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손바닥만큼 우리말 노래 29
1994년에 ‘새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제는 시골에서도 이 이름을 듣지만, 그무렵에는 낯설었는데, “새내기 새로 배움터”를 줄인 낱말이라고 하더라.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른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나 ‘신입생 환영회·교육회’를 우리 나름대로 풀어낸 얼개이다. 시골에서는 사람들이 땀흘려 맨손으로 새로 일군 터전을 ‘새말·새마을·새골·새고을·새터’라 한다. 여러모로 보면 시골마을 이름에서 살며시 딴, 또는 시골마을 이름을 새롭게 살린, 함께 즐겁게 어울리자는 뜻을 품은 ‘새터’라고도 여길 만하다.
산들바람 선들바람
우리말은 ‘ㅏ·ㅓ’하고 ‘ㅗ·ㅜ’가 늘 맞물린다. ‘산들바람’이 있으면 ‘선들바람’이 있다. 사람들은 으레 ‘선선하다·서늘하다’만 쓰지만, ‘산산하다·사늘하다’라는 우리말이 있다. ‘사늘하다’를 세게 나타내니 ‘싸늘하다’이다. ‘산들바람’이라면 산산히 드나드는 바람이다. ‘선들바람’이라면 선선히 드나드는 바람이다. 산들바람 같은 매무새에 말씨이기에 ‘사근사근’하다. 선들바람 같은 몸짓에 말결이라서 ‘서글서글’하다. ‘산들·선들’은 그냥 가볍거나 그냥 시원하기만 한 바람이지 않다.
산들바람 (산들 + 바람) = 산산하다 : 1. 산산하다고 느낄 만큼 부는 바람. 보드라우면서 가볍게 감싸듯 시원한 바람. 2. 마음·몸짓·말글·모습이 보드라우면서 가볍게 감싸듯 마주하거나 다가오다.
선들바람 (선들 + 바람) = 선선하다 : 1. 선선하다고 느낄 만큼 부는 바람. 부드라우면서 조금 가볍게 감싸듯 시원한 바람. 2. 마음·몸짓·말글·모습이 부드러우면서 퍽 가볍게 감싸듯 마주하거나 다가오다. 거칠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다.
하얀눈이
독일 옛이야기에 나오는 ‘Schneeweisschen’을 영어로는 ‘Snow White’로 적는다. 이 말씨를 일본에서는 ‘しらゆきひめ(白雪姬·白雪公主)’로 옮겼다. 우리는 일본말씨를 그대로 소리만 따서 ‘백설공주’라 쓰는데, 이제는 독일말 ‘Schneeweisschen’과 영어 ‘Snow White’를 우리말씨로 가만히 풀어서 ‘하얀눈이’로 쓸 만하다. ‘하얀눈꽃’이나 ‘흰눈꽃’처럼 이름을 붙여도 어울린다.
하얀눈이 (하얗다 + -ㄴ + 눈 + -이) : 얼굴빛과 살빛이 겨울눈처럼 하얀 사람. 《그림 동화》에 담긴 독일 옛이야기에 나오는 아가씨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 하얀눈꽃·흰눈꽃. ← 백설공주白雪公主)
온누리
따로 낱말책에 없지만, 일찍부터 누구나 흔히 쓰던 낱말 가운데 ‘온누리’하고 ‘온나라’가 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에 안 실렸으니 ‘온 누리’나 ‘온 나라’처럼 띄어야 할까? 아니면 ‘온마리·온바탕·온몸·온통’처럼 붙여쓰기를 해야 어울릴까? 우리는 붙여쓰기를 할 노릇이다. 낱말책이 없던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온마음·온몸·온마을’을 그저 한 낱말처럼 삼았다. 우리나라 낱말책은 ‘온누리·온나라’뿐 아니라 ‘온마음·온마을’조차 아직 올림말로 못 다룬다. 이제는 ‘온’을 오롯이 볼 노릇이다. 온빛과 온꽃을 보고, 온말과 온글을 보며, 온숨과 온나무를 품을 노릇이다.
온누리 (온 + 누리) : 1. 모든 숨결이 함께 있고 어울리고 살고 지내는 곳. (← 우주, 세상, 세계) 2. 우리가 살아가는 별에 있는 모든 나라. (← 전세계, 지구, 지구촌) 3.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나 자리나 터. (← 사회, 세상, 세계) 4. 처음 이 땅에 와서 마지막으로 이 땅을 떠나기까지 살아온 날. (← 평생, 일생) 5. 널리 움직이거나 일하거나 어울리거나 지내는 곳 6. 오늘 있는 곳. 오늘 살아가는 자리. 오늘 있는 터전. (= 이곳. ← 지상, 현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