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지기 신발 뒤축이 한쪽으로 많이 갈리는 바람에 걷기 몹시 나쁩니다. 걸음새가 한쪽으로 쏠리면 신발도 한쪽이 많이 닳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쪽만 갈리면서 걸음새가 뒤틀립니다. 신집에 가서 이놈 저놈 둘러보노라니, 신집 아저씨가, “신발이 안 갈리면 어떻게 해요. 우리들도 먹고살아야지요.” 하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틀린 말이 아니니 마주보며 빙긋 웃습니다. 그렇지만 뒤축이 단단해 잘 안 갈리는 신발이라 한다면, 몇 푼 더 얹어 주고라도 그 신으로 사 신지 않을까요. 싸게싸게 많이 팔아도 장사가 될 수 있지만, 알맞는 값을 제대로 치르면서 팔아도 장사가 될 수 있을 텐데.
지난 토요일, 개봉동에 사는 고등학교 적 선배네 집에 놀러갔습니다. 선배네 집은 아파트. 아파트 이름은 ‘로즈빌’. 선배는 혼인한 뒤로는 책 한 권 사읽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갓 혼인했을 때 집들이를 가니 “내 꿈이 서재 하나 가지는 거다.” 하면서 “책이 얼마 없지만 함 봐라.” 하면서 자랑을 했건만, 이제는 ‘책 있는 방’이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선배는 날마다 현장에 나가 공무원들과 복닥이는 게 일이라는데. 자동차 몰고 쉴 틈 없이 출장을 다니는 만큼 마음 다잡고 책을 손에 쥐기 힘들겠지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밥먹고 아기 보고 텔레비전 보다가 술 한잔 마시고 잠들기 바쁠 테고.
눈없는 예수님나신날이 지났습니다. 날짜가 12월하고도 25일이면 ‘세 번 춥고 네 번 따뜻하더라’는 우리네 날씨가 아니더라도 오들오들 쌀쌀해야 하건만, 자전거 타고 나들이 다녀오기에 걸맞을 만큼 따사롭습니다. 앞으로도 눈있는 예수님나신날을 맞이하기는 힘들겠지요. 그래도 예수님오신날이라 하기에 사진기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 골목길 마실을 다녀 봅니다. 옛 미림극장 앞을 지나고 화평동을 지나 화수동을 거쳐 화도진공원을 가로질러 만석동으로 갑니다. 너나들이가 사는 만석동 9번지 쪽방골목에서 서성거리며 사진을 찍다가 동인천 쪽으로 나오는 길, 9번지 들머리에 사는 아저씨가 빨래를 걷으면서 “포근합지요?” 하고 인사말을 건넵니다.
만석동 9번지를 가운데 놓고 동서남북으로 제강소 제분소 철공소 방직공장 들이 줄줄줄 늘어서 있어, 걷는 내내 코가 냅습니다. 집에 뒷간을 들일 수 없어 공동뒷간을 쓰는 사람들. 이 골목 사람들한테 나라나 지역정부는 무엇을 베풀어 주면 좋을까요. 열 해쯤 앞서처럼 동네 1/4을 싹둑 잘라서 공장으로 드나드는 큰차 다니기 넉넉하도록 찻길 넓히기? 동네 1/5씩 잘라내며 빌라나 아파트 올려세우기? 만석동 9번지 사람들은 새로 지어진 아파트에 들어가서 살 수 있을까요? 큰 짐차 씽씽 내달리는 넓혀진 길에 이 골목 사람들이 차로 오갈 일이 있을까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집 허물고 30층 가까이 올려세운 아파트를 올려다봅니다. 놀이터 하나 보이지 않고 땅위 주차장 또한 보이지 않습니다. 땅밑 주차장 들머리만 보입니다. 달동네 판자집처럼 다닥다닥 붙인 30층 안팎 아파트 건물들. 이웃끼리 얼굴 볼 일도 없겠습니다. (4340.12.26.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