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잔소리 바보
알라딘 (+ 코너 리히·암살자들·표현의자유)
지난 2005해부터 누리책집 〈알라딘〉을 썼다. 그무렵에는 이오덕 어른 글자락을 갈무리하려고 충북 시골에서 살아갔다. 그런데 그즈음부터 그림꽃(만화)을 다루는 마을책집이 훅훅 사라졌다. 그림꽃을 마을책집으로 나들이를 가서 사읽던 살림이었기에, 어쩔 길이 없이 〈알라딘〉에서 그림꽃을 시켜서 사읽을 수밖에 없더라. 이러구러 그림꽃을 오롯이 〈알라딘〉에서 사읽은 지 스무 해가 넘는구나.
아마 달포쯤 앞서부터 누리책집 〈알라딘〉은 ‘책바구니 1000’에서 ‘책바구니 500’으로 난데없이 바꾸었다. 이렇게 엄청나게 바꿀 적에는 미리 알려야 할 텐데, 알림말 하나 없이 슥 바꾸네. 어쩌면 어느 귀퉁이에 슬그머니 알림글을 올렸을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책바구니 1000’을 ‘책바구니 500’으로 바꿀 적에는 〈알라딘〉을 쓰는 모든 이한테 누리글월을 보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러나 〈알라딘〉은 누리글월을 보냈을 수 있다. 네이버에서 이 누리글월을 쓰레기(스팸메일)라 여겨 먼저 걸러냈을 수 있다.
다시 돌아본다. ‘책바구니 1000’을 ‘책바구니 500’으로 바꾸려 했다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알라딘 책바구니’에 큼직하게 알림말을 띄워야 맞다. 우리가 책바구니 칸에 들어갈 적마다 알림판을 띄워야 맞다. 그렇지만 〈알라딘〉은 이런 알림말이 아예 없이 하루아침에 난데없이 책바구니 얼거리를 바꾸었고, 책바구니에 500자락 넘는 책을 담아둔 사람은 그야말로 허둥지둥 책바구니에 있는 책을 몽땅 시키든 지우든 해야 했다.
얼추 열 해 즈음 ‘책바구니 1000’을 오락가락하던 터라, 이대로 안 되겠구나 싶어서 요 여러 달 사이에 ‘내 나름대로 책바구니 700’으로 줄여놓았다. 적어도 300을 널널히 비웠으니 느긋하다고 여겼는데, ‘책바구니 500’으로 바뀌니 꽤 버겁다. 나처럼 책바구니에 1000 안팎을 담고서 틈틈이 책을 사들이는 분이 더러 있을 테지만, 웬만하면 조금만 담고서 조금씩 시킬 테지.
책 500자락은 참으로 한 줌이다. 책 1000자락도 그저 한 줌이다. 얼핏 많아 보일 테지만, 끈으로 묶든 꾸러미에 담든 얼마 안 된다. 〈알라딘〉은 왜 책바구니를 난데없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말없이 몰래 느닷없이 벼락치듯 이런 짓을 일삼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제발 〈알라딘〉에서 책을 그만 사라는 뜻일까? 다른 곳에서 책을 신나게 사라는 뜻일까? 또는 “넌 여기 아니면 이미 책을 살 수 없을 테니, 내(알라딘)가 멋대로 구는 대로 종(노예)처럼 졸졸 따라와!” 하면서 채찍을 휘두르려는 뜻일까?
문득 〈암살자(들)〉이라는 보임꽃을 떠올려 본다. ‘표현의자유’를 말하는 보임꽃이라는데, 어떤 ‘목소리’도 낼 수 있다고 여기는 ‘말나래(표현의자유)’라 한다면, 〈암살자(들)〉을 나무라거나 손가락질하는 목소리도 똑같이 말나래이게 마련이다. 이쪽에 서는 사람은 이쪽이 옳다고 목소리를 낼 테고, 저쪽에 서는 사람은 저쪽이 옳다며 목소리를 내야 ‘말나래(표현의자유)’이다. 그래서 말나래를 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적에는 그만 이쪽저쪽이 끝없이 싸운다. 끝없이 싸우느라 ‘할 일’을 다 팽개친다. 스스로 믿는 옳은 목소리가 이겨야 한다고 여기는 나머지, 서로 저마다 할 일보다는, 서로 ‘내가 이겨야 해!’ 하는 목소리를 드높인다.
누리책집 〈알라딘〉은 장사하는 나래(자유)를 펼 만하다. 장사꾼이 장사하겠다는데 무슨 짓이든 말릴 수 없다. 서울 남대문에서 목도리(스카프)를 파는 아재는 입심이 되게 좋다면서 한창 뜬다더라. 목도리장사는 목도리장사를 할 나래가 있고, 〈알라딘〉도 책바구니를 ‘늬들 멋대로’ 슬그머니 바꿀 나래가 있다.
이른바 ‘AI Insider’라는 ‘코너 리히(Connor Leahy)’라는 사람이 있다. 이이가 들려주는 말을 곱새길 나라지기나 벼슬아치나 글바치가 몇이나 될는지 모를 노릇이다. 꾸밈머리(ai)를 늘리거나 키울수록, 꾸밈머리에 목돈을 쏟아부을수록, 이 나라는 아주 망가지고 무너지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손으로 하는 일을 안 할수록 모든 사람이 스스로 죽는다. 종이책은 손으로 읽고 쓰고 가꾸는 징검다리이자 밑돌이다. 종이책을 사기 힘들게 판을 바꾸는 〈알라딘〉은 ‘사람죽이기(인류멸종)’를 바라며 꾸밈머리에 목돈을 처붓는 그들(권력·암살자들)과 똑같다고 느낀다. 달포에 걸쳐서 이 글을 쓰고 맺는다. 2026.9.30.물∼11.6.쇠.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