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22 알아보는 눈을
책벌레수다 : 값은 몰라도 속을 읽으면
모든 책은 삶을 배우는 길잡이라고 느낀다. 얼핏 ‘좋은책·나쁜책’으로 가르면서 ‘미운책·싫은책’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는 분이 많은데, ‘좋은책’만 챙기는 사람은 언제나 눈이 좁더라. ‘나쁜책’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책도 나란히 품으면서 살피는 사람은 으레 눈이 넓더라. 미운책이나 싫은책을 안 따지면서 ‘배울책’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눈을 틔우더라.
나는 누구한테서 책이나 책읽기를 배운 바가 없다. 그저 책집마실을 하며 스스로 익힌 책빛이다. 책집에서 만난 책어른과 책이웃과 책동무하고 끝없이 책수다를 하면서 곰곰이 짚으면서 하나씩 알아갈 뿐이다. 아이랑 책집마실을 하는 동안 “아이가 활짝 웃으며 손에 쥘 책”이란 무엇일는지 헤아리면서 다시 익힐 뿐이다.
책스승은 따로 없다. 모든 사람이 다르게 책스승이다. 아이들이 책스승이고, 이웃이 책스승이다. 책집지기가 책스승이고, 책을 펴내는 모든 일꾼이 책스승이다. 어떤 책을 쓰거나 옮기거나 내든, 누구나 다르게 책스승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배운다. 스스로 안 배우는 사람이라면 허수아비이다. 스스로 배우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심부름”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서 일으키는 일”을 한다. 누가 무엇을 맡길 적에 ‘심부름’으로 여기는 사람은 싫어하는 티를 내면서 억지로 맺고, ‘일’로 삼는 사람은 그저 새롭게 배우려는 매무새로 즐겁게 맺는다.
그러니까 일을 하면 된다. 심부름을 맡을 적에는 “남이 나한테 맡겼다” 같은 틀을 내려놓고서 “내가 스스로 나선다”는 마음으로 돌릴 노릇이다. 맡겼기 때문에 따라가는 길이 아닌, 나서서 맡는 길로 돌아서기에 비로소 바람을 일으키고 물결이 일어난다.
말할 수 없는 일이란 있을까? 말할 수 없다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모든 일은 누구나 다르게 말하게 마련이다. 말할 수 없다고 여긴다면, 눈치를 보거나 생각을 않거나 이야기를 끊거나 종살이로 치닫는 셈이겠지. 둘레를 보면, ‘말’을 하면 나한테 길미가 안 된다고 여기니 말을 삼가더라. ‘말’을 하면 둘레에서 우리를 이쪽이나 저쪽으로 갈라놓으려고 하니까 싫어서 말을 끊더라. ‘말’을 하면 “네 주제에 무슨 소리?” 하면서 비웃거나 내치니까 창피하거나 수줍어서 말을 안 하고.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모든 말은 ‘마음’을 담고 나타내는 소리인걸. 마음은 저마다 ‘삶’이라는 길을 보내거나 지낸 자취이다. 삶을 잇고 누리고 펴기에 마음에 담아서 말로 옮길 뿐이다. 말을 할 수 없다면 아직 삶이라는 자리에서 몸으로 겪거나 치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몸으로 겪거나 치렀는데 말을 할 수 없다면 눈치를 보는 굴레이다.
‘말’로 드러내기에 뒤틀리지 않는다. ‘말하기’가 아니라 ‘꾸미기’나 ‘치레하기’를 헤아리느라 그만 뒤틀린다. 그저 보거나 느끼고 겪은 대로 말을 할 적에 언제나 스스로 새롭게 배운다. 흔히 “지식은 머리에 쌓고, 교양은 삶으로 드러난다”처럼 잘못 말을 하던데, ‘지식 = 부스러기’라서 머리에 먼지로 쌓여서 생각을 막는다. ‘교양 = 겉치레’라서 교양이 몸에 밸수록 되레 꾸미거나 치레하고 만다.
우리는 ‘지식·교양’이 아닌 ‘알다(앎)’를 느낄 길을 갈 노릇이다. ‘알’려면 새끼새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 ‘앓’아야지. 일부러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끙끙 앓는들 알지 않는다. 가장 쉽다고 여기는 그림책과 어린이책부터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알깨기를 하면서 알아차린다. 이렇게 쉬운데 무슨 뜻일까 하고 되짚고 되새겨야 천천히 알아본다.
‘쉬운책’을 읽기 때문에 생각을 못 하지 않는다. ‘쉬운책’을 곁에 안 두는 탓에 생각을 잃는다. 어린이하고 나란히 서서 이야기할 ‘쉬운책’부터 품기에 생각이 반짝반짝 살아나고 깨어난다. 어린이 곁에 서지 않으려 하니 ‘어려운책’은 손에 쥐지만, 막상 생각하고는 한참 멀다. ‘어려운책’을 쥐어야 많이 배운다고 잘못 여기느라, 그만 말을 어렵게 꼬거나 뒤트는 굴레에 사로잡힌다.
