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동화 보물창고 4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함미라 옮김, 최혜란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56 ― 지식은 많으나 빛줄기는 없는 가난뱅이 한국
 : 구드룬 파우제방,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책이름 :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 글 : 구드룬 파우제방
- 그림 : 최혜란
- 옮긴이 : 함미라
- 펴낸곳 : 보물창고(2005.1.25.)
- 책값 : 9500원



 (1) 서울사람


 사진기와 렌즈를 잃어버렸습니다. 잊고 있었던 우체국 보험을 손해를 무릅쓰고 깬 다음, 어머니와 형한테 도움을 얻으면서 겨우 새 사진기와 렌즈를 장만합니다. 인천에서는 물건을 살 곳이 마땅하지 않아서 서울로 나들이를 갑니다. 혼자 자전거 타고 후딱 다녀오려고 했으나, 옆지기가 함께 가자고 해서 전철을 타고 갑니다. 누가 보아도 배가 불룩 튀어나온 옆지기는 걸어다닐 때에는 그럭저럭 낫지만, 전철처럼 시끄럽고 흔들리고 딱딱한 자리에 앉을 때면 몹시 고달파 합니다. 더구나, 전철이나 버스라는 대중교통은, 이 대중교통을 타는 사람이 걱정없이 다니도록 하는 데까지는 마음을 기울이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광고방송이 나오고, 눈 둘 데가 없도록 광고판으로 어지러운 한편, 쉴새없이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옮겨다니면서 밀치는 사람, 시끄럽게 전화를 받고 거는 사람, 다리 쩍 벌리고 앉는 사람, 내리지 않으면서 문가에 버티고 있는 사람, 내리면서 뒤에서 미는 사람, 앞에서 먼저 타겠다고 헤치는 사람 …….

 우리들은 모두 어머니 배속에서 열 달을 머물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어느 누구도 안 소중한 사람이 없고, 어느 누구도 사랑 안 받을 까닭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목숨 하나 소중하다고 느끼는 만큼 이웃 목숨 하나도 소중하다고까지 깨닫거나 헤아리는 사람은, 어인 일인지 퍽 드뭅니다.


.. 우리는 많은 집에 지붕이 없어진 것도 알게 되었다. 다락방들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누나와 내가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서 있을 때였다. “롤란트, 너 저 비명 소리 들리니?” 누나가 물었다. 물론 들렸다. 나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시내에서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참한 소리였다. 그러나 난 모든 것이 마치 꿈속같이 느껴졌다. 그림처럼 많은 꽃들이 있던 작고 아늑한 도시 쉐벤보른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빨리 악몽에서 깨어나야 할 것 같았다 ..  (31쪽)


 볼일을 다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신촌에서 인천으로 가는 터라 신도림역을 거치게 됩니다. 앞차를 코앞에서 놓치고 한참 기다렸다가 타서 그런지, 북적거리는 칸에서 우루루 내리고, 우루루 내린 사람은 이윽고 들어오는 ‘동인천 가는 급행’을 타려고 우루루 뛰며 계단을 오릅니다. 뜀박질로 계단을 오르는 사람은 걸어서 올라가는 사람을 치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습니다. 다른 이가 자기를 치고 지나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프지 않을지 모릅니다. 자기도 그이를 치고 앞지르거나 다른 이를 치고 앞지르면 될 테니까요.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꽤 많은 사람이 우루루 몰려서 탔는 데에도 조금 빈자리가 보여서 우리가 살짝 마지막으로 탑니다. 이번 차를 보내고 뒷차를 탈까 생각했는데.

 등에 진 가방을 내려서 짐칸에 올려놓습니다. 몸이 홀가분해지기는 했으나, 어린 목숨을 부여안고 있는 옆지기는 힘들어 합니다. 한참 서서 가다가 조금 자리가 비니, 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는다고 아기엄마 몸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쭈그려앉을 때가 한결 낫습니다. 또, 자리에 앉는들, 좁은 틈바구니에서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으니 더 고달플 뿐입니다. 모로 엎드릴 수 있다면 모르되, 전철 걸상은 너무 좁을 뿐더러, ‘노약자나 임산부 지정석’이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어르신한테도 아기엄마한테도 아늑하지 못합니다.


