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6.9.27. 한가위 비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도서박물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한가위에 이르기까지 보름 남짓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철에 비가 오지 않으니 시골에서는 반가운 일입니다. 다만, 올해 첫가을에는 비없이 햇볕날을 이었되, 가을걷이를 이웃일꾼(이주노동자)이 벼베개(콤베인)로만 하고, 베어낸 나락은 햇볕말림이 아닌 틀말림(기계건조)을 하는군요. 벼베개를 쓰더라도 길에 펼쳐서 햇볕말림을 하던 시골내기가 드뭅니다. 머잖아 모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한가위에 이르는 동안 별빛이 엄청나게 너울거렸습니다. 밤이면 미리내를 올려다보면서 별빛을 헤아리는 나날이었어요. 한가윗날에는 구름이 짙어 고즈넉이 풀벌레노래를 누렸습니다. 한가위 이튿날에는 비가 내리면서 먼지와 티끌과 풀죽임물(농약)을 말끔히 씻더군요. 이날 낮에는 빗줄기가 그쳐서 낫을 갈아 ‘우리집 뒤꼍 풀베기’를 신나게 했습니다.
슥슥 느긋이 낫질을 하며 풀내음을 맡으면 온몸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한창 낫질을 하다가 빗물에 젖은 풀포기를 긋던 손이 살짝 미끄러지며 왼손 둘째·셋째손가락을 콕 찍었습니다. 부드럽게 긋던 낫이라 가볍게 찍었고, 용케 셋째손가락까지 함께 찍느라 둘째손가락이 그리 깊게 찍히지는 않았습니다.
핏물이 흥건히 번져도 모싯잎과 한삼덩굴잎으로 손가락을 감싸면서 풀베기를 마저 했습니다. 일을 마친 뒤에 빨래까지 하지는 못 하고, 땀에 젖은 옷을 헹구고 몸을 씻은 뒤에 이럭저럭 집일을 하고서 쉬었어요. 이다음날에는 이럭저럭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지냈습니다. 다친 손가락은 다쳤을 뿐이요, 천천히 나으면 됩니다.
풀가시에 긁히는 자리는 이레쯤 지나면 사라집니다. 낫에 찍혀서 벌어진 흉은 보름이나 달포쯤 지나면 아뭅니다. 2000해에 낫에 처음 손가락을 찍었을 텐데, 지난 2011해부터 올해까지 거의 해마다 하루쯤 낫에 새삼스레 손가락을 찍혀 옵니다. 앞으로 손가락을 멀쩡히 건사하는 나날을 맞을 수 있고, ‘한해씻김’ 같은 일을 치를 수 있습니다. 어느 길이건 푸른빛을 품는 보금살림입니다.
‘집’이라는 낱말은 아름답습니다만, 우리나라 낱말지기(사전편찬자·언어학자) 가운데 ‘집’처럼 수수한 낱말을 사랑하는 일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글’은 세종임금이 아닌 주시경이라는 작은이가 지은 이름이요, 세종임금은 ‘정음·훈민정음’이란 이름으로 글씨를 베풀었으며, 주시경은 말틀(문법)과 글길(문장표현법)을 비로소 가다듬고 새롭게 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한말글’ 같은 이름을 헤아릴 때입니다. ‘한국어’도 ‘조선어’도 아닌 “함께 하늘빛으로 하나를 이루는 집(우주宇宙)”이라는 뜻으로 ‘말집’인 한말글을 생각할 만합니다. 어질게 생각을 짓고, 사랑으로 살림하며 지낼 줄 아는 집에서 즐거울 때라야, 누구나 ‘사람’이라는 사이(새)를 틔웁니다.
집을 보면서 보금자리를 가꿉니다. 집을 돌보면서 봄빛을 바라봅니다. 집을 보듬으면서 보드랍고 보얗게 소꿉노래를 부릅니다. 포근하게 드리우는 손길로 마주볼 수 있기에 함께 즐겁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나누는 소리인 말이요, 들빛을 바람에 실어서 달리는 말이며, 집과 집이 누리와 누리로 만나서 온누리를 이루는 말(마을)이고, 맏이와 마루와 머드러기처럼 앞장서며 크게 피어나는 말이자, 온마당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슬받이인 말입니다.
ㅍㄹㄴ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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