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한림신서 일본학총서 23
우자와 히로후미 지음 / 소화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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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 하나 47 ― 아름다운 지구가 왜 더러워지는지 아십니까
 : 우자와 히로후미,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책이름 :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
- 글 : 우자와 히로후미
- 옮긴이 : 김준호
- 펴낸곳 : 소화(1997.1.6.)



 (1) 날씨와 공무원과 내 몸


 무르익은 봄을 알리는 비가 오는가 싶더니, 봄비가 아닌 겨울비 같은 찬비가 내렸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걸맞는 따뜻한 봄비가 아니었습니다. 따뜻함을 싹 가시게 하는 찬비였습니다. 그렇게 제법 긴 날이 흐른 뒤 밤새 짙은 안개가 끼더니 날이 살며시 포근해집니다.


.. 이와 같은 기후의 변화에 의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농업, 입업, 어업이다. 농작물이나 수목의 생육은 그 토지 고유의 기상 조건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또한 어패류의 생식도 바다의 온도가 조금만 변화해도 커다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  (17쪽)


 지난겨울을 생각하면,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함이 오래도록 이어지다가 갑자기 한 번 온도가 뚝 떨어지더니, 그 뒤로는 두 달 가까이 날씨가 한 번도 풀리지 않는 꽁꽁겨울이었습니다. 이 겨울이 풀리는가 싶더니 보름 만에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조금 더웁기까지 했습니다. 봄이란 없이 곧바로 여름이 다가오느냐 싶다가, 굵은 비 몇 차례 들은 뒤 어느 만큼 알맞는 날씨로 자리잡습니다. 선뜻 여름 들머리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날씨입니다만, 집에서는 거미와 바퀴와 모기가 깨어납니다. 파리도 바깥에서 날아듭니다. 들새는 들새대로 어린 새끼를 치면서 먹이를 찾느라 바쁩니다. 도서관이나 집에 앉아 있으면서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새끼새 가냘픈 소리가 들려옵니다.

 봄꽃은 골목길마다 활짝활짝 피어납니다. 벌써 져 버린 꽃이 있고, 한창 꽃망울을 터뜨리는 꽃이 있으며, 막 피어나려는 꽃이 있습니다. 이제 비로소 따뜻함을 물씬 느끼면서 사는 새날이구나 하며 한숨을 돌릴 즈음인데, 이러다가 들이닥친 차가운 비에다가, 모진 바람에다가, 쿵쾅쿵쾅 울리는 벼락이라니.


.. 중국, 인도를 비롯해서 발전도상국이 모두 미국과 같은 대량의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고 하면 심각한 사태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발전도상국에 대해서 화석 연료의 사용을 늘리지 말라고 말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선진공업국이 화석 연료의 소비를 대폭으로 줄이는 노력을 함으로써, 비로소 지구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  (71∼72쪽)


 동네 아주머니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겨울옷을 찾아서 입습니다. 벗었던 속속옷도 다시 입습니다. 옷장에 집어넣었던 두꺼운 겉옷도 꺼내어 입으십니다. 저는 반바지차림 그대로 돌아다닙니다. ‘배다리 산업도로 무효화’ 집회터에도 반바지차림으로 갑니다. 새벽부터 비바람을 옴팡 뒤집어씁니다. 낮이 되자 골이 띵합니다. 집회터에 더 버티고 서 있기 어렵다고 느껴 슬그머니 집으로 돌아갑니다. 한 시간 반쯤 누워서 쉽니다. 두 시 오십 분쯤 일어나 동구청으로 갑니다. 동구청에서 인천시 도로건설과 공무원과 종건본부장 들이 찾아와서 주민과 만나는 자리가 있다고 합니다. 시간을 한 시간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토론자리를 마련하면서 시공사한테 ‘공사중단’ 지시를 내리지 않아서 주민들은 집회터에 그대로 비바람 맞으면서 있다고 합니다.

