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끊어지며 읽는 책
― 애 아빠는 책을 어떻게 읽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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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데 씻어요?” “응, 이따 씻을게.” “아기를 만지는데 자주 씻어야 돼.” “흠, 알았어, 이제 바로 씻을게.”
땀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아침나절부터 쉴새없이 아기와 옆지기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습니다. 옆지기가 씻고 나오면서 저보고도 씻으라고 했으나, 저는 좀더 일을 하고 땀을 뺀 다음에 씻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땀이 나면서 안 씻고 아기를 만지고 기저귀를 갈면 아기한테 안 좋다고 말하니, 저로서도 더 미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주 씻어야 합니다. 기저귀 빨랴 밥하랴 치우랴 뭐하랴, 하루 내내 온갖 일을 치르면서 땀을 줄줄줄 쏟아내니까요.
이제 이른저녁이라고 할 만한 여덟 시를 조금 넘긴 때, 겨우겨우 밥을 먹고 나서 한숨을 돌리자니, 씻는방 대야에 담긴 기저귀가 한 가득. 몇 시간 눈감고 지나갔더니 또 이만한 일거리가 쌓입니다. 그리고 옆지기가 벗어 놓은 옷과 옆지기 기저귀. 흠.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쌓이는 빨래감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다짐합니다. 내 빨래라도 줄이자고. 걸레 빨아 방바닥 훔치기에도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고단해서 못하는 마당에, 내 빨래감이라도 늘면, 그 한 가지 하는 데에도 힘들다.
참 그렇습니다. 아기가 제 옷(반바지)에 오줌을 누든 똥을 누든, 웬만하면 그냥 말립니다. 또, 젖은 옷을 벗고 갈아입을 겨를이 없습니다. 아기가 제 몸에 똥오줌을 누었다고 하여 아기를 집어던지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겠습니까.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기저귀를 갈고 아기를 닦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이렇게 해 주어도 쉬 잠들지 않습니다. 아니, 속에서 뭔가가 밖으로 나가 주었기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해롱해롱 실실 샬샬 웃는지 뭐하는지 가벼운 얼굴로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부비적부비적 하느작하느작 꿈틀꼼틀. 움직임을 멈추지 않습니다. 놀아 달라고 합니다. 세상 어느 어버이가, 제 몸에 똥오줌이 범벅이 되었다 한들, 아기가 놀아 달라고 하는데 마다하고 씻는방으로 달려가서 씻을 수 있겠습니까. 빨래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삼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아기를 안고 어르면서 등이나 머리에 땀이 배이지 않게 추스르노라면, 젖은 몸과 옷은 마릅니다. 어느새 마릅니다. 이리하여 제 몸과 옷은 아기 똥오줌 냄새가 짙게 배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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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모처럼 쉴까 싶은 날이었으나, 아기 젖병을 조금이나마 싼값으로 장만하려고 〈아름다운 가게〉에 옆지기와 함께 찾아갑니다. 옆지기는 걷기도 벅찬 몸이지만, 힘내어 겨우 가게에 닿고, 두 시간 가까이 이 물건 저 물건 살펴봅니다. 신발도 보고 옷도 봅니다. 그러나 옆지기 몸에 맞는 녀석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기를 안고 두 시간쯤 땀 뻘뻘 흘리면서 아기한테 땀띠가 날세라 걱정근심끌탕. 팔이 떨어질 듯한 고단함은 저리 가라이고, 아기가 걱정입니다. 겨우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먹을 때. 애 엄마 미역국은 가위로 자르면 안 되기에 손으로 마른미역을 뚝뚝 끊습니다. 이제 손바닥과 손가락 모두에 굳은살이 깊에 박여서 마른미역을 손으로 뚝뚝 끊어도 그다지 안 아프지만, 아예 안 아프지는 않습니다. 서너 달 더 이렇게 손으로 끊으면 앞으로는 아예 안 아플 날을 맞이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오얏과 감을 먹이고 감자 썰어 넣어 미역국 끓입니다. 누런쌀에 지은 콩팥밥을 국에 탑니다. 아기가 젖 달라고 합니다. 옆지기는 젖을 물립니다. 젖을 다 물리고 아기가 잠들 때까지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다 마른 기저귀를 갭니다. 그래도 아직 젖 물리기가 끝나지 않아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책을 주섬주섬 챙겨서 펼칩니다. 밥을 먹는 동안에도 책장을 넘깁니다. 옆지기가 말합니다. “그 책(오늘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헌책방에서 사 온 책) 닦았어요?” “아니…….”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서 걸레를 집어들고 책을 박박 닦습니다. 밥자리로 돌아옵니다. 허리가 참 아픕니다.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다 못 먹고 조금 남깁니다. 어쩔 수 없이 잠깐 돌리고 있는 조그마한 김치냉장고에 넣어 둔 맥주 한 병을 꺼냅니다. 뽕. 병나발로 한 모금 두 모금씩 마십니다. 크. 낡아서 잘 돌아가지도 않는 김치냉장고에 넣은 맥주는 그리 시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목마름은 조금 풀어 줍니다.