.. 아빠는 빵과 우유를 구하러 시내에 나가 보았지만,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정말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살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갈기갈기 찢어지고 불에 탄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선뜻 구호품을 건네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52쪽)


 종로3가에서 사진관에 들른 다음 270번 시내버스를 타고 신촌으로 갈 때에는, 용케 문낮은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문낮은 버스는 서는 자리가 조금은 넓어서 몸이 무거운 사람한테는 그럭저럭 아늑합니다. 버스기사가 여느 버스보다 천천히 몰아서 고맙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빨리 달리기는 빨리 달렸고, 멈출 때에도 확 멈춥니다. 빠르기를 좀더 늦추어도 괜찮을 테고, 다시 움직일 때에도 좀더 느긋할 수 있을 텐데.


.. 나는 누나의 모습에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곧 나는 비명을 지른 것을 후회했다. 내가 놀랐던 것이 누나에게 얼마나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몸 색깔이 변하고 반점이 나타난 다음, 누나는 죽었다. 불평 한 마디 없이, 아주 조용하게. 누나는 그냥 그렇게 가 버렸다 …… “운동화 좀 벗겨. 태워 버리기엔 너무 아깝구나. 이제 운동화 같은 건 구할 수도 없는데. 나중에 네가 신어도 되겠어.” 한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  (112쪽)


 버스에서 내릴 때, 앞자리에서 내리는 사람과 뒷자리에서 내리는 사람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뒷자리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저희만 먼저 내리려고 제 앞으로 끼어들고, 어느 한 사람도 잠깐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앞자리와 뒷자리에서 한 사람씩 내릴 수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기다리는 사람만 바보입니다.

 신촌 나들목에서는 건널목으로 건너가기가 까다로워서 땅밑길로 들어갑니다. 옆지기가 뒷간에 들른다고 합니다. 조금 뒤 나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못 쓰겠다고 합니다. 하긴. 신촌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뒷간은 고작 몇 칸밖에 안 되고. 그러고 보면 종로3가역도 다르지 않고 동대문역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전철역도 뒷간은 고작 몇 칸만 놓았을 뿐입니다. 게다가 뒷간 찾기는 보물찾기마냥 어렵습니다.


.. “분유가 무슨 소용이 있어?” 엄마가 물었다. “나는 희망이 필요해요. 희망 없이는 아기가 살아서 세상에 태어날 수 없어요.” ..  (158쪽)


 사진기 대리점에 들어갑니다. 미리 부탁한 렌즈를 삽니다. 미리 부탁하는 물건을 사건만, 대리점 사람들이 일을 잘못해서 우리는 그제 왔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 다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제때 연락을 해 주지 않아 하루를 버리기도 했습니다. 지지난해에 바로 이곳에서 ‘지난주에 잃어버린 사진기를 사면서 회원등록도 했’으나, ‘입력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서 손해까지 봅니다. 입으로는 ‘미안합니다’, ‘그때는 저희가 일하지 않아서’ 하고 말하는 직원들이지만, 속으로도 미안하다고 느끼고 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아쉬운 놈은 아쉬워하지만, 아쉬움이 없을 사람들로서는 ‘수많은 일처리’ 가운데 하나로만 여기는구나 싶습니다.


.. 사람들은 찾아낸 물건들을 몰래 숨겨 두려고 했지만 헛수고였다. 온 쉐벤보른 사람들이 통조림을 얻기 위해 온통 난리를 쳤다. 그 가운데 남아 있는 것들이 지금도 인기 있는 교환 물품으로 거래되고 있다. 가장 힘들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서로 죽이기도 했다 ..  (208쪽)


 사진기 대리점을 나와 뒷길로 빠져서 샛골목으로 접어듭니다. 똑같은 서울바닥이고 신촌거리이지만, 샛골목은 퍽 조용합니다. 샛골목에도 우락부락 오토바이를 몰고 우격다짐으로 자동차를 쑤셔대는 사람이 있습니다만, 큰길을 걸을 때보다 낫습니다.

