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안 읽는 이웃 (2026.10.6.)
― 부산 〈보수동책골목〉
이른아침에 논둑길을 걸었습니다. 시골에서 바깥일을 보러 움직이려면 으레 옆마을 시골버스를 타거든요. 서울(도시)로 치자면 버스로 넷, 전철로 둘쯤 될 만한 길입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이만 한 길을 가볍게 걸었습니다. 면소재지이든 읍내이든 아무렇지 않게 걸었어요. 걷자면 오래 걸린다고도 하지만, 지난날에는 “버스를 기다리는 틈”이면, 읍내에서 집까지 걸어갈 만한 틈이기도 합니다. 한나절(2시간)을 기다려서 타기보다는 그냥 한나절을 걷는 셈입니다. 보임꽃 〈집으로〉에 잘 나와요. 할매할배는 으레 걸었습니다. 아이를 헤아리고 앞길을 그리면서 걷지요. 오늘을 돌아보고 어제를 되새기면서 새날을 그리기에 걷습니다.
책집마실이란 ‘걷는읽기’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 발바닥으로 땅바닥을 느끼면서 찬찬히 오가는 사이에 책집 골마루와 시렁을 가만히 헤아리는 ‘걷는읽기’입니다. 누리책집에 시키면 집까지 책을 날라줍니다만, 이때에는 우리 발바닥이 땅바닥을 못 느껴요. 책을 좀더 값싸고 빠르게 손에 쥐기는 하되, 막상 “책을 쓰고 엮고 짓고 일구어 잇는 모든 이웃(일꾼)”을 놓치는 얼거리입니다.
오늘날은 누리책집에서 책을 안 사기가 어렵습니다. 저처럼 시골에서 산다면, 또는 멧골이나 섬에서 산다면, 책집이 없는 작은고을에서 산다면, 누리책집에 기댈 수 있습니다. 이때에는 누리책집에서도 책을 사읽되, 바깥마실을 하는 길에 책집마실도 나란히 하면서 손바닥과 발바닥으로 책골목과 책마을을 느낄 만해요.
오늘낮에 부산에 닿아 보수동책골목으로 갑니다. 시내버스에서는 자리를 잡고 앉아서 노래를 손으로 슥슥 씁니다. 보수동에 닿아서 어느 곳에 깃들까 하고 헤아리는데, 마침 불날(화요일)이라 모조리 쉬는군요. 또 잊고 맙니다. 그래도 불날에 여는 책집이 두 곳 있어서 이 가운데 한 집에 들릅니다.
얼핏 보면 헛걸음일 테지만, 곰곰이 보면 새걸음입니다. 책바다에서 헤엄치는 날짜를 잘못 보았으나, 책골목 한켠에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고 하늘을 읽고 바람을 동무하면서 다리를 쉽니다.
부산에 아름답게 있는 보수동책골목인데, 이곳으로 책을 사읽으려고 나들이하는 분도 꽤 있으나, 그냥그냥 놀러와서 그럭저럭 찰칵찰칵 찍으면서 “책읽는 흉내”를 담아가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누리무늬(인스타 업로드용)’이랄까요. 마치 책 좀 읽는다고 자랑하려고 책골목 한켠에서 책을 쥔 모습만 찍는 셈입니다.
책읽기란 ‘겉훑기(글쓴이·펴냄터 이름값)’가 아닙니다. 책읽기란 ‘속읽기(삶을 사랑하며 살림하는 손끝으로 담은 이야기)’입니다. 속차리는 이웃님을 그립니다. 속가꾸는 동무를 기다립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