그러나, 찜질팩을 새로 해 달라, 보리차 새로 끓여야 한다, 잠깐 아기 어르고 있으라, 뭐뭐뭐 하노라니, 따 놓은 맥주는 그대로 두면서 부리나케 움직입니다. 어제 낮에 동네 골목길에서 주워 와서 옥상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서랍장도 걸레로 훔치고 집으로 들여야 합니다. 옥상마당에 널어 놓은 기저귀 빨래도 걷어야 합니다.
그래도 뭐, 어찌어찌 이 모든 일을 다 치러 냅니다. 조금 쉴 만한 때에 옆지기가 “여보 ……” 하고 부르면 퍼뜩 놀라면서, 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슬며시 짜증이 일려고 하지만, 제 몸을 스스로 쓰기 어려워서 어렵게 부탁하는데, 함부로 짜증을 내서는 안 됩니다. 뒤집어서 생각해 보셔요. 제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늘 혼자서 하던 일을 옆지기한테 부탁하거나 시켜야 한다고 할 때에, 우리 옆지기는 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그때에도 우리 옆지기가 저처럼 못난 마음으로 뿔을 내거나 짜증을 내겠습니까.
철이 덜 든 저는 아무 말 없이, 옆지기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을 다 해 줍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허리가 몹시 아파, 끊어질 듯 아파서, 이제 고작 서른넷밖에 안 된 주제에, 집안일을 할 때에도 지팡이를 짚고 하고프다는 생각이 날마다 끊이지 않습니다. 한손으로 한쪽 무릎에 힘을 실어 겨우 버티어 일어서거나 걸음을 옮깁니다. 작지 않은 소리로 ‘끙’ 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아이고’ 하는 말이 자꾸자꾸 튀어나옵니다. 쑤시지 않은 몸이 없고, 지끈거리지 않는 머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깊은 밤, 아기가 내어놓을 기저귀더미를 헤아린다면, 바로 이때, 낮나절 쌓인 기저귀를 모두 빨아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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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보리술 두 병. 금세 비워 버린 보리술 두 병. 한두 병 더 마시고픈 생각이 꿈틀대지만, 살림돈도 아끼고 내 몸도 생각해야 하며, 밤새 아기 치다꺼리 하자면 더 마시면 안 됩니다.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떨굽니다.
그리고 씻는방. 허리가 끊어지려고 하니 쪼그려앉아서 어그적어그적 걸음을 옮기면서 빨래감을 하나씩 바닥에 깔고 비누질하고 비빔질하고 헹굼질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 오늘도 어느덧 스무 장 가까운 기저귀를 빨았습니다. 다른 빨래도 꽤 있었습니다. 밤새 나올 기저귀까지 더하면, 날마다 서른 장 남짓 되는 기저귀를 빠는 셈입니다.
요만큼 쓰는 사이 아기가 오줌을 한 번 눕니다. 기저귀를 갈고 엉덩이 둘레를 닦습니다. 조금 뒤 옆지기가 기지개를 켜면서 어깨죽지가 아주 아프다고 합니다. 어깨죽지를 주무릅니다.
저도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주무르고 싶은데, 제가 제 몸을 주무를 겨를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아기와 옆지기를 생각하면 아주 튼튼한 몸이고, 두 사람은 저를 많이 부려먹으면서 조금씩 몸풀이를 하고, 하루이틀 몸에 살이 올라야 합니다.
.. 병원으로 뛰어가 본들 자식은 이미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서 모기만 한 가느다란 숨을 내쉬고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를 향해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에 들어가야 한다’거나 ‘좀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을까? 아마 ‘부디 살아만 다오’라고 애원을 할 것이다.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소원도 없을 것이다. 부모는 그처럼 자식의 생명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으로 생각한다 .. 《고맙구나, 네가 내 아이라서…》(제이북,2003) 16쪽
없는 틈을 쪼개어 책을 읽습니다. 참말 책 읽을 겨를이 없으니 아무 책이나 펼치지 못합니다. 어설픈 책은 이내 덮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아이 키우기(육아)’를 다룬 책에 눈길이 많이 갑니다. 그야말로 없는 틈을 또 쪼개고 다시 쪼개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몇 가지 ‘아이 키우기’ 책을 장만하여 읽습니다.
아이를 낳기 앞서도 읽던 책이 많고, 갓 스물을 넘긴 때에 읽던 책도 많으나, 아직까지 못 본 책이 훨씬 많습니다. 저한테 ‘아이 키우기’ 책은 세상을 좀더 깊이 살피고 널리 돌아보도록 이끌어 주었기에, 늘 가까이하는 책이 됩니다. 아이 낳을 생각이 없던 때에도, 여자친구조차 없고 혼인할 꿈도 꾸지 않던 때에도 ‘아이 키우기’ 책을 읽으며, 내 몸으로 아이를 낳지 않아도 내 이웃에 아이가 있을 테니까, 내 이웃 아이한테 어버이가 되는 마음으로 되새기자고 하면서 읽었습니다.
