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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빙화 ㅣ 카르페디엠 2
중자오정 지음, 김은신 옮김 / 양철북 / 2008년 3월
평점 :
이 책 하나 68 ― ‘천재 화가’가 아닌 ‘그림을 사랑한’ 아이인데
: 중자오정, 《로빙화》
- 책이름 : 로빙화
- 글 : 중자오정
- 옮긴이 : 김은산
- 사잇그림 : 장호
- 펴낸곳 : 양철북 (2003.8.16.)
- 책값 : 9000원
(1) 여름벌레 소리와 도시
지난밤 드문드문 세찬 바람이 불다가 잦다가 비가 오다가 그치다가 하더니, 깊은밤에는 비가 뚝 멎었습니다. 모기장을 쳐 놓았어도 모기는 모기장 안으로 어떻게든 들어와서 피를 빨아먹으려고 하고, 우리는 피를 빨리면서도 모자란 잠을 이루려고 바둥바둥입니다. 새벽 어스름이 조금씩 걷힐 무렵, 모기장 안쪽에 있는 모기가 눈에 뜨여서 한 마리 두 마리 …… 열 마리 남짓 잡습니다. 희뿌윰이 밝아오는 창밖을 보며, 이제 일어날까 하다가, 오늘 낮 부지런히 다녀야 할 일을 생각하며, 아니다 잠깐이라도 몸을 푹 쉬고 하루를 맞이하자며, 생각을 고쳐먹습니다.
여느 날보다 퍽 느즈막한 일곱 시 반쯤 일어납니다. 낯과 몸을 씻고 빨래 한 점을 하는데, 씻는방 창밖으로 매미소리 들립니다. 나무도 없는데 무슨 매미가 우나 하고 내다보니, 이웃한 빈 건물 벽에 붙어 있는 듯합니다. 어디께 있나 두리번두리번하는데 매미소리 뚝 끊깁니다. 사람 냄새를 맡았나 봅니다. 몸을 다시 웅크리며 빨래를 합니다. 아까보다 가늘어진 매미소리 울립니다. 다시 몸을 움직여 슬그머니 내다봅니다. 또 끊깁니다. 그래, 미안하다, 애써 세상으로 나와서 시원하게 울어 보려는 참에 내가 괴롭혔구나, 난 살며시 나갈 테니 마음껏 울어라.
다 한 빨래를 탁탁 털고 씻는방에서 나오니 이윽고 매미소리 다시 들립니다. 굼벵이가 고이 깃들며 지낼 만한 흙이 마땅하지 않은 도심지요,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발려진 동네인데, 저 매미는 어디에서 몇 해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이처럼 때맞춰 깨어나서 큰소리로 울어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 정말 아명의 그림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막내 아생은 아명이 그린 그림들을 벽에 붙였다. 벽에 건 그림만도 이미 열 장이 넘었지만, 한 장 한 장 모두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괴상한 것들뿐이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그린 그림들 위에 선생님이 찍어 준 ‘미’라는 도장은, 보는 사람들을 오히려 민망하게 했다 .. (22쪽)
엊저녁, 옆지기는 매듭엮기를 하고 저는 책을 읽습니다. 옆지기가 심심하다며 책을 소리내어 읽어 보라고 합니다. 무슨 책을 읽을까 하다가 《잃어버린 소년들》이라는 책을 읽는데, 마침 펼쳐서 읽는 대목이 꽤 지루합니다. “이거 원, 읽는 사람부터 재미가 없네.”
엊그제 헌책방 나들이를 하며 장만한 《이경희-현이의 연극》(1973)이라는 퍽 묵은 수필책을 집어듭니다. 〈여치〉라는 글이 보입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여치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제 점심때, 친구와 같이 어느 식당에 갔더니 그 식당 입구 양쪽에 대로 만든 여치 둥우리가 걸려 있었다. 시원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무의식중에 ‘어마!’ 하고 감탄의 소리를 질렀다. 한참 동안 잊고 살아온 여름벌레! 그리운 것을 만난 것같이 반갑고 정이 갔다(98쪽).”는 첫 대목.
응, 여치 울음소리? 음, 여치 울음소리.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어떤 소리였지? 메뚜기며 여치며 방아깨비며 풀무치며 여름벌레 울음소리는 모두 다른데, 어느 소리가 어느 벌레 울음인지 가려낼 수 없으려나? 하긴, 이제 이 여름벌레를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데, 울음소리를 어찌 가려내나.
