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하나 44 ― “죽으면 나도 해부되겠지요.”
 : 이시무레 미치코, 《슬픈 미나마타》



- 책이름 : 슬픈 미나마타
- 글 : 이시무레 미치코
- 옮긴이 : 김경인
- 펴낸곳 : 달팽이(2007.6.5.)
- 책값 : 12000원



 (1) 영화 한 편 보려고


 황윤 감독이 찍은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인천을 뺀 나라안 큰도시 모두에서 지난 3월부터 걸렸습니다. 이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걸렸는데, 그때는 충주에 살고 있었기에 좀처럼 짬을 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전국 개봉관에서 건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러면 우리 동네에서도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인천만 빠진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에서만 걸더군요.

 그러다가 엊그제 4월 15일부터 드디어 인천에서도 자리 하나 얻어서 겁니다. 황윤 감독 인터넷방에서 소식을 보고는 부랴부랴 인천 개봉관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그러나 상영 소식이 없습니다. 아침 아홉 시 반에 전화를 겁니다. 받지 않습니다. 하루 지나 16일 낮에 다시 겁니다. 인천 개봉관에 걸린 지 이틀이 되도록 인터넷방에는 소식이 없기에 “황윤 감독님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인터넷방에는 올라오지 않아서요. 지금 상영하고 있나요?” “네, 그런데 상영 주최가 달라서 인터넷에는 올리지 않았습니다.” 응? 상영 주최? 상영 주최가 다르든 말든, 지금 이곳에서 하고 있으면 알림글 한 줄이라도 달아 놓아야 하지 않나? 주최가 달라도 자기 극장에 걸고 있으면, 시간표라도 적어 놓아야 사람들이 찾아가지, 시간표도 없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알고서 이 영화를 본다고. 더우기, 영화를 틀어 주는 시간은 낮 두 시와 저녁 여섯 시. 회사원들이 일 마치고 찾아가서 보기에도 뻘쭘한 때. 살림하는 분들이 밥차리다가 찾아가서 보기에도 어중간한 때.


.. 아이들은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유기수은에 중독된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났던 것이다 … 생선이라곤 먹어 본 적도 없는 젖먹이 아기가 미나마타병일 거라고는 엄마는 꿈에도 생각 못하고, 진단이 내려질 때까지, 시내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했고, 그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배며 어구들을 내다 팔아야만 했다 ..  (23쪽)


 히유, 그래도 먼 데까지 비싼 찻삯과 품과 시간을 안 들이고도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영화를 볼 수 있으니 고맙다고 해야 할 테지요. 며칠까지 영화를 걸어 주느냐고 여쭙니다. “아마 4월 말일까지는 걸 거예요.” “그러면 4월 30일까지는 사람들이 찾아가서 볼 수 있지요?” “그럴 겁니다.”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쌀쌀맞다 싶은 안내전화를 끊습니다. 오늘(16일)은 늦었고 내일(17일) 짬을 내어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 “먼저 큐헤이가 죽을 줄 알았지. 나도 한숨도 못 자고. 눈도 안 보여, 귀도 안 들려, 말도 제대로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인간 같지도 않은 소리로 울어대면서 날뛰는 거예요. 아이고, 이제 제발 죽자, 이게 지옥이 아니고 뭐냐, 우리가 있는 여기가 지옥이지……. 우물을 조사하고, 된장단지를 검사하고, 심지어는 단무지까지. 소독을 한답시고 몇 명이나 다녀갔는지 몰라요 … 물건을 살 수 있기를 하나, 물도 받으러 안 가면 안 되지. 가게에 가도 겁먹은 가게 주인은 동전도 제 손으로 안 받아요 … 다시 태어나고 일곱 번 다시 태어나도 못 잊지. 물도 못 얻어먹던 그 한을” ..  (42∼43쪽)


 17일 낮 한 시. 이제 가방을 챙겨 극장으로 가야 할 때. 도서관에서 하던 일을 마치고 살림집으로 올라갑니다. 옆지기는 누워 있습니다. 흔들어 보지만 꿈쩍을 않습니다. 요사이는 밤새 배속 아기가 꿈지럭거려서 잠을 못 잔다고 하는데, 몸이 고단하여 못 일어나는 듯. 그렇다면 어떡하나. 내일과 모레와 글피는 꼼짝없이 도서관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데. 다음주에? 다음주에는 아무 일 없으려나?


