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테러리스트 - 앙굴리말라 이야기
사티쉬 쿠마르 지음, 이한중 옮김 / 달팽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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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부처와 테러리스트
- 글 : 사티쉬 쿠마르
- 옮긴이 : 이한중
- 펴낸곳 : 달팽이(2005.1.27.)
- 책값 : 6500원



 이 책 하나 35 ― 바보 기자와 어리석은 공무원한테 책 선물
 : 사티쉬 쿠마르, 《부처와 테러리스트》를 읽고



 (1) 기자와 공무원


 월요일인 어제, 2월 25일 아침 아홉 시 사십팔 분, 연합뉴스 인천지사에서 일하는 기자한테서 전화가 옵니다. 이분이 쓴 ‘배다리 산업도로 공사재개’ 기사가 오로지 인천시에서 보도자료로 돌린 글에 바탕을 두고 쓰느라, 주민들 목소리를 하나도 담지 않기도 했으나, 이보다도 사실관계를 찬찬히 살피지 않고 썼기에 인터넷편지로 ‘정정보도 요청’을 했어요. 기자는 자기가 주민 목소리를 담지 않은 대목과, 자기가 쓴 기사와는 달리 ‘인천시가 주민하고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은 한편, 이야기를 나누려 애쓰지도 않았다’는 대목, 또 공사진행율을 수치로 따져서 말할 때 당신들로서는 그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대목 들을 말합니다.

 그분으로서는 고침 기사를 쓸 수는 없구나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래도 전화 한 통 넣어 주니 고맙습니다. 우리 동네 한복판, 아니 인천이라는 곳이 지금 모습으로 자리잡는 동안 뿌리내리고 살아온 오래된 서민 동네 한복판에 너비 50∼70미터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우격다짐으로 뚫어내겠다고 하는 인천시 공무원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 동네 사람들하고 ‘그래, 무엇이 문제냐?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안다, 안다. 그대가 누군지 안다. 하지만 그대는 내가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죽어 줄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부처는 잠시 한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죽는 것은 아무도 해롭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죽이는 건? 남들을 죽이니 어떤 기분이 들지, 앙굴리말라? 죽이는 것에 관해 자신의 감정을 깊이 한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  (25쪽)


 공무원은 누구 때문에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은 어디에서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은 왜 일하는 사람일까 생각해 봅니다. 공무원이 되면 ‘먹고살기 힘든 요즘 세상에 안정된 일자리와 넉넉한 노후보장’이 되니 좋은가요. 위에서 내려보낸 일을 말없이 따르기만 하면 되는가요.

 관청 어느 곳마다 ‘민원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민원실’에서는 어떤 ‘주민 목소리’를 듣고 고치려고 하는지요. 주민들이 살기 팍팍하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한테 있어야 할 것은 수천 억이나 수 조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으며 새로 닦는 찻길이 아닌데, 그 어마어마한 돈을 우리 주머니에서 뽑아낸 세금으로 닦을 까닭이 없는데, 그 엄청난 돈으로는 지역 문화를 북돋우고 지역 사회를 가꾸고 지역 복지와 교육을 일으키는 데에 써야 할 텐데, 이런 목소리는 ‘민원’이 아니라고 여겨서 입 닫고 귀 막고 눈 감고 있어도 되는지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보다 찻길이 더 많은 세상이 되어 버리면, 사람이 걱정없이 걸어다닐 길이 아니라 주차장만 잔뜩잔뜩 만들어 버리면, 우리들이 이 땅에 목숨붙이 하나로 태어난 보람과 기쁨은 어디에서 어떻게 맛볼 수 있을는지요.


.. “사랑의 힘을 발휘해 보라. 본성의 힘은 칼의 힘보다 강하다. 사랑의 힘은 그대 안에서 자라는 것인 반면, 칼의 힘은 바깥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 칼의 힘은 남들의 나약함과 굴종과 무기력에 의존한다. 그러나 사랑의 힘은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지.” ..  (32∼33쪽)


 어제 아침 연합뉴스 기자한테 전화를 받은 뒤, 부지런히 짐을 챙겨 인천시청으로 갑니다. 아침 11시에 시청 기자실에서 ‘산업도로 강행하려는 인천시를 규탄하며, 다시금 인천시장 면담을 요청’ 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동네사람 가운데 하나이면서,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시민기자인 하나로 찾아갑니다.