듣느니 참새와 비둘기와 까치 울음소리일 뿐인데, 소쩍새와 왜가리와 갈매기와 새매와 어치와 콩새 울음을 가릴 수 있는 도시내기가 다문 몇 사람이라도 남아 있으려나. 이 새소리를 가려낼 수 있다고 하여도, 이이는 도시에서 알맞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한 번 들여놓고 살아가는 이 도시라는 데에서는 벌레소리며 새소리며 짐승소리며 바람소리며 모두 잊어야만 하지 않나.
《현이의 연극》을 쓴 아주머니는 “언젠가 들은 얘기지만, 도오쿄오 중심지에서는 나비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어쩐지 사실 같지 않았으나, 요즘 서울에서도 나는 나비를 본 기억이 까마득한 것 같다(100쪽).”고 적습니다.
나비를 볼 수 없는 서울, 아니 나비를 볼 수 없는 한국. 산에 가야 볼 수 있을 텐데 산이라고 해 봐야 케이블카 놓고 아스팔트길 닦고 굴을 뚫고 갖가지 밥집에다가 호텔 모텔 지어대고 스키장 무슨 장 우격다짐으로 때려넣는데 …….
.. “교장 선생님이 현에서 여는 미술 대회에 참가한다고 하셨어요.” “그래? 그럼 네가 대표로 뽑혔다는 말이냐?” “예! 누나도 대표예요. 앞으로 날마다 남아서 연습을 해야 돼요.” “네 누나도 연습을 한다고? 그건 안 된다. 네 누나는 엄마 일을 도와야 해.” …… 차매는 갑자기 자신이 그림에 아주 관심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미술 지도 시간에 대한 미련을 쉽게 버릴 수 없었지만, 엄마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엄마는 그렇게 바쁘신데……. 나라도 일찍 집으로 가서 조금이라도 도 도와 드려야지. 아마도 이렇게 하는 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가치 있는 일일 거야 .. (45, 72쪽)
지지난달, 옆동네 화평동으로 골목마실을 갔다가 배추흰나비를 보았습니다. 그 비슷한 무렵, 서울에 있는 ㅇ출판사로 나들이를 갔다가 그 출판사 앞마당에서 노니는 배추흰나비를 보았습니다.
골목길 한켠 빈자리를 그냥 놀리지 않고 흙을 일구고 갈고 거름을 치면서 땅심을 돋워 준 다음 여러 가지 푸성귀를 심으니, 벌과 나비가 찾아듭니다. 조금만 벗어나면 자동차 우악스럽고 시끄럽게 내달리는 서울 한복판이었으나, 출판사 앞마당에 자라는 나무와 꽃을 밀어내지 않고 그대로 간수했기에 외로운 나비 한 마리가 이곳에서나마 날개를 접고 쉴 수 있습니다.
옆동네 율목동 할머님도 걱정을 하지만, 온 인천을 재개발을 한다며 갈아엎으면, 그나마 골목이 어우러져 있는 조용한 동네에서 마음좋은 사람들한테 밥술이나마 얻어먹던 길고양이와 길개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들 사람도 그 비쌀 뿐더러 메마르고 매몰찬 시멘트 성냥갑에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가기도 힘들지만, 여태껏 뿌리내리며 조용히 살아오던 나무와 꽃과 풀도 싹 목아지가 잘리며 쓰레기 대접을 받아야 하나요. 서른 해를 묵은 동네 감나무가, 쉰 해를 묵은 동네 느티나무가, 스무 해를 묵은 동네 앵두나무가, 마흔 해를 묵은 동네 은행나무가, 해마다 새로 줄기를 뻗는 담쟁이와 나팔꽃과 호박꽃과 해바라기가, 한 줌 재로 바뀌며 제 삶터를 내어주고 숨을 거두어야 하나요.
