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임자도 압니다. 자기가 파는 책 가운데 그냥 ‘돈이 될 만한 책­’인지, 우리 ‘책 문화에서 더없이 소중한 책’인지. 그러나 책을 사고팔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 책들을 팔아야 살림을 꾸릴 수 있거든요. 이 책들을 팔아야 다른 좋은 책을 사들일 수 있고, 다른 좋은 책을 사들인 뒤 또 팔아야 또 다른 좋은 책을 사들일 수 있거든요.

 몇 해 앞서, 1910년대인가 1920년에 처음으로 나왔다고 하는 국어사전 이야기가 잠깐 신문에 오르내린 적 있습니다. 이 국어사전을 찾아낸 교수는 ‘어디에서 찾았는지’ 밝히지 않았고 ‘고서점’이라고만 했는데, 부산 보수동에 있는 어느 헌책방에서 찾았지 싶어요. 그래, 이런 책들을 헌책방 임자들이 모를 리 없겠지요. 더구나 100해 가까이 된 책이라면, 어떤 헌책방 임자도 그 책을 허투루 다루지 않으며 함부로 아무한테나 내보이지 않습니다. 또한, 당신들이 그 책을 간직하고 있다면 ‘이 좋은 책이 나한테 있다’는 보람을 느낄 테고요. 그렇지만 헌책방 임자는 이 책을 가장 잘 알아볼 만한 사람한테 팝니다. 이 책을 가장 잘 알아볼 만한 사람이라면 그 책 값어치를 가장 잘 느끼며, (헌책방 임자한테) 가장 괜찮은 값을 쳐 줄 만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어느 책이 얼마나 왜 소중한가를 알고 있는 이라면, 자기가 끌어들일 수 있는 책값을 헤아리기 마련이고, 자기가 가진 돈 테두리에서 소중한 책 하나를 기꺼이 사곤 합니다.

 헌책방 임자한테는 책을 잘 알아보는 사람 못지않게 값을 제대로 쳐 줄 사람이 소중합니다. 당신도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또한, 헌책방 임자한테 책을 대주는 샛장수도 먹고살아야 합니다. 때때로 이런 옛책 한두 권을 팔면서 팍팍하고 고달픈 요즘 살림형편에 기지개를 켤 수 있고요.

 우리들 책손은 헌책방에 ‘우리들이 반가이 여길 만한 책’이 있어야 즐겨찾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반갑게 여길 만한 책을 기꺼이 사들일 만한 돈이 주머니에 넉넉해야 헌책방을 즐겨찾습니다. 둘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삐걱거리면 헌책방 나들이가 뜸해집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즐겨찾던 헌책방 임자가 애써 갈무리해 놓았던 ‘우리한테 반갑거나 좋았던 책’이 안 팔리거나 묵어 버리곤 합니다. 다른 책손이 알아보고 사들여 준다면 그 헌책방으로서는 ‘책돌이’가 잘되어 ‘다른 반갑거나 좋은 책’을 사들일 밑돈을 마련하는 한편 헌책방 살림을 꾸릴 테지만, ‘우리한테 반갑거나 좋은 책’을 우리 스스로든 다른 사람이든 알아보지 않거나 못하며 팔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하거나 대단한 책이라 해도 맞돈이 되지 못하고 말아요. 이리 되면 헌책방 일꾼도 힘듭니다. 가게세 내고 살림돈 얻어야 하는데, 책돌이가 안 되니, 책돌이가 될 만한 책에 자꾸 눈을 돌리게 됩니다.

 헌책방에 책이 안 나오는 까닭 가운데 하나는, 나날이 책읽는 사람이 줄고, 나올 만한 책은 웬만큼 나왔으며, 더 많은 이익을 바라며 책을 물건으로 다루는 사람이 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얹으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기 책눈길을 좀더 넓히지 않는 까닭이 있습니다. 좀더 부지런하게 책을 즐기지 못하는 까닭도 있고요.

 책이 돌고 돌려면, 자료로 둘 책이 아니고서는 다른 이한테 내어주거나 헌책방에 내놓아야 좋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한테 새로우며 반갑거나 좋은 책’을 꾸준하게 찾아보려고 애써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읽은 책은, 이 세상에 나온 책 가운데 아주 적습니다. 우리가 아직 모르는 우리한테 반가울 책이란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그 책들은 예나 이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이 책들이 우리를 기다리는 줄 모르거나 못 느낄 뿐입니다. 생각해 보면, 살아 있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 부피는 어느 금을 넘어갈 수 없으니, 우리한테 반갑거나 좋을 모든 책을 죄 알아보며 읽어낼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만큼은 알아야 할 테며, 우리가 볼 수 있는 만큼은 찾아보려는 몸짓과 움직임을 잃어서는 아니될 일이라고 느낍니다.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일도 잘못이라고 느껴요.

 헌책방 일꾼들은 말합니다. ‘당신들이 서른 해 마흔 해 쉰 해 일하면서도 참 놀라운 대목이, 그렇게 많은 책을 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당신들이 처음 보는 책이 많다’고. 우리들이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만나거나 손에 쥐어드는 책은, 헌책방 일꾼이 ‘만져 본’ 책 가짓수나 권수와 견주면 새발가락에 낀 먼지만큼도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제법 안다고, 무슨 지식이 있다고, 어디 교수라고, 무슨 학자라고 이름쪽을 내밉니다. 뭐, 이름쪽 내미는 일이야 자기 직업 때문에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이름쪽을 내밀려면, 자기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힘써야지요. 마음을 기울여야지요. 부지런히 자기 머리와 마음과 몸을 갈고닦거나 추슬러야지요. 여태껏 우리 삶터와 세상을 밝혀 온 훌륭한 이들 얼과 넋이 고이 담긴 소중한 책 하나가 끝없이 묻혀 있음을 헤아리면서 차근차근 찾아나서기도 해야지요. 헌책방 일꾼들이 ‘우리들 책손한테 반가울 책’인 한편 ‘헌책방 일꾼한테는 밥벌이가 될 고마운 책’을 한결같은 매무새로 찾아나설 수 있어야지요.





 책이 살면 우리 삶도 삽니다. 우리 삶이 살면 우리가 즐기는 일이나 놀이도 삽니다. 우리가 즐기는 놀이와 일이 산다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회 얼거리나 문화 터전도 힘을 얻으며 살찔 수 있을 테지요. 우리 사회와 문화가 북돋운다면, 우리가 마음껏 즐기며 누릴 책도 한껏 나아질 테며 푸짐하게 펼쳐질 테고요.

 우리가 애쓰는 만큼 헌책방에서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새책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베스트셀러에만 눈길을 맞춘다면 새책방 책꽂이는 베스트셀러에 더 많은 자리를 내어줍니다. 우리가 처세와 실용서적에만 마음을 쏟는다면 새책방 책꽂이는 처세와 실용서적에 자리를 훨씬 많이 내어줍니다. 우리들이 어린이책을 많이 찾아보니 새책방 꾸밈새가 확 달라지지요? 우리들이 인문학 책을 좋아한다면, 자연과학 책을 좋아한다면, 생태와 환경 이야기를 다룬 책을 좋아한다면, 돈-이름-힘이 아닌 사랑-믿음-나눔을 담은 책을 좋아한다면, 새책방 책꽂이와 꾸밈새는 어떻게 거듭나겠습니까. 우리가 도서관에서 즐겨 빌려읽는 책에 따라 도서관 사서 눈높이도 달라집니다. 도서관 높낮이는 도서관을 즐겨찾는 우리들 몸가짐과 손뻗음에 달려 있습니다. (4341.1.28.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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