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일상 이야기 - 어느 프랑스인이 본 처가의 나라 꼬레
에릭 비데 지음, 니코비 그림, 최미경 옮김 / 눈빛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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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이 책을 읽으며 '단점이 많이 느껴진다'고 했지만,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 책을 쓴 에릭 비데라는 사람이 얼마나 '우스갯소리'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와 문화에서 문제가 되는 대목을 '웃음으로 넘기며 비판해 주며 껴안고 있는'지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이는 '몰라서 대충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느낌과 생각을 이 책 하나를 읽으면서도 제대로 잡아채지 못한다면, 우리들 눈길이나 눈높이는... 우리 세상과 사회를 제대로 못 읽고 겉핥기로 그쳐 버리지 않을까요? 진작에 읽었던 책이지만, 이제서야 느낌글을 하나 띄웁니다.


- 책이름 : 한국의 일상 이야기
- 글 : 에릭 비데
- 그림 : 니코비
- 옮긴이 : 최미경 옮김
- 펴낸곳 : 눈빛(2003.11.15.)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13 ― 돈만 많이 벌게 해 주면 좋아?
 : 에릭 비데, 《한국의 일상 이야기》



 (1)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침을 먹습니다. 무김치와 배추김치와 마늘절임과 조개젓, 이렇게 네 가지 반찬을 차려 놓고 먹습니다. 밥은 누런쌀에 누런콩으로 지었습니다. 콩은 하루 동안 불리고 누런쌀도 서너 시간은 불린 뒤 짓습니다. 밥그릇이 넘치지 않을 만큼 밥을 담습니다. 밥을 풀 때면 더 담고픈 마음이 굴뚝같은데, 흰쌀밥이라면 두 그릇쯤 먹어야 속이 든든하다고 느끼나, 누런쌀밥일 때에는 한 그릇으로도, 때로는 반 그릇으로도 든든합니다. 한 숟가락 떠서 적어도 서른 번에서 쉰 번은 씹어야 목구멍으로 솔솔 넘어갑니다.


.. 피맛골의 입구 안내판에 써 있는 것처럼, 서울의 역사 유적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지역인데, 이 지역을 철거한다는 것은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것이 서울시의 도시개발정책 입안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목표인 모양이다 … 공동의 자산인 환경이, 개인의 자산인 부동산과 영업의 이익을 위해서 희생당하는 것이다 ..  (168쪽)


 오늘은 일산 나들이를 가는 날. 설거지를 마친 뒤 가방을 챙기고 길을 나섭니다. 배다리 철길다리 밑을 지나 건널목을 두 번 건넙니다. 한 시 조금 넘은 때인데 학교옷 차려입은 고등학교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참외전거리를 지납니다. 과일가게 늘어선 이곳에서 물고기 몇 가지를 파는 할머님은 오늘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덥건 춥건 따뜻하건 시원하건, 할머님은 늘 그 자리에서 꼭 그만한 차림새로 손님을 기다립니다.

 과일가게 끝에 자리한 양과자집에 들릅니다. 일산 같은 새도시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운 옛날 양과자를 두 근 삽니다. 양과자집 아저씨는 낡은 저울로 무게를 답니다. 집에서 당신이 손수 붙인 흰 봉투에 과자를 담습니다. 푸짐한 봉투 둘을 옆지기 가방에 넣습니다.


.. 사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자연과 시골스런 모습이 바로 서울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서울의 매력은 즉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매력은 깊이, 내부에 숨겨져 있고, 그래서 이태원, 강남, 인사동 등 누구나 찾는 거리만을 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모습을 위해서는 찾아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내의 높은 사무실이 있는 건물들, 사람이 넘치는 백화점 등, 도쿄ㆍ뉴욕ㆍ파리에 비해서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서울의 매력은 도보로, 산보를 하면서 코를 들고 바람을 쐬며, 김기찬의 사진에 등장하는 것처럼 뒷골목을 다닐 때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산에 등산을 가기는 하지만 도시에서는 거의 걷지 않는다. 그런데 걸어다녀야만 두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작은 시장을 발견할 수 있고, 시내 한가운데에 위치한 작은 야채밭, 복잡한 골목 구석에 있는 맛있는 허름한 식당, 막다른 골목에 끼어 있는 구멍가게를 보게 되는 것이다 ..  (109∼111쪽)


 은행에 들러 돈을 찾습니다. 통장이 다 되어 새것으로 바꿉니다. 이참에 전기값(살림집 3660원, 도서관 7960원)을 낼까 하고 창구 직원한테 내밉니다. “아, 공과금은 안 받습니다. 공과금 수납은 저기 문 옆에 있는 기계에서 하시면 되고요, 쓰는 방법은 옆에 있는 직원이 알려줄 것입니다.” 고작 두어 달 앞서까지만 해도 공과금을 받던 은행인데.