하느님이 ‘어린이만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듯, 어린이 마음이 되려 하고, 어린이와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며, 어린이 삶을 돌아보고자 애쓰는 어른이 되어야 비로소 하느님 말씀을 깨달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성경만 천 번 만 번 읽어서는 부질없다고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몸소 한 번 치르는 일만큼 커다란 일도 없고요.
.. 내 아이가 몇 시에 자고, 보통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것에 기뻐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아버지는 드물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것을 개성으로 인정하고 있는가라는 말이 나오면 완전히 손을 들어 버린다. 육아라는 것은,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것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알아가는 과정이고, 또한 아기도 부모를 통해서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 《칭얼대는 아이와 허둥대는 아빠》(투영,2001) 126쪽
책을 읽다가 자꾸 덮습니다. 다른 일거리가 많아서 덮기도 하지만, 책과 삶이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덮습니다. 우리 아기는 두 시간(짧으면 한 시간 반이나 한 시간)에 한 번씩 젖을 먹는데, 책에는 서너 시간에 한 번 젖을 물리라고 나옵니다.
책은 평균치만 나온다고 할 텐데,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우리 아기하고는 참 다릅니다. 그러나 아예 도움이 안 되는 책은 아닙니다. 《황금빛 똥을 누는 아기》(다섯수레,2001)도 여러모로 도움될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에서 아기를 낳아서 기르려는’ 우리한테는 그다지 도움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예방접종 문제를 다룬 책은 눈씻고 찾아보기 어려웠고(한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기가 걸리는 병을 ‘병원에 가서 고치지’ 않고, 집에서 고치는 길을 일러 주는 책은 이제까지 못 봅니다. 아기를 배면 병원에 가고, 아기가 칭얼대도 병원에 가면 그만일까 궁금합니다.
아이 키우기란 그저 ‘자가용 장만해서 재빨리 병원으로 달려갈 채비를 해 놓으면’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처럼 유모차를 안 쓰고 업거나 안거나 걸리게 하려는 어버이들한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는 《아이 키우기는 가난이 더 좋다》(내일을여는책,1999)에서 길잡이를 얻었으나, 그 뒤로는 더 없습니다. 아기를 낳으면 ‘유모차 장만하기’도 마땅히 해야 하는 일로만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예방접종을 왜 맞아야 하는지, ‘비.시.지’가 뭔지, 예방주사를 안 맞으면 어떻게 되고, 예방주사를 맞으면 무엇이 나은지를 알려주는 책이나 이야기도 찾아보기 아주 어렵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산모수첩’을 주고 있으나, 이 산모수첩에는 ‘예방접종을 언제 맞아야 하느냐’만 적혀 있을 뿐, 왜 맞아야 하고 어떤 효과가 있으며 어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고, 주사를 맞고 나서도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들은 한 줄도 실려 있지 않습니다. ‘비.시.지’뿐 아니라 ‘디.티.피’가 도무지 뭘 가리키는 주사인지는 인터넷에서 한참을 찾아 헤맨 끝에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산부인과 간호사들도 잘 모르는 듯했습니다. 실제로 ‘비.시.지.’ 주사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놓았다고 하기에, 그 주사가 뭐냐고 물었더니 ‘비.시.지 주사를 놓았다’고만 대꾸할 뿐, 알파벳 줄인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야기해 주지 못했습니다. 어물어물하다가 그만이었고, 나중에라도 알려주지 않더군요. 다만 한 가지, ‘비.시.지. 주사는 앞으로 두 번 더 맞아야 하는데, 그때를 지나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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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새로 장만한 책을 모두 덮습니다. 곰곰이 생각에 잠깁니다. 짤막짤막 도움이 되는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큰틀에서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책을 구태여 파고들 까닭은 없다고 느끼면서, 사람들은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나누고자 책을 펴내려고 할 텐데, 이렇게 도움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누군가 나서서 새로운 책을 쓰려고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자꾸 모자람과 아쉬움을 깨달으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엮어 나가니 책마을은 차츰차츰 발돋움할 수 있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모자람을 못 느끼고 아쉬움을 안 느끼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자람과 아쉬움을 채워 주는 책이 새로 나와도 알아보지 않을 뿐더러, 모자람과 아쉬움이 가득 담긴 책에 매여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스스로 한결 나은 삶으로 옮겨가려고 하지 않고, 이웃사람이 조금이나마 나은 삶으로 거듭나려고 애쓸 때 거들지는 못하더라도 헤살을 놓지 않을 만한 우리들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득, 허리가 아파 죽겠으면서 괜히 책을 뒤적이다가 시간만 잡아먹고 아기는 아기대로, 책은 책대로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살피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채 보내는 하루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냥 좀 드러누워 쉬어야겠습니다. (4341.9.16.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