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눈 52 : 김수정 ① 일곱 개의 숟가락

 전국이 촛불모임으로 들끓고 있으나, 제가 사는 인천에서는 촛불이 아주 조그맣게, 또 조용하게 타고 있습니다.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들은 촛불모임 소식을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천 바로 옆에 붙은 서울은 날마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몰려듭니다. 인천에서 사회운동을 한다는 분들조차 인천에서 모이지 않고 서울로 먼길을 떠납니다. 이리하여 서울 촛불모임에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모일 터이나, 정작 인천 촛불모임은 외롭기만 합니다.

 지난 6월 10일, 인천시의회에서 ‘성공적인 도시관리를 위한 시민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나온 여러 가지 이야기 가운데 하나를 살피면, “인천경제자유구역을 포함해 오는 2015년까지 추진되는 개발사업지구는 215곳이고 면적은 259㎢에 달한다. 시의 계획대로라면 분당신도시(1.65㎢) 만한 도시 157개가 1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서울도 곳곳에서 재개발 법석이지만, 인천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 + 재생사업’ 법석과 견주면 발가락 때만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데가 토박이가 드문 곳이라고 합니다만, 그나마 있던 토박이마저 제 삶터에서 내쫓기게 되는 ‘옛 도심지 없애고 새 아파트 올리는’ 일이 몹시 끔찍하다고 할 만큼 밀어닥칩니다. 워낙 한꺼번에 온갖 곳에서 쇠삽날 바람이 불고 있으니, 걷잡을 수도 없지만 숨 한 번 느긋하게 쉴 수조차 없습니다.

 “명주야, 여기 저금통장과 도장 놓고 간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찾아 쓰도록 해라. 여러 가지로 힘들겠지만, 내일을 위해 우리 조금만 더 고생하자. 오빠가.(6권 93쪽)” 김수정 님이 1990년 3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그렸던 만화 《일곱 개의 숟가락》(태영문화사,1994)을 꺼내어 봅니다. 서울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다섯 아이와 할아버지 이야기를 담은 이 만화책을, 한 해에 한두 번씩 꺼내어 몇 번씩 다시 보곤 합니다. 보고 또 보아 낡아버린 만화책이지만, 다시 보고 거듭 보는 동안, 1990년 앞뒤로 우리네 도시 서민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골목길에서 고누와 금긋기놀이를 하고, 고무줄과 긴줄넘기를 하며, 밥이 없으면 김치로만 배를 채웁니다. 따뜻한 부모와 걱정없이 살다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하나둘 세상을 몸으로 부딪히면서 스스로 헤쳐나가는 길을 찾고, 고등학생 일룡이와 중학생 명주는 둘 나름대로 홀로서기를 배우는 한편, 사랑스러운 식구들을 더욱 짙게 깨닫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밥상 위에 일곱 개의 숟가락이 놓였다. 늘 이렇게 일곱 개가 놓였으면 좋겠다.(7권 160쪽)” 아이들이 가난하면서도 서로 돕고 살던 달동네는 하나둘 사라집니다. 자가용은 없으나, 모두 똑같은 높이에서 똑같은 이웃으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삶터가 사라집니다. 번듯한 장난감은 없으나, 돌멩이 하나와 나뭇가지 하나로도 놀잇감을 삼던 아이들 놀이터가 사라집니다. 큰돈은 못 벌지만, 누구나 조금씩 벌면서 살가이 어깨동무를 하던 일터가 사라집니다. 높은학교를 다니지 못했어도, 동네 언니와 아저씨가 길잡이요 스승이 되기도 하던 조촐한 배움터가 사라집니다. (4341.6.1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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