로 ‘헌책방 임자가 제값을 못 알아보고 싸구려로 넘겨주기를 바라는 소중하고 드문 책’을 눈밝히고 찾아내려고 애쓰기만 합니다. 적게 배운 분들은 적게 배운 분들대로 ‘헌책방하고 고물업이 뭐가 다르느냐’ 큰소리를 내며 ‘이깟 헌책 나부랭이 천 원 한 장이면 되지’ 하는 막말을 일삼습니다.

 그래도 헌책방이 이제까지 고이 버티면서 전국 곳곳에 점점이 뿌리내리면서 우리한테 고마운 책을 베풀어 올 수 있던 데에는, 얄궂은 책손은 꼭 있기 마련이지만, 얄궂지 않은 책손이 좀더 많았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눅은 값으로 팔아 주는 책 하나를 가벼운 주머니로도 넉넉히 장만하도록 해 주기에 고맙습니다. 다 읽은 책을 기꺼이 내놓아서 내가 헌책방에서 도움을 얻었듯 다른 이도 헌책방에서 도움을 받기를 바라는 사람들 손길을 느끼기에 고맙습니다. 저는 저대로 낯 모르는 분한테 도움을 받고, 낯 모르는 분은 또 그분대로 제가 헌책방에 내놓는 책으로 도움을 받습니다.

 지식을 담는 책입니다. 우리들은 책 하나 장만하여 읽으면서 한결 똑똑해지고 좀더 슬기로워질 수 있습니다. 지식을 다루는 슬기를 서려 놓은 책입니다. 우리들은 책 하나 장만하여 읽으면서 우리가 여태껏 얻거나 받은 지식을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나누면 좋은가를 깨닫고 느끼면서 새로워지곤 합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헌책은 새책 앞에서 기꺼이 고개를 숙입니다. 도서관 책 앞에서도 고개를 숙입니다. 고개가 빳빳한 새책방과 도서관은 언제나처럼 코도 높고 키도 큽니다. 그렇지만 새책방에 오래오래 머물 수 있는 새책들이 아니라, 사랑을 못 받거나 덜 팔리면 어느새 사라집니다. 출판사가 문을 닫으며 사라집니다. 도서관 책이라 하여 오래오래 책시렁에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조금 낡아지면, 대출실적이 없거나 적으면, 맞춤법이 옛것인 묵은 책이면 제자리를 비우고 다른 책이 들어서야 합니다.

 모든 상수도 물은 하수도 물이 있기에 흐를 수 있고, 모든 지하수는 땅으로 스미어 걸러지도록 하는 흙과 돌이 있어서 시원하면서 깨끗합니다. 비가 내리려면 말라서 하늘로 몽글몽글 올라가는 김이 있어야 합니다. 골짜기 물이 거침없이 흐르자면, 골짜기까지 천천히 솟아나는 밑바닥 물이 있어야 합니다. 헌책방은 늘 아랫자리에서, 밑자리에서 소리도 없고 소문도 없이 이어왔습니다. 이리하여 헌책방이라는 데를 ‘책을 읽으러’ 다녀 보지 못한 사람들 눈에는 예나 이제나 ‘사라져가는 곳’이나 ‘추억이 서린 곳’이나 ‘참고서 값싸게 사던 곳’이나 ‘포르노잡지를 몰래 훔쳐보던 곳’을 넘어설 만큼 바라보거나 느끼지 못합니다. 헌책방이 우리한테 내어준 품을 안아 보지 못했고, 헌책방이 우리한테 베풀어 준 사랑을 느껴 보지 못했어요.


.. “미용실이 생겨날 때만 해도 다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남자 손님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잖아. 그런데 남성전용 클럽은 느낌부터가 달랐어. 돈으로 밀어붙인다고 할까. 이 바닥은 이 바닥대로 쉬어 온 숨소리가 있는데 그 숨소리마저 돈으로 쓸어버릴 것 같았지.” ..  (114쪽)


 지난주에도 집에서 더는 안 보는 책이랑, 우리한테는 쓸모가 없으나 다른 이한테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여겨지는 책을 여러 꾸러미 헌책방에 가져다주었습니다. “선물입니다” 하고 말씀드리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우리로서는 이 책들은 마음에 담아낸 줄거리로 넉넉하고, 읽는 동안 가슴이 뿌듯해졌기 때문에, 그 일로도 얼마든지 값을 다했습니다. 이 책들을 헌책방에 내놓으면서 몇 푼이나마 값을 받아도 나쁘지 않지만, 우리 스스로 값을 안 받으면서 이 책들이 좀더 눅은 값으로 또다른 책손을 만나서 기쁘게 읽혀 주었으면 하고 꿈을 꿉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는 책쉼터가 되는 헌책방이, 앞으로도 꾸준히 살림을 알뜰살뜰 꾸리면서 우리 아이한테도, 또 우리 아이가 먼 뒷날 낳아 기를 아이한테도 언제나 가까이 찾아갈 수 있는 놀이터이자 책터이자 만남터이자 사람 부대끼는 삶터로 단단히 뿌리내려 주면 좋겠다고 비손을 올립니다.