.. 선생님은 노인을 위로하며, “할아버지 안 추우세요?” 하고 묻는다. 노인은 그 소리를 듣고 퉁명스럽게 “어나”라고 대답한다. 미나마타병에 걸린 일흔네 살까지, 태어나서 한 번도 그는 병에 걸려 본 적이 없었고, ‘의사선생님’에 몸을 맡겨 본 적도 없었다 ..  (54쪽)


 고이 잠든 옆지기를 그대로 둔 채 옥상마당으로 나옵니다. 눈부신 햇볕을 눈을 안 찡그리며 쬐며 섭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하다고, 이불빨래 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널찍한 뒷간으로 들어갑니다. 뒷간이자 씻는방. 이 집은 겨울에 몹시 추운 대목이 얄궂지만, 씻는방이 넓어서 이불빨래하기에는 매우 좋습니다. 따순 물 쓰자면 보일러 돌리는 기름값에 땀이 비질비질 나지만, 그래도 집에서 걱정없이 씻을 수 있는 대목은 그지없이 즐겁습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에도 겨울추위가 걱정이었으나, 빨래할 때 바닥에 죽죽 펼쳐놓고 할 수 있다는 대목과 이불빨래 신나게 할 수 있다는 대목이 아주 좋았어요.


.. “그 당시 바다색이, 뭐라고 하면 좋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 나빠. 바다가 저리 된 줄도 모르고 참 잘도 고기잡이를 나갔네 그려. 뭐랄까, 바다가 걸쭉해졌다고나 할까……. 도대체 그때, 회사는 뭘 만들고 있었던 걸까요? 이물질이 질펀하게 떠 있는 바다를 가르고 나가면 배도 끈적끈적한 이물질로 묵직해져 오죠. 기분 나쁜 물질을 흘려보낸 게 분명해. 우리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이야 뭐가 뭔지 모르지만, 그런 물질은 빨리 대학교 선생님들한테 가져가서 봐달라고 했어야 옳았어요” ..  (76∼77쪽)


 밟고 비빕니다. 꾹꾹 밟는 만큼 비눗물이 넘실거립니다. 깨끗한 물을 틀어서 새로 받고 또 밟고 비비고, 다시 헹구고 또 물을 받고, 또 밟고 …… 이불을 헹군 물은 씻는방 바닥에 널찍하게 뿌리면서 바닥솔로 신나게 쓱쓱싹싹 합니다. 이불을 빨 때는 씻는방 바닥 닦기도 함께 하는 셈.

 나중에 아기가 태어나고 자라면 아기를 씻기면서 이불을 빨 생각이고, 이불을 헹구면서 아이한테 솔을 쥐어주고 바닥 닦이를 시킬 생각입니다. 그러자면 적어도 너덧 해는 지나야 하겠지만.


.. “시집와서 3년도 안 돼 이런 희귀병에 걸리고 말았으니 애석타. 나 혼자서는 단추도 못 채워 … 나 다시 한 번, 원래 몸으로 돌아가고 싶어. 부모님이 일해서 먹고 살라고 주신 몸인데. 병 같은 거 앓아 본 적이 없었는데. 난, 전에는 손이고 발이고, 어디가 됐든 끄떡없었는데 … 지금쯤이면 보리 갈 땐데. 보리도 갈아야 하고 거름도 내야 하는데 … 일 생각만 하면 맘이 맘이 아니네. 그러고 또 숭어철인데. 이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있어도, 안절부절 애가 타서 죽겄네 … 일하고 싶어라, 내 이 손발로 … 나는 세 살 적부터 배 위에서 커서, 바다는 우리 집 앞마당이나 진배없어요 … 바다에 가고 싶네 … 우리는 처음에 폐병환자 옆 병동으로 보내졌는데, 그 폐병환자들조차도 우리를 싫어했어. 미나마타에서 희귀병에 걸린 사람들이 왔다, 옮는다더라 하면서. 그러더니 우리가 있는 병동 앞을, 그 폐병환자들이 입을 손으로 막고 숨도 안 쉬고 내빼듯 지나가는 거야. 자기네가 진짜 전염병인 주제에” ..  (126∼137쪽)


 어느덧 이불빨래는 끝납니다. 물은 다 짜지 않고 고무대야에 담은 채로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담벼락에 널어야 하니, 이불이 머금은 물기를 조금씩 담벼락에 쏟습니다. 담벼락을 얼추 물로 닦아낸 뒤 이불을 넙니다. 조금 뒤 이불 아래쪽을 쭉쭉 잡아당겨 물을 쪽 뺍니다. 자, 이제 제 몫은 다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오로지 햇볕한테 맡기면 됩니다.