 인천시청은 퍽 뻘쭘한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무렵, 인천 중구에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는데, 그때에나 이제에나 교통 편이 아주 나쁩니다.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요. 더욱이 버스는 시청 뒷문에 멈출 뿐입니다. 시청으로 찾아갈 때 앞이 아닌 뒤에서 버스를 내려서 찾아가도록 하는 곳이 인천 말고 다른 데에 또 있을까요?

 옆지기가 버스를 타면 멀미를 하기에 인천지하철을 타고 갑니다. 돌고 돌아 인천시청역에서 내리니 우람하게 지은 땅밑 건물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인천지하철에는 짐칸이 없어, 타고 오면서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투덜투덜거렸는데, 전철에서 내려 높직한 계단을 하염없이 밟고 오르면서, ‘지하철역 안에 이렇게 대리석으로 꾸미는 데 들어간 돈이 어디에서 나왔는데?’ 하는 푸념이 끊이지 않습니다. 앉아서 다리쉼 할 자리도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그예 큼직큼직하게 이것 꾸미고 저것 꾸미고 …… 누구한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물인지.

 버스와 마찬가지로 시청 뒷문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인천지하철. 시청 앞은 오로지 자가용만 몰고 가서 내리도록 짜 놓았습니다. 예전에 한 번 버스를 타고 시청 앞으로 오며 이십 분 가까이 걸었던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버스정류장부터 시청 앞문까지 얼마나 멀든지.


.. “그렇다면, 지금 현재 불행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데 어찌 미래에 행복해질 생각을 한단 말인가? 어찌 엉겅퀴 씨앗을 뿌리고 장미를 기대할 수 있는가? 지금이야말로 언전하게 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이다.” ..  (42쪽)


 시청으로 들어갑니다. 가운데문은 닫혀 있습니다. 수위실과 맞닿은 왼쪽 쪽문 하나만 열립니다. 가운데에 버젓이 있는 큰문이 왜 닫혀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만, 시청 경찰 여러 사람이 가운데에 우뚝 서서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을 샅샅이 훑어봅니다.

 기자실은 2층. 기자실로 올라가는 계단은 왼쪽으로 돌아서 가라고 합니다. 나중에 보니 가운데 계단도 있어요. 그런데 이 가운데 계단은 ‘인천시장 전용 계단’으로 느껴집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시장실에 들르려고 하니 시청 경찰 대여섯이 우리를 막아서며 ‘어디를 가느냐? 시장은 지금 밥먹으러 가고 없다’면서 붙잡습니다. 다른 경찰 하나는 ‘내려가는 계단은 저기에 있다. 저쪽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가운데에 널찍하고 좋은 계단이 있는데, 왜 구석진 곳에 조그맣게 있는 꽉 막힌 계단으로 가야 하나요?

 오늘도 지난달처럼, 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인천시장 얼굴은 못 봅니다. 시장 비서 얼굴조차도 구경하지 못합니다. 시청 경찰 얼굴만 잔뜩 보고는 돌아서야 합니다.


.. “연꽃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연꽃은 화를 낼 줄도 모릅니다. 연꽃은 누구를 기쁘게 할지, 누구를 불쾌하게 할지 모릅니다. 연꽃은 판단하지 않습니다. 연꽃은 성인에게도 죄인에게도 기쁨을 줍니다. 인간은 왜 연꽃처럼 될 수 없을까요?” ..  (59쪽)


 기자회견 자리를 물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옆지기가 말합니다. ‘기자라는 사람이 다들 저런가?’ 하고. 당신도 아까 한 마디를 하려다가 참았다는데, 인천에서 인천 이야기를 쓰는 기자들이 인천 이야기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말합니다. ‘여태껏 배다리 산업도로 이야기가 한두 번 나오지 않았는데, 올 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면서, 어쩜 이럴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게 웃습니다. 한 마디 대꾸합니다. “인천시장도, 인천시 공무원도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와 보지만, 기자들도 배다리에 한 번도 안 와 보잖아요. 공무원도 주민하고 만나려고 안 하지만, 기자도 주민하고 만나려 안 하잖아요.”