 네 시 반쯤 되어서야 금창동사무소로 옮겨서 토론자리를 엽니다. 긴소매 웃옷을 걸치고 동사무소로 찾아갑니다. 시에서 일하는 높은자리 공무원 분들은 말씀을 아낍니다. 주민들이 조목조목 따지는 이야기를 듣고도 ‘오늘 이 자리에 오면서 스터디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을 할 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인천시 공무원)는 원칙을 지킵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합니다. 주민들이 ‘그 원칙이라는 게 뭔가요?’ 하고 물으니, ‘공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하고 대답해 줍니다. 그리고 ‘이미 보상비가 들어갔기에 도로부지를 다르게 쓸 수 없다’고 덧붙입니다. ‘인천시 스스로도 이 길을 놓아야 할 까닭(타당성)이 없음을 깨달았으면서도 왜 정치를 펼쳐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느냐’고 주민들이 묻습니다. 이 말에는 ‘그렇게 되면 인천시 다른 곳하고 형평에 어긋난다’고 하면서, ‘우리 집 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니는데, 연수동은 왕복 12차선이지만 걸어서 학교를 다니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여기에서만 통학에 문제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주민들이 거의 한목소리로 ‘고등학생하고 초등학생이 같습니까. 산업도로를 놓으려는 이곳에는 초등학교가 네 군데나 직접 붙어 있습니다. 이 길이 왕복 6차선으로 줄인 길이라고 하시는데, 폭이 50미터가 넘습니다. 이 길을 초등학생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하고 소리높여 따집니다. 인천시에서 나온 높은자리 공무원은 말이 없습니다.


.. 선진공업국에서는 낭비를 미덕으로 물질적 쾌적함과 풍요를 탐욕스러울 정도로 추구하고 있다. 지구 환경에 커다란 스트레스를 주며 지구온난화를 비롯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음에도 거의 반성다운 반성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  (77쪽)


 저는 옆에서 시 공무원들 말과 주민들 말을 수첩에 받아적습니다. 세 시간 가까이 받아적습니다. 엄지손가락이 볼펜대에 눌려서 아픕니다. 골은 더욱 띵하고 다리는 뻑적지근합니다. 혼자서 받아적고 사진 찍고 왔다갔다 하노라니 어서 이 토론자리가 끝나고 집에 가서 쉬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세 시간이 다 되어 가는 토론자리는 마무리가 될 낌새가 없습니다. 시에서 오신 분들은 아무런 다짐을 해 주지 않습니다.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지, 스스로도 잘못이라고 느낀 대목이 있으니 다시 검토를 하겠다든지, 무슨 실마리가 될 만한 이야기는 한 가지도 내놓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립니다. “여보시오, 지금 여기 동구에 육십오세 이상 노인이 몇 사람이 사는지 아십니까?”

 속으로 외칩니다. ‘아, 모를 테지요. 아니, 생각을 아예 안 할 테지요. 이 공무원 분들은 길닦는 전문가라고 스스로 내세울 뿐, 길이 나는 곳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떻게 어울리며 사는 사람들인지는 조금도 살피지 않는데요. 도로과 공무원들은 환경영향평가도 하지 않았고, 교통영향평가도 하지 않았어요.’

 ‘길을 내야 한다면서, 정작 길이 지나가는 곳 터전은 어떠하고, 이곳에 깃들이고 있는 사람들 삶은 어떠한지를 살피지 않는 시 공무원들이에요. 흔히들 쇠밥그릇이라고 말을 하지만, 쇠밥그릇이라기보다는 ‘동네 형편을 조금도 모르는 책상물림’이에요.’


..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 때문에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적절한 직업을 얻지 못하고 대부분이 집을 떠나 돈벌이를 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무쓰오가와라 개발 계획은 록카쇼무라의 농민을 말 그대로 지옥에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  (169쪽)


 모든 것을 숫자로만 따지는 공무원입니다. 동네사람 한 달 벌이를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얼마쯤인지 숫자로만 따집니다. 이 동네 사람이 사는 집을 돈이라는 숫자로만 따집니다. ‘만족도 조사’라고 있다면, 이 또한 숫자로 금을 죽죽 긋습니다. 숫자 아닌 사람들 목소리를, 손과 발을, 얼굴과 몸뚱이를, 가슴과 마음을, 눈과 머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좋아하는 그 숫자놀이 가운데 ‘소음공해 기준치’를 여러 달에 걸쳐서 따졌을 때, 진작에 훨씬 넘어서며 말썽이 있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이러한 보고서 숫자는 아예 펼치지 않습니다.

 머리가 어질어질합니다. 무슨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무슨 말을 적을 수 있을까. 이 공무원들한테는 동네 골목길에 심긴 꽃나무와 푸성귀는 ‘몇 푼어치’ 안 되는 것들이라서, 이 꽃과 나물을 싹 밀어내고 얼마쯤 갚아(보상) 주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구나 싶습니다.  집값 얼마 갚아 주고, 집 옮기는 돈 얼마 보태어 주고, 어여 이곳을 떠나 주기만을 바라는구나 싶습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갑니다. 몸살이 납니다. 이튿날 하루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드러눕습니다. 그 다음날 입술이 부르틉니다. 그 다음날 입안이 헐고 붓습니다. 밥을 못 먹고 말도 못 하며 한 주를 보내고 나니 비로소 몸살과 붓기가 가라앉습니다.


