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보 한 곳에서 글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마땅한 벌이가 없이 사는 형편으로는, 조그마한 글삯이라도 주는 글 청탁이 몹시 반갑습니다. 그러나, 저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은, 글에다가 사진까지 보내 주어도 다리품 값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데요.

 날이 갈수록 디지털사진기가 널리 퍼지는 가운데, 사진 저작권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번 사외보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 헌책방을 다니며 사진 찍을 때마다 필름값 나가는 소리에 주머니가 후줄근하고, 찍은 필름은 현상을 하고 필름스캐너를 돌려서 하나하나 파일을 만들어 놓느라 눈알이 빙글빙글 돌고 팔이 저립니다.

 이런 일은 돈을 벌자고 한 일이 아니기에, 헌책방 사진을 찍고 글을 남겨 놓은 대가를 딱히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사외보든 신문사든 잡지사든, 이분들이 누군가한테 글 하나 써 달라고 할 때에는, 글 한 꼭지를 놓고 원고지 장수를 헤아리며 글삯을 주는데, 이 글과 함께 쓰는 사진을 놓고도, 사진 한 장에 얼마쯤 품값을 매겨 주어야 하지 않을까 모르겠습니다.

 어제 낮, 이번에 저한테 글을 청탁한 사외보에서 다시 연락이 옵니다. 헌책방 찾아가는 길그림을 하나 넣으면 좋겠다면서. 길그림이요? 좋지요! 길그림까지 곁들이면 ‘헌책방 이야기’는 글과 사진과 그림이 어우러져서 멋진 작품으로 태어나리라 봅니다. 더욱이, 헌책방에서 만난 책 겉그림을 스캐너로 긁어서 넣으면 한결 멋있을 테고요. 그런데, 사외보 엮어내는 곳에서 저한테 줄 수 있다는 일삯은 오로지 ‘글쓴 대가’ 한 가지.

 사진을 찍는 데에 들어가는 품과 시간, 책을 사는 데 들어간 돈, 필름과 책을 스캐너로 돌리는 데 들어가는 품과 시간, 마지막으로 헌책방 길그림을 그리는 데에 들어가는 품과 시간 …… 이 가운데 어느 하나도 일삯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네 가지는 자원봉사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ㄱ방송국에서 사진 좀 보내 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무슨 사진인가 하니, 제가 있는 이곳 인천 배다리에서, 인천시 공무원들이 ‘너비 50미터가 넘는 산업도로를 동네 한복판을 꿰뚫으며 놓으려고 하는 짓’을 놓고, 이와 얽혀서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난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을 꾸준히 찍어 놓은 사진을 100장쯤 보내 줍니다. 지난주에는, 인천 지역 신문사들에서, ‘산업도로 반대 농성을 하고 몸싸움을 하며 공사강행을 막는 모습’ 찍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웃으면서, “네, 보내 드리지요. 명함을 하나 주시거나 인터넷편지 주소를 적어 주셔요.” 하고 말을 합니다. 현장에는 와 보지 않고 사진만 보내 달라고 하는 기자님들은, 당신들 신문사에서 다달이 꼬박꼬박 넣어 주는 달삯을 받으실 테지요.

