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67 : 한글날에 읽는 책


 10월 9일 한글날을 앞두고 몇 가지 글을 써 두었습니다. 한글날을 맞이해서 한두 꼭지 또 썼고, 한글날을 마친 뒤에도 한두 가지 글을 쓰려고 합니다. 한글날이니 우리가 늘 쓰고 있는 글이며 말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풀어 보는데, 한글날 아닌 때에는 우리 글과 말을 다루는 이야기가 거의 먹히지, 들리지, 건네지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한글이나 우리 말이 아닌 ‘논술’ 이야기는 잘 먹힙니다. 잘 들린다고 합니다. 잘 건네집니다.

 제가 좋아하고 또 저를 좋아하는 어느 만화쟁이 아저씨가 제가 쓴 글을 그림으로 옮겨서 ‘어린이들이 우리 말을 잘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만화책’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여러 해 앞서부터 밝혔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 해 동안 어떤 글을 묶으면 좋을까를 살피면서 글뭉치를 모아 보았습니다. 만화쟁이 아저씨는 몸소 출판사까지 알아보셨다고 하는데, 당신이 알아보는 출판사마다, ‘왜 그 사람하고 일을 하려고 합니까?’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저를 아는 학습지 출판사로서는 제가 하는 일이 ‘글쓰기’이지 ‘논술’이 아니며, ‘삶을 담는 말을 스스로 즐겁게 하면서 아름다워지기’를 말하지 ‘시험성적 높이며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하는 논술 이야기’ 또는 ‘맞춤법과 띄어쓰기 잘 맞추도록 공부 시키기’가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올 한글날을 앞두고 세상에 쏟아지는 책을 보노라면, 올해도 지난해하고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말을 다룬다고 하면 ‘깨끗한 토박이말’만 다뤄야 하는 줄, ‘잘못 쓰는 말을 바로잡기’만 해야 하는 줄, ‘틀린 맞춤법 추스르기’를 해야 하는 줄 아는 책만 보입니다. 글쓰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으나,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수험생들한테 팔아먹는 ‘논술 장사’에서 홀가분한 책은 열 손가락 꼽기가 어렵습니다.

 세상에 꼭 돈이 되어야만 값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돈이 되어야 한다면 왜 꼭 논술 장사로만 돈을 얻으려고 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삶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면서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가운데 참 살 길을 찾아나서는 말과 글 이야기로도 넉넉히 돈벌이를 할 구멍을 살필 수 없는 노릇인지 궁금합니다. 일류대학교에 붙도록 도와주는 논술책이 아니라, 삼류대학교에 들어가건 아예 대학교는 꿈도 못 꾼다고 하건 사람이 사람다운 됨됨이를 추스르고 다독이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글쓰기책을 엮어내어 온 세상 두루두루 사랑을 펼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야기책으로 엮을 수 없는지 궁금합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찬물로 머리 감고 낯 씻고 손발을 씻고 자리에 앉아서 고요히 생각에 잠긴 뒤 하루를 열었습니다. 비록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한 해 가운데 고작 하루뿐인 한글날에조차 우리가 물과 밥처럼 쓰고 있는 말을 엉터리로 내팽개치고 있지만, 이 말과 글에 우리 얼과 넋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은 더 나아질 수 있고, 한결 넉넉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 믿음을 펼쳐 보이고자. (4341.10.9.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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