 노고산동 골목길 안쪽에 자리한 헌책방 앞에 닿습니다. 한숨을 쉬고 땀을 들이고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새로 장만한 사진기로 사진 몇 장 찍어 봅니다. 퍽 오랫동안 손에 익고 길이 들던 사진기가 아니라 어쩐지 낯섭니다. 예전보다 떨어지는 렌즈를 붙이고 사진을 찍다 보니, 느낌이나 맛이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떨어지는 렌즈로 처음 사진을 배웠고, 떨어지는 렌즈로도 내 마음에 드는 사진을 담아내 왔음을 떠올립니다. 더 나은 장비를 쓰면 더 낫습니다만, 덜 떨어지는 장비를 쓴다고 하더라도, ‘장비가 있음’에 기뻐하면서, 이 모자란 장비로 펼칠 수 있는 사진을 생각해야지, 하고 다짐합니다.


 (2) 인천사람이 벌인 시국미사


 지난 7월 2일, 인천에서도 ‘시국미사’를 열었습니다. 우리 나라 문화재이기도 한 답동성당에서, 인천에서 일하는 신부님 마흔 분 안팎이 모이고, 삼백쯤 되는 신도와 백쯤 되는 여느 사람들이 모여서 미사를 올린 다음, 답동성당부터 동인천역까지 500미터 거리를 느린걸음으로 오가면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에서 이 소식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궁금해서 400원을 주고 사서 펼칩니다. 끝까지 펼치는데 아무런 소식이 보이지 않고, 사설이나 논설에서 한 마디도 안 다룹니다. 그렇다고 인천에서 굵직굵직하게 터지거나 일어나는 소식을 다루지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맨끝 사진 한 장 넣어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시국미사와 촛불행진’ 기사를 봅니다. 기사에는 신부님이 스무 사람쯤 모였고, 미사를 드린 시민이 이백 사람쯤이라고 나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촛불모임을 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을 뿐더러, 인천 쪽에서 크게 촛불모임을 안 한다고 하더라도 부평역이나 인천시청 앞에서 조촐하게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인천에서 나오는 신문에서는 ‘서울 쪽 촛불모임’ 기사도 거의 안 다루지만, ‘인천 쪽 촛불모임’ 기사도 거의 안 다룹니다. 그래도, 이날 미사와 행진 때 둘러보니 사진 펑펑 찍는 기자 분들 꽤 많이 보이던데.


.. “누나, 여기도 전부 오염되었다면 어떡하지?” “그렇다면 우리도 머지않아 죽게 되겠지…….” 유디트 누나가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누나, 우리가 죽는 거 상상할 수 있어?” “아니, 아직은 못하겠어.” ..  (44쪽)


 미사를 보신 신부님 가운데 한 분도 말씀을 하셨고, 인천에서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한 분도 말씀을 하셨는데, 두 분은 인천에서 촛불모임을 꾀하기보다는, 전철을 타고 서울로 나들이를 떠나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주말에 서울에서 크게 촛불모임이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때 함께하며 힘을 보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마땅하고 옳으신 말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시립니다. 틀리지 않고 바른 말씀이라고 느끼면서도, 팔다리 한쪽이 저립니다. 반갑고 좋은 말씀이라고 들으면서도, 두 눈을 질끈 감게 됩니다.


.. “하지만 만약 내가 저 사람들처럼 구걸을 하러 다니면요? 아니, 그게 바로 케르스틴이라면요?” 내가 물었다. “나도 이럴 수밖에 없는 내 자신이 밉단다. 하지만 너희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을 구해 줄 수는 없잖니?” 엄마가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  (57∼58쪽)


