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월간토마토> 2026년 10월호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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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사재기의 온도·품격 (이기주+ㅂㅇㅇㄹㅎ)



  겉멋과 겉치레로 휘감은 채 보기(조회수)를 늘리려는 짓을 잇다가 ‘고마움’이라는 마음을 등지면서 말밥에 오른 ㅂ씨가 있다. ‘박위’라는 분인데, 그냥 ㅂ씨라 하고 싶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말 ‘고맙다’는 자꾸 자취를 감추려 한다. 일본말 ‘감사(感謝)’가 또아리를 틀더니, 여기에 “타인의 호의”처럼 더 꼬아버린 일본말씨가 번진다. 우리 스스로 무엇이 ‘고마(고마움)’인지 잊어버리기에 밑뜻이며 참뜻을 헤아리지 않고서 겉멋과 겉치레로 휘감는 셈이다.


  ‘호의(好意)·친절(親切)·배려(配慮)·정(情)’은 나쁜말이 아니다. 이웃말(외국말)일 뿐이다. ‘매너(manner)’도 좋거나 나쁜 말씨가 아닌 그저 이웃말이다. ㅂ씨는 사람들이 ‘매너’가 있어야 한다고 끝없이 외치지만, 정작 ㅂ씨 스스로 ‘매너’가 없이 살았다. 아무래도 스스로 ‘매너’가 없는 탓에 둘레에서 ㅂ씨한테 ‘매너’를 보여주고 베풀어도 못 알아채거나 못 느끼면서 쳇바퀴를 돌았다고 느낀다.


  지난 2016해에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 난데없이 자랑책(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고, 온나라 마을책집마다 이 얄팍한 책을 번듯하게 놓은 모습을 보았다. 마을책집을 드나들며 읽기로 참 후줄근한 짜깁기라고 느꼈다. 그런데 100군데 마을책집 가운데 95군데 마을책집은 “이 책 좋은데요?” 하고 여기더라. 나는 《언어의 온도》 같은 책은 ‘짜깁기와 겉멋과 겉치레로 가득한 후줄그레한 거품’이라고 느낀다고 얘기했다. 그러니까 책집지기 100사람은 심드렁하게 타박하는 내 말을 거북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한 해쯤 지켜본 끝에 2017해 끝자락(12.28.)에 느낌글을 쓰기로 했다. 《언어의 온도》를 ‘강력추천’ 하는 마을책집에서 온돈을 치러서 샀다. 막상 온돈까지 치러서 사읽자니 얼마나 겉멋스러운지 새삼스레 더 느꼈다. 그렇지만 둘레에서는 이렇게 글을 꾸며야 한다고 여긴다든지, 이렇게 멋을 부려야 비로소 글맛이 난다고 여기는구나 싶었다.


 https://blog.aladin.co.kr/hbooks/9799851 (알라딘서재 느낌글)

 https://blog.naver.com/hbooklove/221172648324 (네이버블로그 느낌글)


  “보기에 좋은 떡이 먹기에 좋다”는 옛말을 제대로 곱씹어야 한다. “보기에 좋으니 손이 쉽게 간다”는 뜻이고, “먹기에 좋기에 몸에 이바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개똥을 약으로 쓰려니 없다”는 옛말을 차분히 되새겨야 한다. ‘개똥’이라는 빗댐말은 ‘잘난책(베스트셀러)’ 같은 이름값을 얻지 못 해서 처박히고 만 ‘아름책’을 가리킨다. ‘잘난이(유명인사)’ 같은 벼슬을 얻지 않으면서 시골에서 조용히 지내는 ‘살림이(살림을 짓는 일꾼)’를 가리키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수수한 손길이 얼마나 빛나고 눈부시고 아름다운지 안 알아본다. ‘아이돌봄·집안일’이 수수하기에 숲처럼 푸르게 빛나는 사랑인 줄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나라벼슬(장차관·국회의원·대통령) 같은 겉멋에 얽매이지 않는다. ‘아이돌봄·집안일’을 하찮게 여기느라 나라벼슬을 비롯해서 큰돈과 큰이름과 큰이름을 거머쥐고서 끝까지 붙들려고 용쓴다. ‘기본소득당’이 아니라 ‘가족소득당’이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그곳처럼 악착같이 ‘돈·이름·힘’에 사로잡혀서 눈치코치 없는 모습을 보라.


