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읽는 나 + 읽는 바보
읽는 쥐
쥐 한 마리가 집에 들어왔을까. 들어와서 요리조리 숨으며 헤맬까. 이제 구멍을 새로 찾아서 나갈까. 살아오며 숱한 쥐를 보았고 잡았고 내보냈고 쥐었고 살폈다. 앞으로도 쥐는 또 보고 다시 보고 새로 볼 테지. 우리집은 시골이니까.
갈수록 쥐를 볼 일이 없는 우리나라 어린이와 어른이다. 가지치기에 안 시달린 멀쩡한 나무 한 그루를 볼 길이 꽉 막히는 판이기도 하다. 돌담을 높이 쌓고서 싸우자는 불길이 더 크게 휘덮는 판이다. 제비와 박새는커녕 참새를 볼 틈이 없는 듯하다. 비둘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입밖으로 말하기 어려운 흐름이다.
죽음물(농약)과 죽음거름(비료)은 흙을 죽이면서 돈만 더 농협에 바치는 굴레인데, 이 쇠사슬을 짚는 붓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서로 삿대질을 하는 붓은 놀리더라. 막상 어깨동무하면서 함께사는 이 별에서 어떻게 살림을 지으면서 푸르게 어울릴 적에 나란히 아름다울는지 밝히는 붓은 자취를 감춘다. “밉말을 삼가자!(혐오표현 금지!)” 하고 외친들 밉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거꾸로 밉말이 더 불거진다. 왜 그러겠는가? “밉말을 삼가자!”는 목소리는 저쪽에만 대고서 하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밉말을 안 쓰기를 바라면 이쪽에서 먼저 밉말을 안 써야 맞다. 저쪽이 밉말을 한다고 여기면, 저쪽한테 떡 한 조각을 더 주면서 “더 말을 붙이고 더 얘기를 하고 더 만나”야 맞다.
“밉말을 삼가자!” 같은 말은 늘 밉말씨앗을 심는다. 이와 달리 “살림말을 쓰자.” 하고 다소곳이 속삭일 적에는 늘 살림말씨를 심는다. 아주 마땅하고 쉽고 수수하다. 살림말이 무엇인지 들려주고 속삭이고 나눌 적에는, 어린이부터 이 살림말을 귀여겨듣고 눈여겨보면서 배운다. 살림말은 안 쓰면서 “이런 말은 밉말이야!” 하고 금을 그을 적에는 되레 밉말에 눈이 가고 귀가 쫑긋하고야 만다.
배움책(교과서)을 제대로 엮는 일꾼이라면, 배움책에는 살림말씨를 담는다. 스스로 짓는 살림말씨를 듣고 말하고 배우고 익히노라면, 둘레에서 어떤 밉말이 갑자기 터지거나 쏟아져도 안 흔들린다. 차근차근 살림말씨로 스스로 가꾼 어린이는 어떤 어른이 막말이나 밉말이나 거친말을 함부로 쓰더라도 안 휩쓸린다. 이와 달리 “밉말을 삼가자!”는 말만 들어온 어린이는 으레 밉말이라는 물결에 쓸려간다.
마을할배 한 분이 논밭일을 다 내려놓고서 ‘논’ 지 몇 달 만에 까무룩(치매)이 되고 말았다. 흙 묻은 손발과 몸일 적에는 거뜬하던 어른이 하루아침에 훅 간 셈이다. 흙을 놓으면서 넋을 놓은 셈이다. 다른 할매할배도 비슷하다. 아무리 등이 굽어도 천천히 밭뙈기에서 호미를 쥐고서 흙을 만지는 분은 천천히 일하고 천천히 쉬면서 천천히 하루를 가꾸고 돌본다. 그냥 ‘놓’고서 ‘놀’다 보면 그대로 빛마저 놓는 굴레이다.
깊은 시골마을까지 “기호 몇 아무개”란 소리를 뽕짝에 실으며 퍼뜨리는 작은짐수레가 한참 맴돈다. 시끌수레가 떠난 자리에서 멧딸기를 훑는데 밀잠자리 한 마리가 발등에 앉는다. “넌 뭘 보고 뭘 듣니?”
밀잠자리는 한 마디를 들려주고서 슥 담을 넘어 멀리 날아간다. 뭇새가 노래하고 제비가 난다. 낮에도 노래하는 논개구리가 여럿 있다. 내가 볼 곳은 우리집이요 우리숲이요 우리빛이다. ‘나’라는 넋으로 ‘너’를 바라보려고 눈을 뜨기에, 서로 아우르는 하늘인 ‘우리’를 이룬다. 나랑 너랑 함께짓기를 노래하니 ‘우리’이다. ‘우리’는 ‘연대(連帶)·공동체(共同體)’ 같은 어려운 일본말씨하고 한참 멀다. ‘우리 = 하늘인 우리 + 하나인 우리’라는 밑뜻이다. 우리를 이루기에 웃고 운다. ‘우리 = 하늘’이라서 ‘우·위’를 나타낼 뿐이고 ‘우레’는 하늘(위)에서 우는 소리이다.
쥐는 어디로 가면 될까. 그래, 쥐는 쥐굴에서 살아야지. 우리집은 모든 마을고양이가 마실하다가 목을 축이고 낮잠과 밤잠을 들고, 새끼도 낳아서 기르는 곳이야. 쥐야, 넌 무서운 줄 모르니? 모르니 기어들겠지만. 2026.5.22.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