 기계로 낼까 하고 잠깐 생각하다가 그만두기로 합니다. 아직 우리 동네 우체국에서는 공과금을 받아 주고 있으니 그리로 가야겠어요.


.. 한국의 진정한 커피숍은 사실 정교하게, 그럴듯하게 실내장식을 한 그런 카페가 아니었다 … 즉 미국에서 들어온 이들 커피숍의 유일한 목표는 뉴욕이나 방콕, 도쿄, 서울이 모두 같은 양식을 지향하는 것이다 … 대학로 같은 데서는 실내장식을 잘해 놓았다는 구실로 프랑스식으로 말하자면 양말 짠 물과 같은 미국식 커피를 황당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  (60쪽, 79쪽)


 은행에서 나선 뒤 지하상가로 들어갑니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몇 없다고 느꼈으나 지하상가는 바글바글입니다. 사람숲을 헤치며 전철역 쪽으로 갑니다. 지하상가를 거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지하상가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인천이라는 곳에서는, 동인천역과 제물포역과 주안역 둘레에 건널목이 없거든요. 부평역은 몇 군데 있지만 한참을 돌게 되어 있고, 정작 역 앞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 어디에든 지하상가만 꼬불꼬불 어지러이 빼곡빼곡 만들어 놓고, 이곳 사람들 장사를 해야 한다면서 건널목 놓기를 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걷기 힘든 어르신들, 몸이 아프거나 고단한 사람들, 짐을 잔뜩 짊어진 사람들, 유모차를 끄는 어버이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사람들, 바퀴걸상을 타고다니는 사람들, ……은 어쩌지요. 지하상가 장사꾼들 ‘장사권리(상권)’가, 보통사람들 ‘사람권리(인권)’보다 앞서야 하나요.


.. ‘절도 있는 음주’라고 술병에는 적혀 있지만, 한국인들의 지침서에는 술이든, 목욕탕 물이든, 설거지용 물이든, 난방이나 냉방용 에너지 또는 식사 준비건 항상 절도를 잊고 넘치게 하라고 되어 있다. 매일 남한에서 버리는 음식물만으로도 북한의 주민을 먹여살릴 수 있다고 작가 황석영은 어떤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  (37쪽)


 동인천역에 들어옵니다. 전철이 한참 들어오지 않아, 모두들 한참을 기다립니다. 서울로 떠나는 전철이지만, 낮에는 아주 드문드문 다닙니다. 서울 지하철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전철 시간을 ‘서울 가는 보통 편’과 ‘용산 가는 급행’을 사이사이 맞추어 놓으면 사람들 기다리는 시간과 수고를 훨씬 덜 텐데.

 십 몇 분을 기다린 끝에 소요산 가는 전철 하나 들어와서 탑니다. 제물포역에서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잔뜩 탑니다. 우리 옆자리에 둘이 앉고 둘이 서서 신나게 수다를 떱니다. 연예인 ㅇ씨 두다리 걸치기 문제, 자기네 커플링이 얼마짜리네 하는 문제, 내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고 있으면 어찌하겠느냐 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얼마나 옆사람들 수다떨기에 굽히지 않으면서 책읽기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느냐고 하느님이 시험하는지 모를 일.

 이 여대생들이 서울까지 가는가 싶어서 속으로 한숨을 후유 하고 쉬는데, 부처님이 도와주셨는지 부평역에서 모두 다 내립니다.

 하지만 부평역에서 우루루 타서 우리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큼직한 엉덩이와 허벅지로 자꾸 옆으로 밀어붙이는 아주머니들. 다리 쫙 벌리는 늙수그레 아저씨도 싫지만 엉덩이를 자꾸 밀어붙이는 늙수그레 아주머니도 싫습니다. 두 번째 시험인가요?


.. 나는 “사소한 요소들이 어설플 때 시장은 특히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너무 완벽한 시장은 시장이 아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백화점ㆍ쇼핑센터, 또는 미국인들이 말하는 쇼핑몰이 된다 ..  (50쪽)


 그예 책읽기를 접고 눈을 감습니다. 그냥 자자. 마음을 달래자.

