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10.15. ‘전작주의’라는 일본말씨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2003해에 문득 들은 일본말씨 ‘전작주의’입니다. 2026해에 읽은 책에 이 일본말씨가 나오기에 새삼스레 들여다봅니다. 얼추 열 몇 해 사이에 어린배움터부터 ‘온책읽기(온작품읽기)’를 합니다. 책 하나를 통째로 함께 읽는 배움길을 가리키는데, ‘온읽기·온책읽기’란, 어느 책 하나를 오롯이 읽는 길뿐 아니라, 어느 한 사람이 남기는 책과 글을 오롯이 읽는 길도 나타냅니다.


  2003해이든 2026해이든, 또 1993해나 1983해나 1963해나 1953해까지, 우리는 오롯이 일본말씨한테 잡아먹힌 글살이를 잇습니다. 일본이 물러간 1945해 언저리에 쏟아진 글과 책을 짚어 보면, 그때까지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사람’은 그냥 ‘앞으로도 이곳은 일본말글을 쓰는 삶터’이리라 여겼습니다. 한말글을 읽혀서 글이나 책을 쓰는 분이 더러 있던 1942∼1945해였을 텐데, 웬만한 글바치나 책바치는 그저 일본말글로 쓰고 읽었습니다. 이러하다 보니, 일본이 물러갔어도 한말글로 글쓰기나 책쓰기를 할 만한 깜냥도 주제도 그릇도 밑동도 줄기도 뿌리도 아주 없었다고 할 만합니다.


  그때(1945)에 우리 스스로 뉘우치고 눈물을 쏟으면서 “자, 오늘부터 우리는 한말글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하나하나 새로 익힙시다!” 하고 외치면 사뭇 다른 나라로 피어났으리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일자리(글쓸자리·책쓸자리)를 잃을까 두렵고 걱정하던 그무렵(1945) 글바치와 책바치는 “쉰 해 넘게 쓴 일본말글을 섣불리 버릴 수 없다”고 외쳤어요. 일본은 1910해에 이 나라를 집어삼켰지만, 이미 1900해나 이에 앞서도 일본말글은 이 땅에 잔뜩 들어왔어요. 글밥을 먹고살던 무리는 그들한테 익숙한 대로 ‘일본한자말’을 ‘무늬한글’로 바꾸는 글쓰기조차 손사래쳤습니다.


  일본말씨 ‘전작주의’는 그냥그냥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 삶터에 또아리를 튼 “익숙한 대로 쓰자”라든지 “다들 그렇게 쓰는데?” 하는 티끌, 게으르기도 하고 덧없기도 하고 철없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한, 우리 민낯을 고스란히 비추는 낱말 하나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담아서 나누는 모든 말은 저마다 다르게 빛나는 씨앗입니다. 좋은씨와 나쁜씨는 없습니다. 이 씨를 심으니 이 씨가 자라서 퍼지고, 저 씨를 심으니 저 씨가 자라서 퍼집니다. 중국말씨를 심던 조선 500해에는 중국말이어야 높거나 훌륭하다고 여겼어요. 일본말씨를 심던 1945해까지는 일본말이어야 좋거나 뛰어나다고 여겼습니다. 오늘은 우리 스스로 어떤 말씨앗을 심는 하루일까요?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말글과 삶과 마음이 하나로 흐르는 줄 차분히 바라보면서, 모두 가다듬는 하루를 살아낼 노릇이지 싶습니다. 하루아침에 말끔히 털어내려고 하면 지칩니다만, 하루에 한 가지씩 가다듬으면서 추스르려고 하면, 누구나 시나브로 새롭게 피어납니다.


  ‘순우리말’을 써야 한다는 뜻이 아닌 줄 알아보면 됩니다. ‘살아가는 말’을 나누면서 ‘삶말’로 이야기하면 됩니다. ‘살림하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살림말’로 노래하면 됩니다. 삶말과 살림말은 치레하거나 꾸미는 티끌이 아닙니다. 지난날 중국말씨와 일본말씨에다가 요즈음 영어말씨를 붙들기에 티끌입니다. 우리는 삶말과 살림말을 나긋나긋 들려주고 들을 적에 비로소 ‘사랑말’이라는 길을 알아볼 수 있어요. 사랑말을 알아볼 적에는 ‘사람말’과 ‘숲말’을 알아차리고, 이때부터 ‘새말’을 스스로 짓는 눈빛을 틔웁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가꾸면 됩니다. 시키는 나라나 둘레에서 무엇을 맡기더라도 우리 스스로 일로 돌려내면서 살리면 됩니다. 그저 이 가을빛을 넉넉히 누리듯, 그저 서로 마음을 북돋우고 살리면 됩니다. 글 한 줄이건 책 한 자락이건, 글쓴이와 책쓴이가 나누려고 하는 마음을 ‘오롯’이 읽으려고 하면 저절로 ‘온읽기’로 닿습니다. 한 줄이건 열 자락이건 대수롭지 않아요. 한 줄을 오롯이 읽으려는 눈을 틔우면, 이 한 줄을 바탕으로 삼아서 온마음을 헤아리게 마련입니다. 멧더미처럼 쌓은 책을 다 읽어야 ‘온읽기’이지 않습니다. 온마음을 함께하면서 온빛을 나누려는 온눈을 뜰 적에 비로소 ‘오롯읽기·온읽기’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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