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발닿는 곳으로 들락날락 책숲을

― 작은배움숲 8 마을에 나무와 어린이를



  부산으로 이야기마실을 다녀왔습니다. 고흥으로 돌아오자마자, 새로 고흥교육장이 된 분한테 찾아가서 손글(손편지)을 건네었습니다. 다만, 새 교육장님은 고흥교육지원청에 안 계셔서 곁일꾼(비서)한테 맡겼습니다. 이러고서 이튿날은 고흥 어린이하고 글놀이꽃(시쓰기 수업)을 폈고, 오늘에서야 겨우 숨돌립니다.


  새로 장만한 책을 주섬주섬 꾸려서 우리 〈숲노래 책숲〉으로 나릅니다. 누렇게 물결치는 가을들을 바라보면서 먼고을 이웃님이 마주하는 책살림을 헤아립니다. 부산에서는 ‘구’를 넘어서 ‘동’에까지 부산시에서 꾸리는 책놀이터(도서문화예술공간)를 늘리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서울은 이미 어느 마을에서나 가볍게 거닐며 드나들 작은책숲이 무척 많다지요. ‘살림꽃(문화도시)’이기를 바라는 부산이기에, ‘들락날락’이라는 이름으로 책놀이터를 늘리는구나 싶은데, 전남광주는 어떤 모습일까 하고 헤아립니다.


  무척 오래도록 시골에는 책숲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이러다가 읍내에 ‘군립도서관’이 태어납니다. 읍이 둘이 있는 군이라면 더 큰 읍에 먼저 하나 열고, 한참 뒤에 다른 읍에 하나 엽니다. 군에서는 책숲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기 일쑤였으나, 이럭저럭 긴 나날이 흐른 끝에 작은책숲이 면에도 하나둘 엽니다. 다만 시골 면에서 여는 작은책숲은 서울에 있는 동이나 아파트에서 여는 작은책숲에 대면 아주 조그맣습니다.


  시골에서 살며 철마다 다른 시골빛을 누리는 아이어른을 만나기는 안 쉽습니다. 오히려 서울사람이 철마다 다른 숲빛을 누리거나 느끼려고 애쓰는 듯합니다. 읍내에 사는 어린이와 푸름이는 외려 서울아이보다 들살림을 모르기 일쑤요, 면소재지에 사는 어린이와 푸름이도 서울아이보다 멧살림이나 바다살림을 모르기까지 합니다. 이미 시골배움터는 ‘서울로 수학여행’을 다녀올 뿐 아니라 ‘서울에 가서 신호등에 따라 건널목 건너기’라든지 ‘에스컬레이터 타기’라든지 ‘지하철 타기’라든지 ‘버스 갈아타기’를 미리 일러주고서 ‘해보기(수학여행으로 체험학습)’를 시키는 얼개라고도 할 만합니다.


  시골이라면 철마다 다를 뿐 아니라 달마다 다른 해바람비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만, 아직 이렇게 들려주거나 배우는 길은 없다시피 합니다. 따로 ‘작은배움숲(학교 밖 학교)’을 꾸리지 않고서야 첫봄해와 첫가을해가 어찌 다른지 알려주기란 어렵습니다. 한봄비와 한가을비는 어찌 다른지 들려주려면, 늦봄밤과 늦가을밤은 또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려면, 그냥그냥 흘러가는 ‘서울바라기 제도권교육’으로는 하나도 못 합니다.


  왜 자꾸 시골은 줄어들 뿐 아니라 사라지려 하는지 돌아보기에는 한참 늦은 듯합니다. 그러나 한참 늦었어도 이제라도 처음으로 돌아가서 짚을 노릇이지 싶습니다. 사람도 일터도 돈도 서울에 몰렸고, 펴냄터도 책도 서울에 넘칩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에 책집이 없으니 누리책집으로 시켜서 책을 사읽게 마련인데, 시골에서 살아가며 책을 사읽는 사람도 대단히 적습니다. 여러모로 보면, 이미 가을빛과 겨울빛부터 읽지 않는 터라 책빛도 시큰둥할 만합니다. 여름빛과 봄빛을 반기려는 마음이 스러진다면, 애써 주머니를 헐어서 책을 사읽으려는 마음도 없을 테고요.