.. “주사? 하하하! 아니 무슨 주사를 놓는다는 거냐?” “쥐약을 먹었으니 해독제를 맞으면 금방 나을 거예요.” “흥! 그깟 한 푼 값어치도 없는 고양이 한 마리 살리자고 귀한 돈을 날리자는 말이냐?” 분명 맞긴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명은 아버지가 고양이와 돼지를 차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 같이 사랑스러운 동물이 아닌가? 게다가 돼지에 비하면 고양이가 훨씬 더 사랑스럽지 않은가. 사랑하는 고양이의 생명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을 아명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노기 띤 그 말에 아명은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더는 기댈 데가 없어진 아명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런, 쳐죽일! 왜, 뭐 때문에 울어? 당장 그치지 못해?” .. (100∼101쪽)
요사이, 서울이나 인천이나 웬만한 도시마다 자동차 물결이 조금 수그러들었다고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달리노라면, 예전과 견주어 차가 꽤 줄었음을 살갗으로 느낍니다. 차가 줄어 널널해지니 짓궂고 거칠던 버스기사도 자전거한테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주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듭니다.
그런데 ‘줄어든 자동차 물결’은, ‘이 땅 이 나라 자연 삶터가 무너지는 일을 걱정’하면서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기름값이 부쩍 치솟아서 돈 나가는 일이 걱정’되어서 줄어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타는 까닭은 ‘자가용 끌고 가 보았자 막히기만 하니 늦어질 뿐더러, 차 댈 데가 마땅하지 않아서’입니다. 조금이라도 지구자원을 덜 쓰면서 이웃과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사람뿐 아니라 자연 목숨붙이를 아끼거나 돌보려는 마음이 아닙니다. 돈, 돈, 오로지 돈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일을 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만나며, 돈 때문에 처세와 자기계발서라는 뚱딴지 같은 이름을 달고 나오느 책을 부지런히 읽습니다. 돈 때문에 자가용을 끌면서 다니려 하고, 돈 때문에 내키지 않는 술자리 대접을 할 뿐더러, 돈 때문에 검은돈을 봉투에 담아서 선물로 바칩니다.
돈을 바라보며 대학교에 보내려 합니다. 돈을 생각하며 아이들한테 영어와 한자를 가르칩니다. 돈을 꿈꾸며 아이들한테 책을 읽힙니다. 돈 나와라 뚝딱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한테 ‘논술시험 대비 글쓰기 교육’을 시킵니다. 돈이 구르기를 바라면서 아파트를 장만하고, 내 주머니에만 돈이 차기를 꾀하니 주식을 하고 펀드를 놓습니다.
.. 임장수의 외아들은 임지홍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끔찍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불면 날아갈세라 쥐면 꺼질세라, 날씨가 조금만 추워도 옷을 껴입혔고, 비타민을 비롯해 몸에 좋은 것이라면 억지로라도 먹일 정도였다. 하지만 임지홍은 창백한 얼굴에 몸이 쇠약한 아이로 자랐다 …… 이번에 임지홍에 맞설 만한 강적이 나타난 것과, 그 주인공이 자신의 차밭 가운데 아주 일부를 부치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 뒤, 그는 끓어오르는 노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임장수는 그런 빈농의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이 밀려나는 것은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했다 .. (123∼125쪽)
매미소리는 우렁차게 들렸다가 끊어졌다가 되풀이됩니다. 힘들어서 쉬는가 싶기도 하고, 어쩌면 저처럼 어디서 매미가 우나 하고 들여다보려는 사람이 있어서 옹크리면서 살피느라 그러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새벽나절 잠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하늘가를 바라보았을 때, 오늘은 구름 한 점 없겠구나 싶었는데, 아침 여덟 시를 넘기고 아홉 시를 넘기니 밝은 햇살이 우리 집으로도 내리쬡니다. 바람도 알맞게 살랑거립니다. 엊저녁처럼 끈적거리지 않습니다. 이만한 볕과 바람이라면, 이불 빨아서 널면 좋으련만, 밀린 이불 빨래는 없으니 조금 아쉽습니다. 그러면 지금 덮고 자는 이불이라도 햇볕에 말려 볼까나.
.. 사실 임지홍은 이미 전통 미술 교육의 포로가 되어 있었던 탓에, 한순간의 노력으로는 지금까지의 습관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아주 총명해서 모방 실력이 남달리 뛰어난 덕에 선생님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으니, 지홍이 갖고 있는 결점들이 유달리 깊고 많을 수밖에 없었다 .. (137쪽)
우리 집에서 십오 미터쯤 떨어져 있는 전철길은 새벽 다섯 시 십 분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기차와 전철이 다닙니다. 하루에 두 번쯤, 무거운 짐을 실은 짐기차가 지나가는데, 온 건물이 부르르 떱니다. 이때마다 생각합니다. 저 기차를 모는 분은, 자기가 기차길을 지나갈 때마다, 기차길과 이웃한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줄 알까 하고.