 전철 장사꾼 서너 사람이 지나가고 목소리 높은 사람들 조잘거림이 여러 차례 물결칩니다. 이제 전철은 종로3가. 드디어 내릴 곳. 잠깐 사진관에 들러야 합니다.

 겉옷을 입고 큰가방을 뒤에 멜 즈음, 나이든 아저씨 한 분이 제가 앉던 자리에 앉으려고 잽싸게 다가옵니다. 제가 앉던 자리에 아직 사진기가 얹혀져 있는데. 그 사진기 깔고 앉으시려고요? 아직 짐을 추스르지 못했지만 얼른 사진기를 듭니다. 한두 푼짜리도 아니지만, 한두 푼짜리가 아니라 해도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하면 사진기 망가지기 쉽습니다.

 한 번 더 큰숨을 몰아쉽니다. 내릴 문 앞에 섭니다. 전철이 서고 문이 열립니다. 우리 옆에 선 아주머니 한 분이 먼저 내립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들이 내릴 즈음, 타려고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파란옷을 입은 늙수그레 아주머니 한 분이 깡총 뛰듯 전철에 올라타며 제 오른팔께를 밀칩니다. ‘뭐여?’ 하고 잠깐 사이에 속으로 빠르게 생각하다가 오른팔에 살짝 힘을 줍니다. 아주머니는 “어머나?” 하면서 튕겨집니다. 내릴 사람이 다 내릴 때까지 기다리며 뒤에 서 있던 사람들 가운데 아주머니 한 분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먼저 타구선!” 하고 다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합니다.


.. 손때 묻은 사물에 대한 애착, 일상용품에 대한 이런 애정의 관계는 한국의 현대 사회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한국의 사회에서는 신상품이 광고되고 판매원 등을 통해서 판매가 촉진되며, 사용하던 물건은 버려지거나 바로 교체가 된다 … 광란의 소비는 넘치는 폐기물 처리의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더 철학적인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 사회는 신상품, 새 것, 최신 제품의 사회이다 보니, 대부분의 가정에 십 년 이상 된 물건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신제품에 대한 열광은 특히 컴퓨터ㆍ휴대폰 등 신기술 상품에 대해서 심하지만, 자동차의 경우에도 그러해서 아직도 거의 새차이고, 번쩍거리는 데도 바꾸는가 하면, 주택의 경우도 이삼십 년 이상을 넘는 경우가 없다 ..  (39쪽)


 옆지기가 작은볼일을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음, 종로3가 전철역에서 작은볼일이라……. 넓디넓은 종로3가 전철역이지만 뒷간 하나 찾기란 몹시 까다롭습니다. 지금까지 알아내기로는 두 군데에 있습니다. 모두 표를 끊고 안으로 들어가서 맨 끄트머리 구석에 있습니다. 우리가 내린 곳에서 가까운 쪽에 있는 데로 가 봅니다. 생각했던 대로, 뒷간으로 드나들 만한 문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네. 밑으로 들어가서 갔다 와야겠네요.”


.. 개고기 소비에 대해서 분개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소를 먹지 않고 숭배하는 인도인들이 타 대륙의 쇠고기 소비를 금지해 달라는 압력을 넣으면 타 대륙에서 쇠고기 소비 금지를 수락할 것인가. 또 이슬람교도들이 돼기고기 먹는 것을 금지시키려 한다면 얼마나 가소롭다고 여길 것인가. 인간과 희귀동물에 대한 금식사항을 제외하고는 채식주의자처럼 모든 고기를 삼가지 않는 한, 각 문화 내에서 수용가능한 동물 간의 계급을 결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  (84∼85쪽)


 13번 나들목으로 해서 밖으로 나옵니다. 바깥에서 맨 먼저 우리를 반기는 모습은 기호 ○번 아무개 후보 걸개천. 기호 ○번 아무개 후보 걸개천은 다른 후보 걸개천과 견주어 엄청나게 많이 나붙었습니다. 문득, 저 아무개 후보가 내건 약속이 무엇이었는가 헤아려 봅니다. 으흠, 으흠, 으흠 …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른 후보 약속하고 그다지 다를 것 없어 보였는데. 그래도 한 가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아무개 후보 약속은 ‘새 집을 50만 채 짓겠다’인데, 새 집이란 다름아닌 아파트 한 가지.