 기지개를 켭니다. 덜컹덜컹 전철 소리를 듣다가는 아래층으로 내려옵니다. 젖은 고무신은 창턱에 올려놓아 말립니다.


.. “사람은 죽으면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까? 나 역시, 다른 것으로 말고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면 원이 없겠네. 다시 한 번 영감하고, 배를 저어 바다에 나가고 싶어. 내가 측면 노를 젓고 영감은 앞 노를 젓고. 어부의 아내가 되려고 아마쿠사에서 시집왔는데” ..  (154쪽)


 책상 앞에 앉습니다. 쓰다가 만 글을 다시 쓸 생각입니다. 너저분한 책상에 쌓인 책도 좀 갈무리를 해 봅니다. 보내야 할 편지도 마무리를 짓습니다. 오늘은 책방 나들이를 잠깐 해야겠습니다. 아차,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다 빠졌다는 동무네 집에도 찾아가서 바람도 넣고 자전거 손질도 좀 해 주어야겠습니다. 햇볕도 좋은데, 슬금슬금 걸어가며 찾아가 볼까 싶습니다.


.. “여보, 새댁, 미나마타병은 가난한 어부가 걸린다, 그러니까 쌀밥도 제대로 못 먹고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이 걸린다고들 하는데, 난 정말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봐요, 나처럼 평생을 고기 낚는 배 한 척, 아내 한 사람, 나는 집사람 하나만을 내 여자라고 믿고 … 도쿄에는 사람 수보다 차가 더 많아서 어디 다니지도 못한다더구먼. 집도 사람도 너무 많아져서 햇빛도 제대로 안 든다면서. 그래서 거기 사는 사람들은 다 가늘디가는 버섯같이 된다대. 도쿄사람들은 그러니까 불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거라고. 말 들으니까 도쿄 어묵은 썩은 생선으로 만든다는데, 새댁 그거 알어? 익혀서 먹어도 식중독에 걸린다더라고. 그러고 보니 도쿄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 신선한 생선 맛도 모르고 햇빛도 제대로 못 쐬고, 불쌍하게 살다 가겄네. 우리가 봐도 도쿄사람들은 정말 불쌍해. 도미도 청어도 물들여서 팔고 있다잖어? … 새댁, 그거 알아요? 물고기는 하늘이 주신 거라고. 하늘이 내려주신 것을 공짜로 우리가 필요한 만큼 잡아서 그날 하루를 사는 거여” ..  (179∼181쪽)


 이러는 동안 옆지기가 부시시 일어나서 ‘왜 안 깨웠느냐’고 한 마디 합니다. 그러다가 ‘깨웠어도 못 일어났을 거’라고, 몸이 많이 무겁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함께 옥상마당으로 올라갑니다. 말리고 있는 이불을 뒤집습니다. 햇볕이 아주 좋아서 저녁이 되기 앞서 다 마를 듯합니다.

 다시 전철 소리를 듣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전철 소리가 너무 큽니다. 전철 회사에 이 끔찍한 소음 공해를 따질 수 없을까 옆지기한테 이야기를 하니, 옆지기는 전철보다 아래층 도매상에서 자동도르레를 쓰면서 내는 소리가 더 크다고, 저 소리를 이 집 임자한테 따지고 싶다고 대꾸를 합니다.

 앞에서는 차 소리, 옆에서는 전철 소리, 아래에서는 도매상 도르래 소리. 여기에다가 머잖아 인천에 아시안 게임을 치른다며 온 동네를 재개발지구로 삼아서 파헤치려고 하는 쇠삽날 소리까지 하면.


.. 신문기자나 잡지사 기자들이 찾아들었다. 그들은 정말 많은 것들에 대해 묻는다. 그들은 메모지와 펜을 먼저 꺼내든다. ‘저, 생활수준은?’ ‘네?’ ‘그러니까 말입니다, 밭은 몇 평이고 배는 몇 톤짜립니까?’ ..  (201쪽)


 아침나절에 날카로운 고양이 소리를 들었는데, 요즈막이 고양이들 발정기가 아니냐 싶습니다. 엊그제 옆동네를 거닐며 발정난 고양이를 한 마리 보았습니다. 몹시몹시 괴로워하며 날카롭게 니앙니앙니앙 하더군요.