 (2) 자동차와 길과 사람과 삶


 돈 뽑으러 은행을 다녀옵니다. 건널목 푸른불이 들어와서 건너려는데 옆에서 큰 차가 빠르기를 늦추지 않고 싱 달려오더니 사람을 칠 듯합니다. 움찔 놀라면서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운전사를 바라봅니다. 차가 끼이익 멈춥니다. 틀림없이 푸른불로 신호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건너고 있지만 이 자동차는 그냥 내달렸습니다. 치일까 걱정되면 푸른불이라 해도 비키라는 뜻인가요.

 오늘뿐 아닙니다. 다른 때에도 으레 이렇습니다. 어디를 가든, 인천이 아닌 서울에서도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대전에서도 꼭같은 일을 겪습니다. 조금 넓은 골목길을 걷고 있으면 뒤에서 차소리가 들립니다. 옆지기와 느긋하게 손잡고 걷고 싶으나 손을 놓고 길가 담벼락에 찰싹 붙어야 합니다. 골목에서도 사람은 깨갱이고 자동차는 빠방입니다.


.. 자동차는 이중의 의미에서 지구온난화의 요인이다. 우선 자동차의 생산 공정에서 직접 간접으로 화석 연료의 소비를 필요로 한다. 승용차를 1대 생산하는 데 평균 884kg(탄소환산)의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배출한다. 두 번째로 자동차를 사용할 때는 당연히 석유를 필요로 한다. 그때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일본의 경우 소형승용차 1대당 1년 간 평균 649k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  (76쪽)


 우리 집 둘레로 문방구 도매상이 줄줄 잇닿아 있습니다. 이 도매상 앞에는 늘 차들이 뒤죽박죽입니다. 물건을 싣느라, 또 부리느라 북적북적입니다.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두찻길인데, 차가 한 줄로만 서 있어도 막히고 두 줄로 서 있으면 거의 꼼짝을 못합니다. 그러나 자기 볼일을 보아야 한다는 짐차들은 시내버스가 빵빵 울려도 비켜 줄 생각을 않습니다. 집안에서 이 빵빵질 소리와 운전기사가 외치는 소리를 낱낱이 듣습니다.

 차댈 곳이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도매상거리를 이루도록 허가를 내준 구청 공무원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으신지.


.. 자동차가 가져온 가장 커다란 해독은 말할 것도 없이 교통사고에 의한 희생이다 …… 현재 자동차의 교통사고로 일본 전체에서 매년 1만 명 이상의 사망자와 백만 명 가까운 부상자가 나오고 있다. 인간의 희생이라는 점에서 볼 때 자동차에 의한 피해는 한신대진재가 매년 두 번 일어나는 셈이다 …… 또한 자동차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운동 부족에 빠지며 오염된 대기 속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건강을 해치는 위험도 높아진다 …… 문화의 발전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나, 자동차를 이용하면 이와 같은 관계를 갖는 기회가 적어지고 ..  (86∼88쪽)


 낮 두어 시 무렵, 초등학교 앞은 노란 차들로 가득합니다. 학원마다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법석입니다. 학교 마치고 곧바로 집까지 걸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터이나 무척 많은 아이들은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돌기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언제쯤 얼마 동안 집과 학교 둘레 골목을 거닐어 볼 수 있을까요. 아이들이 만나는 이웃 어른은 부모와 학원 교사와 학원차 운전기사를 빼고 누가 또 있을까요.


