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잔소리 바보

불빛



  낮(14:40)에 서울을 떠나는 시외버스는 찬바람을 틀더니, 해넘은 저녁(18:50)에 이르자 바닥불을 넣는다. 길손은 거의 모두 할매할배이다. 이분들은 서울에 있는 딸아들이 서울에 있는 병원을 잡아주어서 다녀가는 길이다.


  요사이는 시외버스에서 불빛을 아예 안 켜준다. 한동안 버스일꾼한테 얘기했으나, 갈수록 말하기도 번거롭다. 이제는 스스로 큰불과 작은불을 챙긴다. 그런데 불빛도 불빛이되, 이보다는 미닫이를 못 여는 시외버스라는 대목이 아찔하다. 한나절 남짓 달리는 곳에서 바깥바람을 쐴 수 없는 얼거리이니까. 서울은 워낙 모든 곳이 붐비는 터라 해바람을 마주할 수 있는 시내버스보다는 땅밑을 내달리는 쇳덩이가 나을 만하지만, 하루가 어떻게 흐르는지 종잡을 수 없는 땅밑길을 날마다 한참 다니는 서울사람은 그만 철을 잊다가 잃기 쉽다.


  시외버스에서 책을 쥐는 이웃을 아주 드물게 본다. 올해(2026)에는 한가을 끝자락까지 꼭 한 사람 스쳤다. 서울버스·전철과 부산버스·전철에서 스친 ‘이웃책보’는 올해에 꼭 열 사람쯤 스쳤다. 볼거리에 구경거리에 놀거리가 넘쳐난다고 여기니, 굳이 종이책을 쥘 일이 없을 만하다. 구태여 무겁게 종이책을 들고 다닐 까닭이 없다고 여길 수 있다.


  종이책을 챙기지 않는 어버이 곁에서 자라는 어린이는 종이책뿐 아니라 종이랑 붓(연필)조차 안 챙긴다. 요즈음 어린배움터 어린이를 보면, 붓종이(필기구) 없이 맨몸으로 다니기 일쑤이다. 푸른배움터 푸름이도 꽤나 붓종이 없이 다닌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어김없이 손전화는 꽉 쥔다.


  손전화를 들여다보기에 잘못이 아니요, 나쁘지 않다. 어린이와 푸름이가 붓종이를 안 챙기고 종이책을 펼 줄 모르는 채 나이만 먹고서 스물이나 서른이나 마흔이라는 나이에 닿는다면, 이 아이들은 ‘배울 줄 모르는 몸’으로 굳는다. 배울 줄 모르는 몸으로 굳으면 ‘사람과 이웃하는 길’에다가 ‘풀꽃나무·들숲바다·해바람비와 이웃하는 삶’도 잊다가 잃는다. 얼핏 보면, 종이책과 붓종이만 안 쥐는 채 손전화만 붙잡는 모습이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서 앞날을 내다볼 적에는, 이 아이들이 앞으로 ‘안 배우는 요즘 꼰대’를 이어서 ‘안 배우는 새로운 꼰대’로 뿌리내릴 만하다.


  전남 고흥 같은 작은시골뿐 아니라, 서울·부산처럼 커다란 고장에서도 ‘금연’이라는 글씨가 붉게 크게 곳곳에 붙은 곳에서 담배를 꼬나무는 꼰대가 수두룩하다. 큰돌봄터(대형병원) 둘레에도 ‘금연’ 글씨가 열 남짓 붙는데, 이런 곳에서 ‘병원 환자’하고 그냥그냥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서 너구리굴을 이룬다. 어린이쉼터와 마을쉼터에서 버젓이 담배를 태우는 늙은이와 젊은이가 넘친다. 담배를 태우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어린이가 흔히 지나다니며 쉬는 곳에서는 담배를 삼갈 줄 알아야 하고, 버스나루나 거님길에서도 담배를 안 필 줄 알아야 ‘어른’ 아닌가? 아니, 어린이를 돌보고 헤아리는 마음을 기울여야 ‘사람’이지 않은가?


  여러모로 보면 어린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느라 아무 곳에서나 술담배를 일삼고, 아무렇게나 거친말·막말·밉말을 쏟아붓는구나 싶다. 어린이를 헤아리거나 사랑하는 마음과 몸짓이라면, 담배 한 개비뿐 아니라 말 한 마디와 삶 한 자락을 모두 푸르게 가꾸는 하루를 살아내게 마련이다. 어린이를 살피거나 품는 어진 마음인 어른이라면, 풀꽃나무를 함부로 죽이거나 들숲바다를 마구 망가뜨리는 멍청한 삽질을 안 한다.


  낮이고 밤이며 읽고 쓰고 생각하고 돌아보며 곱씹는다. 서울부터 고흥까지 한나절 넘게 달린 시외버스를 내리면서 되새긴다.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이라면 이튿날 읽으면 된다. 집에 닿아 등허리를 펴며 하루글을 쓰면 된다. 언제나 나부터 어질게 이 마음을 다스리자고 여긴다. 둘레에서 숱한 사람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되, 늘 나부터 참하며 착하게 읽고 쓰고 가꾸는 오늘을 살아가고 살림하고 사랑하자고 거듭 되뇐다. 2026.10.28.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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