 동네 비둘기는 우리 집과 이웃집 창턱이나 옥상 담벼락에 앉아서 구우구우 웁니다. 옛날 집 창턱은 들새가 앉기에 넉넉합니다. 빈집 창턱은 들새가 사람 걱정 없이 해바라기를 하면서 쉴 만한 터입니다. 겨울에는 힘들지만 여름에는 요 창턱에서 새근새근 잠들 수 있어요.


.. “나무에도 풀 한 포기에도 영혼은 있다고 나는 믿어요. 물고기에게도 지렁이에게도 영혼은 있다고 믿는데. 우리 유리한테는 그것이 없다니, 그게 말이 돼요?” “하아∼ 세상에 없던 병이라잖어.” “병하고는 달라요. 대여섯 살 한창 예쁠 나이에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을 빼앗겼는데 … 유리는 이미 빈껍데기라고, 영혼은 이미 남아 있지 않은 인간이라고, 신문기자가 그렇게 썼데요. 아마도 대학 선생님 소견이겠지요. 그렇담 여보, 유리가 뱉어내고 있는 저 숨은 대체 뭐지요? 풀이 뱉어내는 숨인가? ……” “그만 좀 해, 여보.” “안 할게요, 안 할게요. 영혼이 없는 아이라면, 유리는 무엇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요?” ..  (219∼220쪽)


 저와 옆지기가 보려고 하는 황윤 감독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치여 죽은 짐승(영어로 하면 ‘로드킬’)’ 삶터를 담아낸 97분짜리 작품입니다. 영화 본 사람들 이야기와 소개를 살피면, 〈어느 날 그 길에서〉는 우리 나라 ‘국도’에서 치여 죽은 수천 마리에 이르는 짐승들을 몸소 찾아나서며 담아냈습니다. 자가용으로만 움직이는 분들은 잘 못 느끼고,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고다녀도 거의 느끼지 못하지만, 시골에서 살거나 시골길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면 날마다 ‘치여 죽은 짐승 주검’을 셀 수 없이 많이 만납니다. 제가 충주에서 살며 서울로 자전거로 오갈 때에는, 날마다 열셋∼스물둘에 이르는 ‘새로운 주검’을 늘 보았습니다.

 국도를 달리는 차는 빠르기를 줄이지 않아요. 100킬로미터도 아닌 120킬로미터나 140킬로미터 빠르기로 내처 달리기만 합니다. 길가에 자전거가 달리건 할매 할배가 걷건 그예 빵빵질을 하거나 위협운전을 합니다. 사뿐사뿐 다니는 운전자도 많지만, 아슬아슬 달리는 몇몇 운전자 때문에 많은 사람들 간이 콩알만해지고 옆마을 마실을 느긋하게 다니지 못해요. 그나마 짐승들은 씽씽 달리는 차에 치이면 어떻게 되는 줄 하나도 모른다고 느낍니다. 치이고 밟히고 죽고. 이렇게 죽어서도 또 밟히고 자꾸 밟혀서 아예 떡이 되어 버리고.


.. 햐쿠켄 배수구가 있는 코이지섬 근처에 멸치나 미역이 이상번식해서, 채취하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은 우리 마을까지 금세 전해지게 마련이다. 미나마타병 미역이라도 봄의 미각. 그렇게 믿는 나는 그 미역으로 된장국을 끓인다.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된장이 응고되어 미역 된장무침이 만들어진 것이다. 입에 넣으면 그 된장이 걸쭉하니 기분 나쁘게 잇몸에 들러붙어 떨어질 줄 모른다. 미역은 뽀득뽀득 마찰음을 낸다. ‘회사는 밤이 되면 냄새나는 기름 같은 것을 바다에 흘려보내. 밤낚시 나가서 물속에서 팔을 집어넣으면 그놈의 것이 살에 딱 들러붙는데, 끈적끈적한 것이 꼭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니까!’ 어민들이 희귀병 발생 당시에 주고받았던 말을, 나는 멍청히 입을 벌린 채 기억해 낸다 ..  (235쪽)


 국도를 자전거로 달리면서 짐승 주검을 볼 때마다, 이 짐승들은 온몸을 내던져서 ‘빠르기에 목매다는 사람들’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느꼈습니다. 짐승들은 ‘우리는 이렇게 죽지만, 우리를 죽이는 너희들은 목숨 값어치를 아느냐’고 자꾸자꾸 되묻는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없이 죽어 가지만, 우리를 죽이는 너희들은 이 땅에서 얼마나 시간을 아끼고 큰차를 즐기면서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고 캐묻는다고 느꼈습니다.