오늘날 숱한 책은 ‘낱말과 글자락만 억지로 어렵게 꾸민 얼개’로 가득하다. 그렇기에 ‘인문교양책’을 많이 읽는 분이 오히려 인문도 교양도 모르는 채 더 등지기 일쑤이다. 어느 책에 누가 “읽는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일이다” 같은 글을 적었는데, 아주 틀렸다. ‘읽다’라는 우리말도 ‘이해·해석’이라는 일본한자말도 어떤 속뜻인지 안 살피기에 이런 글을 그냥그냥 쓰고 말 뿐 아니라, 우리도 이런 글을 그냥그냥 훑고서 지나간다.
그러니까, 생각을 해야 한다. ‘읽다’는 ‘일다 + 익다’인 얼개이다. 바람과 물결을 일으키고 몸으로 스며서 저절로 우러나올 때까지 익힐 적에 비로소 ‘읽다’이다. 눈으로 슥 지나칠 적에는 ‘훑다’이다. 일으켜서 익히려면, 풀어내야(해석) 하고 헤아려야(이해) 한다. 둘 다 할 노릇이다. 풀고 헤아리기에 어느덧 마음을 일으켜서 생각으로 반짝여서 눈에 익는다. 이때에 이르러야 ‘읽다’이다. 곧 ‘읽다 = 풀다(해석) + 헤아리다(이해)’일 테니, 풀기만 하거나 헤아리기만 하면 읽어내지 못 한다.
책값은 책을 밝히거나 말하지 못 한다. 세간값은 세간을 밝히거나 말하지 않는다. 비싸기에 좋은 책이나 세간일 수 없다. 싸기에 나쁜 책이나 세간이지 않다. 값은 몰라도 된다. 아니, 값을 볼 일이 없다. 어떤 값이든 속을 보면 된다. 값이 어떻더라도 알맹이를 살피면 된다. 배우려는 길을 스스로 읽으면 되고, 익히려는 길을 스스로 일구면 된다. 한꺼번에 알아차리기에 나쁘지 않지만, 하나씩 알아차리기에 즐겁다. 한 발짝씩 걸으면서 알아간다. 하나하나 빚고 짓고 다듬으면서 알아낸다. 하나둘 열고 틔우고 피우면서 환하게 깨닫는다.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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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가 하는 일은 항상 기성 라면의 구조에 올라서서 세부를 조금씩 개량한 것뿐이야. 하지만 라면만이 아니야. 새로운 무엇인가는 구조마저 의심하고 파괴하지 않고서는 태어나지 않아!” 《라면 요리왕 8》 135쪽
“그 자식 잔소리를 안 듣고 있었다고?” “듣기는 했지만 귀동냥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저보다 오라버니를 찍어 누르려는 게 용서가 안 됩니다!” “왜 네가 화를 내는데?” “고맙게 해 주시는 분을 바보 취급하는데, 화내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요!” 《아카네 이야기 4》 189쪽
시장 논리에 의해 기획되고 저렴하게 만들어진 책을 당장의 싼값에 구입한 독자들은 이내 실망을 하고 맙니다. 실망스러운 책은 읽어 봐야 소용없는 무용성의 종이 뭉치가 될 뿐입니다. 장식장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 100쪽
당시 한국광복군 창립식에 참여했던 이들은 1938년 11월에 결성된 한국광복진선 청년공작대이었는데, 34명 중 11명이 여성이었습니다.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 213쪽
“그렇잖아. 난 아빠 말고도 매직걸 좋아하고, 요즘은 달리기랑 학교도 좋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 그런데 아빠가 좋아하는 게 나뿐이라니 쓸쓸하잖아? 그치만 밥 만드는 걸 좋아해서 다행이야!” 100쪽
《라면 요리왕 8》(쿠베 로쿠로 글·카와이 탄 그림/정하연 옮김, 대원씨아이, 2003.5.15.)
#ラ-メン發見傳 #久部綠郞 #河合單
《아카네 이야기 4》(스에나가 유키·모우에 타카마사/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24.1.25.)
#あかね? #末永裕樹 #馬上鷹?
《도서정가제가 없어지면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이 사라집니다》(백원근 글, 한국출판인회의, 2020.10.8.)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심옥주, 우리학교, 2019.2.16.)
《달콤 달콤 & 짜릿 짜릿 8》(아마가쿠레 기도/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2017.12.4.)
#甘?と?妻 #雨?ギド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