우리 집이 깃든 골목 앞에는 차가 거의 안 다니니, 어쩌다 지나가는 차도 아주 싱싱 내달립니다. 마치 내기 달리기라도 하듯. 차는 천천히 달려도 소리가 크지만 빨리 달리면 훨씬 큽니다. 오토바이는 더 시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동차를 모는 이들은 자기가 달리는 길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가 탄 차에서 내는 소리’ 때문에 고달픈 줄을 알까요. ‘자기가 탄 차에서 내뿜는 매연’ 때문에 숨이 막히는 줄을 알까요. 자기는 자기 돈 주고 자동차를 샀으니 그만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이 자동차 하나를 만들기까지, 또 자동차가 굴러다니는 동안,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가 이루어져서 이웃한테 나쁘게 피해를 끼치는 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담배꽁초와 빈 담배곽을 길에 버리면서, 침을 퉤퉤 뱉으면서, 껌을 툭 뱉으면서, 과자 껍데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버리면서, 빈 병과 깡통을 아무 데나 얹어 놓고 지나가면서, 그나마 쓰레기봉투도 아닌 까만 비닐봉투에 쓰레기 담아 남의 집 앞에 내놓으면서, 마음에 조금이나마 꺼려지기라도 하는가요. 돈을 쓰든 찢든 버리든 ‘내 마음’인지요. 매미가 저렇게 울어대고 있는데.
(2) 그림 한 장과 삶
.. “별말씀을요. 오히려 다른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잘못 선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그림은 너무 ……, 너무 진부하다고 할까요. 저 그림들은 어린 학생들이 그릴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어른들 그림에 가까우니까요. 아니, 꼭 어른들 그림이라고도 할 수 없어요. 사실 저 또한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고아명 같은 아이야말로 아이다운 그림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연스러운지 부자연스러운지에 상관없이 자신의 느낌을 숨기지 않고 그려 내지요. 그래서 가끔 우리 어른들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선생님들 자신도 그림이라면 실제 사물과 아주 비슷하고 자연스럽게 그려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요. 사실 그런 게 바로 부자연스러움의 극치인데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그대로를 화폭에 옮겨 놓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요?” .. (35∼36쪽)
그제 저녁, 좋다는 소리를 듣는 어린이책을 꾸준히 펴내는 ㅅ출판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ㅅ출판사에서 얼마 앞서 낸 어린이책 하나를 읽다가, 몇 가지 궁금한 대목이 있는 한편, 사잇그림 몇 가지가 영 잘못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돌 던지기’와 ‘물수제비(또는 물팔매)’가 어떻게 다른가를 이야기한 다음, 책에 실린 그림 몇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먼저, 아이가 앉은 걸상 다리하고 밥상 다리 길이가 똑같이 보인다는 대목. 그림 그리는 분들이 사람이 밥걸상에 앉은 모습을 눈으로 가만히 들여다보듯 그리지 않고 머리로만 그릴 때 흔히 이런 잘못을 저지릅니다. 밥상 다리와 걸상 다리 길이가 같거나 비슷하면, 사람은 걸상에 앉아서 밥상 밑으로 다리를 넣을 수 없습니다. 걸상 다리는 절반 남짓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만화처럼 그리는 그림이라고 해도(하물며 만화 그림이라고 해도), 기하학 그림도 아니고, 무언가 일부러 비트는 그림이 아니라 한다면, 손가락을 넷으로 그리거나 눈을 셋으로 그리거나 발가락이 손가락보다 길게 그려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아이 그림을 흉내낸다고 해도, 아이들도 걸상 다리와 밥상 다리를 다른 높이로 그립니다. 그렇지만 ㅅ출판사 분은 ‘자기가 보기에는 밥상 다리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괜찮아 보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가요? 그렇게 느끼신다면 할 수 없지요.’
