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에 써둔 글인데 여태 묵혔다가 올려놓는다.


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뱁새라는 너



  참으로 가득할 만큼 사람 곁에서 어울리는 참새가 있고, 밝게 노래하는 박새가 있고, 톡톡 내려앉듯 슬슬 나는 할미새가 있고, 더없이 조고만 몸으로 살랑대는 뱁새가 있다. 오래오래 속삭인 새이름에는 오래오래 이웃으로 지낸 마음이 흐른다. ‘참새·박새·할미새·뱁새·딱새·콩새·한새’ 같은 이름은 더 낫거나 좋거나 나쁘지 않다. 굳이 ‘뱁새’라는 이름을 나쁘게 여기어 ‘붉은머리오목눈이’로 바꾸어야 하지 않다.


  이른아침에 논둑길을 달려서 옆마을로 간다. 제비 셋이 머리 위로 가까이 스치며 노래한다. 참새 여럿이 가볍게 날며 노래하더니, 시든 억새포기에 사뿐히 앉는다. 작고 가벼운 몸이니, 시든 풀줄기에도 앉지. 달리다가 슬슬 거닐면서 참새떼를 바라본다. 이내 구름이 걷히고서 해가 난다. 이웃마을 느티나무에 새잎이 돋는다. 느티잎을 나물로 즐길 무렵이다. 2003년 가을 어느 날 권정생 할배가 “마, 예전에 먹을것이 없어서 느티잎도 떡으로 해먹었지.” 하고 알려준 적이 있다. 이 말씀을 듣고서 이듬해 봄을 기다렸다. 느티잎이 새로 돋을 한봄을 기다려서 한 잎씩 톡톡 끊어서 머금어 보았다. 처음에는 낯선 맛이었으나 이내 느티잎 푸른맛을 반겼다. 따로 떡을 안 하고서 잎을 나물로 삼으면 되더라.


  옅푸른 잎빛이 짙게 물들면 슬슬 억세다. 이때에는 다른 나뭇잎을 훑으면 된다. 불긋나무(단풍나무)도 갓 돋은 새잎을 이레나 열흘쯤 나물로 삼을 수 있다. 애벌레는 한 가지 잎만 갉지만 사람은 모든 잎을 다 훑을 수 있다. 들풀과 숲나무는 철철이 새빛으로 누구한테나 베풀면서 싱그럽다.


  시골버스를 타고서 붓을 쥔다. 사람 곁에서 나란히 하루를 살아가는 조그마한 이웃넋을 글줄로 그려 본다. 그래, 뱁새 이야기를 그리자. 이 조그마한 날갯짓과 몸짓으로 여태 우리 곁에서 싱그러이 춤노래를 베푼 새빛(날아다니는 새로서 새롭게 사이를 잇는 빛)을 적자.


  오늘은 나흘 만에 해를 본다. 봄해는 밝고 맑게 들숲마을을 비춘다. 눈을 떠서 하늘을 본다. 눈을 감고서 하루길을 헤아린다. 참새 못잖게 뱁새가 확 줄었다. 제비 못잖게 한새도 왜가리도 확 줄었다. 새 한 마리한테 땅 한 뼘 나누는 마음을 살리고 싶다. 박쥐도 소쩍새도 뻐꾸기도 꾀꼬리도 깃들 만한 숲이 서울 한복판에도 있기를 빈다. 새바라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마을일꾼(지자체장·기초의원)으로 나서기를 빈다. 온 가지 새이름까지 알기를 바라지 않으나, 마을일꾼이라면 적어도 서른 가지 새이름을 알면서 마을 곳곳에 품을 줄 아는 눈썰미여야지 싶다. 나는 새랑 노래하고 놀이할 줄 아는 사람을 마을일꾼으로 뽑고 싶다. 2026.4.13.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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