.. 일본의 도로는 원래 보행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폭도 좁으며, 구부러진 길이 대부분이다. 옛날에는 어린이들은 길에서 놀거나 즐겁게 통학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자동차가 좁은 길에 침입해 왔을 때, 어린이들의 통학은 대단히 위험하게 되어, 길에서 노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린이 공원은 자동차의 보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들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이다 ..  (117∼118쪽)


 그제, 서울 나들이를 하면서 시위 대학생 물결을 마주칩니다. 대학생들은 한목소리로 ‘비싼 등록금’과 ‘미친소병 소고기 문제’를 외칩니다. 알록달록 깃발을 들고 종로거리를 걷는 대학생들이 퍽 많았으나, 훨씬 많은 대학생들은 이 시위 물결에 함께하지 않습니다. 서울 아닌 곳에서 배우는 대학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시위대가 종로거리를 지나가니 닭장차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닭장차가 움직이니 여느 차와 버스는 꼼짝을 못하고 멎습니다. 교통경찰이 넓은 길 한복판에 나와서 여느 차 움직임을 막고 닭장차가 지나가도록 길을 틉니다. 어느 시민도 투덜거리지 않습니다. 교통방송에는 무슨 이야기가 흐르고 있을는지.


..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육교를 오르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세계에서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 이와 같은 육교가 눈에 띄는 곳은 없다 ..  (118쪽)


 종로에서 명륜동까지 걸었습니다. 창경궁을 옆으로 끼는 길을 걸었습니다. 차소리가 아주 큽니다. 차소리가 없다면 고즈넉한 길일 테지만, 이 기나긴 길을 걷는 내내 옆사람하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잠깐 다리쉼을 하고 싶어도 걸상 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고 배기가스와 차소리로 고달프기 때문에, 어딘가 들어갈 때까지는 쉼없이 걸어야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띄엄띄엄 한둘만 보입니다. 이 길을 걷는 우리는 바보였나.

 누구라도 걷고픈 마음이 안 생길 테지요. 차가 싱싱 달리는 길가에는, 차소리로 시끄러운 길 둘레에는, 싱그러운 바람이 아닌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셔야 하는 거님길에는, 어느 누가 걷고플까요.


.. 보행자는 언제 자동차에 치일지 모르는 길을 자동차의 배기가스를 허파 가득히 들이쉬면서 걷는 셈이다 …… 주택도 직접 차도에 면한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무 등을 심고, 사람들의 생활이 자동차의 배기가스ㆍ소음ㆍ진동으로부터 보호되도록 배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22쪽)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을 잔뜩 사들이니까, 또 사진장비를 이고 지느라 어깨가 고단하니까, 둘레에서 ‘웬만하면 작은 차 하나 사라’는 말을 끊임없이 합니다. ‘운전면허도 없습니다’라 말하면 ‘왜 운전면허가 없어? 면허부터 따야겠네’ 하고 덧붙입니다. ‘차를 왜 몰아야 할까요?’ 하고 되묻거나 ‘차에 넣는 기름은 어찌하나요?’ 하고 되물으면 ‘무거운 짐으로 몸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다’고 대꾸해 주고, ‘더 부지런히 일해서 돈벌면 되잖아’ 하고 대꾸해 줍니다. 그러면 저는 ‘무슨 일을 해야 돈벌이가 되어 차를 굴릴 수 있을까요?’ 하고 여쭙니다. ‘책 많이 팔면 되잖아?’ ‘어떤 책을 많이 팔아야 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책을 많이 읽을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물음. 차 없는 사람은 차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노릇.

 더운 여름날 부채질로 더위를 나고 있으면, 그 흔한 선풍기 하나 안 놓느냐는 타박을 듣습니다. 추운 겨울날 불때기를 적게 하면서 겨울나기를 하면, 기름 아깝다 하지 말고 보일러 돌리라는 꾸중을 듣습니다. 냉장고 안 돌리며 틈틈이 동네 저잣거리 나들이를 하며 푸성귀를 사먹으면, 김치 어떻게 먹느냐고 마트 가서 쟁여놓고 좀 먹으라는 핀잔을 듣습니다. 텔레비전 안 켜고 연속극 하나 안 보며 살면, 요즘 세상에 원시인 될 일이 있느냐며 눈총을 받습니다.

 대학교도 나와야 하는데, 어차피 나오려면 이름있는 대학교를 나와야 합니다. 회사원이 되어야 하는데, 어차피 하려면 연봉 몇 천만 원이나 억대는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굴려야 하는데, 작은 차로는 멋대가리없으니까 되도록 큰 차로 뽑아야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아도 연속극뿐 아니라 뉴스며 영화며 스포츠며 뭐며 두루 꿰어야 합니다.