 (2) 삶과 전통


.. 젊은이들이 마을에, 그러니까 어부로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  (15쪽)


 가만히 생각하면, 저는 굳이 〈어느 날 그 길에서〉 같은 영화를 안 보아도 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치여 죽는 짐승’ 이야기를 여태껏 줄기차게 보면서 사람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세상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요. 막개발 삽날이 아닌 사랑스러운 동네 문화를 북돋우려고 일손을 거드는 움직임이라면,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 이야기를 온몸으로 살고 있는 셈이라고도 느낍니다.

 다만,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 우리 이웃들하고 이 영화를 함께 보면서, 지금 우리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동네 문화를 꺾으려고 하는 인천시장 마음 씀씀이를 좀더 깊이 헤아려야겠다고 느낍니다. 머리로 아는 영화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인 영화 이야기를 이웃 아주머니와 할머니들한테 해 주면서, 함께 영화 보러 가자고 이끌 수 있습니다. 영화 전단지라도 몇 장 챙겨 보여드리면서 시간 날 때 영화 보러 가시라고 이끌 수 있습니다.


.. “위로금 인상이라……, 그게 없으면 목에 풀칠하기도 어렵지요. 우리 큐헤이는 병에만 안 걸렸어도 이제 어엿한 어른인데. 남자애들은 중학교만 올라가도 이 근방에선 어엿한 어부가 아니던가요. 그런데 위로금은 아직 아이라고 고작 일 년에 3만 엔 ..  (29쪽)


 그동안 치여 죽은 이들은 들짐승이요 산짐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골길에서만 들짐승과 산짐승, 때때로 시골 아지매와 할배였습니다. 한국사람 거의 모두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는 개발(뉴타운) 바람에 밀려나는 가난한 사람들이 ‘죽음과 마찬가지’인 더 아래인 밑바닥으로 나동그라집니다.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빼앗깁니다. 서민들 사는 집터는 ‘낡고 허름하니 빨리 없애야 할 나쁜 것’이라는 딱지를 함부로 붙이는 판입니다. ‘재개발 이익을 동네 주민한테 돌려 주겠다’고 한들, 우리 삶이 돈 몇 푼으로 무엇이 나아집니까. 어느 날 갑자기 천만 원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만큼, 그 천만 원에 값하도록 우리는 살림터에서 떠나야 합니다. 천만 원을 냉큼 챙기는 그때 우리 집터 임자는 우리가 아니라 개발업자와 시청 공무원입니다. 천만 원에 눈이 돌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 앞날은 오로지 ‘돈만 많이 벌면 장땡’이라는 생각에 젖어듭니다. 그런데 기껏 그 천만 원으로 어디 가서 집 얻고 사나요.


.. “그런데 후생성이라고 찾아가 봤자 아무도 몰라요. 미나마타에서 왔다고 해도, 미나마타라는 데가 어디 있는 동네냐고. 규슈에 있는 벽촌으로, 지도를 꺼내서 어디 있는 데냐며 짚어 보라고 하고. 게다가 그 미나마타 중에서도 맨 끄트머리에 있는 츠키노우라니 유도니 모도니 아무리 말해도, 상대도 안 해 주는 거라. 전혀 듣지를 않아요. 들어줘도, 도쿄사람 특유의 콧소리로, 아, 그래, 그래요? 하면서 흘려듣기만 하더라 이거예요” ..  (91쪽)


 우리 나라 ‘온산병’이나 ‘원진병’, 이웃 일본 ‘이타이이타이병’이나 ‘미나마타병’, 그리고 미국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떨어뜨려서 생긴 ‘원폭병’, 우리 나라 탄광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걸리고 연탄공장 옆에 살던 사람이 걸리던 ‘진폐증’, 더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기름배 사고 들은 하나같이 우리들이 돈에 매이고 돈만 바라보면서 터져나옵니다.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일, 무기를 끊임없이 만드는 일, 무기 팔아먹는 일 또한 제 배만 불리고 이웃 배는 굶어도 된다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우리가 정작 참다운 삶과 아름다운 삶에 눈을 두고 있다면, 무기개발과 군대거느리기에 그토록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지 말고, 사회문화와 보건복지에 아낌없이 돈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 “바다 속 풍경도 육지하고 똑같이, 봄도 가을도 여름도 겨울도 있다우. 나는 바다 속에는 반드시 용궁이 있다고 믿어. 꿈처럼 아름다울 거야. 바다에 질리거나 하는 일은 죽어도 없어” ..  (140쪽)


