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까칠한 숲노래 씨 책읽기
숲노래 오늘책
오늘 읽기 2026.10.6.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글/서제인 옮김, 생각의힘, 2025.8.7.
아침해를 바라보며 논둑길을 걷는다. 억새꽃이 아침햇살에 하얗게 부서지듯 반짝인다. 이제 옆마을에서 시골버스를 탄다. 시골버스부터 고흥읍과 시외버스와 부산 사상나루, 또한 부산시내버스와 길거리와 전철에 이르기까지, 가을빛을 느끼거나 살필 틈이란 없다. 우리는 아무런 철을 모르거나 등지면서 한가을로 접어드는 셈이다. 보수동책골목에 찾아간다만, 불날은 쉼날이네. 또 잊었구나. 〈학문서점〉 한 곳은 열었기에 책을 느긋이 읽는다. 잎물집 ‘6페이지’에서 숨돌리고서 길손집으로 걸어간다. 오늘 잡은 ‘스테이웰’은 넓으면서 깨끗하고 값이 눅다. 씻고 빨래한 다음에 망미동으로 건너가서 책모임을 꾸린다.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을 읽었다. 글쓴이는 ‘조지 오웰’을 읽지 말자는 책이 아니라고 앞뒤에서 슬쩍 밝히는 시늉을 하지만, 막상 ‘그깟놈’은 치워야 한다는 줄거리로 500쪽 남짓 꾹꾹 채워서 목소리를 높인다. 영어로 적은 ‘Wifedom’을 곱씹는다. 집안일도 할 줄 모르고, 혼자서 짐도 꾸릴 줄 모르고, 돈도 벌 줄 모르고, 그렇게 밤일을 잘 하지도 못 하고, 스스로 글감을 캐내어 쓸 줄 모른다고, 이모저모 짚는 얼거리인데, “밤일을 못 한다”는 말을 꽤 자주 되풀이한다.
요즈막에 ‘말콤 엑스’ 이야기를 새삼스레 되읽었다. 말콤 엑스가 총에 맞아 숨을 거둔 뒤에 곁님(말콤 곁님)이 남긴 글을 살피니, 말콤은 집안일에 아예 손을 댄 적이 없다고 넌지시 비추더라. 다만 말콤은 여섯 딸이 태어나는 동안 굳이 아들을 바라지는 않았다더라.
우리가 아는 숱한 ‘글돌이’ 가운데 집안일을 기쁘게 맡는다든지, 아이를 즐겁게 돌본다든지, 이러면서 밤일까지 훌륭히 한 사내가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오늘날까지 우러르는 숱한 임금 가운데 손에 물을 묻힌 이는 광해군 빼고는 없지 않을까? 방정환 같은 분도 가시내를 깔본 삶을 놓고서 이제서야 도마에 조금 오른다. 이쪽에 섰건 저쪽에 섰건 그쪽에 섰건, 오늘날에 진보정치나 환경운동을 하건 매한가지이다.
우리는 ‘그깟놈’을 어떻게 바라보면서 오늘 이 푸른별에 ‘고르게(1:1로)’ 있는 암수(가시버시)를 살펴야 새길과 아름길과 사랑길을 열 수 있을까? 새길은 서로 무엇을 하는 살림인가? 아름길은 서로 어떻게 마주하는 보금자리인가? 사랑길은 서로 어떤 사람으로 어울리면서 이야기하고 일하고 노래하는 삶인가?
그나저나 나는 조지 오웰을 안 읽은 지 한참 된다. 이녁이 남긴 글은 이미 스무 해쯤 앞서 거의 다 읽었다. 둘레에서 이녁을 추켜세울 적마다 ‘왜 굳이?’ 하고 갸우뚱했다.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처럼 그깟놈을 신나게 나무라는 글을 읽는 동안 ‘왜 굳이?’ 싶기도 하다. 혼자 쓴 글이든, 둘이 머리를 맞대고서 실마리를 잡은 뒤에 한 사람이 마무리를 지은 글이든, 이 글로 밝히려는 삶과 삶터를 살피면서, 오늘 우리가 걸어갈 길을 짚는 씨앗 한 톨로 삼으면 된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시키가 남긴 글도 그저 씨앗 한 톨이다. 누가 높거나 낮지 않다. 김수영이나 김남주나 고정희나 박경리가 쓴 글도 그저 씨앗 한 톨이다. 높거나 낮지 않다. 서정주나 이희승이나 박목월이나 윤석중이나 모윤숙이나 김활란 같은 이들은 워낙 우두머리(독재자)를 추키는 글을 오래도록 신나게 썼기에 굳이 거들떠볼 일이 없다.
고은 같은 이는 그깟놈일까? 고은을 좋아하며 감싸는 유홍준은 그깟놈인가? 글담을 높이면서 끼리끼리 어울리며 서로 추키는 그들은 그야말로 그깟놈일 수 있다. ‘무안참사’를 놓고는 아예 입을 다물듯 지내는, 또는 그저 입을 다무는 숱한 글바치는 그야말로 그깟놈(+그깟년)일 수 있다. 무안참사로 한집안을 잃은 분들은 오늘도 눈물로 모임을 꾸리지만, 이분과 어깨동무를 하는 글바치가 누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브라질 달걀’ 한 판을 39000원에 사들여서 ‘서울에 있는 큰가게(대형마트)’에서 4500원이라는 값으로 팔아온 나라를 놓고도 아무 말을 않는 붓이라면, 이미 글붓이 아니겠지.
조지 오웰 뒤에서 잊히듯 보이지 않던 사람이 있고, 임금과 나라지기와 우두머리 뒤에서 아주 안 보이는 사람이 있다. 벼슬아치(국회의원·장관·시도지사·군수·교육감) 뒤에서 그저 잊히면서 안 보이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한때 ‘조지 오웰 팬클럽’이던 분이라면 ‘조지 오웰 혐오자’로 돌아서기 쉬우리라 느낀다. ‘팬클럽’과 ‘혐오자’는 언제나 한끗만 달라 보일 뿐, 늘 마찬가지로 뒹굴게 마련이다. 좇지도 말고 쫓지도 말자. 민낯을 보았으면 민낯을 읽자. 속내를 알아차렸으면 속빛을 가꾸자. 오늘 이곳에서 우리 스스로 참답게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는 하루를 짓는 살림살이를 펴면서, 나란히 숲빛으로 푸르게 피어나는 작은꽃 한 송이를 노래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빈다.
#Wifedom #MrsOrwellsInvisibleLife #AnnaFunder
Wifedom: Mrs. Orwell's Invisible Life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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