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어제책 / 숨은책읽기 2026.7.16.
숨은책 1171
《廓》
西口克己 글
東邦出版社
1971.5.10.
책벌레는 모든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모든 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어느 책이건 안 가리면서 손에 쥐려”고 합니다. 책집마실을 하며 눈앞에 보이는 책을 그저 하나씩 짚으며 들춥니다. 이 책은 읽거나 저 책은 안 읽을 까닭이 없습니다. 책시렁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죽 짚고, 책더미는 밑부터 위로 죽 살핍니다. 이렇게 살피며 읽다가 《廓》을 봅니다. 이런 한자 한 마디로 책이름을 삼는구나 여기면서 들추다가 “藏書 1313. 1974.6.25. 株式會社大韓造船公事 認定職業訓鍊所” 같은 자국을 봅니다. ‘대한조선공사’란 뭘까 하고 갸웃합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굴레(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난 뒤에 배무이(조선업)를 맡는 일터였다고 하는군요. 그곳 ‘직업훈련소’에 일본책을 두었군요. 다만 이곳은 머잖아 닫습니다. 이곳이 닫히며 이곳에 있던 책이 흩어집니다. “1993.3.20.話氷愛藏”란 자국이 더 있으니, 아마 이무렵에 책이 흩어지면서 헌책집에 흘러들었을 테고, 어느 분이 반가이 맞아들였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1993해에 이 책을 품은 분도 서른 해 뒤에는 다시 책을 내려놓습니다. 숱한 책은 책임자가 흙으로 돌아가는 언저리에 집을 잃습니다. 임자도 집도 잃은 책이 잠든 책시렁을 쓰다듬다가 살포시 안아 봅니다.
#니시구치 카츠미 (1913∼198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