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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ㅣ 잘잘잘 옛이야기 마당 1
이미애 지음, 백대승 그림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옛이야기’는 어떻게 다시 펴내면 좋을까?
- 책이름 :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 글 : 이미애
- 그림 : 백대승
- 펴낸곳 : 미래아이 (2008)
- 책값 : 12000원
조각조각 흩어져 있는 우리 옛이야기 가운데 ‘호랑이(범)’ 이야기 한 가지만 골라서 엮은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라는 책은, 사람이 아닌 짐승을 빌어서 우리 삶을 돌아보도록 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이야기 한 자락마다 모두 다른 빛깔로 그림을 담아낸 품새 또한, 흔히 떠돌고 웬만큼 퍼져 있기에 언뜻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호랑이 이야기’를 재미나게 즐기도록 이끕니다. 시원시원한 판짜임은, 이 그림책을 볼 아이들을 널리 살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데, 어느 한편으로 바라본다면, 좀더 수수하게 엮으면서 책값을 낮출 길을 찾으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옛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들려주는 이야기책 말투를 보면 한결같이 판박이로 되어 있습니다. 보리출판사에서 펴낸 ‘서정오 님 이야기책’부터 퍼진 ‘입말 투’라 할 텐데, 입말 투는 ‘똑같은 토씨로 끝나는 일이 드뭅’니다. 처음에는 이런 입말 투가 무척 새로우며 놀랍다고 느꼈는데, 똑같은 말투가 자꾸만 되풀이되면서 더 나아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또 우리 입말 투가 무엇인가를 깊이깊이 파고들어가는 동안, 다른 작가나 서정오 님 스스로도 ‘자연스러운 입말 투’에서 멀어진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서정오 님 옛이야기 책이나 다른 분 옛이야기 책이나, 거의 판박이처럼 ‘-했어’, ‘그랬어’, ‘그랬지’ 하고 말끝을 맺습니다. 입말 투라고 하면서 ‘-다’가 아닌 ‘-어’나 ‘-지’로 끝맺는데, 우리들 입말 투는 ‘-다’로 끝맺을 때도 있고 ‘-어’나 ‘-지’로 끝맺을 뿐 아니라, ‘-구나’라든지 ‘-네’라든지 ‘-구만’으로 끝맺기도 합니다. 낮춤말도 아니고 높임말도 아닌 어설픈 입말 투로 이야기를 펼치기보다는, 차라리 높임말을 쓰면서 아이들을 섬기는 매무새를 보여줄 때가 한결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입말 투는 ‘것(거)’을 함부로 자주 붙이지 않습니다. ‘말했던 거야’나 ‘그랬던 거야’나 ‘먹었던 거야’가 아니라 ‘말했지’나 ‘그랬거든’이나 ‘먹었네’처럼 붙여야 올바릅니다. 《무서운 호랑이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는 이 어설픈 틀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을 아이들한테 바람직하지 않은 ‘순화대상 낱말’이 곳곳에 보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만한 그림이야기책을 싼값으로 조촐하게 꾸민다고 하면, 요새 어머니들은 외려 이 책에 깃든 보물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판사로서도, 독자로서도, 또 우리 형편으로도 단출한 판짜임과 엮음새보다는, 어딘가 무지개빛이 가득가득 수놓인 엮음새가 보기에 좋다고 느끼고, 큰 판이 더 나은 그림책인 듯 생각하며, 옛이야기도 ‘입말 투로 보이는 말씨’로 되어 있어야 좋은 듯 알고 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호랑이’라는 말이 썩 내키지 않습니다. 왜 호랑이한테는 ‘무섭다’는 생각을 심어 줄까요? 더군다나 오늘날 어느 곳에서 ‘호랑이를 본다’고, 호랑이는 무서운 짐승이라는 듯 이야기를 풀어 나갈까요? 지난 먼 옛날,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호랑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마음결을, 오늘날 우리들은 얼마나 차근차근 되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이야기책을 펴내고 있을까요? 이제는 “무서운 공무원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나 “무서운 법관들의 가슴 시린 이야기”나 “무서운 전투경찰의 가슴 뭉클한 이야기” 같은 책을 내어야 알맞을지 모릅니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들한테는 처음 마주하는 호랑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요. 동물원에서나 겨우 보는 호랑이라는 짐승을 머리로 헤아려 보면서, ‘무서운 짐승한테도 따순 사랑이 깃들어 있다’는 가르침 하나는 얻을 테고요.
옛날이야기를 오늘날 아이들한테 어떻게 다시 들려주면 좋을까 하는 대목에서는 깊이 있게 돌아보지 못했지만, 호랑이 그림 하나는 참 잘 그렸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대목이 남습니다. ‘왜 옛날사람이라고 하면서 죄다 조선 후기 사람만 그리고, 더구나 양반들만 그리고 있는지’를 뒷통수 좀 긁적이면서 돌아보아야지 싶습니다. ‘가난한 선비는 어떤 신을 신었을지’, ‘산골 깊숙한 마을 집은 어떤 모양일는지’, ‘우리 나라 깊은 산골 나무는 어떤 모양 어떤 크기일는지’도 가만히 되새기면서 창조와 상상력을 북돋운다면 한결 나을 수 있었다고 봅니다. (4341.8.25.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