 인천에서 이래저래 환경운동을 한다는 분이 앞에 나와서 ‘경부운하’ 못지않게 ‘경인운하’가 큰 골칫거리라면서, 이에 따른 환경파괴와 자원낭비와 끔찍한 재앙이 어떻게 닥치는가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 하는 이명박 대통령 꿈은 아직 삽질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서울과 인천을 이으려 하는 지자체 우두머리 꿈은 일찌감치 삽질을 하며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퍽 문제거리로 기사가 되기도 했는데, ‘서울과 부산을 잇는 물길’과 견주면 ‘서울과 인천을 잇는 물길’은 코딱지만큼으로 여겨지는지, 요사이는 기사가 되어 나오는 소식을 듣기가 무척 어려워졌습니다. 워낙 나라 곳곳에 터무니없는 막공사와 날림공사가 넘쳐나다 보니까, 이만한 막공사나 날림공사는 그다지 마음을 안 기울여도 되고, 눈길을 안 두어도 될 만하다고 여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민 자유발언’을 해도 된다고 하는 소리가 들려서, 우리가 사는 배다리 골목집 한복판을 꿰뚫어 놓으려고 하는 ‘너비 50미터 넘는 산업도로’ 문제를 이야기하는 한편, 우리 스스로 아름다운 줄 못 느끼면서 내다 버리고 있는 ‘골목길 문화’를 외쳐 볼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 할머니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부모님을 이해해 드려라.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엔 모두들 너무 잘 지내서 아무도 도와줄 필요가 없었지. 그래서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사는 걸 잊어버렸단다. 그리고 정말로 도움이 필요하면 국가가 맡아서 해결했거든. 그랬기 때문에, 요즘 사람들은 그저 저만 생각하는 거란다. 너희 엄마, 아빠도 바로 정 없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이고.” ..  (81쪽)


 아기들 아장걸음과 맞먹을 만큼 느리게 느리게 걸어서 동인천역으로 가는 동안, 또 동인천역에서 길을 거슬러 답동성당으로 돌아가는 동안, 이 길, 지금은 자동차만 다니도록 되어 있는 이 언덕길은 ‘자동차가 없는 사람’한테도 열려 있던 길이었고, ‘자동차가 있는 사람’이 아니어도 오가던 길이었음을 떠올려 봅니다.

 신호등이 없던 나라인 중국에 신호등이 생기고, 건널목이 굳이 없어도 되었던 중국땅 곳곳에 건널목이 그려집니다. 차가 다녀도 사람과 섞이며 다녔고, 차가 아무리 바삐 길을 가야 해도 사람 걸음을 헤아려야 했던 문화가 그리 먼 옛날까지가 아니라 가까운 앞서까지 있던 중국이었음을 헤아려 봅니다. 우리 나라도 중국과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하고, 이렇게 두 다리로 걷는 사람은 길 구석 좁은 자리로 내몰릴 뿐 아니라, 그 좁은 거님길 한쪽도 길바닥 장사를 하는 사람들한테 막히고, 길거리 가게에서 내놓는 물건에 막히며, 아스팔트길을 밝히는 거리등불과 전봇대 들한테 막히는 데다가 함부로 세워 놓은 자동차한테 막히는 모습을 맞대어 봅니다.

 우리한테는 무슨 권리가 있는지요. 우리가 져야 하는 의무만큼은 아니더라도, 무겁게 지고 있는 의무 모서리 하나만큼이라도 어떤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요. 국방 의무라면서 남정네면 죄 군대에 끌려가서 ‘살인기계 훈련’을 받고 ‘멍텅구리 되어’ 피끓는 젊음을 버린 우리들한테 이 나라는 무슨 평화를 베풀어 주고 있는지요. 직접세보다 무서운 수많은 간접세들이 넘치는 이 나라는 우리들 사회보장과 문화복지와 교육예술에 얼마만큼 돈을 들이고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요. 법은 얼마나 사람을 아끼고 있으며, 규칙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있는지요.