.. 오늘날의 한국은 빨리 돈벌기, 비양심적이라도 쉽게 노력없이 버는 돈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 같다 … 실업자는 사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배척하는 대상이며,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수입원을 상실한 이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  (40쪽)


 2001년부터 단골로 다니고 있는 ㅅ사진관에 닿습니다. 맡겨 놓은 사진을 찾고 티맥스400 필름 열 통을 삽니다. 벌써 여러 달 앞서부터 흑백필름 사기는 하늘별 따기처럼 어렵습니다. 제가 즐겨쓰는 일포드델타400 필름을 주문해 놓은 지도 석 달은 된 듯한데 아직 한 통도 못 받고 있습니다. 오늘 어렵게 장만한 티맥스400 필름도 얼마 앞서 조금 들어온 녀석들이라고 합니다. 필름 한 통 값이 거의 6000원. 예전과 견주어 무척 많이 올랐는데, 앞으로는 이 값보다 더 많은 돈을 치르더라도 물건이나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너무도 반가운 이 필름에 입을 맞추고 껴안으며 가방에 챙겨 넣습니다.


.. 분당에서 나는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도시는 영혼이 없으며, 도대체 사람을 맞이할 줄도 모르는 그런 곳인 것 같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서울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하는 주거지역 중의 하나이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는 계속해서 머리속에 질문을 던져 보곤 했었다. 어떻게 똑같이 생긴, 정감 없는, 환경을 무시하는 아파트를 계속해서 짓고 있는 것일까? 이런 종류의 아파트 건설계획은 이미 오래 전에 프랑스에서는 중단이 된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기저기 조금만 여행을 다녀 보면, 아무리 조그마한 도시라도 어디나 높게 치솟은 아파트들이 있으며, 이런 아파트들은 계속해서 땅위로 솟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  (91∼92쪽)


 3호선 전철을 탑니다. 종로3가에서 3호선 줄기 자리는 매우 좁습니다. 이 좁은 자리에 보호문을 놓는 공사를 합니다. 좁은 종로3가 전철역에는 앉을 자리, 걸상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쉼없이 전철역 바닥을 걸레질로 닦습니다. 가방이라도 내려놓을까 했지만 축축하게 젖은 바닥에 내려놓지는 못합니다. 구파발 가는 차는 보내고 대화 가는 차를 탑니다. 터덜터덜 달리는 전철이 구파발을 지나고 드디어 밖으로 나와 햇볕 보이는 창밖 모습이 펼쳐집니다. 오늘은 얼마만큼 새로 ‘올랐나’ 하고 북한산 둘레를 헤아립니다. 그동안 짓고 있던 아파트들은 거의 공사가 끝난 듯합니다. 그런데 그 아파트들 앞으로 펼쳐져 있던 논이 죄다 갈아엎혔습니다. 그 자리에도 아파트를 또 올려세우려나? 이러다가 구파발 전철역 둘레부터 대화역 있는 데까지 죄 아파트만 득시글득시글해지는 건 아닐는지?


.. 한국에 대한 관광안내 책자를 펴 보면, 어떤 책이든지 항상 서울에 있는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한다 … 이제 몇 년 지나지 않아 남대문은 미국이나 유럽, 또는 길건너 명동에서 보는 것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쇼핑센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전통적인 시장은 정감 있고, 근접한 하나의 장소로, 차갑고 특성 없는, 영혼이 없는 현대식 건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시장이 현대의 삶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  (53∼54쪽)


 옆지기 부모님이 사는 일산에 닿습니다. 고맙게 차려 주시는 저녁 밥상을 받습니다. 옆지기 아버님이 말씀합니다. “이명박을 찍어야 나라가 살지.” 옆지기 어머님이나 동생도 비슷한 생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각해 보면, 옆지기네 식구들뿐이 아니라 요즈음 만나는 둘레사람들이라면 너나없이 이렇게들 이야기합니다. “경제를 살리려면 이명박밖에 없다”고, “우리 같은 서민이 살려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노무현 찍어 놓으니까 보라고, 이렇게 경제불황에다가 다들 먹고살기 어려워서 난리를 치잖아” 하고.

