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실무자



앞에서 이끈다는 ‘대표자·책임자·지도자’가 꼭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목소리가 있어. 그러나 둘레를 보렴. 비도 바람도 해도 별도 ‘이끄는’ 누가 있기에 움직이거나 흐르지 않아. 꽃도 나무도 풀도 고래도 누가 이끌기에 따라가거나 움직이지 않아. 얼핏 ‘길잡이’가 있는 듯하지만, 길잡이는 따로 한 사람이 맡는 자리가 아니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제 길을 찾아보며 나아가는 길잡이야. 모든 목숨붙이는 저마다 스스로 제 길을 살펴보며 일어나는 길잡이란다. 어느 집에 네 사람이 있으면 넷이 스스로 길잡이에 길동무이지. 때로는 이 사람이 앞장서. 때로는 저 사람이 뒤에 서. 몫(책임·임무)을 갈라서 살아가는 길이 아니야.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붙이는 스스로 품은 ‘넋’이라는 빛길에 따라서 자라나고 깨어나는 삶이야. 이러한 삶을 지내면서 문득 만나고 헤어지고 어울리고 흩어지면서 새롭게 배우는 모든 이야기를 마음에 담지. 사람들을 보면 어느새 ‘대표·책임·지도’를 앞에 두는데, 막상 이들은 ‘앞장’서며 얼굴을 팔고 이름을 날리고 힘을 부리는데, 딱히 일은 안 하는구나. 그래서 뒤에서 조용히 일만 하고 궂은 뒤치다꺼리를 맡는 ‘실무자’가 있네. 여태 숱한 나라는 가시내를 뒤에 두고서 실무자로 삼되, 돈도 이름도 힘도 빼앗았지. 앞장서는 사내는 일은 안 하고 목소리만 높이면서 돈과 이름과 힘을 혼자 쥐락펴락했어. 그러면 요새는 어떨까? 요새는 이 굴레를 떨칠까? 누가 앞장서는 틀을 없애고서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살림으로 가니? 아니면 요새는 가시버시가 다 일은 안 하면서 앞에서 얼굴·이름·힘을 주무르는 불늪이니? 한집뿐 아니라 한마을과 한나라에서 모든 사람이 저마다 대표자에 책임자에 지도자이면서 실무자여야 해. 누가 앞이거나 뒤가 아닌, 나란히 서는 사이인걸. 2026.9.26.흙.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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