 허허허. 허전하고 텅 비어 가는 마음 따라 눈물이 살그머니 맺힙니다.


.. “꿀벌은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옮겨 다니며 한 번에 조금씩만 꽃 속의 꿀을 얻는다. 꿀벌이 해를 끼친다고 불평하는 꽃은 없다.” ..  (68쪽)


 기자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대학교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으리라 봅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들 가운데 대학교 안 나온 사람 하나 없으리라 봅니다. 선배 공무원도, 선배 기자도 학교교육 튼튼히 받고, 여러 가지 지식과 상식이 많으리라 봅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왜 이렇게밖에 일을 못할까요.

 기자든 공무원이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쉽게 일해서는 안 되는 자리일 텐데요. 책상머리에서 일해서는 안 되는 기자이자 공무원 아닌가요. 전화통만 붙들면서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는 안 되는 기자이자 공무원 아닌가요. 어떤 정책을 꾸려나가면서, 간담회든 공청회든 설명회든 한두 번이 아니라 수십 차례 이어나가면서, 또 몸소 주민을 찾아다니며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잘잘못을 가다듬어야 하지 않나요. 기사 한 줄에 자기 목숨을 걸듯 꼼꼼히 살피고, 바로 그 한 줄을 올바르게 적어내려가려는 매무새로 바삐 뛰고 움직이고 돌아다녀야 하지 않나요.

 그러나 기자와 공무원 탓만 할 수 없습니다. 이분들이 학교 다니며 배우는 동안, 이분들을 가르친 또다른 분(교사, 교수)들이 이분들을 올곧게 이끌지 못했거든요. 지식보다 삶을, 지위나 계급보다는 사람을, 돈보다는 사랑을, 권력보다는 믿음과 나눔을 섬기라는 뜻을 몸으로 곰삭이도록 다스리지 못했잖아요.


 (2) 사람과 살면서 사람을 못 보면


 새벽 한 시 오십 분에 잠에서 깹니다. 일어나서 오줌을 누고 바깥을 바라보니 온통 하얗습니다. 하얀 밤입니다. 이 하얀 밤, 언손을 녹이며 신문을 돌리고 우유를 돌리고 골목길을 비질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고될까요. 소복소복 내리는 눈에 첫 발자국을 남기거나 두 번째나 세 번째 발자국을 남길 이들 얼굴은 얼마나 꽁꽁 얼어붙어서 바알갈까요.

 창가에 기대어 골목길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몇 장 찍습니다. 이 깊어가는 밤, 발자국을 하나하나 만들면서 돌아다녀 볼까. 기자들이 이 동네를 손수 밟지 않는다고 안쓰러워하지 말고 내가 이 동네를 밟으면 되니까. 공무원들이 정작 자기가 일하는 동네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기만 할 뿐 아니라 알려고도 안 하는 몸가짐을 슬퍼하지 말고 내가 이 동네를 더 알아가면 되니까.


.. “전하, 폭력은 폭력을 낳습니다. 복수와 정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어디선가 폭력이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정의보다 위대합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친절과 자비를 베푸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진정한 용서와 자비는 야만적인 행위를 저지른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  (57쪽)


 사흘 춥고 나흘 따뜻하다던 옛날씨는 말 그대로 옛날씨이고, 내내 춥다가 살포시 풀리려던 날씨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쌀쌀해지더니 비가 한 차례, 눈이 한 차례.

 온도가 떨어진 이 밤, 방온도는 1∼2도를 오락가락. 보일러를 돌리고 싶으나 기름이 바닥나고 있어서 살짝 한 번 돌린 뒤 끄고. 집에 도시가스가 들어온다면 보일러를 돌렸을지 모르겠다고 생각. 어쩌면, 도시가스로 불을 때는 집은 ‘기름이며 가스며 얼마나 쓰이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는 채 돈만 벌어서 불값을 치르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렇다고 자기가 잡아먹는 자원이 얼마나 되는가를 살갗으로 못 느끼지는 않을 터이나, 깊이깊이 느끼기는 어렵지 않을까. 주머니 걱정에 앞서 자원 걱정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들은 따숩게 겨울나기를 한다지만, 바로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다음세대는 어찌하지? 기름이 바닥나고 가스도 모자랄 스무 해 뒤는, 쉰 해 뒤는 어찌하지? 우리가 낳을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은 어찌하지? 우리는 다음세대뿐 아니라 다음다음세대한테 아무런 책임을 안 지고, 지금 이 자리에서 이대로도 좋고 즐겁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되는지?


