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25 낯선 사람을 멀리하라

책벌레수다 : 누구 ‘낯’을 보는가



  ‘낯설다’라는 낱말을 언제 쓰는지 곱씹으면, “익숙하게 보는 낯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때에는 “나는 사람을 새롭게 본다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든지, 다 하기 싫다“고 여긴다. ’왜 내가 스스로 바뀌면서 마음을 열어야 해? 난 마음을 안 열면서 옛날 그대로 갈래!” 같은 몸짓이 단단하다. ‘낯설다’는 말을 자꾸 하는 이라면, “내가 가는 틀대로 네가 바뀌어서 나한테 맞추고 따라와야 하지 않아?” 하고 윽박지른다고 할 수 있다. 낯설어서 싫고, 낯설어서 거북하고, 낯설어서 힘들고, 낯설어서 모르겠다고 외치는 굴레라고도 할 만하다.


  한글만 읽은 사람이라면 일본글도 한자도 영어도 네덜란드글도 낯설다. 영어만 아는 사람이라면 네덜란드글하고 독일글이 뭐가 다른지 영 낯설 뿐 아니라 아예 모른다. 영어나 프랑스말만 알면, 덴마크글과 노르웨이글과 스웨덴글이 다를 뿐 아니라, 핀란드글은 아주 딴판인 글인 줄 영 모르겠지. 체코글과 슬로바키아글이 다르고, 헝가리글과 폴란드글이 다른 줄 알아볼 사람도 드물 테고.


  ‘낯설다’라는 낱말이 무슨 뜻인지 차분히 읽어야 한다. ‘낯설다’는 나쁜말이지 않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낯이다”라는 뜻이다. 이리하여 문득 ‘낯설다’라는 낱말이 튀어나온다면, 우리는 늘 두 갈래 가운데 하나로 가게 마련이다. 이제까지 본 적이 없으니 더 다가서고 더 지켜보고 더 기다리고 더 귀담아듣고 더 눈여겨보면서 ‘낯익다’로 스스로 바꿀 때까지 새롭게 배우는 길이 하나이다. 또한, 낯설다는 핑계와 빌미와 탓을 들면서 오히려 고개돌리고 눈감도 등돌리고 손사래치고 밀치고 따돌리는 길이 둘이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낯설다’라는 낱말을 안 쓴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새롭다’라는 낱말을 쓴다. 새롭기에 더 곁에 서면서 차근차근 배우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자꾸자꾸 말을 걸고 묻고 듣고 이야기를 이으면서 마음을 주고받는다. 새롭기에 더 찾아나서고, 더 알아보려 하며, 더 익혀서 기쁘게 맞아들이려고 한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새글을 읽고 새말을 듣고 새책을 찾는다.


  ‘새책’은 “갓 나온 책”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책”이요, “아직 모르기에 이제부터 읽고 삭이고 새기고 배우면서 즐겁게 품고 싶은 책”이다. 이리하여 ‘새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피어나고 거듭나고 깨어난다. 이와 달리 ‘낯설다’고 여기는 사람은 가두고 닫고 누를 뿐 아니라, 밀치고 밟고 괴롭히기까지 한다. 낯선 사람도 무엇도 모두 없어야 걱정없이 ‘그대로(권력유지)’ 갈 수 있다고 여기니까.


  나라(정부·국가·사회)에서 꾀하는 ‘배움터(학교교육·공교육)’는 ‘새롭다’하고 먼 채 ‘낯설다’에 가깝다. 이른바 불바다(대학입시)는 모든 다 다른 어린이와 푸름이가 모두 똑같은 것만 머리에 담아서 모두 똑같이 풀고(시험문제 해답작성) 모두 똑같은 마음으로 굳혀가기를 바라는 틀이다. ‘제도권교육’이라는 이름도 쓰는데, ‘제도권교육 = 틀에 맞추기 = 안 낯설게 하기’이다. 낯선 일은 아예 등돌리고, 낯선 사람은 아예 멀리하고, 낯선 책은 아예 안 읽고, 낯선 이야기는 아주 귀닫는 길이 ‘제도권교육(공교육·국가교육)’이기도 하다. 이 나라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보고 똑같이 듣고 똑같이 움직이는 꼭두각시(인형·로봇)이 되기를 바라기에, ‘낯설다’라는 낱말을 자꾸자꾸 퍼뜨리려고 한다.


  사람들이 ‘새롭다’를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배우기를 바라지 않는 나라(정부·국가·사회)이기에 “낯선 사람을 멀리하라!” 같은 말을 일삼는다. 이러한 말은 ‘가해자 권리 보장’만 하되, ‘피해자 권리 복구’에는 마음이 없다. 새롭기를 바라지 않는 나라는 ‘그대로(권력유지)’여야 벼슬자리(위계질서·신분계급)를 고스란히 지킨다.