.. 가만! 빠뜨린 게 하나 있다. 아침 7시 반, 출근을 너무 빨리하는 것 아니냐며 묻자 그는 출근하는 사람들을 걸고 넘어졌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그 시간에 자전거로 출근하는 사람이 바람을 넣으러 가게에 들렀다가 문이 닫혀 있으면 얼마나 허탈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적 세 방 중 한 방 정도는 공짜로 ‘빵꾸’를 때워 주던 ‘섬산 자전거포’ 그 아저씨를 닮은 듯했다 ..  (174쪽)


 (2) 사라지는 사람은 ‘착한’ 사람들


 사진이 퍽 많이 실려서 현장 느낌을 살려 주는 듯한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또 책을 덮은 뒤로 한참, 이 책에서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이야기가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 우리들이 보기에는 ‘사라져가는’ 무엇처럼 보일는지 모르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라진다’는 말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알맞지 않습니다. 이분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며 “사라져가는 직업들”이라 묶여지는 분들은, ‘푸대접받는’ 분들입니다. ‘따돌림받는’ 분들입니다. 늘 푸대접받고 언제나 따돌림받지만, 그러면서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당신 한길을 걸어온 분들입니다. 사람들이 무어라 하건 말건 당신 스스로 보람을 느끼면서 울고 웃으면서 이어온 일입니다. 벌이가 많건 적건 스스로 기쁨을 맛보면서 집안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쳐 온 일입니다.


.. 제대와 함께 복직을 했을 때다. 제과제빵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파리바게뜨’의 출몰은 소규모 제과점들을 한 방에 날려버렸고, 그 여파는 제과점을 상대로 경영을 해 온 밀탑까지 쓰러뜨려 버렸다 ..  (54쪽)


 사라지게 된다면 사라지게 되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랑을 받는다면 사랑받는 까닭이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수공업자, 우리 시대의 장인들》에 실린 사람들, 세공사와 제과제빵사와 선박 수리공과 이발사와 철구조물 제작사와 자전거 수리공 들은 왜 사라지게 되는 사람들, 사라지게 되는 수공업자일까요.

 이분들은 왜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밀려나거나 쫓겨나거나 내동댕이쳐지는 사람들, 수공업자가 될까요. 이분들 일은 어이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따뜻이 들여다보거나 따스히 감싸안는 일이 되지 못할까요.


.. “가위를 잡은 지는 오십 년째고, 이 가게에서 일한 지는 올해로 삼십칠 년째가 되는데, 손님 같지 않아. 밥상에 둘러앉은 식구 같아. 한 번 생각해 봐. 서른 중반부터 봐 온 얼굴들을 지금까지 봐 오고 있으니 이게 어디 주인과 손님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어. 계모임 하듯 한 달에 한 번은 보잖아.” ..  (118쪽)


 저로서는 어떤 학문이나 설문이나 통계나 자료조사로 이분들 삶을 바라보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과학 풀이에 따라서 파헤치고 논문을 쓰고픈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이분들하고 똑같은 동네에서 이웃으로 살아가고, 늘 부대끼며, 크고작은 일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자잘한 하루하루를 나누고 싶기만 합니다.

 쉰 해째 머리깎이 하면서 살아가는 할아버지처럼, 저는 스무 해 가까이 헌책방 아저씨와 아주머니를 봅니다. 떠꺼머리 때부터 뵈어 온 아저씨가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린 할아버지가 되었고, 열일곱 푸름이로 학교옷을 입을 때부터 뵈어 온 아주머니가 어느새 손주를 보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여드름이 겨우 가실 무렵부터 보았던 헌책방 할아버지는 어느덧 애 아빠가 된 저를 술동무로 여겨 책 구경은 그만하고 술잔이나 같이 부딪히자며 팔뚝을 잡아끕니다. 스무 해 가까운 세월, 적잖은 헌책방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여러 헌책방 할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기나긴 햇수에 걸쳐서 읽고 보고 사고 되팔고 되내놓고 한 책도 많지만, 눈빛 마주치면서 말없이 이야기를 나누어 온 횟수 또한 많습니다.

 머리깎이 할아버지와 손님처럼, 헌책방 일꾼과 책손은 꾸준히 ‘계모임’을 합니다. 계모임을 할 때마다 당신들 삶이 달라지고 당신들이 낳아 기르는 아이들 삶도 함께 달라집니다. 계모임으로 어우러진 뒤 헤어지기까지는 고작 한 시간, 두 시간쯤일 텐데, 해가 갈수록 이 한두 시간이 기다려지고 바라게 되고 손꼽는 날이 됩니다.


..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다. 그의 손만 타면 검푸른 쇳덩이는 눈부시도록 광채를 발산하는 것이다. 내심 걱정이 되는 건 그의 눈이었다. 집중을 요하는 작업일수록 시력이 빨리 망가진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시력검사를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작업대에만 세 개의 형광등을 켜고 일하는 그는 요즘 들어 눈이 침침하다고만 했다 ..  (38쪽)


 사라지는 사람은 착한 사람들입니다. 잊혀지는 사람도 착한 사람들입니다. 밀려나는 사람 또한 착한 사람들입니다. 자취를 감추어 역사책이고 인문사회과학책 인용자료건 신문기사건 이름 석 자 적히지 못하는 사람 또한 착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도 착한 사람을 만나서 착함을 배우고자 자전거를 몰고 길을 나섭니다. 칭얼거리는 아기는 옆지기가 돌봐 주기로 하고. (4341.10.1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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