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내리고 뒤돌아보니 극장에 남은 사람 열대여섯
[내가 본 영화 10]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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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하는 ㄱ출판사 사장님이 시내에 나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때 극장에 함께 있던 사람 숫자는 다섯이라고 합니다. 제가 인천 ㅇ극장에서 옆지기와 함께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열대여섯쯤 함께 보았습니다. 사백 사람 남짓 들어올 수 있는 극장에 열대여섯이라.
고등학교 다니던 때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나 〈숲속의 방〉을 보러 인천 ㅇ극장이나 시민회관에 찾아갔을 때, 영화를 함께 본 다른 사람들 숫자는 너덧이었습니다. 그때 뒤로 이렇게 적은 숫자가 큼직한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보기는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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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분에 걸친 짧지 않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핸드볼 하나로 살아가는 아줌마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펼칩니다. 배경은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을 앞둔 훈련과 올림픽 때 경기를 치르던 일.
국민학교 적부터 핸드볼이라는 운동경기가 참 좋았고, 학교에 운동부라도 있으면 이 운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며 고등학교며 대학입시에 따른 교과서 외우기에만 치달을 뿐, 동아리 활동으로라도 핸드볼 운동을 즐길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장 한쪽 구석에 핸드볼 골대라도 있어야 이 운동을 하지요. 골대가 있어도 그물이 없으니 공 한 번 넣으면 주으러 가는 것도 일이지만.
혼자서는 핸드볼을 할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평일 낮 두어 시에 가끔 보여주는 방송중계를 보곤 했습니다. 그것도 겨울방학이나 여름방학 때 드문드문.
중고등학생 때(1988∼1993) 집에서 핸드볼 중계방송을 보노라면, 관중자리는 썰렁하기 그지없었는데, 저처럼 핸드볼 중계방송을 ‘재미있다고 지켜본’ 사람은 얼마나 있었을까요. 제가 핸드볼 중계방송을 보던 때, 형은 으레 ‘재미없는 걸 왜 보냐?’ 하면서 다른 곳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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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첫머리에, 전국대회 결승전을 치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응원하는 관중 거의 없이 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인천 ㅎ’ 팀은, 우승을 했어도 팀이 해체가 됩니다. 해체되는 핸드볼 팀 연고지가 ‘인천’이라는 대목이, 인천을 연고지로 했다가 해체된 숱한 운동팀들을 떠올리게 해서 살짝 아찔합니다. 현실 삶과 영화 이야기가 다르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또 누구나 알면서도 바꾸지 않다시피, 핸드볼이건 하키건 체조건 펜싱이건 양궁이건 배드민턴이건, 여느 때에는 이러한 운동을 하며 살아가는 선수들한테 눈길 한 번 따숩게 건네는 사람이 드뭅니다.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운동 하나만 해서 먹고살아간다는 일은 아주 위험합니다. 운동을 좋아하고 즐기는 가운데 자기 밥벌이가 따로 있어야지요. 따로 자기 밥벌이가 되는 일을 하면서 생활체육으로 운동경기를 즐길 수 있어야지요. 그렇지만 우리 나라 얼거리를 살피면, 돈이고 힘이고 이름이고 없는 사람들이 돈과 힘과 이름을 얻는 어렵고 고달프지만 고작 하나 보임직한 길이 ‘운동선수로 금메달을 따거나 세계대회 1등’이 되는 길입니다. 박세리는 그저 골프를 즐기면 좋았을 사람이지만, 세계대회 1위를 하지 않고는 스스로 먹고살 길도 자기 운동을 이어나갈 길도 없습니다. 어느 한편으로 보면 불쌍하고 쓸쓸하고 고단한 삶입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 나오는 핸드볼 선수들은 어떠한가요. 팀이 우승을 해도 포상금 한 푼이나마 제대로 주어졌을까요. 고작 스물 앞뒤일 선수들이 ‘뛸 곳이 없어지’면 어찌해야 할까요. 운동 하나만 죽어라 바라보며 살아왔는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영화에 나오는 ‘한미숙’ 남편처럼, 핸드볼 하나만 알고 사회는 ‘좆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사기에 걸리고 폐인이 되다시피 스러져 갈밖에 다른 길이 있을까요. 그래서 몇몇 생각있던 운동선수들은 영화에 나오는 ‘김혜경’처럼 나라밖으로 눈을 돌리며, 더 가시밭길과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구단으로 가고 스위스로 가고 오스트리아로 가고 하면서 선수목숨을 이어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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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경기는 돈이 되기 때문에 하는 일일까요. 그러면, 고작 서른다섯도 못 되어 거의 다 은퇴를 해야 하는 이런 운동경기를 뛰는 선수들은, 서른다섯, 또는 마흔쯤 되는 나이부터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우리들 여느 사람들한테는 왜 자기 일터를 다니는 가운데, 야구며 축구며 핸드볼이며 하키며 체조며 달리기며 헤엄치기며 활쏘기며 탁구며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터전이 없을까요.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대구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천 한복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침 축구’ 하나를 빼면 무슨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을까요. 그나마 아침 축구도 남정네들이 하지, 남녀가 아우르며 즐길 수 있는 놀이란 무엇일까요. 어디에서 마음껏 맑은 바람을 쐬면서 뛸 수 있는가요. 하다못해 골목길에서 자동차 빵빵거림에 시달리지 않으며 배드민턴이라도 할 수 있는지요. 초중고등학교 잘 닦인 테니스장에서 동네사람들이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지요. 운동부가 있는 초중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동네사람들도 생활체육을 즐길 수 있는지요.
“생각도 하고, 하늘도 보고, 구름도 보고.” (시골학교 체육교사가 된 스승이 한미숙한테 하는 말)
‘한미숙’과 ‘송정란’ 들이 뛰던 핸드볼팀 감독이었던 분은 어느 시골학교 체육교사가 되어 아이들한테 핸드볼을 가르칩니다. 실업팀 감독이었을 때는 늘 찌푸린 얼굴이었는데, 시골학교 체육교사로 일할 때에는 활짝 갠 밝은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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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갑니다. 얼마쯤 나오다가 툭 끊어집니다. 영화를 볼 때는 자막 올라가는 마지막까지 보는 맛이 있는데, 인천 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면 늘 자막을 잘라먹습니다.
뒷간에 들러 물을 빼고 낯을 씻습니다. 옆지기와 손을 잡고 터덜터덜 싸리재 길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 앞에 섭니다. 바로 들어갈까 하다가 동네 구멍가게에 들르기로 합니다. 보리술 두 병과 과자 한 봉지를 삽니다. (4341.1.26.흙.ㅎㄲㅅ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