.. “그대의 마부가 화살에 맞았는데 그대는 누가 활을 쐈느냐고 알아보겠느냐?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어느 대장간에서 만든 것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화살촉이 쇠로 만든 것인지 구리로 만든 것인지를 먼저 알아보겠느냐?” ..  (87쪽)


 기자회견 자리에서, 주민대책위 부위원장 아저씨와 헌책방 아주머니 한 분이 거의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에 길을 낸다고 들인 800억(이 돈은 시에서 밝힌 돈이지만, 800억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느냐 하는 내역을 공개하지 않습니다.)이 큰 돈이고 조금만 더 하면 공사가 끝나는데 왜 반대하느냐고도 말하는데, 앞으로 길게 내다보면 훌륭한 투자를 한 셈이 됩니다. 지금은 이만큼이지만, 지금 잘못된 결정을 내려서 밀어붙이면 앞으로는 더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서 돌이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들여서 어떻게 보면 도심지 퍽 넓은 자리에 빈 자리가 생겼습니다. 이 빈 자리는, 인천을 인천시장이 명품도시를 바라는 그 뜻대로 참으로 인천다운 인천 모습을 가꾸며, 인천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숲을 가꿀 수 있으며, 인천이라는 곳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데에 아름답고 훌륭하게 되쓸 수 있습니다’ 하고.

 저도 잠깐 말미를 얻어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이 산업도로 공사 예산으로 수천 억이 잡혀 있는데, 앞으로 몇 천 억을 더 들여서 세금을 더 내버리기보다는, 그 돈으로 배다리를 비롯해 이 동네 살림집을 조금만 손질하면 서울 인사동보다 멋진 문화마을로 가꿀 수 있어요. 이곳에 와서 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파이란〉이라든지 〈고양이를 부탁해〉라든지, 이곳은 50∼60년대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한편, 인천상륙작전 때 폭탄 안 맞고 살아남은 30년대 건물도 제법 있어요. 동인천역 앞에는 옛날 양조장 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 문화유산이 지금은 노래방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 건물은 아파트 짓겠다고 허물면 그냥 사라져요. 다시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문화유산을 그냥 노래방 건물로 있게만 해도 될까요? 인천에서 앞으로 2014년에 아시안경기를 치르며 숙소가 모자라서 아파트를 새로 지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배다리 둘레 창영동 금곡동 송림동 송현동 율목동 숭의동 도원동 화수동 화평동 들 해서, 이곳에 있는 집을 살짝살짝 고치면 얼마든지 민박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집은 이 집 그대로 귀중한 근현대 문화유적지 터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지금 사는 대로 보람을 느끼게 하고, 이 동네는 동네대로 아시안경기 때 숙소로 쓰도록 하면서 나라밖, 인천 바깥 사람한테 인천이라는 곳이 어떠한 곳인가를 말하도록 할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넓고 큰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겁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앙굴리말라의 말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카스트제도와 그의 극악무도한 행동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들은 왜 앙굴리말라가 카스트제도를 비난해야 하는지, 그것을 왜 자기 범죄에 대한 변명거리로 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대부분의 ‘돔’ 사람들과 불가촉천민들은 법을 잘 따르지 않는가.” ..  (119∼120쪽)


 밤 두 시 반,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인터넷방에 들어가 봅니다. 어제 기자회견 자리에 와 준 기자들이 올린 기사가 너덧 올려져 있습니다. 이 깊은 밤에 잠을 쫓아가며 애쓰는 분이 있군요. 기사를 하나하나 살핍니다. 허허. 거참. 이거야 원. 기자회견문이라고 나눠 준 종이에 적힌 말을 제대로 옮겨적지도 못하고, 기자회견을 하는 뜻도 담지 못하고, 산업도로라는 길이 어떻게 주민 삶과 삶터를 무너뜨리는지를 짚어내지 못하고. 그래도 기사를 써 주기라도 했으니 고맙다고 절을 해야 하는지. 길게 한숨을 쉽니다. 찬방에 입김이 길게 뻗습니다.