  보기에 좋은 떡에 눈이 먼 탓에 그저 덥석덥석 집어먹는다. 보기에 좋게 꾸미느라 무슨 짓(화학처리)을 했는지 안 가리고 만다. ‘임상검사·부작용검사’조차 하지 않은 미리맞기(백신)를 두어 해 사이에 푸른별 모든 사람한테 하루아침에 때려맞힌 지 고작 서너 해밖에 안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나란히 휩쓸리면서 ‘보기좋은’이라는 껍데기를 붙잡아 왔다. ‘아름다움’을 그냥 개똥으로 여기면서 팽개쳤고, ‘아름다움’과 ‘사랑’이야말로 온사람을 살리는 빛살인 줄 아예 안 쳐다보면서 서울바라기로 치닫기까지 한다.


  서울에 쏠린 숱한 일터를 ‘서울밖(지방)’으로 옮긴다고 하니 길거리에 나와서 팔뚝을 휘두르고 목청을 높이는 그들을 보라. ‘그들’은 남이나 놈이 아닌 ‘우리 스스로’이다. 스스로 ‘서울밖’에서 보금자리와 일자리를 헤아리려는 매무새(매너)가 아니기에 책 하나를 놓고도 ‘아름책’을 개똥으로 여겨 팽개치면서 ‘잘난책·자랑책’을 ‘보기좋다’고 여기면서 잔뜩 사들이는 얼거리이다.


  《언어의 온도》를 선보인 이기주 씨, 아니 ㅇ씨는 《보편의 단어》라는 이름으로 지난 2024해에 새책을 내놓으면서 사재기를 신나게 했더라지. 이미 숱한 펴냄터가 여태까지 사재기를 선보이면서 잘난책을 쥐락펴락했다. 또한 사재기가 아니어도 “어마어마하게 거느리는 모임(북클럽·서평단)”으로 별꽃잔치를 벌여서 물밑짓을 일삼는다. ㅇ씨에 앞서 ㅂ씨도, ㅂ씨에 앞서 다른 ㅇ씨(이병한)도, 오래오래 저지른 막짓이 뒤늦게 불거졌는데, 이들이 여태 긁어모은 돈을 뱉어냈다는 말은 들은 바 없다. ㄹ씨(료)나 ㅎ씨(황석희)는 뱉어낸 돈이 있을까? 그저 숨을 뿐 아닌가?


  그들(우리 스스로)이 사재기를 하건 말썽을 저지르건 어느 하루 반짝 저지르는 몹쓸짓이 아니다. 술을 퍼마시고서 달구지를 모는 이는 꼭 하루만 ‘술달구지(음주운전)’를 하지 않는다. 늘 하던 짓이다. 이미 늘 보여주는 민낯이 ‘큰짓’이 될 때까지 알아차리지 않거나 알아보지 않으려고 하는 나(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려고 할 때라야 비로소 모든 껍데기와 겉치레와 겉멋을 걷어내면서, 누구나 저마다 아름답게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집(짓는곳)을 이루리라고 본다.


  끝으로 한 가지 붙인다. 이웃말 ‘감사(感謝)·호의(好意)·친절(親切)·배려(配慮)·정(情)·매너(manner)’는 우리말로 ‘고맙다·좋아하다·따뜻하다·살피다·마음·매무새’를 가리킨다. 곱게 여기는 고맙다요, 싫어하지 않는 좋아함이고, 해처럼 베푸는 따뜻함에, 이모저모 먼저 살피며, 모두 하나인 마음이라 여기고, 늘 보이는 매무새이다. 2026.9.9.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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