다음으로 1949년 겨울 일본 변두리 조그마한 기차역 앞 모습을 그린 그림. 이무렵 안경 쓴 사람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아주 드문 일입니다. 그리고 이무렵 남다른 서양 옷차림을 따르고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패딩 잠바’ 차림을 할 수야 없을 테지요. ㅅ출판사 분도 한눈에 ‘어머나, 패팅 잠바는 안 어울리네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일본 또한, 이무렵 1940년대에는 ‘잠바라는 옷’은 없다고 해야 옳습니다. ‘겉옷(또는 두툼한 겉옷)’이나 ‘외투’일 뿐이고, 때때로 ‘코트’일 뿐입니다. 모르지요. 서양 군인들이 입는 ‘잠바’가 벌써부터 사람들 사이에 퍼졌을는지도.
설마 하는 마음으로, 사진책 《김기찬-역전 풍경》(2002)과 《木村伊兵衛-街角》(1981)을 책꽂이에서 꺼내어 펼칩니다. 1968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역 둘레 모습을 담은 한국 사진책 어디에도, 또 1945년부터 1974년까지 북적거리는 일본 도심지 길거리 모습을 담은 사진책 어디에도 ‘ㅅ출판사 어린이책 사잇그림’에 나오는 옷차림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ㅅ출판사 그분한테 이 그림에 나오는 ‘배경이 되는 사람’ 모습이 잘못되어 있음을 알려주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 하나가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가를 헤아리고자 1940년대 끝무렵 일본 시골 기차역 모습 사진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터이나 그렇게까지 애쓸 듯하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찾아본다고 해서 가슴으로 느낄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출판사 편집자가 알아채서 그린이한테 알려주기 앞서, 그림을 그린 분 스스로 ‘일본이 전쟁에 지고 아주 고달프던 1949년 겨울날 시골 기차역 앞 모습’을 그림으로 그릴 때 어떻게 담아내야 할까를 생각하고 알아보고 그림에 담아야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 자신이 갖고 있는 어른의 눈빛을 버리고 아이들의 눈으로 느끼고 아이들이 하는 것을 함께 하자, 아이들은 어느새 자신 가까이로 몰려들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곽운천이 며칠 안 되는 시간에 얻은 교훈이었다 .. (82쪽)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책 만들어 주셔요’ 하는 인사를 남기고 전화를 끊지만, 쓰린 속은 달래지 못합니다. 마땅한 대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전화를 걸지는 않았지만, 꽉 막힌 속이 더 엉겨 버린 듯해 괴롭습니다.
아무렴, 매미에도 여러 갈래가 있고, 또 같은 갈래 매미라 해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크기가 다르며 날갯짓과 울음소리도 다른데, 이 다름을 느끼면서 그림으로 담아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갈매기를 그리든 기러기를 그리든, 수십 수백 수천 마리가 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똑같은 새로 이루어진 모습’이 아니라 ‘다 다른 새로 이루어진 모습’이건만, 수십 마리 기러기를 그릴 때, 다 다른 이름을 불러 가며 그릴 분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수백 마리 갈매기를 그리며 저마다 다른 이름을 되뇌이며 그림으로 담을 분을 우리 나라에서 찾을 수 있을는지요.
똑같은 민들레가 없으며, 한 민들레에서 자라는 잎이라 해도 다 다르게 돋아나고 다 다른 크기입니다. 이 다름을 잡아챌 뿐더러, 마음눈으로 알아보고서 붓질에 녹아낼 그림쟁이란, 한국에서 일감을 찾아서 아름다움을 선사해 줄 수 없을 노릇일까 모르겠습니다.
.. “아이들에게는 아이들만이 볼 수 있는 눈이 있기에, 느끼는 것을 그대로 그리면 그만입니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든 그냥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훌륭한 그림이 됩니다. 사물의 생긴 모양과 비슷하고 안 하고는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 어린이가 자신의 주장을 가진 후에, 그것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해야만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지 않고 형식에 얽매여 사물을 그대로 베껴는 그림은 창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술이라 할 수도 없고요. 이런 점만 보아도 임지홍의 그림은 사물을 잘 베낀 작품이지만, 창작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147∼150쪽)
돌이켜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섯 해 동안, 학교에서 배운 ‘그림그리기(미술)’는 하나도 없습니다. 시험문제에 나올 이론을 외우고 이름난 작가와 작품 이름 외우기로 그쳤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세상을 보고 부대끼고 느낀 이야기를 그림에 담도록 이끌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석고상을 놓고 그림자 똑같이 그려내기를 하고 자와 제도기를 써서 ‘반공 푯말 그리기’ 따위는 했을지언정, 어머니 아버지 얼굴 그리기나, 형 누나 모습 그리기조차도 해 보지 못했고, 자기가 사는 동네 그리기마저도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3) 《로빙화》라는 이야기책
영화로도 나오며 더 이름을 날린 《로빙화》라는 이야기책을 덮습니다. 진작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뒤늦게 읽고, 금세 책에 빠져서 다른 일에 곁눈을 팔지 않으며 끝까지 달음질을 칩니다.