 ‘우리 아버지는 이번 대통령 뽑기를 어떻게 생각하시려나?’ 하는 생각이 슬며시 꿈틀꿈틀 합니다. 참말로 당신들이 ‘먹고살기 힘들어’서, 먹고살 수 있게 해 줄 만한 대통령감을 찾고 있을까요. 먹고살 만한 높낮이는 어느 만큼일까요. 우리는 무엇을 먹고살 수 있으면 될까요.

 돈이 안 중요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라볼 것이란 오로지 돈 하나뿐일는지요. 옆지기 아버님은 우리 옆지기한테, “진짜로 (대학교) 간판 없이 살 거야? 중졸로 끝낼 거야? 간판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말씀을 합니다. 옆지기 대신 제가 한 마디 거듭니다. “우리는 간판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걸요. 그리고 간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 살아가면서 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벽을 허무는 일을 하고 있는걸요.”


.. 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대로를 건넌다는 것은 두려운 경험이다. 운전자용 불이 빨간색으로 바뀌기를 한참을 기다린 후에 겨우 보행자용 녹색불이 들어오는 데다, 겨우 반쯤 건너면 벌써 보행자용 신호가 깜빡이면서 신호가 곧 바뀔 것이라는 표시를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한없이 긴 지하도나 육교가 없는 곳의 이야기이다 ..  (41쪽)


 잠자리에 들기 앞서 잠깐 창밖을 바라봅니다. 아파트 8층인 이 집에서 제법 멀리 내다볼 수 있습니다. 밤에도 불빛이 반짝반짝합니다. 자동차 불빛도 번쩍번쩍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남녘땅 온누리는 밤이 되어도 수많은 불빛으로 환할 테지요.

 옆지기 부모님 사는 이곳 둘레에는 옷가게가 잔뜩 있는데, 모두들 제법 장사가 되는 듯합니다. 우리야 옷 살 일이 없고, 평일 낮이나 아침에만 이 앞을 지나다녀서 사람 구경을 거의 못했습니다만, 어제 들어오는 길에도 새로 문을 연 옷가게들을 보았습니다. 듣는 이야기로는, 주말이 되면 차 댈 곳이 없이 바글바글하다던데.


 (2) ‘한국사람 삶’을 프랑스사람 눈길로


.. 한국 사회는 금융관련 범죄에 대해서 지나치게 관대하다. 2000년 7월에 3만5천 명이 대통령의 사면의 혜택을 받았는데, 3만 명이 경제사범이었다. 반면에 소위 사상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몇 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부유한 가정ㆍ명문대와 명문고 출신의 사기꾼들이 노조위원장이나 사회변혁을 부르짖는 사람들보다 대우를 받는다 ..  (153∼154쪽)


 《한국의 일상 이야기》가 우리 말로 나온 지 네 해가 지났고 머잖아 다섯 해가 됩니다. 글쓴이 에릭 비데 님은 네다섯 해 사이에 한국땅에서 어떤 모습을 새로 보았고 어떤 모습이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또는, 자기가 한국사람 삶을 바라본 이야기책을 펴내던 때하고 지금하고 그다지 달라진 구석이 없다고 느낄는지, 또는 자기 눈으로 보았을 때 안타까운 쪽으로 고꾸라지거나 벼랑으로 치닫고 있다고 느낄는지.

 우리들은 제대로 느끼지 못하거나 대충 지나치는 우리들 하루하루요 우리들 한삶인 《한국의 일상 이야기》는, 나라밖 사람이 바라보고 나서 글로 끄적였기에 책으로 묶여 나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라안 사람이 바라보고 나서 글로 끄적였다면 책으로 나올 수 있었을까요? 아니, 나라안에 있는 우리 스스로 우리들 하루하루가 어떠하고 우리 한삶이 어떠한 줄을 찬찬히 헤아리거나 살피고 있기나 한지요?

 우리 사회를, 우리 문화를, 우리 교육을, 우리 얼을, 우리 넋을, 우리 정치를, 우리 경제를, 우리 과학을, 우리 예술을, 우리 아이들을 우리 스스로 얼마나 곱다시 껴안으며 보듬고 있을까요. 아니, 껴안기나 할까요. 보듬기나 할까요. 그저 돈만 많이 벌 수 있게 해 주면 그만이라고들 여기지 않나요. 그 돈이라는 것도 지금 곧바로 앵겨 주면 될 뿐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나요. 앞으로 어떻게 되든. 앞으로 이 나라 아이들이 어떻게 살건 말건. (4340.12.11.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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