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61 : 아기 돌보기와 책읽기



 지난 8월 16일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옆지기가 스물네 시간 배앓이를 겪은 다음 낳았습니다. 집에서 낳으려고 했으나, 새벽녘 쏟아진 비 때문에 날씨가 갑자기 나빠지며 옆지기 몸 또한 나빠지는 바람에, 부랴부랴 산부인과로 옆지기를 옮겨서 10분 만에 낳았습니다. 이날 뒤로 열흘이 훌쩍 지나고 두 주가 가까워 옵니다. 머잖아 세이레를 맞이하면서, 바깥사람한테도 아기를 내보이면서 축하를 받고 백일잔치를 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기낳이를 하려고 집을 꾸미고 이래저래 알아보고 배우는 동안, 또 아기낳이를 한다며 배앓이하는 옆지기를 돌보는 동안, 그리고 아이를 낳고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는 동안, ‘여태껏 하루도 손에서 멀리해 본 적이 없던 책’을 멀리하게 됩니다. 멀리한다기보다 손에 들 겨를이 없습니다. 기저귀 갈랴, 기저귀 빨랴, 기저귀 널어서 말리다가 다림질하랴, 다시 기저귀 갈랴, 또 기저귀 빨랴, 또다시 기저귀 널어서 말리다가 다리랴.

 그러나 책 한 권 손에 쥘 틈이 없으면서도 서운하지 않습니다. 슬프지 않습니다. 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들뜹니다. 즐겁습니다. ‘옆지기와 아이를 돌보는 가운데에도 손에 쥘 만한 책이 무엇이냐?’를 되새겨 봅니다. 그냥저냥 읽던 책은 이렇게 고달프고 바쁠 때에는 아예 젖혀 놓게 됩니다. 그지없이 아름다우며 훌륭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면, 손에 물기 마를 새 없는 요즈음 같은 때에 졸린 눈을 비벼 가면서 읽을 수 없습니다.

 옆지기 부모님이 사는 일산으로 살림을 잠깐 옮겨서 옆지기와 아이를 돌봅니다. 그래서 저 혼자 이틀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인천으로 돌아와서 볼일을 보고 저녁에 부리나케 일산으로 갑니다. 고단함과 졸림이 겹치며 몸이 축납니다. 그래도 이렇게 오가는 동안 버스나 전철에서나마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 억지로 눈가를 비비면서 책장을 넘깁니다. 다른 책은 거의 읽을 마음이 나지 않고 딱 두 가지, 《아이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라는 책과 《지구를 걸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 폴 콜먼》을 읽습니다. 요사이 나온 다른 책들도 집어들어 보지만 이내 하품이 나와서 다시 덮어놓습니다. 별 서넛을 붙일 만한 책은 ‘애 아버지’ 마음속 깊은 데까지 와닿지 못합니다. 별 다섯을 붙이고 하나를 덤으로 더 얹어 주고픈 책이어야 비로소 ‘애 아버지’ 눈을 번쩍 뜨게 해 줍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애 아버지’보다 몸이며 마음이 훨씬 지쳐 있는 ‘애 어머니’는 별 다섯에 덤으로 하나 얹어 줄 책조차 펼치기 힘드리라 봅니다. 별 다섯에 별 다섯을 붙일 책마저 넘기기 어려우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배앓이를 하고 젖먹이기를 하는 동안, 그 어느 책에서도 다루지 못하거나 않은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애 어머니’ 마음밭에 차곡차곡 심기고 자라지 않겠느냐 싶어요. 책 없이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 두 사람이, 책을 가까이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이 푸근한 이맘때입니다. (4341.8.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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