 요즈음 《발칙한 한국학》(이끌리오,2002)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스콧 버거슨이라고 하는 미국사람이 쓴 책입니다. 이이는 책 앞머리에 ‘어느 방송국에서 자기를 찍겠다는 연락이 와서 있었던 일’을 적어 놓습니다. 자기를 취재하겠다던 방송국 피디와 방송작가는 당신 스콧 버거슨이 펴낸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버거슨 씨는, 그 책을 읽고 다시 연락해 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때 방송작가는 시간이 없고 바빠서 힘들겠다고 합니다. 한참 생각하던 버거슨 씨는, 바쁘다니 어쩌겠느냐 싶어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하루 내내 고달픈 취재에 시달립니다. 자기들이 촬영장비를 들고 찾아와서 찍기는 찍지만, 무엇을 찍어서 내보내야 ‘스콧 버거슨이 누구인가?’ 하는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지 몰랐을 테지요. 버거슨 씨는 하루 내내 괴로웠지만, ‘공짜 밥’ 얻어먹었고, 한국땅 방송작가와 피디 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버거슨 씨 같은 일을 수없이 겪습니다. 퍽 자주 그러는데, 방송사든 신문사든 잡지사든, 저를 취재하면서 ‘제가 찍은 헌책방 사진’을 ‘그림으로 넣고 싶다’는 말을 곧잘 합니다. 그러면 저는 슬그머니 한 마디 합니다. ‘사진에는 저작권이 있을 텐데요.’ 그러면 맞은쪽에서는, ‘방송에 나가면 최종규 씨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는 ‘저희가 취재경비가 얼마 없어서 저작권료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는 대꾸. 그러면서 저녁밥이든 낮밥이든 같이 먹자고 합니다. 그러면 ‘밥은 안 사 주셔도 되니까, 다문 만 원이라도 사진값을 치러 주시면 좋을 텐데요.’ 하고 여쭙니다. 이러면 으레 ‘글쎄요.’ 하는 대꾸. 그러다가 요즘 들어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명함에 웹하드나 인터넷편지 주소를 적어 주면서, ‘사진 좀 주세요!’ 하고 당차게 이야기합니다. 그래, 달라면 줘야지, 어쩌겠는가? 싶어서 ‘그러면 어떤 사진을 보내드릴까요?’ 하고 여쭙니다. 그러면 거의 ‘최종규 씨가 보기에 괜찮은 사진으로 보내 주세요.’ 다시 여쭙니다. ‘저는 제가 찍은 사진 가운데 버리는 사진이 한 장도 없어요. 필름값이 없기에 한 장 한 장 곰곰이 생각한 다음에 찍어서, 모든 사진을 스캐너로 긁어서 파일로 담아 두고 있어요. 바라는 사진이 무엇인지, 제 인터넷방에 들어와서 살펴보시고 파일번호를 알려 주셔요. 인터넷방에 올려놓은 사진만 해도 수천 장이 되거든요.’ 이런 여쭘에 돌아오는 대꾸는 하나같이 ‘그런가요? 그래도 알아서 골라 주셔요.’

 어쨌든. 사외보에 글과 사진과 그림을 모두 보냈습니다. 마감 맞추느라고 힘들었는데, 한숨 돌립니다. 그런데 사외보 엮는 분은 ‘최종규 씨가 헌책방에서 책을 보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한 장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찾아서 보내 드려얍지요! 예전에 어느 자전거잡지 기자가 취재하면서 찍은 사진(이 사진은 제가 잡지를 사서 스캐너로 손수 긁어 파일로 만들었습니다)을 보내 줍니다.

 이제 더 없겠지? 낮참을 먹으면서, 물 한 잔을 마시면서, 졸린 눈을 비비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그저께부터 이곳 사외보에 보낼 글을 쓰랴 사진 추리랴 책 겉그림 긁으랴, 여기에다가 아침부터 헌책방 길그림을 손으로 그려서 스캔질 하랴 …… 손가락과 손목과 팔뚝이 남아나지 않습니다. 아침과 낮밥을 먹는데, 손이 후덜덜 떨립니다. 책읽은 느낌도 글로 끄적이고, 헌책방 나들이도 갈무리하고, 우리 말 이야기도 좀 끄적거릴까 했더니 팔이 아파서 글을 못 쓰겠습니다. 아무래도 좀 드러누워서 팔을 주물러 주면서 쉬어야겠습니다. 자판 두들기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뭐, 세금 빼고 13만 얼마쯤 벌었습니다. 통장에는 다음달에나 다다음달에 일삯이 들어올 테지만. (4341.4.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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