 무지개를 볼 수 없다고 푸념을 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우리가 날마다 타고다니는 자동차(대중교통까지) 문제를 먼저 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흰구름과 뭉게구름을 볼 수 없는 하늘을 탓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나무젓가락과 종이잔부터 해서, 온갖 쓰레기를 어떻게 줄이거나 안 나오도록 살아갈 수 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빗물을 그릇에 받아서 먹던 지난날이 그립다고 하는 우리들이라 한다면, 전기제품을 돌리면서 꾸리는 살림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면서 꾸리는 살림이어야 합니다.

 벼농사를 지어야만 땅살리기가 아닙니다. 텃밭농사를 지어야만 땅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에 눈길을 두고, 우리가 함께할 만한 일에 어깨동무를 해야지요.


.. “여보 새댁, 우리 부부는 누더기 같은 옷이지만 찢어진 것은 기워 입고, 하늘이 먹여주신 것을 먹고, 조상을 섬기고, 신들을 믿음으로 받들고, 다른 사람 원망하지 않고, 남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면서 살아왔다오” ..  (182쪽)


 새 대통령 이명박 씨가 벌이는 ‘서울-부산 물길’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습니다. 아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명박 씨가 놓으려는 ‘서울-부산 물길’ 막기에만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느낍니다. 이명박 씨한테서 ‘서울-부산 물길’을 앗아가 버리면, 이이는 그 다음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할까요. 여태껏 돈을 들여서 공사를 벌여 더 많은 돈을 거두어들이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분인데, 이분 머리에서 무슨 생각이 나오게 될까요.

 이명박 씨뿐 아니라, 이명박 씨가 거느리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명박 씨와 이명박 씨 둘레사람뿐 아니라, 우리 나라 공무원과 개발업자들도 그렇습니다. 대한주택공사가 해 온 일이 무엇이며, 산업자원부가 해 온 일이 무엇이고, 건설교통부가 해 온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땅장사 집장사를 넘어서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한결 나은 삶을 바라는 우리들이라고 한다면,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를 꾸준하게 말하는 가운데 ‘서울-부산 물길’이 터무니없는 생각임을 깨닫도록 해 주어야지 싶습니다. 바보스럽게 살면서 바보인 줄 모르는 바보한테 우리 모두 즐거울 길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함께 아름다운 쪽으로 나아가야지 싶습니다.


.. “사실은 우리 아버지가 미나마타병이었다고, 죽어도 말 안 할 생각이여. 벌써 옛날에 거기를 떠나왔고, 우리 고향 미나마타라고 하면 갈 곳이 없어진다고” ..  (254쪽)


 제주 물맛이 좋아 ‘삼다수’라는 먹는샘물을 팔려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제주 물맛이 좋으면, 우리 사는 이곳에서 마시는 물도 제주섬 물맛 못지않게 시원하고 싱그러울 수 있도록 동네 삶터를 가꾸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집집마다 정수기를 들여놓고 즐기는 물맛이 아니라,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먹으면서 싱긋 웃을 수 있는 맛을 느껴야 할 일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자연 삶터를 찍으려고 멀리멀리 ‘깨끗한 나라’로 비행기 타고 떠나는 데에 돈을 쓰지 말고, 우리 삶터가 오래오래 아름다운 자연 삶터가 되도록 ‘돈을 이 나라 이 땅에서 쓰면서 우리 삶터를 가꾸어야’ 할 노릇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심정으로, 시민들은 골목골목이며 사거리며 텔레비전 앞에서 열을 올려가며 말하고 있었다. 미나마타병 환자 111명과 미나마타시민 4만5천 명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하는 말들이 들불처럼 확산되더니, 갈수록 대합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 ‘질소공장을 지켜라! 회사를 지켜라!’와 같은 구호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  (275, 278쪽)