.. 미국에서는 자동차 없이는 생활할 수 없다. 도시의 형태도 도시간의 교통 체제도 모두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이 전제가 되고 있다 ..  (138쪽)


 머리가 어지러워서 두 손을 듭니다. 두 발까지 들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만 마치고는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될까요. 아니, 중학교나 초등학교만 마쳐도, 아니, 제도권 학교는 안 다닌 채로 세상을 살아가면 안 되는가요. 한 해 삼천만 원도 아닌 천만 원도 아닌, 한 달로 치면 삼사십만 원만 벌면서 살아가서는 안 되는지요. 많이 벌어 많이 쓰는 삶이 아니라, 알맞는 만큼만 벌어서 알맞는 만큼만 쓰며 살면 안 됩니까. 텔레비전도 안 보고 라디오도 안 듣고 신문도 안 읽으면 세상에 어두운 바보인가요.

 이웃 아주머니가 한 마디 쏩니다. “그러면 산에 가서 살지, 여기서 왜 살아?”

 싱긋 웃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어디 산 같은 산이 남았나요?” 하고 대꾸하고 싶으나 속으로 삭입니다.


 (3)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책


 ‘성장이론가­’로 이름을 날린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가 1996년에 《지구온난화를 생각한다》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책을 펴냅니다. ‘경제성장’을 파헤치는 교수님이 어인 ‘지구온난화’ 책을 다 내느냐 싶은데,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책끝에 붙이는 말에 “지구에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 덕분이다.(181쪽)”고 말합니다.

 그렇군요. 글쓴이 우자와 히로후미 교수는 머리로 알고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군요. 날마다 숨쉬지 않으면 안 되는 공기(대기)가 얼마나 사람한테 소중한가를, 또 사람과 이웃한 자연 삶터에 소중한가를 깨닫고 있군요. 숨 안 쉬고 살 수 있겠습니까. 숨은 안 쉬어도 경제성장만 해도 되겠습니까. 숨은 덜 쉬면서 돈을 많이 벌면 우리 삶이 넉넉해집니까. 숨은 못 쉬어도 자동차만 굴릴 수 있으면 우리 삶은 기쁨이 넘칩니까. 숨은 막혀도 수십 억짜리 아파트 푹신걸상에 앉아 리모콘 단추를 누를 수 있으면,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습니까.


.. 지구온난화 문제가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이해될 수 있다면 하는 꿈을 품고 있었던 차였다 ..  (11쪽)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숨을 쉬어야 합니다. 물을 마셔야 합니다. 밥과 숨과 물이 있어야 비로소 삽니다. 이 세 가지는 어느 누구한테라도 가장 좋은 밥이어야 하고, 가장 깨끗한 숨이어야 하며, 가장 맑은 물이어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이 더러운 가운데 어떤 물질문명을 누릴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지저분한 가운데 어떤 과학기술이 꽃피울 수 있는가요. 밥ㆍ숨ㆍ물이 형편없는 가운데 어떤 개발을 하고 어떤 돈벌이를 할 수 있습니까.

 재개발(뉴타운)은 밥ㆍ숨ㆍ물이라는 테두리에서 먼저 헤아려야 합니다. 밥ㆍ숨ㆍ물을 엉망으로 무너뜨린다고 한다면, 재개발은 함부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서울과 부산을 이으려는 큰물길로 경제효과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밥ㆍ숨ㆍ물을 망가뜨리게 된다면, 억지로 정치힘을 써서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나라밖에서 유전자조작 먹을거리(GMO식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까닭은,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네 밥ㆍ숨ㆍ물을 흐트리기 때문입니다. 값이 싸다고 해서 구정물을 마실 수 없고, 값이 눅다고 하여 농약으로 씻은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나와 내 이웃 모두 자기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가꿀 수 있는 밥과 숨과 물을 곁에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학문도 문화도 예술도 이곳에서 비롯해야 합니다.


.. 사회적 공통자본의 문제를 더욱 중요시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인간적 존엄을 지켜 시민적 자유를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안정적인 사회를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  (144쪽)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는 책 하나입니다. 나부터 아름답게 거듭나고 내 이웃이 함께 아름다워지자는 책 하나입니다. 돈을 바라서 읽는 책이 아닙니다. 돈을 바라서 마시는 물이 아닙니다. 돈이 되니까 읽자고 하는 책이 아닙니다. 돈에 따라서 살아가는 우리 몸뚱이라면 얼마나 불쌍하고 서글픕니까.

 창영초등학교 앞 분식집에 들러서 핫도그 하나 사먹다가, 새로 마련하신 듯한 튀김떡볶이가 있어서 여쭈었더니 하나 집어서 먹어 보라고 합니다. 안 되지요, 하면서 500원어치를 시킵니다. (4341.5.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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