그림을 좋아함을 넘어서 사랑하는 ‘고아명’이라는 아이는, 그림만 사랑하지 않고 뭇 목숨붙이를 사랑하고, 누나를 사랑하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자기가 사는 시골마을을 사랑하고 이웃 모두를 사랑합니다. 이 깊고 너른 사랑이 바탕이 되어서 자기 나름대로 자기 사랑을 폭 바칠 만한 그림을 담아냅니다.
그러나, 아명이 둘레에서 아명이 그림을 알아보는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 아명이 누나 ‘고차매’뿐. 아명이와 차매를 가르치는 ‘곽운천’ 선생은 아명이가 그리는 그림 껍데기는 읽어내지만, 그림에 담은 속내까지는 읽어내지 못합니다. 아명이가 시골마을에만 머물지 않고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하지만, 곽운천 선생도 아명이를 ‘천재화가’라는 틀에서만 바라보았을 뿐, ‘모든 목숨을 사랑하면서 자기 삶을 사랑한 어린이 아명이’를 있는 그대로 껴안지 못합니다.
가난한 가운데에도 부모님과 누나한테 보살핌과 아낌을 받으면서 살아가던 고아명은, 자기 삶에서 새로운 길을 그림그리기로 시나브로 느껴 가지만, 아명이 둘레에 있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섣부른 다짐과 가벼운 어김으로 깊디깊은 생채기를 남깁니다. 아명은 사랑을 받으면 사랑을, 아픔을 받으면 아픔을 그림으로 담습니다. 그리고, 아버지한테서 버림받은 고양이와 함께 자기도 조용히 아파하다가 숨을 거둡니다.
.. “이제 그만 울어……. 아명이도 만족하고 있을 거야. 천재 화가였잖니, 그치? 천재 말이야…….” 곽운천은 자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의 머리속은 텅 비어 있는 듯했다. “그깟 천재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사람이 죽으면 다 끝나는 것 아니에요?” ……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어린 소녀(고차매)의 눈빛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곽운천은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어차피 사람은 한 번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 아니겠니? 사람들 모두 아명이가 천재인 것을 알았고, 또 교훈도 얻었으니까 그것으로 된 거야.” “사람들 모두라고요? 사람들이 누가 아명이더러 천재라고 했는데요? 저는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눈물이 멈춘 차매의 눈에서 강한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방금 전에 향장님도 아명이가 천재라고 하셨잖니?” “그게 무슨 소용 있어요? 살아 있을 때는 다들 모른 체하더니 죽으니까 찾아와서 천재니 뭐니 떠들고…….” .. (281∼282쪽)
천재라는 이름이, 부자라는 이름이, 정치꾼이라는 이름이, 또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공무원이라는 이름이, 교사라는 이름이, 부모라는 이름이, 화가라는 이름이, 작가라는 이름이, 과학자라는 이름이, 또 소작인이라는 이름이 무슨 뜻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슨 값, 쓸모, 이야기가 될까 생각해 봅니다. 왜 이런 이름에 우리 삶을 매어 놓아야 하는지, 왜 우리 삶을 이런 이름에 굴레처럼 묶어 놓아야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 고석송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후우, 아무리 어려워도……, 그래도 병원에 갔어야 했는데……. 감기쯤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원수 같은 빚 때문에, 그놈의 빚을 지기 싫어 그런 것이 아니던가? .. (269쪽)
아명은 죽었습니다. 머지않아 아명이 아버지와 어머니도 늙어서 죽겠지요. 그러고 나서 어린 동생을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하는 누나 차매와 막내 아생도 늙어서 죽겠지요. 또는 가난에 허덕이다가 굶어서 죽거나, 사고나 병들어서 죽거나.
이렇게 죽어서 떠나게 되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나면, 빚이건 돈이건 무엇이 될까요. 무엇으로 남을까요. 죽은 이와 남은 이한테 어떤 뜻이 있을까요. (4341.8.3.해.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