 (3) 덮을 수 없는 책, 《슬픈 미나마타》


 어른들이 읽을 만한 ‘미나마타병’ 이야기책은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병》(한울,2006)과 《하라다 마사즈미-끝나지 않은 수은의 공포》(대학서림,2006) 두 권이 있습니다. 어린이책으로는 《하라다 마사즈미-미나마타의 붉은 바다》(우리교육,1995)가 있습니다. 세 권 모두 한 사람이 쓴 책입니다. 여기에 1927년 쿠마모토현 아마쿠사군에서 태어난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아주머니로 집안살림을 꾸리는 가운데 1969년에 펴냈던 《슬픈 미나마타》(우리 나라에는 2007년에 옮겨짐)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에 앞서 ‘미나마타병’을 다룬 책이 더 있는가 헤아려 보면, 《구와바라 시세이/구와바라 가즈꼬 옮김-미나마타의 아픔》(을지서적,1990) 한 권이 있습니다. 제 다리품이 모자란 탓이 있을 텐데, 여태까지 제가 알아본 ‘미나마타병 이야기’를 다룬 책은 이 다섯 권이 모두입니다.


.. 미나마타병을 잊어버려야 한다면서, 결국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과거 속으로 묻어버려야 한다는 풍조, 지금도 알게 모르게 매몰되어 가고 있는 그 암흑 속에 소년만이 우두커니 혼자 남겨져 있다 ..  (31쪽)


 이 다섯 권 가운데 꾸준하게 읽히는 책은, 어린이책으로 나온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 한 가지입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보도사진으로 담아낸 《미나마타의 아픔》은 일본 사회에서나 큰 울림을 이루어냈을 뿐, 한국 사회에서는 터럭만한 울림도 이루어내지 못했습니다. 하라다 마사즈미 님 두 가지 번역책은 적잖이 전문책이라 할 만하지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이들조차 거의 거들떠보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 어민들은 상처입고 지치고, 그리고 그들의 눈동자는 더없이 고독해 보였다 ..  (110쪽)


 그래도 아이들을 믿어 볼 수 있을까요. 어린 날부터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을 아이 가운데 하나라도 뒤엉킨 우리 세상과 뒤틀린 우리 사회를 깨달아서, 차근차근 고쳐 나가는 데에 힘을 쏟으리라 믿어 볼 수 있을까요.


.. “죽으면 나도 해부되겠지요.” 어부의 아내 사카가미 유키의 목소리 ..  (151쪽)


 교수님도 하지 않고 지식인도 하지 않으며 의사들은 등을 돌리는 가운데 기자 또한 하지 않던 ‘미나마타병 참모습 캐기’를, 집살림을 하는 아주머니 이시무레 미치코 님이 온몸으로 다부지게 부딪히면서 《슬픈 미나마타》라는 책 한 권을 여미어 놓았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병든 몸으로 혼자 살아갈 힘도 벅찬 할아버지가 옥구실 같은 동화를 수없이 남겼습니다(권정생). 동화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과 이웃 땅 들풀 같은 아주머니들이, 우리 가슴을 시리게 하는 알뜰한 이야기책을 꾸준하게 엮어내고 있습니다. 전문가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평교사 한 사람이 우리 말과 글을 올곧게 추스르는 이야기책을 수없이 남겼습니다(이오덕). 평교사 한 분만큼은 아니지만 이 땅과 이웃 땅 들꽃 같은 헌책방 일꾼들이, 먼지구덩이를 파헤치고 뒤지면서 오래도록 빛이 나는 고운 책들을 꾸준하게 되살려 내고 있습니다.


.. “할아버지 댁의 할머니도 미나마타병이 아닌가요?” 이렇게 묻기는 쉽다. 하지만 미나마타병은 문명과 인간의 존재의 의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205쪽)


 수은공장(질소공장)에서는 미나마타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수은공장 사장은 끝까지 ‘우리는 지역발전에 힘을 썼을 뿐이다’면서 핑계를 대었습니다. 나라에서는 아무 책임을 안 지려고 발뺌을 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수은공장이 있습니다. 수은공장 못지않게 다른 온갖 공장에서는 우리 공기와 물과 흙을 더럽히는 쓰레기들을 쏟아냅니다. 제대로 걸러내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채 돌아가는 공장이 수두룩합니다. 쇠붙이 다루는 공장 옆에 1분만 서 있어 보십시오. 숨이 막히고 코가 뚫어질 듯 아픕니다. 자동차 배기가스는 공장보다 더하다고 할 만한 공해물질을 쏟아놓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추 하나로 텔레비전을 켜고 세탁기와 전자레인지와 청소기와 에어컨을 돌리고 겨울을 여름같이 살고 있습니다. (4341.4.17.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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