  누구라도 새롭게 바라본다면, 사람들이 새롭게 눈뜬다면, 담벼락을 걷어내고 벼슬자리를 치울 테니까,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안 배우도록’ 길들이려고 ‘낯설다’라는 굴레를 심는다. 이런 얼거리는 열아홉 살에 이른 푸름이한테 ‘열손가락 그림따기(십지지문채취)’하고 맞물린다. 우리나라만 모든 사람한테서 열손가락 그림따기를 한다. 다른 모든 나라는 말썽꾼(범죄자)한테서만 열손가락 그림따기를 하지. 다시 말하자면, ‘낯설다 = 우리쪽(아군)이 아니다’라는 틀이다. 담벼락을 높이 쌓아서 이쪽(인싸·권력)으로 들어올 때에만 지켜주겠다는 틀을 ‘낯설다’라는 낱말을 바탕으로 엿볼 수 있다.


  처음부터 담벼락이 없이, 누구나 배우고, 서로서로 어깨동무하고, 왼오른을 안 가르고, 순이돌이(여남)가 사랑으로 마주하고, 모든 고을이 골고루 어울리는 길일 적에는, 언제나 ‘새롭다’라는 낱말로 하루를 열고 마음을 나눈다. 왜 갈수록 왼오른(좌우)을 쩍쩍 가르면서 불씨를 당기려 하겠는가? 우리는 왼손과 오른손을 나란히 써야 살림을 짓고 빚고 가꾸고 일굴 수 있으니, 한 손만 남아서 아무것도 스스로 안 짓고 안 빚고 안 가꾸고 안 일구기를 바라는 나라인 셈이다.


  사람들이 손수짓기(자급자족)를 하면 나라(정부·국가·사회)가 눈가림이나 눈속임을 못 한다. 언제까지나 눈가림과 눈속임으로 벼슬자리를 지키려고 ‘손수짓기 못하는 틀’을 세우려고 한다. 찬찬히 짚어 보자. 우리가 먼길을 떠나면서 만나는 모든 이웃사람은 ‘새롭’다. 우리는 낯선 사람을 만나러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새롭’게 만나서 함께 배우고 이야기할 이웃을 마주하려 한다. 아직 말도 낯도 모르는 누구를 만나면서 말을 섞고 하루를 지내고 생각을 지피려고 먼길을 나선다.


  ‘낯선곳’이 아닌 ‘새곳’으로 가려는 길이기에 ‘나들이(여행)’이다. 사람들이 새곳으로 나들이를 안 하기를 바라는 나라인 터라, ‘구경(관광)’으로 옭아매려 한다. ‘낯설지 않은 판박이’를 모든 사람이 똑같이 좋아하기를 바라는 나라라서 ‘구경(관광산업)’을 키우고, ‘나들이·마실(여행)’을 억누르거나 없애려고 한다고까지 말할 만하다.


ㅍㄹㄴ


“총독 녀석, 무능한 주제에 으스대기는! 원래는 그냥 장부 담당자였대. 하, 열 받아! 장부 담당 자리도 아깝지. 참수 집행자가 딱 어울려.” “댐피어는 남의 험담을 할 때 제일 생기가 도는구나.” … 에라스모가 갑자기 내게 물었지. “이 땅에 대해 알아서 뭐 하려고? 식민지로 삼게?”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6》 90, 117쪽


할머니는 밀농사만큼 수월하고 쉬운 게 없다고 했다. 밭에 씨만 뿌려 놓으면 비료를 안 줘도 약을 안 쳐도 할머니 키를 넘어서 더 크게 훌쩍 자라는 작물이 밀이라고 했다. 《씨앗 할머니의 비밀》 50쪽


별거 중인 아버지와 오랜만에 가진 오붓한 시간은 곧 오랜 작별로. 그런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손을 흔드는 아들이 아버지의 진짜 직업을 알게 되는 건 이로부터 10년 후. 그래도 그는 아버지를 싫어할 수 없었습니다. 《행복한 밥 3》 49쪽


“마코토, 자신감 가져. 네 장점은 다정함이지만 그 다정함은 단점이기도 해.” … ‘마코토 님과 함께 있으면 나 자신이 별로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사랑스런 쿠니타마 3》 107, 158쪽


마스크가 가장 신성한 것이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방역이라 자화자찬이다. 코로나19의 완전한 해결은 그간 전 세계로 확산된 상황으로 볼 때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 29쪽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6》(토마토수프/정혜원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6.5.15.)

#ダンピアのおいしい冒險 #トマトス-プ 

《씨앗 할머니의 비밀》(김신효정 글·문준희 사진, 소나무, 2018.11.25.)

《행복한 밥 3》(우노메 산타/오경화 옮김, 텀블러북스, 2017.6.30.)

#しあわせゴハン #魚乃目三太

《사랑스런 쿠니타마 3》(앗치 아이/문기업 옮김, 대원씨아이, 2025.12.31.)

#愛しの國玉 #アッチあい

《한 사회학자의 어떤 처음》(박길성, 나남, 2020.10.1.)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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