.. 아직 추수할 게 남아 있는 농가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이제는 콤바인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낫으로 짚단을 베어야 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낫질이라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터였다. 사람들은 다시 노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나 큰 낫은 거의 구할 수 없었다 …… 우리는 잎사귀가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는 사과와 배를 땄다. 자두는 흔들어 떨어뜨렸는데, 설탕이 다 떨어져 조림을 만들 수 없었다. 말려 보려고도 했지만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전쟁도 겪었고, 전쟁 이후의 삶도 다 겪은, 경험 많은 할머니가 우리 곁에 있었더라면! ..  (120∼122쪽)


 시국미사를 이끈 마니산성당 신부님은 “저는 한겨레21을 창간호부터 구독하고 있습니다만, 제가 있는 강화도 마니산성당 마을에는 조선일보 한 가지만 들어와요. 그곳에는 신문이 조선일보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조선일보를 보게 되었는데, 조선일보를 한 여섯 달쯤 보니까 어느새 조선일보 논조에 따라 생각하고 말을 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성당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겨레21만 봅니다.” 하고 말씀했습니다.

 신부님 말씀이 아니어도 조선일보라는 신문이 사람들한테 끼치는 힘은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사람들 마음을 크게 휘어잡고 움직이는 힘이 있구나 싶습니다. 이 힘이 슬기롭고 아름다우며 튼튼하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슬기로운 쪽보다는 어리석은 쪽으로, 아름다운 쪽보다는 밉살스러운 쪽으로, 튼튼한 쪽보다는 더러움에 찌들어 몸을 망가뜨리는 쪽으로 흐르는구나 싶어요.

 더 많은 사람들한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이 큰힘을 슬기로운 쪽에 쏟으면 참으로 나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허튼 생각인지요. 더 널리 읽히며 사람을 이끌 수 있다면, 이 큰힘을 아름다운 쪽에 바치면 그지없이 기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꿈같은 생각인지요. 더 깊이 파고들면서 사람들 몸에 스며들게 한다면, 이 큰힘을 사람들 스스로 마음과 몸을 튼튼하게 북돋우도록 모으면 대단히 훌륭할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생각은 부질없는 생각인지요.


.. 그러나 아빠에게, 아빠 세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핵폭탄이 터지기 전 여러 해 동안 인류의 멸망이 준비되고 있었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바라보기만 했다고 비난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아빠는 항상 “도대체 우리가 그 문제를 두고 뭘 할 수 있겠니?”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었다. 또 핵무기의 무시무시함 때문에 평화를 보장해 준다는 사실을 지치지 않고 이야기했었다. 아빠에겐 대부분의 다른 어른들처럼 편리함과 안락함이 가장 중요했고, 아빠와 그들 모두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  (216∼217쪽)


 인천시장과 개발업자가 2013년까지 마무리지으려고 하는 어마어마한 ‘인천 갈아엎기’ 재개발과 재생사업을 보면, 성당이나 교회 자리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성당이나 교회를 둘러싼 골목집, 그러니까 성당과 교회를 나가고 있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죄 건드립니다. 학교와 관공서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여느 사람들 살림집, 그러니까 학교로 아이들을 보내고 관공서로 민원을 넣으려 찾아가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남김없이 건드립니다. 공장과 전철역은 조금도 손대지 않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모여 지내는 동네, 그러니까 공장에 일하러 가고 서울로 일하러 가고자 전철을 타야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은 어느 곳이나 건드립니다.

 인천시장과 개발업자는 ‘인천 갈아엎기’ 재개발과 재생사업이 돈이 되는 일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푸른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이 돈은 누구 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며,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는 돈이온지요.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흐르는 돈인가를 따지기 앞서, 우리 삶에서 돈이 얼마나 크거나 아름다운지요. 자본주의 사회라서 돈이 없으면 굶는다지만, 굶지 않으면서 넉넉히 나누며 살아갈 만한 돈크기는 얼마쯤인지요. 우리는 돈버는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되고, 돈을 쓰지 않으며 즐기는 놀이는 해서는 안 되는지요.