 사람을 마주하며 사람을 이야기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인데. 잘못 생각했나요? 잘못 보았나요? 서로 보는 눈이 다른가요? 우리한테는 보이는 사람이, 누군가한테는 돈으로 보이나요? 우리한테는 보이는 골목집이 누구한테는 재개발 이익으로 보이나요?


 (3) 《부처와 테러리스트》라는 책


 처음 나왔을 때는 읽지 않고 지나쳤던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사티쉬 쿠마르. 요 몇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부쩍 이름값을 높이는 인도사람. 꽤 많은 이들이 사티쉬 쿠마르를 읽습니다만, 《부처와 테러리스트》는 그다지 안 읽히는 듯합니다. 이분 사티쉬 쿠마르는 입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사는 사람이고,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닙니다. 더 많은 돈이나 적은 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자기 몸뚱이로 사는 사람입니다. 돈이 아닌 온몸 부대낌과 온마음 쏟아부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먹고살자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하지만, 돈이 쓰이는 곳을 살피면, ‘물건을 사는 일’입니다. 돈으로 사는 물건이 아닌 우리 손으로 만드는 물건이 된다면, 또 돈으로 사는 먹을거리가 아니라 우리 손으로 일구는 먹을거리가 된다면, 또 돈으로 사는 집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짓고 돌보는 집이 된다면, 우리한테는 ‘적은 돈’조차 아닌, ‘한푼 없어도’ 넉넉한 삶이 됩니다.


..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앙굴리말라, 내가 그걸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  (34쪽)


 국민학교였나 중학교였나, 자연인가 과학 시간인데, 아, 중학교 1학년 때로 떠오릅니다. 그때 과학(물상 시간이었지 싶습니다)을 배우는데, 첫머리에 ‘체험’ 이야기가 나왔어요. ‘과학은 실험을 거쳐 알아내는 체험’이라고. 이론으로만 따져서는 과학이 되지 못하고, 반드시 실험을 거쳐서 현실에서 이루어내야 비로소 과학으로 자리를 잡는다고.

 따지고 보면, 과학만 실험과 체험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다. 인문학도 실험과 체험이 뒤따라야 합니다. 여성학은 어떻습니까. 환경학은 어떻습니까. 교육학과 사회학은, 예술학은 어떠한가요. 어느 학문이 실험과 체험 없이 바탕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실험과 체험, 온몸 부대낌 없이 신문기사 하나 나올 수 있습니까. 온마음 쏟아부음 없이 서민을 헤아리는 정책 하나 나올 수 있습니까. 우리는 어이하여 야무지게 살아가는 사람을 알아보고 이들 이야기를 기사로 다루지 못하는가요. 우리는 어찌하여 낮은자리 사람들을 헤아리며 이들이 어깨동무하고 잘살 수 있도록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가요.


.. “난디니야, 나를 그저 따르기만 하지는 말아라. 내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는 말아라. 그것을 직접 자기 삶 속에서 시도해 보아라. 내가 말한 것이 그대의 경험, 그대만의 진실과 공명할 때에 비로소 받아들여라.” ..  (89쪽)


 이야기책 《부처와 테러리스트》는 저마다 다 다른 땅에서 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들한테 무엇이 참으로 소중하며 가장 마음을 기울이면 좋은가 하는 물음 하나 내놓습니다. 다만, 풀이법은 내놓지 않습니다. ‘이런 길도 있느니라’ 할 뿐 ‘이 길로 가야 하지는 않느니라’ 하고 넌지시 옷소매를 잡습니다. ‘내가 간 이 길이 나한테는 좋았다고 당신도 무턱대고 이 길을 가지 말라’고 합니다. 길찾기는 저마다 다 다른 자기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 새롭게 가꾸고 일구어야 오래오래 싱그럽고 반갑고 단단할 테니까. (4341.2.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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