  요즈음은 시골 읍내나 배움터에서 마련하는 책숲도 꽤 크고 책도 제법 갖춥니다. 그렇지만 “이곳이 왜 이곳인지” 짚거나 다루는 책은 어디 있는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고흥군이라면 고흥군이 왜 ‘고흥’이며, 이곳에서 어떻게 살림을 지으면서 푸른빛을 누리고 품고 나눌 만한지 들려주는 책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다른 곳 고을책숲(지역도서관)은 고을지기(지역작가)가 쓴 책을 앞장서서 알리기도 하고 읽히기도 할 뿐 아니라, ‘서울바라기’를 멈추고서 ‘마을바라기’를 하자는 뜻을 넓힙니다. 이와 달리 아름다운 들숲메바다를 품은 시골일수록 ‘관광객’과 ‘기업유치’와 ‘개발투자’에 얽매일 뿐, 막상 이곳 시골에서 나고자란 어린이와 푸름이가 이곳을 사랑하며 살림하는 길을 들려주고 알려주고 배우면서 함께 일굴 이야기는 없다시피 합니다.


  무엇을 사랑할 만한지 이야기하지 못 하면서 ‘관광객’과 ‘대형 토목사업’에 치우치는 행정이라면 ‘지자체’를 하는 뜻이 있을까요?


  서울 영천동 영천시장 끝자락에 〈골목책방〉이라는 마을책집이 있었습니다. 1970해부터 2021해까지 하루조차 안 쉬면서 책집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쉰 해 남짓 책빛을 일군 셈입니다. 이곳에 마지막으로 책마실을 다녀온 때가 2017해였지 싶습니다. 그 뒤로는 좀처럼 발걸음을 못 했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마실이란 멀거든요. 이러다가 〈골목책방〉 아주머니가 전화로 책집을 닫는다고 알려주셔서 마지막길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우리 책숲을 추스르다가 한참 앞서 〈골목책방〉 아저씨가 고흥으로 보낸 꾸러미를 보았습니다. 되도록 안 버리고 모으다 보니, 책짐을 받을 적에도 빈 꾸러미(상자)를 포개어서 건사하곤 합니다. 빈 꾸러미 한켠에는 〈골목책방〉 아저씨가 슥슥 적은 손글씨가 고스란합니다. 손글씨가 남은 곳을 잘라서 쓰다듬습니다. 저는 “쉰 해 남짓 땀흘리다가 흙으로 돌아간 작은책집 일꾼이 남긴 손글씨 한 자락”도 길(역사)이라고 느낍니다. 누가 책(역사문서)으로 이런 손글씨를 남기지는 않을 테지만, 우리가 날마다 짓는 모든 살림살이야말로 우리 스스로 이루고 일구는 빛이요 씨앗이라고 여깁니다.


  부산시에서 꾀하는 ‘들락날락’처럼 전남광주 작은시골 작은마을마다 ‘작은배움숲’이 싹틀 수 있으면 아름다울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고흥군 도화면 시골마을 한켠에서 폐교인 흥양초를 〈숲노래 책숲〉으로 살려쓰듯, 다른 이웃님은 다른 마을에서 폐교를 빌려서 책숲이며 배움숲이며 노래숲이며 이야기숲이며 그림숲으로 살릴 만합니다. 빈집이나 헛간을 살려서 이음숲을 꾸릴 만합니다.


  목돈을 들이는 토목사업이 아닙니다. 더 크거나 멋지게 세울 학교나 아트센터도 아닙니다. 작은마을에 작은책숲이 있으면 됩니다. 마을을 둘러싼 들과 숲과 메와 바다를 아우르면서 배우고, 우리가 두고두고 남기는 작은책에 흐르는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배우는 터전을 열면 됩니다.


  시골에서 여러 배움터를 묶으면(통폐합) 100억이니 200억이니 나라에서 내려준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꾀할 수도 있습니다만, 시골에 있는 여러 배움터를 자꾸 없애면서 읍내로 쏠리는 얼개로 뻗으면, 읍내 배움터도 머잖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면소재지 배움터’는 ‘읍내 배움터’로 빠져나간다면, ‘읍내 배움터’는 ‘서울 배움터’로 빠져나가거든요. 이렇게 빠져나간 어린이와 푸름이와 젊은이는 다시 시골로 돌아올 마음이 없기 일쑤입니다. 나고자라는 시골에서 “시골이 왜 푸른터요 아름터인지 듣거나 겪거나 배운 바가 없다”면,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거나 일자리를 얻은 뒤에 굳이 시골로 돌아갈 까닭을 하나조차 찾기 어렵습니다.


  바람이 들락날락 흐르는 틈이 있기에 모든 숨붙이가 싱그럽습니다. 햇볕이 들락거릴 틈새가 있기에 모든 씨앗이 싹틉니다. 빗물이 스며들 틈이 있기에 나무가 자라서 푸르게 우거집니다. 이제 시골에서는 해바람비라고 하는 푸른빛을 한복판에 두고서 ‘푸른바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마을과 고을이 저마다 알맞게 흐르면서 어울리고 만날 때라야, 서울도 알맞게 몸집을 줄이면서 넉넉히 어울리는 한나라 한살림 한노래로 피어나리라고 봅니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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