 (3)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이야기책


 1928년에 체코에서 태어나 남아메리카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구드룬 파우제방’이라는 분은 수많은 이야기책을 써냈습니다. 한국말로 옮겨진 책이 제법 많습니다. 제가 읽은 이분 책을 손꼽아 보아도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나무 위의 아이들》, 《그리운 자작나무》,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가 있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이분 책을 살펴보면, 《하느님, 한 번 더 기회를 드릴게요!》, 《엘린 가족의 특별한 시작》, 《산적 학교》, 《두브스키와 거리의 악사》, 《그냥 떠나는 거야》, 《강물소리가 들리니 엘린》, 《구름》, 《통조림 속의 인어 아가씨》 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읽은 책으로 헤아려 본다면, 구드룬 파우제방이라는 분은, 입으로만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몸으로 평화사랑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분입니다. 글로만 자연 삶터를 아낀다고 말하는 분이 아니라, 마음을 바쳐 자연사랑으로 살아내는 분입니다. 생각으로만 가난한 이웃을 걱정하는 분이 아니라, 말씀과 몸 움직임을 함께 어우러내어 슬기로운 길을 찾으려고 하는 분입니다.


.. 흰 피부 니콜이 말했다. “비열한 놈! 폭탄이 떨어진 건 당신들 책임이야. 당신들은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든지 상관없었던 거야. 중요한 건 당신들이 편하게 사는 거였지. 지금 당신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고, 그건 당신들이 벌인 일이야. 하지만 우리까지 불행에 빠뜨렸어! 뒈져 버려라!” ..  (144쪽)


 말마디마다 뼈가 담겼는데 딱딱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술술 읽히는데 잊히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든 자본주의가 아니든, 한 사람이 사람다움을 추스르면서 삶을 가꾸는 매무새를 다독이도독 손길을 내밉니다.


.. 쓰레기더미 근처에 있는 겨울 호밀을 심은 들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을에, 그러니까 폭탄이 떨어지고 난 뒤에 씨를 뿌린 것이었다. 처음에 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녹고 있는 눈 속에 자그맣고 파란 싹이라니, 온 들판을 가득 채운 파란 새싹이라니! 우리에겐 그것이 꼭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모든 것이 황폐해졌는데도 해야 할 일을 해 놓았구나. 믿기 힘든 일이야.” ..  (177쪽)


 어쩌면, 구드룬 파우제방 님은 마흔둘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아이를 낳아서 기르게 되었기 때문에, 당신 아이한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빛줄기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서, 무지개빛 작품을 하나둘 내놓게 되었을까요. 끔찍한 전쟁통을 겪고, 한겨레(동독과 서독)이면서 남남처럼 나뉘어 으르렁거리던 아픔을 견디어 냈기에, 더 크게 껴안는 어머니품을 작품마다 고이고이 담아내게 되었을까요.

 우리 한국사람들도 식민지를 겪었고 전쟁을 치렀으며 독재를 견디었고 가까스로 선거민주주의를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계급과 신분 푸대접은 오래도록 끊이지 않고, 돈과 이름과 힘에 따른 괴롭힘과 따돌림은 여태껏 스러지지 않습니다. 방송은 즐거운 소식과 올바른 이야기를 펼치기보다 상업주의에 찌들거나 물들어 버리고, 끝끝내 권력을 붙잡아 더 큰 잇속을 챙기려는 정치꾼이 넘치는 가운데, 우리 스스로 못난 정치꾼을 솎아내거나 털어내는 데에 힘을 들이지 않습니다.


.. 나는 아이들에게 반드시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은 읽고, 쓰고, 계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  (218쪽)


 대학생이 늘고, 유학생이 늘며, 지식과 상식 넘치는 여느 시민이 늡니다. 학교는 넘치고 영어학원과 영어교재는 불티나며 거리마다 양복으로 차려입는 사람이 늡니다. 번쩍거리는 자동차는 기름값이 치솟아도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값싸고 작은 집을 새로 짓는 일이란 없이, 비싸고 큰 아파트만 올려세웠다가 스무 해쯤 지나면 허물고 새로 올려세우는 일만 되풀이됩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도 없는 체코이고 독일이고 남아메리카인데,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이라는 문학작품이 태어납니다. 원자폭탄 피해자도 있을 뿐더러, 많은데다가, 원폭 2세 환우도 있고 원폭 3세 환우까지도 있는 한국입니다만, 원자폭탄과 핵개발 문제를 다루는 사랑스럽고 뜻깊고 아름다운 문학작품은 태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문학으로도, 또 어린이문학으로도. (4341.7.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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